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로마 여행 중에 접하면서 느낀 감격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심지어 버스를 타고 무심코 바라본 스크린에서도 그의 수상 소식은 승전보처럼 눈길을 끌었다. 이때야말로 내 정체성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유난히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누군가가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면 캐나다에서 왔다고 하지 않고 한국에서 왔다고 할 판이다.
여행 나흘째,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숙소에 머물기로 하고선 한강 작가의 최근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를 전자책으로 구매해 읽고 있다. 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그의 문체는 독특하고 묘사 능력은 가히 탁월하다. 쉽게 읽히는 글이 아니다. 중간중간 가슴을 짓누르는 문장 때문에 다시금 마음을 진정시키고 글을 읽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와 과거, 현실과 비현실 세계를 오가는 구성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되돌아가 읽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한다. 얄팍한 역사적 지식 밖에 갖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소재로 썼음에도 이게 정말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인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읽을 때는 그려지던 상황이 이 책을 읽을 때는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적잖은 인생을 살아온 내가 과연 내 조국에서 벌어졌던 일에 이토록 무지할 수 있었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일단 일독부터 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독하기 전, 제주에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확실히 알아야 할 것 같아서이다. 한강 작가가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내가 제주 4.3 사건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글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겠다.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고 한강 작가의 수상 이유를 밝혔다.
얼마나 많은 작가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뻐만 할 수 있을까? 그를 쫓아갈 자질이 손톱만큼도 없는 나만 해도 자격지심에 이렇게 글을 써도 되는지 되돌아보며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데, 명색이 대중에게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래서인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저격하는 작가도 있다. 작품이 역사 왜곡이라며 출판사의 정치적 로비에 힘 입어 여성 할당제로 받은 것이라고 폄훼한다. 게다가 이번엔 중국의 옌롄커가 받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작가적 양심에 따라 무조건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을 축하만 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내 눈에는 이 또한 자격지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격지심은 어떠한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미흡하다고 느끼는 마음이다. 자존심은 강하고 자존감이 약한 사람에게 드는 의식의 흐름이라고도 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위축되는, 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몇 차례 느껴봤음직 한 마음이리라. 나는 자격지심이 스멀거리며 올라올 때마다 내가 능력은 있는데 게을러서 그런 거라며 나를 위로하고 그 마음을 은근히 눌러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목표를 도전적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정하고 그것을 다 이루지 못할 경우에는 다음에 하면 되지 뭐, 하고 생각하려 노력한다. 얼핏 보면 여유롭고 자존감 높은 행동처럼 보이지만 속은 서서히 곪아가며 불안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애써 이런 감정을 외면해 보기는 하나 이렇게 누적된 감정은 현실이 아니라도 꿈에서라도 폭발하기 마련이다.
최근 동료 문인이 장편 소설을 출간했을 때, 또 다른 문인이 공모전에서 소설로 입상했을 때, 나는 그들을 기꺼이 축하하면서도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와 비슷한 자격지심을 느낀 적이 있다. 다들 작가로서 소명을 다하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그것은 한편으로 나의 작가적 역량 부족을 쉬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발버둥이기도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에 대한 질책이기도 했다. 어느 동료 문인이 자기는 자신이 쓴 글이 제일 좋다, 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이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나는 아직도 내가 글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의문을 품을 때가 많다. 공연히 겉멋이 들어 스스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기 위해 글쟁이 흉내를 내고 있지는 않나, 하는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다. 문제의식도 부족하고 철학적 깊이도 없으며 문학적 역량까지 받쳐주지 못한다면 글은 써서 무엇하리오. 처음 글쓰기의 시작은 내 안에 쌓여 있는 응어리를 들어내어 해소하는 것이었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식의 글쓰기는 이제 멈추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여행이 어떠냐는 안부를 물어오는 아들에게, 종일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책을 읽는 중이라고 하니 혀를 내두른다. 로마까지 가서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아마도 엄마뿐일 거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