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장은 이스탄불의 서쪽, 그러니까 유럽 쪽에 있는데 개항을 금년 4월에 했다고 한다. 어쩐지 인천국제공항처럼 무척 깨끗하고 단정해 보였다. 그곳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내내 도로가 막혔다. 이스탄불의 인구가 1,200만 명이라니 서울 한복판의 교통 흐름을 생각하면 될 듯싶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결국 시내 관광은 포기해야할 것 같다는 가이드의 전갈이다. 모두 시간도 늦어 시장할 테니 저녁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한다. 또 먹나? 도대체 오늘 몇 끼를 먹는 건지. 어떻든 처음 먹어보게 되는 터키 음식이라 그까짓 몇 끼의 문제가 아니라 호기심이 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광장 옆의 한 골목 입구의 음식점으로 들어섰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성소피아 성당이 지척에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기까지 가이드는 터키에 대해 쉴 틈 없이 이야기를 해댔다. 첫날부터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도대체 남의 나라 역사 이야기를 왜 그렇게 세세히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가이드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식당 골목 입구에 버스가 멈추자 우리는 마치 해방이라도 된 것처럼 앞을 다투어 버스에서 내려 식당으로 향했다.
터키 식당은 처음 들어와 본 곳이라 생소했지만 비행기에 지친 탓에 이리저리 둘러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2층에 마련된 자리로 올라갔다. 2층 창문으로 맞은편 건물이 아기자기하게 내다보였다. 바로 앞으로는 이발소, 양복점, 기념품점 등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오래된 도시의 골목 풍경 그대로였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골목 어귀 어디쯤에서 구성진 소리가 들렸다.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Azan)이라고 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아잔은 이슬람에서 예배의 시각을 알리는 육성에 의한 부름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불교나 그리스도교의 종에 상당하는 것이다. 아잔은 매일 다섯 차례 일정한 시각이 되면 담당 무슬림이 종탑 위에 올라가 성도 메카를 향하여 일어선 채로 소리 높이 외친다. 외침은 그저 고함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주술처럼 울려 퍼졌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일곱 개의 절로 되어 있다고 한다.
“알라는 지극히 크시도다. 우리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맹세하노라. 예배하러 오너라. 구제하러 오너라. 알라는 지극히 크도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느니라”. [네이버 지식백과]
아잔을 들으며 얼마간 기다리다보니 스프와 함께 식전 빵이 바구니에 담겨 나왔다. 무료함을 달래려는 듯 또는 터키 빵맛이 궁금한 듯 모두들 자연스레 빵으로 손을 뻗었다.
조금씩 뜯어서 스프에 찍어 맛을 보고 있는 중에 다시 조개 모양의 커다란 모양을 한 빵을 그릇에 올려주었다. 금방 구워낸 빵이라 따끈따끈했다. 여럿이 먹어도 될 정도로 아주 컸다. 그런데 빵을 뜯자 빵은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가라앉았다. 빵은 속이 텅 비어 있었다. 밀가루 반죽을 우리처럼 홍두깨로 얇게 민 다음 이를 반으로 접어 그대로 구워낸 것이다. 반으로 접을 때 속에 공기가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기술인 모양이었다.
구워지는 동안 두 겹 사이의 공기가 더워지면서 빵이 부풀어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홍두깨를 사용하는 방법은 우리와 같았다. 다만 이곳 사람들은 얇게 펼쳐진 것을 그대로 화덕에 굽는데 우리는 그것을 겹겹이 접어서 잘게 썰어 칼국수로 끓여 먹는다. 어린 시절 쌀이 부족했던 때라 자주 집에서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어머니는 밀가루로 반죽을 하고 숙성이 되도록 얼마간 기다린 후에 소반 위에 올려 홍두깨로 넓게 폈다.
