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본질을 딱 꿰뚫어 보는 것을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고 합니다. 늘 선(善)심만 일어나는 것을 일심(一心), 즉 한마음이라고 알고 있다면 불교를 전혀 모르는 겁니다. 마음의 성질 자체가 항상 한결같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은 죽 끓듯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이것을 ‘관심무상(觀心無常)’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하면 무상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일심이 어디 있어요? 그것은 관념일 뿐입니다. 마음이란 늘 경계 따라 이랬다, 저랬다 제 멋대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선심이든 악심이든 의미가 없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일어나든 저렇게 일어나든 의미 부여를 하지 않으면 경계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것을 ‘일심(一心)’이라고 부릅니다.
마음공부를 할 때는 이렇게 본질을 꿰뚫어서 보아야 공부가 쉬운데 늘 눈을 감고 더듬고 있으니까 공부가 어려운 거예요. 인생을 쉽게 살자고 수행을 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수행까지 어렵게 하려고 합니까? 마치 ‘아침 5시에 일어나야지’ 하고 시계를 맞춰 놓고는 아침에 시계가 울리면 이불속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이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노력이라고 생각하세요? ‘일어나야지’ 생각한다는 것은 일어났다는 거예요, 아직 안 일어났다는 거예요?”
“아직 안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그것을 하고 싶어 한다고 착각을 해요. ‘일어나야지’ 하는 노력은 이제 그만두고 그냥 벌떡 일어나 버리세요. 내일 아침부터 해보세요. 왜 매번 인생을 결심하고 살려고 해요? 할 일 있으면 하면 되고, 갈 일 있으면 가면 됩니다.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지금 싫은 마음에 사로잡혀 있구나.’ 하고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합니다. 본질을 꿰뚫어야 싫은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탁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선(禪)에서는 이것을 ‘방하착(放下着)’이라고 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일어나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을 지금 내가 노력하고 있으니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매번 헤매게 되는 거예요.
마음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용기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늘 이런 경계(境界) 따라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을 살펴서 그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자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경계(境界) 란 인과의 이치에 따라서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치게 되는 모든 일들. 곧 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