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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그 봄날의 추억》
글쓴이 : 34회 송연식
고교졸업 후 삼십여 년 만에 고3때 담임선생님과 동창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들뜬 마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인데 눈을 뜨니 피곤하다. 하지만 마음이 즐거우니 피곤함도 사라지는 것 같다. 선생님을 만나는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분주하게 집을 나섰다. 어제의 기상소식은 오늘 비가 많이 올 거라고 했는데 지금은 안 내린다.
오늘 하루 종일 날씨가 맑기를 바래본다.
올해로 66주년을 맞는 삼천포고등학교총동창회 행사 주관 기수로 준비에 많은 수고를 들이고 있는 동창들의 노고가 비로 인한 참석률 저조로 빛을 잃지 않기를 빌어본다.
내비게이션에 점심식사 장소를 도착지로 입력하고 드디어 삼천포로 향한다. 들뜬 마음을 추스르며......,
내 젊은 날의 삼천포 / 허원 송연식
내 젊은 날의 삼천포
학창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그곳
어느 따뜻한 봄날에
친구들과 함께 철길을 따라 걸으며
꽃향기에 취한 나비를 마냥 따라갔었네.
어느 무더운 여름날에
친구들과 함께 남일대해수욕장 가는 길을
무작정 걸어도 힘든 줄 몰랐었네.
어느 단풍이 짙은 가을날에
노산공원을 거닐다가 노산에 우뚝 서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국충절에
그 여린 가슴이 숙연해졌던 그곳
어느 추운 겨울날에
망산에 올라서서 호연지기를 키우며
활시위를 당겨보았던 그곳
와룡산 굽이굽이 돌고 돌아
한려수도를 품에 안은 삼천포를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 같은
그리운 친구들과 추억을 나누었던 삼천포를
내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토요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다행히도 중부내륙을 경유한 대구 창원 진주 쪽 고속도로는 원활하여 교통체증 한 번 없이 삼천포에 들어섰다.
고 박재삼 시인과 노산 이은상 시인의 정취가 깃들어있는 곳
내 젊은 날의 추억을 간직한 삼천포에 참 오랜만에 온 것 같다.
2000년 6월에 근무지를 옮기게 되어 이곳을 떠난 이후 사천 고읍에 계시는 홀어머니를 찾아뵙기만 하고 그동안 삼천포는 잘 와보지 않다보니......,
점심식사 장소에 도착하니 음식점 입구에 몇 명의 동창들이 나와 있다. 참 오랜만에 만나보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총동창회 행사준비로 밤낮으로 애를 써서 그런지 피곤해 보이는 것 같아도 반갑게 맞이해준다. 동창회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못주었는데도 이렇게 반겨주니 더없이 고맙고 한편으론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든다.
동창회장 김영일 사무국장 박창민 그리고 김생수 다들 건강한 모습으로 특히, 밝은 웃음이 참 좋았다.
음식점 안으로 들어서니 고3때 담임 손영식 선생님께서 먼저 오셔서 앉아 계신다. 선생님을 뵙자마자 졸업 후 삼십여 년 만에 뵙게 되어 너무 죄송스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되어 큰절을 올렸다.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 같아 또한 기쁘다. 지금은 창호수산 대표로 여전히 시원시원하신 최창호 체육선생님 한문을 가르쳐주셨던 박명주 선생님도 뵙고 보니 점심을 먹으면서도 동창생들이 빨리 보고 싶어진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먹은 것 같다.
그저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진수성찬 같은 점심을 대충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선생님을 모시고 학교 정문에 다다르니 학교 전경이 참 많이도 변한 것 같다. 예전에 그 넓었던 운동장이 다 잔디구장으로 바뀌고 중학교와 같이 운동장을 사용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지금은 중학교의 건물 하나가 흘러간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하듯이 운동장 가운데 우뚝 들어서있다.
‘무만관’을 찾으니 동창들이 행사준비로 분주하다. 다들 참 반갑게 맞이해주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가득해진다. 삼십여 년 만에 보는 동창들이 많았다. 모두 다 안아보았다. 주책 같았지만 보고 싶었던 동창들을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한 번 안아보나 하는 생각이 먼저였다.
만남의 기쁨과 세월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는 슬픔이 교차되는 시간이었다.
행사장을 찾아온 동문들을 안내하던 회장님 포스가 느껴지는 창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식아 요리오이라 요오 가치서서 오시는 분들 안내하그로" 라는 사투리 섞인 말이 정겹게 들린다. 내가 쓰일 때가 있다니 고마움에 얼른 영일이 용득이 창기 옆에 서서 어설프게라도 따라했다.
잠시 후 ‘무만관’ 안에서 들려오는 재국이와 강수의 연주가 심금을 울린다. 학창시절에 연주하던 강수의 색소폰 소리가 아련한 기억 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아! 어느새 내 마음은 그리운 학창시절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66주년을 맞는 총동창회 행사는 시작되었다.
행사장을 꽉 채운 동문들과 교가를 다함께 부를 때 "문천과 무만의 양양한 글 바다"라는 대목에서는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흐른 것 같다.
