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료와 구조를 통해 본 한옥
이글은 SPACE 2005년 10월에 연재된 것임을 밝힙니다.
글_황두진 / 진행_김정은 / 디자인_정진주 / 사진_황두진건축
얼마 전,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두 가지 만남이 있었다. 하나는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과 한옥에 대한 대화를 나눈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선후기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중 일부를 읽은 것이다. 전자가 한옥을 세계 건축의 하나라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었다면, 후자는 우리의 한옥에 대해서 가차 없는 비판의 칼날을 날리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남의 것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는 손님과 자기 것의 효용을 따지는 주인의 입장 차이라고 할 만한데, 두 가지 모두 한옥에 대한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방인의 눈
통나무집 모형 | - 최근 일마리 베스테리렌(Ilmari Vesterinen)이라는, 동아시아의 마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핀란드 인류학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주말을 이용, 북촌으로 그를 안내했다. 마침 동네에 공사 중인 한옥이 있었는데, 그는 한참을 들여다보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문득 그가 한국에도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Uncle Tom's Cabin)’ 같은 통나무집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강원도 깊은 산속에 가면 귀틀집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구조가 소위 통나무집이라 할 만하다고 했다. 물론 요즘 외국에서 재료까지 수입하여 짓는 통나무집도 있으나 주로 전원주택 같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우리나라에 통나무집이 있기는 하지만 보편화된 건축방식과는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로 설명을 마쳤다. 이어 그는 단지 ‘하나의 가정’일 뿐이라며, 한옥의 가구식 구조에는 나무를 경제적으로 사용하기 우한 고민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 나무가 풍부했다면 아마 다른 방식으로 나무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핀란드에는 나무가 풍부하여 삼림지대에 귀틀집과 유사한 집들이 많다고 한다. 핀란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귀틀집은 널리 분포하는데, 예외 없이 삼림이 울창한 곳에서 발견된ㄷ다. 귀틀집은 그다지 많은 가공을 거치지 않고 짓는 단순한 집이지만 나무로 벽을 만다는 것이기 때문에 나무의 손쉬운 대량 공급이 전제되지 않으면 짓기 어렵다. 한옥의 경우 나무는 주로 기둥, 도리, 보, 서까래 등 선형 부재로만 사용하고 면에 해당하는 부분, 즉 벽이나 담과 같은 부분은 또 다른 풍부한 재료인 돌이나 흙을 사용하여 만든다. 결국 한옥이란 나무를 최대한 아껴서 사용하기 위한 노력이 깃든 집이 아닌가, 이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산수간에 집을 짓고 - ‘산수간에 집을 짓고’는 조선후기의 실학자인 풍석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총 16지(志) 중에서 건축과 관련 있는 33지, 즉 이운지(怡雲志), 상택지(相宅志), 그리고 섬용지(贍用志)를 한문학자인 안대회 선생이 번역하여 돌베개 출판사에서 펴낸 것이다. 널리 알려진 ‘임원경제지’가 그 일부나마 최초로 번역되었다니, 매우 늦은 감이 있으나 동시에 그만큼 다행스럽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건축에 대한 문헌자료가 그리 풍부하지 않은 만큼, 단순히 책 한권을 출판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그 구체성에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집짓는 방식에 대한 그의 의견은 마치 공사현장에서 직접ㅈ 설명을 듣는 것만큼이나 생생하게 전달된다. 몇몇 생각들은 지금 그대로 현장에서 적용해도 좋을 만한 것이다. 더불어 한옥에 대한 가장 체계적이고 신랄한 비판을 접할 수 있다.
“중국의 가옥제도는 모두 일자형을 이루어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반면에 조선은 그렇지 않아 방, 마루, 상, 무를 연결시키고, 용마루, 처마, 보, 서까래는 구부려서 잇달아 연결시킨다. 그러므로 그 형태가 어떤 집은 ㅁ자와 같고, 어떤 집은 日자와 같으며, 어떤 집은 二와 ㄱ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다. 나는 이러한 가옥 제도에 여섯 가지 결점이 있다고 본다......”
