문화당 서점의 역사
▶ 문화당 서점은 1945년, 지금은 돌아가신 최인창씨가 시작하여 지금은 아들 최경석 씨가 72년째 운영하고 있다. 장흥에도 70년대에는 진학서점, 문우당 같은 서점이 있었으나 지금은 문화당과 상문당, 두 개의 서점이 있다.
우리 서점은 저로 보면 고모할머님부터 시작을 하셨는데 정확한 연도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버님께서 여기저기 기록해놓으신 걸 보면 아버님 스스로 서점을 직접 운영한 것이 아마 1945년, 46년인가 싶어요. 그래서 현재 이 자리가 1979년도에 새로 지어가지고, 원래 있던 자리를 새로 지어서 했는데 그때가 79년도니까 그 이전, 79년도 이전의 상황이 35년 됐다고 아버님께서 기록을 하신 걸 보면 1945년, 46년 이렇게 아버님 스스로 사업을 시작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업자등록을 보면 1950년도에 사업을 개시한 것으로 정리가 돼 있어요. 그것은 행정적으로 그 당시에 사업자 등록을 전부 정리를 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서류상 세무사에 등록은 1950년 개업한 것으로 돼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아버님께서는 물론 서점만 하고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에는 재봉틀도 수리도 하고 판매도 하고, 그리고 중간에 장평에서 얼음장사까지도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계속 근간은 서점이었죠. 따지고 보면 이 장소는 세 번째 장소가 됩니다. 장흥 문화당 서점의 이전 과정을 보면, 지금 기양리에 있는 첫 번째 서점 자리는 그대로 현재 일제 때의 적산가옥으로 현재 남아있고요. 두 번째는 읍사무소 앞쪽에 춘추당 서점과 현재의 문화당 서점 두 군데를 같이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쪽이 두 번째, 동시에 여기까지 했겠죠. 문화당 서점은 아버님이 하셨던 그런 기록으로 보면 74~5년 되는 지금 현 시점이고요. 그런 과정에서 이 자리가 78년도에 짓기 시작해서 79년도에 이사한 곳인데, 원래 있던 자리에. 그리고 이곳으로 이사할 때에는 이곳 원래 집 주인으로부터 외상으로 사셨다고 그래요. 수십 년 동안 집세, 집 비용을 갚아가면서 서점을 영위를 하셨습니다. 물론 저희 옛 창고에 일제시대 국민학교 교과서가 상당부분 있었어요, 지금은 자취가 없지만. 그래서 그 당시에도 교과서를 저희 문화당 서점 또는 그 이전에 고모할머님께서 보급을 했다고 짐작을 합니다. 아버님께서는 인제 사실상 평생 이 업을 하셨죠. 79세에 돌아가셨는데 78세 때 하셨던 인터뷰를 보니까 58년째 이 사업을 하고 계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더라구요. 그래서 그 평생이라는 표현은 근 60여 년간 아버님께서 운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6·25때는 이런 어려움도 또 있었다고 그럽니다. 병영에 근무하셨던 선생님께서 당시로 보면 좌익계열 책들을 아버님이 구해주셔서 보셨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 분이 고초를 겪으면서 책의 출처를 저희 아버님에게 구했다, 그래가지고 경찰서, 6·25전쟁 중에 경찰서 가셔가지고 호되게 추궁을 당하고 굉장히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는데, 어찌 인제 쉽게 일을 마무리 지어서 그때 혼이 나신 뒤로는 대단히 이제 신중하게 일을 하셨고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셨겠죠. 서점이 하나였기 때문에 70년 중반에 장흥에 서점이 두 개가 생기긴 했습니다. 그래서 진학서점이라는 곳도 있었고 또 문우당 서점이라는 곳도 있었는데 두 군데 다 인제 소멸이 됐죠. 그리고 지금은 서점이 상문당이라고 장흥읍에 서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도 저희 형님 되시는 분께서 결혼과 동시에 결국 저희 아버님께서 우리말로 재금을 내주신 거죠. 그 서점 또한 지금 35, 6년 돼가고 있습니다. 장흥읍에는 저희 서점과 함께 삼문당 서점이 있는데 그곳 역시 저희 고모할머님, 저희 아버님, 그리고 현재 저희 형수님 이렇게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대로 또 뜻이 있는데 저희 아버님께서는 우선 평생을 하시다 보니까 장흥에 문화를 한편으로는 이끄셨다는 자부심을 느즈막하게는 가지고 계셨습니다. 물론 저희 8남매를 키우는 소중한 생활현장이기도 하셨지만 해오는 과정에서 그런 자긍심이 있었음을 인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제보자(구술자) / 최경석(남, 55세, 건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