그렇게 행사의 열기는 서서히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34회 동창들의 만남을 한껏 축하 하듯이......,
드디어 총동창회 행사 주관기수 회장을 맡은 영일이가 단상에 올라서서 축하 연설을 하고 마지막 맺음으로 "우리는 식구다"라는 구호를 외칠 때 정말 대단했다. 영일이가 대통령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다른 자리에서 조합장으로 오인한 사람이 있었다고도 한다. 하하)
어느덧 행사는 마무리로 접어들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드세어졌다. 이런 와중에도 어수선함 없이 동문들은 행사가 다 끝날 때까지 질서를 지켜주었다. 비 오고 바람이 드세도 질서정연한 삼고인의 저력을 실감했다.
행사가 다 끝나고 우리 동창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협동하여 경품을 나누어주고 행사장 물건들을 거의 순식간에 일사불란하게 다 치우고 정리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단합되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으로 와 닿는다.
그렇게 우리는 깨끗이 정리된 체육관에서 웃으면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근 삼십여 년 만에 흘러간 세월을 붙들 듯이 그렇게......,
어느 하늘 아래서 이곳에 못 온 친구야 지금 기념사진을 찍으며 너에게 우리의 이름을 올려본다.
정경석 장창기 강동완 정광열 이상근 이영래 임영호 김병섭
최민형 최형욱 김강수 김용석 서준호 정갑수 신성기 박현수 문재운
이문건 손낙호 김 용 문광석 배기현 김무환 김종현 여현준 김 생
김성화 김정국 김무현 천재웅 박창민 김영일 송연식 심재율 신정호
기념사진 찍을 때 건물 밖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던 장은규
문창진 박철재 김성근 정용득 박주동 최귀식 손종한 김성민 정재국
우리 모두 다 함께 건강하게 또 만나길 빌며......,
친구야 지금 / 허원 송연식
친구야 지금
어디서 뭘 하며 지내니?
너무나 보고 싶은 친구야
지나간 내 여린 가슴의
아련한 추억 속의
친구야 지금
어디서 뭘 하며 지내니?
우리가 같이 놀던 그때
그곳에 있니?
동네 시장에 있니?
동네 골목에 있니?
동네 언덕에 있니?
동네 마당에 있니?
친구야 지금 또 만나자
그때 그곳에서
예전에도 늘 그랬던 것처럼
그때 그곳에서
‘무만관’을 나오니 비가 더욱 더 쏟아진다. 밖으로 재빨리 나온 여러 동창생들이 밖에 남아있던 물건들을 신속하게 정리하고 있다. 특히, 동창회를 위해 수고가 참 많은 사무국장 창민 총무를 맡은 무현이의 부지런함이 더욱 돋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천막과 물건들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게 정리하고 팔포에 있는 횟집으로 향했다.
비록 소주 한 잔 이더라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미 흘러가버린 세월의 아쉬움 속에 만남의 기쁨을 나누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총동창회행사 주관기수들의 노고를 치하하러 오신 24회 선배이신 이재완 총동창회장님의 축하말씀과 함께 "소취하" "당취평" (소주에 취하면 하루가 즐겁고 당신에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 이라는 건배사에 흥은 더해지고 만남의 밤은 계속되었다.
이별의 아픔을 달래며 만남의 기쁨을 누리며......,
여흥을 잇는 노래방에서 사진을 몇 장 찍는 내게 "요서는 찍지 마라 편하게 놀그로"라고 하는 재웅이 덕분으로(하하) 나도 동창생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신바람이 날 정도로 신나게 놀았다. 흘러가버린 세월을 질타하듯이 목이 터져라 노래도 같이 불렀다.
아! 지금도 그 밤의 여운이 남아 내 마음을 흔든다.
그렇게 흥은 숙소에서도 계속되었다. 작은 체구에도 튼실한(하하) 무현. 여전히 의리 좋고 시원시원하다. 배려심이 돋보이는 재율. 여러 동창생들과 멈출 줄 모르는 시간을 부여잡듯이 술 한 잔에 새벽을 붙들었다.
지나가버린 젊은 날의 기억들 속에서......,
잔다고 누운 것 같은데 금방 아침이다. 날씨는 쾌청하다. 주위를 돌아보니 창민이 재율이만 보인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병섭이 영일이 무현이 다들 보이지 않는다.
멀리 남양주시에서 온 민형(경숙)이는 어디서 잤을까?
서울에서 제수씨까지 대동하고 온 현준이는 잘 잤을까?
동창생들을 보러 먼 길을 온 종한이와 성민이는 새벽에 가야 한다며 술 한 잔도 못 먹고 있었는데......,
잘 갔을까?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허둥지둥 대충 씻고 창민이가 안내를 해주는 횟집으로 갔다.
언제 왔는지 여러 동창생들이 해장국을 먹으러 와있다. 뜨거운 해장국을 생각했는데 ‘물회’를 먹어보라고 한다. 맛을 보았는데 괜찮다. 텁텁했던 속이 진짜로 시원해진다.