그는 이렇게 포문을 열기 시작하여 빗물의 처리, 답답한 안마당, 배수문제, 통풍, 화재, 프라이버시 결여 등 구체적인 내용들을 하나하나 열거하기 시작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집의 기초를 앉히는 법에서 시작하여 척도, 지붕, 온돌, 미장, 창호, 마루, 부엌, 뜰, 곳간, 마구간, 측간과 물도랑, 담장, 우물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주로 중국의 제도와 비교하여 우리 제도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목재, 석재 등 각종 재료는 물론이고 실내의 가고, 나아가 장인을 교육시키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집짓기와 관련하여 어느 하나 빠진 것이 없고,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간 것이 없다. 시기적으로 늦어서 그렇지 그 자체로 보면 서양 건축의 고전인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십서’에 필적할 만하고, 내용의 현실성과 구체성은 비교하기조차 어렵다. 이 뛰어난 책이 우리 역사의 일부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조상인 서유구가 우리보다도 더 전통건축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이 책 어디에도 한옥에 대한 애정표현이나 그 아름다움에 대한 칭송 같은 낭만적 태도는 없다. 서유구의 문체는 서릿발 같다. 한옥의 미적 가치를 논하는 것이 글의 목적이 아닌 탓도 있고, 당대의 문명국인 중국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 탓도 있겠지만, 이것은 동시에 책임 있는 지식인의 태도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한옥이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괴해야 발전하는 법이다. 그는 철저하게 한옥을 발전시키고 진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에서 글을 썼다. 어디까지나 치열한 문화 생산자이지 한가한 문화 소비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척도의 통일을 역설하는 그의 주장은 아직도 기본적인 건축의 모듈화를 실용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서유구는 말한다.
“......즐비한 집마다 하나도 법에 맞는 것이 없다. 도대체 이 나라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옥은 목조건축?
수원 화성의 공심돈 | - 지금까지 한옥을 그냥 목조건축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두 계기를 통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옥에는 나무 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재료들이 사용된다. 재료의 다양성으로 보면 어지간한 서양식 현대건축에 비할 만하다. 대표적인 것은 역시 흙과 돌이다. 이들은 재료 그 자체로, 혹은 다양하게 가공되어 한옥의 이런저런 부분을 이룬다. 전돌이나 기와 역시 흙을 구워서 만든 것이니, 한옥에서 나무가 아닌 다른 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실제 무게로도 그렇고 시각적 무게로도 그렇다. 게다가 우리 전통 건축에는 목재가 아닌 다른 재료로 주요 구조부를 이룬 것들 또한 많다. 특히 조선후기로 가면서 중국의 영향을 받아 벽돌을 많이 사용하면서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수원화성의 공심돈이나 최초의 근대식 공장이라 할 수 있는 서울 삼청동의 번사창 같은 것들이 그런 예들이다. 이런 것들을 빼고 우리 전통건축을 논할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식민지 지배 등을 겪지 않고 한옥이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진화했더라면 이런 재료들이 목재 못지않게 널리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타이 아유타야의 목조주택 |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한옥의 객관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 목조건축은 세계적으로 매우 보편화되어 있지만, 전체 건물에서 목재가 사용되는 비중으로 보면 한옥은 오히려 낮은 편에 속한다. 목조건축의 성격으로만 보면 벌룬 프레이밍(balloon framing)이나 플랫폼 프레이밍(platform framing)방식으로 짓는 미국의 전통주택이 더 순수하다고 할 수 있다. 타이의 전통 목조주택을 복원해 놓은 아유타야의 쿤 파엔 하우스(Kuhn Phaen House)처럼 기와와 높은 주추를 제외한 기둥, 바닥, 벽, 지붕 등 거의 대부분의 요소를 목재로만 구성한 건축은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드문 경우에 속한다. 특히 목재판으로 벽면을 처리하는 예는 우리나라에 그리 많지 않다. 결국 목조를 위주로 하되 매우 다양한 재료들로 구성된 집합체로서 한옥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유구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거니와 기술적인 차원에서 한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이런 다양한 재료들 간의 결합과 조화, 그리고 전체적인 균형이다. 