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구쟁이>
생애를 통틀어 이런 밥상을 몇 번이나 받아볼 수 있을까 싶다. 걸구쟁이가 벼락출세를 한 기분이다. 채식 밥상이니 출세가 아닌 탈속의 밥상인가. 세속에서 자연으로 탈출, 자연 귀화를 밥상에서나마 실현하는 기회이다. 담백한 맛의 깊이와 각양각색의 음식은 자연이 주는 상품, 환영의 몸짓같다.
1. 식당얼개
상호 : 걸구쟁이네
주소 :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문로 707
전화 : 031-885-9875
주요음식 : 나물밥상, 사찰음식
2. 먹은날 : 2022.3.2.저녁
먹은음식 : 나물밥상 15,000원
3. 맛보기
앞상 뒷상으로 구분하여 내는 상차림도 신선하다. 시간형과 공간형의 결합인데, 시차를 둬서 둘의 장점을 취하려 한 것이다.
채식으로도 이렇게 화려하고 든든하게 상을 차릴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정성과 사명감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밥상이다. 단돈 15,000원을 내고 받기에는 너무 거한 상이 아닌가. 식당에 와서 먹는 것이 경영상의 민폐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지 염려될 정도다.
빙떡. 도토리가루에 무채로 속을 넣었다. 메밀전병과 비슷한데, 메밀전병은 김치 고기 등등 고추가루 성분으로 속을 채운다. 빙떡에는 무채로 채워 담백하고 은은한 맛이 그만이다.
게다가 식당 메밀전병은 냉동식품을 데워주기 예사이다. 이처럼 간단한 음식이 이렇게 오묘한 맛을 내는데, 가지가지 속을 넣어도 속만 아프고 획일적인 가벼운 맛은 대량생산 맛이어서 그랬던가. 즉석에서 순수 재료로 한 음식을 맛보니 그 차이가 더 확연하게 느껴진다.
앞상. 전채요리이다. 어디서도 만나지 못하는 음식과 상차림 방식이 처음부터 사람을 순화시키는 기분이다.
고춧가루와 파 대신 양배추를 띄운 간장이 특별하다. 특별장으로 무치는 도토리묵이 청량한 맛을 낸다.
투박한 손두부. 입자가 굵어 투박한 맛이 더 돋보인다.
치커리드레싱이다. 샐러드 주재료는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천연 소스를 사용한 샐러드는 약간 새콤한 맛이 난다.
시래기무침. 시래기에서도 이렇게 참신한 맛이 난다.
김무침. 된장김무침. 된장과 고추를 넣은 김무침, 김의 섬세한 맛을 오히려 된장의 투박함으로 공격적인 결합을 이룬다.
고추절임. 상큼한 맛이 좋다.
사과연근 절임. 구경도 못해본 음식이다. 채식에서도 이처럼 산해진미가 가능하다.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깊이까지 담았다. 연근과 사과가 조합이 되는 줄 처음 알았다.
오이도라지절임. 익숙한 재료인데 처음 만나는 음식이 많다. 한식의 지평인가, 채식의 지평인가. 오이가 보기에는 말랑해 보여도 맛을 다 담고 있다. 오이 맛에 도라지 향까지 담아 새로운 식재료가 되었다.
무밥이다.
장독대. 뒤뜰 장독대에 가득한 장독이 예사롭지 않다. 맛이 익어가는 곳이다.
4. 먹은 후
사찰음식, 한식의 지평을 넓힌다. 불교음식은 오신채를 넣지 않은 채식이다. 불교 사찰 건물 당우는 대부분 한옥이다. 사실상 한식은 대부분 채식이다. 특별음식으로 오르는 고기, 생선 등 한 두가지만 빼면 대부분 채식, 젓갈이 변수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사찰음식은 한식과 많이 닮아 있다. 한식과 한옥을 지키는 불교는 한국에서 전통문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이 유불문명권에 속하니 당연하다 할 것인가.
한식이 채식 기반이라는 것은 채식 전문 한식집이 많지 않은 이유가 될 것이다. 채식주의자라도 비건(완전 채식주의자)이 아니라면 한식집에서 기본반찬으로 적당히 끼니를 때울 수 있다. 대만이나 중국은 채식 식당이 상당히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다. 북경보다 대만에서는 더 채식이 성업중이다. 불교색깔이 중국보다 더 강해서일 것이고, 중국음식이 고기를 많이 사용하니 채식의 구분이 더 선명해서일 것이다.
음식이 단조롭고, 불교색이 강한 일본도 오랫동안 육식을 금지해온 덕분인지 채식주의자가 많은 동네로 알려져 있다. 1/10정도가 채식을 한다니 말이다. 불교 국가 태국사람들은 극성스럽게 채식을 하는 동네로 유명하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는 일반적으로 불교권이어서 채식의 바람이 강하다.
그래도 궁금하다. 완전 채식은 어떤 건지, 절 공양은 간혹 접했지만 시중의 절밥, 채식은 어떤지 말이다. 정갈하고 수수하지만 다양하여 화려하다는 인상도 준다. 맛은 한결같이 자연의 맛이다. 음식 맛의 시원을 경험하는 느낌이다. 한식의 정갈하고 깊은 맛을 잘 담고 있다. 채식인지 일상식인지 불교식인지 보통식인지, 구분이 무의미한 것인가.
문득 오어사의 원효와 혜공이 생각나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분별이 무의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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