이때 반죽이 소반에 달라붙지 않도록 밀가루를 뿌려가며 홍두께로 고르게 구르면 반죽은 신기하게도 치마처럼 넓게 펴졌다. 그러면 그것을 반씩 겹겹이 접어 올린 후 가늘게 썰어낸다. 칼국수의 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칼국수를 만들 때는 늘 어머니 옆을 떠나지 않았다. 면을 썰어내다 끝부분 자투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자투리는 손바닥만 하게 나오는데 나는 그걸 아궁이 불에 구워먹었다. 바삭하게 구워지면 딱히 군것질 거리가 없던 시절이라 간식거리로는 최고였다.
그런데 그 자투리를 구운 것 같은 것이 이곳에서는 빵이라는 이름을 버젓이 달고 나왔다. 바람이 빠진 빵을 사방으로 뜯어 먹으며 우리는 모두 옛날 우리의 칼국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러는 사이에 음식이 나왔다. 쇠고기를 약간 바삭하게 구운 것이 볶음밥 약간과 야채가 함께 곁들여져 있었다.
아가다 케밥이라고 했다. 쇠고기를 약간 바삭하게 구운 것은 우리의 떡갈비와 비슷한 것 같기도 했고, 추석날 산적을 할 때 약간 구운 고기를 꼬치에 꿰는데 그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어떻든 구운 쇠고기를 약간 짰다.
분명 가이드는 버스 안에서 터키를 이야기할 때 케밥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했었다. 아주 맛있다는 말을 곁들여서 말이다. 터키는 중국 프랑스와 더불어3대 미각의 나라라는 말을 특히 강조했다. 그 중심에 케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식사량이 어느 정도 되는 성인의 경우 한 끼 식사로는 모자랄 것 같았다. 구운 쇠고기는 약간 짠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이드는 분명 케밥이라고 했는데, 그럼 이게 케밥인가? 그렇다면 케밥에 대한 대단한 기대는 접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았다. 케밥은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고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터키어로 ‘구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케밥은 고기를 큰 꼬챙이에 꽂아 불에 구운 뒤 빵 사이에 넣어 먹는 음식이다. 주로 양고기로 만들지만 쇠고기나 닭고기 그리고 생선 등으로 만들기도 하며 채소를 더해 함께 조리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케밥의 종류는 수십 가지에 달하는데 그 중 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굽는 시시 케밥과 도내르 케밥이 특히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고기가 메인인 케밥을 먹을 때에는 주로 팔라프라고 하는 터키식 볶음밥을 곁들이며 샌드위치를 만들 듯 밀가루 반죽을 납작하게 만들어 화덕에 구운 피데(pide) 라는 것에 싸먹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빵이 바로 그 피데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그저 엉터리 빵이라고 웃으며 뜯어 먹고 밥은 밥대로 따로 먹었다. 결국 우리는 케밥을 먹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음식 이름은 구운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고등어 케밥, 항아리 케밥 같은 것들은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정 중에 그런 것들을 모두 맛볼 수 있다니 일단 기대해 볼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케밥이 구운 요리라면 우리나라 음식 중에도 케밥은 수도 없다. 말하자면 삼겹살 케밥도 가능하지 않을까. 구운 삼겹살에 밥을 올려주면 될터니까. 다만 터키와 다른 점은 그들은 피데에 싸먹는 대신 우리는 상추에 싸먹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런가 하면 각종 고치도 내용에 따라 충분히 꼬치 케밥이 될 수 있다. 그저 꼬치만 입에 물지 않는다면 말이다. 혹시 모르지. 빈대떡 케밥이 있을지도. 그것 역시 구워서 만드는 음식이니까.
그러고 보니 터키는 유구한 역사에 비해 식문화가 참 단순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도 문제는 케밥은 세계인 다 알지만 떡갈비나 삼겹살이나 빈대떡은 우리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한동안 음식의 세계화라는 말이 떠돌더니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설거지물에 흘려버렸는지 이제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문화는 옛것이든 현대의 것이든 최고의 권력자의 관심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참으로 소인배들이 사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남이 한 건 아무리 잘 해도 내가 한 게 아니므로 다 잘못된 것이고 싫다. 심하게 말하면 그것은 모두 적폐 덩어리다. 이렇게 속 좁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