결코 ‘한옥 = 목조건축’으로만 다룰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옥의 기술적 단점 - 재료적 관점에서 한옥의 단점은 나무가 다른 재료와 만나는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결국 순수한 목구조가 아님에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한옥 되살리기 운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서울 북촌에서조차 이러한 문제점은 지속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몇 년 못가는 집’ 이라는 생각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이에 대해서 ‘절대 그렇지 않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을 개선시키지 못하면 한옥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일단 문제를 문제라고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옥을 고치기 위해서 집을 뜯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부분들이 심각한 상태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둥의 아랫부분
썩은 부분 아랫부분을 다른 부재로 갈아 끼웠다 | - 한옥의 기둥은 별다른 연결 부재 주춧돌 위에 그대로 올려놓는다. 목수의 실력이 여기서 판가름 나는데, 소위 그랭이질을 잘하여 기둥 아랫면과 주춧돌의 윗면을 잘 맞추면 그 자체로 횡력에 대한 저항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기둥이 한 줄로 된 사찰의 일주문은 이러한 구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비가 오면 이 연결부위의 목재가 썩기 시작한다. 주춧돌 위에 빗물이 고이고 나무가 이를 흡수하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나무가 버텨낼 수가 없다. 그래서 집을 고치다 보면 대부분 기둥을 되살리기가 어렵다. 기둥 아랫부분만이라도 새로 끼워 넣거나 전체를 교환할 수밖에 없다. 우리 역시 이를 방지하는 이런저런 디테일을 개발해서 실험해 보는 중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에 젖기 마련인 외벽 부분에서 나무와 돌이, 그것도 위 아래로 바로 맞대어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전체 구조의 가장 아랫부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니 자못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를 방지하는 현실적인 방법은 아예 이 부분이 비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한옥의 경우 조형적으로 주춧돌이 그 위에 올라가는 목재기둥보다 더 넓은 것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이 방법이 어렵다. 그러나 목조건축이 보편화되어 있고 비와 습기로 인한 피해가 우리보다 심한 동남아시아에서라면 어떨까. 우리보다 이를 더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니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앞에서 설명한 쿤 파엔 하우스의 경우 빗물이 주춧돌 위에 고이지 않도록 하는 건축적 배려를 하고 있음이 보인다. 그만큼 주춧돌이 작고 게다가 상부 구조에 의해 상당히 가려져 있다. 일단 비에 젖는 것을 최소화하고 빗물이 고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물론 복원하면서 주춧돌을 콘크리트로 바꾸기는 했으나 기본적인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한옥의 디테일이 아직 우리의 기후조건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다시 말해서 아직도 개발하고 발전시킬 여지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정을 가능케 한다. 게다가 한반도의 기후 유형은 점점 열대화 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동남아시아의 목조건축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기동과 벽체
주춧돌과 기둥의 연결부위 | - 얼마 전 서울 시내 한 궁궐에서 새로 복원한 구역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몇몇 건물에서 기둥과 벽 사이가 넓게 벌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사이로 밖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무는 건조에 따른 수축을 피할 길이 없고 벽체를 이루는 흙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료의 성질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하는 디테일이 적용되지 않았음은 심히 유감이다. 특히 한 나라의 고급건축문화를 대표하는 궁궐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렇다면 일반 한옥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까. 방법이 있기는 하다. 기둥에 얇은 홈을 파고 가운데 촉을 끼운 후 벽을 만드는 것이다. 혹은 아예 기둥 전체에 두터운 홈을 내고 벽체를 끼우는 방식도 시도해 볼 만하다. 이렇게 하면 나무와 흙의 건조수축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가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미세한 틈이 생기지만 그 사이로 밖이 보이거나 바람이 들어오지는 않는다. 거기에 순수성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실런트(sealant)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 또한 큰 도움이 된다. 북촌의 경우 대부분의 한옥들이 집장사 한옥이기 때문에 그 기본 구조가 그리 좋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고치면서 이러한 부분들을 손보게 된다. 한옥은 더 이상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는 집’이 아니다.
