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3
팔호광장의 함성으로 이룬 대한민국의 민주화
<아! 팔호광장>
“야! 경란아, 이쪽으로 뛰어. 빨리 와.”
최루탄(催淚彈)이 교정을 휩쓸고 지나간 후, 학생들은 삼삼오오 팔호광장으로 모였다. 어깨를 맞잡고 거리로 나가 군사독재정권을 향해 민주화 시위를 했다. 경찰은 이미 팔호광장 주변 골목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잡아!”
육모방망이를 든 경찰특공대는 학생들을 향해 내달렸다. 정말 무서운 장면이었다. 경찰은 학생들을 향해 마구 방망이를 휘둘렀고, 쓰러진 학생들은 머리에 피를 흘렸다. 군사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가 되기를 갈망하는 학생들의 요구일 뿐인데, 독재정권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아주머니, 아저씨 고맙습니다>
“독재 타도! 독재 타도! 전○환은 물러가라 훌랄라랄라~.”
춘천 명동 입구 중앙로로터리에서 터지는 학생들의 함성이었다. 학생들의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경찰이 쏘아대는 최루탄의 빈도수도 높아지고, 경찰특공대의 진압 작전도 더욱 강화됐다. 경찰에 잡혀가는 학생들 숫자도 늘어갔다. 학생들은 경찰이 가까이 오면 죽어라 뛰었다.
“아주머니, 죄송해요!”
경찰을 피해 골목길로 뛰던 학생들은 남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때 춘천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학생들을 자식처럼 숨겨줬다.
“이거 마셔요. 몸조심하고, 함께 못해 미안해요.”
자기 집에 갑자기 뛰어들어 몸을 피신한 학생들에게 춘천 시민들이 보여준 호의였다. 따뜻한 커피를 타주고, 간식을 내주셨다. 최루탄 가스와 가루로 범벅이 된 학생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일임을 다시 깨달았다.
<민주화로 맞은 자유, 그 위대함>
1980년에서 1987년 6월 민주화의 봄이 오기 전까지 춘천에서 있었던 민주 항쟁의 시위 현장 모습이다. 춘천의 대학생, 그리고 춘천의 시민 모두가 나선 시위 현장이었다. 그야말로 춘천 시민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다. 서울과 광주의 민주화 투쟁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지만, 춘천을 비롯한 소도시의 시위도 격렬했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쓰고 싶은 글 쓰지 못하며, 참고 참았던 심중의 자유의지가 한꺼번에 폭발하였다. 춘천 시민, 아니 전국의 국민이 가슴 깊숙이 두고 있던 민주화의 꽃봉오리가 터졌다.
수업 시간에 낯선 사람이 뒷자리에 앉아 있을 때, 그 심정 느껴 본 사람은 안다. 국가 특정 소속 직원이 학교에 상주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학생들의 동태를 사찰했다. 누군가 계속 우리를 감시하는 장면을 직접 보며 살아갔다. 박탈당한 자유와 인권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마음은 정말 힘들었다. 1980년대 온 국민이 시위한 민주화 운동은 국가통치자를 상대로 최소한의 인권 존중을 바라는 투쟁이었다. 진정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사람들의 외침이었고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이뤄낸 6.10항쟁의 쾌거가 있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춘천 시민 모두가 팔호광장(지번 8호)에 모여 함성을 지르며 이룬 민주화를 영원히 가꾸며 이어가야 한다. 춘천 시민의 민주화 운동은 인간 존중을 바라는 춘천의 또 다른 정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