영일이는 새벽에 일어나서 ‘남일대해수욕장’의 물속에 들어갔다 왔다고 하는 건지 잘 안 믿어진다. 새벽에? 대단하다!
‘물회’의 시원함에 빠진 나는 거의 폭풍 흡입 하듯이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 같은데 잘 안 들린다. 다들 누가 현수 하고 잤는지 궁금해 한다. 잘 못 잤다고? 왜 그러지? 하고 나만 멍하니 있었다. 다들 모두 웃는데......,
잠시 뒤에 내막을 자세히 알고 나도 많이 웃었다.
웃음이 참 좋은 현수를 바라보다가 예전에 지은 글이 생각난다.(하하)
크지 말입니다 / 허원 송연식
친구가 있지 말입니다
별명이 있지 말입니다
대가리 라지 말입니다
머리가 크지 말입니다
부딪쳐 보지 말입니다
아픔이 크지 말입니다
페북도 하지 말입니다
현수라 하지 말입니다
프로필 사진 말입니다
사진에 차지 말입니다
가득히 있지 말입니다
머리참 크지 말입니다
영일이가 또 얘기한다. 예전에 어떤 아가씨를 2시간여 동안 공을 들여 꾀고 있는데 "?호" 라는 동창생이 단 5분 만에 꾀어 데리고 갔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참 오랜만에 실컷 웃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자주 웃고 즐겁게 살다보면 장수한다 하니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이 장수하는데 한 몫을 한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웃고 떠들고 좋았다. 배가 고프다. 식성도 좋아지는 건지? (하하)
얼마 전에 서울의 농협에서 김해로 옮긴 준호 생각이 났다. 어제 최창호 선생님께서 "고2때인지 준호가 억울하게 다른 선생님께 혼날 때 같은 선생님으로서 학생 편을 들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준호가 참 보고 싶구나!" 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어제 어디서 잤는지 궁금하다. 해장국 먹으러 오라고 전화하니 도저히 힘들어 못 일어나겠다고 한다.
잠시 후 용이도 왔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
도다리 쑥국도 해장에 일품이었다. 역시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국그릇에 남은 국물 없이 다 먹었다. 그래도 배가 고프다.
국수사리를 더 시켜 남은 ‘물회’ 국물에 또 말아 먹고 있는데 창기가 한마디 한다. "니 요저음 마이 힘든 가베"라고 한다. 모두 또 웃는다. 재웅이도 한마디 한다. 나한테 그러는지 잘 안 들린다. "너 그으 ?대는 밥 안주나"라고. (하하) 국수가 넘어가다 목에 걸릴 뻔 했다.
재웅이 웃는 모습을 바라보니 예전에 내가 술이 한잔되어 재웅이에게 잔소리 같은 듣기 싫은 소리를 할 때 묵묵히 들어주었던 기억이 떠올라 지은 글이 생각이 난다.(하하)
굵지 말입니다 / 허원 송연식
친구가 있지 말입니다
재웅이 라지 말입니다
축구잘 하지 말입니다
머리도 크지 말입니다
어깨더 크지 말입니다
가슴도 좋지 말입니다
다리도 굵지 말입니다
억수로 굵지 말입니다
부딪쳐 보지 말입니다
태클안 되지 말입니다
통증이 크지 말입니다
마음도 넓지 말입니다
태평양 같지 말입니다
그렇게 나는 시원한 ‘물회’ 국물에 국수사리를 다 말아서 먹었다.
해장국 ‘물회’를 시원하게 잘 먹고(하하) 우리는 횟집을 나왔다.
창기가 마무리 농담을 하는 건지 횟집을 나오면서 횟집 주인 딸을 가리키며 우리랑 동갑이라며 내게 환기시키듯이 얘기한다. 나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창기가 횟집 주인 딸에게 뭐라고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앞의 말은 잘 안 들린다. 끝말에 내가 이혼할 거라고 한다. 놀란 나는 지금 무슨 소리 하냐고 창기를 멈추게 했다. 집에 돌아가면 사랑스런 아내와 아들딸이 있는데 혹시 내가 창기에게 어제 밤에 실없는 소리를 한 적이 있나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런 적이 없는데......,
요상한(하하) 창기를 돌아보니 참 재미 있고 즐거운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서로 다음을 기약하고 하나 둘씩 헤어졌다.
바빠서 먼저 가는 동창들에게 잘 가라고 손 흔들며 나는 총동창회 행사가 끝난 뒤 덜 마무리된 것들을 치우러 가는 동창들을 따라 갔다.
무현 영호 창민 영일 현수 갑수와 함께 청소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남은 선물들을 교무실에 갖다 놓으려고 예전과 그대로인 계단과 복도를 지날 때 학창시절이 많이 떠올라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제 나도 가야 할 시간이다.
총동창회 일로 수고가 많았던 동창들과 김영일 회장을 비롯하여 임원진의 노고에 가슴깊이 고마움을 새기며 길을 나선다.
아직은 내가 계속 가야할 그 길을 향해서......,
삼천포고등학교 34회 동창회의 무궁한 발전과 동창생들의 건승을 빌며
2016년 4월이 가는 어느 따뜻한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