지붕구조
한옥의 지붕은 내구성이 매우 취약하다 | - 이전 연재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한옥에서 구조적으로 가장 취약한 부분을 들라면 역시 지붕이다. 한옥 지붕구조의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증명되는 사실이다. 다른 부분은 멀쩡한데 유독 지붕 여기저기가 내려앉은 집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서유구도 지붕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바람이 스며들고 비가 새는 걱정과 참새가 구멍을 뚫고 쥐가 파고드는 우려며, 뱀이 서리고 고양이가 뒤척이는 걱정을 피할 길이 없다”고 적고 있다. 신응수 대목 또한 자신의 책 ‘목수’에서 중국이나 일본은 이미 오래전에 지붕을 개량했으며 우리도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렇게 쉽게 관찰되고 이미 여러 사람에 의해 지적되어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옥 현장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으니, 세상의 변화란 때론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이의 사원, 금속판에 가로대를 걸고 건식공법으로 지붕을 구성한다 |
캄보디아의 기와, 순수 건식 공법이다. |
베트남 후에의 황궁, 기와는 내외부가 다르다 | 한옥의 지붕구조는 크게 목조부분과 그 위를 덮은 흙 그리고 마감재인 기와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나무와 흙이 바로 만난다는 것이다. 흔히 한옥의 지붕에 흙이 많이 올라가 있어, 이것이 단열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여름이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겨울이면 습기를 내뿜는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자연재료인 나무가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흙과 닿아 있으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따라서 흙의 습도 조절 기능을 미화해서 바라볼 것만은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흙과 기와의 하중이 이를 지탱하는 하부구조에 비해 지나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용마루에서 기와골을 따라 추녀로 연결되는 한옥의 지붕 곡선은 그 하부의 목구조 각 부재의 상단을 연결한 곡선과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원하는 처마의 깊이를 확보하고 부드러운 지붕 곡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중간에 적심이라고 하여 나무와 흙을 채워주는데, 이것의 하중이 상당하다. 결국 습기를 먹은 상당량의 흙이 목구조와 직접 맞닿아 있는 셈이다. 여름에 고온 다습한 우리나라에서 한옥 지붕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해결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신응수 대목은 지붕구조 위에 덧집을 짓는 이중구조의 지붕방식을 이미 구인사 대조사전 등에서 시도했고, 김도경 박사의 저서인 ‘한옥 살림집을 짓다’에 의하면, 강화도 학사재에 덧지붕 방식을 적용한 바 있다. 심지어 200년 전 사람인 서유구 조차도 “......근래 한 가지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며 흙이 아닌 대팻밥을 쓰는 소위 건기와 방식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좁은 소견으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흙이나 강회다짐을 사용하지 않는 완벽한 건식 지붕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일단 이중으로 구조를 만들고 최종적으로 방수처리를 한 후 그 위에 가로대를 설치하고 기와를 거는 것이다. 구리철사 같은 것으로 걸어도 되겠지만 기와를 만들 때 뒷면에 작은 촉을 붙이면 그 자체로 가로대에 걸려 있으므로 별도의 적업이 필요 없다. 이렇게 하면 공사 당시 일손을 덜 뿐 아니라 지붕의 무게를 줄일 수도 있고 온도 변화로 인한 동파 또한 방지된다. 이중구조의 내부는 단열이나 배선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러한 건식 지붕은 최근 동남아시아 건축을 답사하면서 발견한 방식이기도 하다. 캄보디아에서는 대부분의 지붕을 이렇게 만들고 있었으며, 타이 아유타야의 한 사찰에서는 금속으로 만든 지붕판 위에 기와를 얹는 장면을 보기도 다. 베트남 후에의 자금성에서는 기와 자체가 이중이었고 흙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겨울이 없는 나라들으므로 단열에 대한 고려는 별다른 것이 없다. 하지만 세 나라가 모두 열대성 강우를 겪는 지역임을 감안하면 건식 지붕은 우리에게도 충분히 적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천연재료의 신화 - 전통적인 한옥은 천연재료로만 짓는다. 기본 골격인 나무는 원래 생명이 있던 유기물이요, 흙과 돌 또한 자연에서 얻은 것을 가공만 하는 것이다. 벽과 바닥을 만다는 석회 또한 자연에서 얻은 것이고, 이를 끓일 때 섬유질이 풍부한 미역을 넣어 갈라지지 않게 하는 것 또한 자연이 준 재료의 성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황토 ,창호지, 구들, 콩댐(집이 완성된 후 나무에 콩기름을 먹이는 것) 등 한옥은 그야말로 천연재료, 천연 공법의 전시장 같다. 당연히 요즘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새집 증후군(sick-house syndrome)’ 등과는 거리가 멀다. 공사가 완료되어 입주하는 순간부터 천연 재료의 그윽한 향을 즐기면서 생활할 수 있다. 사람과 함께 호흡하고 주변 자연의 에너지를 최대한 이용하는 한옥은 그야말로 첨단의 환경건축이 아닌가. 요즘 한옥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부쩍 높아진 데에는 이렇게 한옥이 갖는 문명적 신선함의 덕 또한 크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에게 좋은 환경은 동시에 다른 생명체에게도 좋다는 것이 문제다. 한옥 하면 곰팡이에서 시작하여 각종 벌레, 심지어 뱀, 구렁이, 쥐에 이르는 온갖 생태계가 떠오르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서유구의 책에서 유난히 “구렁이가 집을 짓고, 벌레가 들끓고”와 같은 구절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람에게만 좋고 다른 생명체에게는 그렇지 않은 환경이란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친환경 건축 재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학문적 연구가 오래전부터 축적되어 온 독일에서도 이미 순수한 천연재료 자체에 대한 집착은 버리기 시작했다. 특히 겨울이 음습한 독일에서는 환기에 대한 개념 자체도 우리와는 달라 맞바람을 결코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다. 습도가 높은 찬 공기가 들어오면 사람은 풍(風)에 걸리고 집 또한 상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집 때문에 사람이 병드는 것 못지않게 집 자체가 병드는 것 또한 문제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물론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전통적인 방식이나 천연 재료 등에 대해 상식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신화를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자연은 정확히 그 원리에 따라 작동할 뿐이며, 우리의 기원이나 소망 같은 것과는 무관하게 움직인다. 결국 전체적인 시스템을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한옥 그래픽 스탠다드를 꿈꾸며 - 한옥과 관련된 작업을 하면서 항상 아쉬운 것은 자료 부족이다. 그동안 수많은 선학제현들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옥과 관련된 지식과 경험은 여전히 중세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식의 상호소통이 부족하고 여전히 신화적 내용이 많으며 파편화, 고립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나 이론연구가 아닌 정작 실물을 다뤄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면 어디서 어떤 정보를 취하여 일을 할 것인가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데,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성과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내가 이 일련의 짧은 글들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한옥 그래픽 스탠다드’를 꿈꾼다. ‘그래픽 스탠다드(Graphic Standard)’는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책이다. 미국에서 출판된 이 책은 재료에서 공법에 이르는 다양한 실무적 내용을 집대성한 것으로 이름이 높다 아카데믹한 내용이 없지 않으나, 기본적인 정체성은 실물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는 데 있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것은 경제공황 당시인 1932년,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북촌 일대의 한옥이 막 지어지던 무렵이다. 출판된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최근 역사적 건축물을 레노베이션하는 것이 붐을 이루면서 당시에 출판된 과거 에디션을 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책의 미덕은 일단 건축의 실천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는 데 있다. 존재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모두 소개하기 때문에 지식을 ‘중세적 은둔상태’로부터 해방시킨다. 아무리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개인의 산발적인 노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식과 경험의 축적된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책이 있다고 해서 당장 고품질의 건축이 가능한 것도 아니며, 이것은 어디까지나 건축 장착의 기본적인 단계를 해결시켜 주는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는 작업이란 비효율과 비생산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몇 개인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조직적인 노력과 지원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최근 문화관광부에서 추진 중인 ‘한(韓) 브랜드’ 프로젝트에서 한옥이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질 전망인데, 다른 이벤트성 사업에 예산을 사용하는 것보다 이런 기본적인 노력에 집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큰 국가적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러한 노력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이미 장기인 선생의 ‘한국건축대계’와 같은 엄청난 노작이 있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자체가 이렇게 중세적 지식을 근대화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기도 하다. 굳이 서구 계몽주의시대의 백과전서파나 심지어 그래픽 스탠다드조차도 거론할 필요가 없다. 서유구의 책에 주석을 달고 사진과 도면을 첨가하여 오늘날 한옥의 실천적 과제들과 연결시키는 것만으로도 기본적인 ‘한옥 설계 자료집’은 시작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후학들의 연구와 경험을 토대로 하여 지속적으로 개정 증보판을 내면 된다. 이미 여러 차례 개정증보판을 내오고 있는 그래픽 스탠다드의 표지에는 여전히 램지와 슬리퍼(Ramsey & Sleeper)라는 두 뉴욕 건축가, 즉 이 책의 원저자들의 이름이 있다. 아마도 우리의 ‘한옥 설계 자료집’은 서유구라는 이름을 제일 앞에 내세워도 좋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