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에 드러나는 민족의 열등감
정진명(시인)
열등감은실제와상관없이, 자신이못났다고 여기는것을말합니다. 결국이런마음가짐이 제본모습을버리고, 남을닮으려몸부림치다가, 스스로를불행하게만들죠. 이런사람이왜불행하느냐면, 아무리남을흉내내도 거기에는제가없기때문입니다. 당연하죠. 남을닮으려는곳에 어떻게제모습이남겠어요? 결국제모습이일그러진채로 남의흉내로뒤범벅이되어 스스로도누구인지모르게되죠.
이런말썽은 사람에게만있지않습니다. 겨레에게도똑같고, 겨레의말글에도똑같습니다. 그런점에서 제말과글에 스스로긍지를갖는다는것은, 어찌보면, 다른그어떤것보다더중요한것입니다. 제가쓰는말에자부심이없는겨레는 결국제말을잃고맙니다. 이런걱정은우리말을보면, 참담할만큼안타깝습니다. 근대의어지러운역사를겪으면서 우리말이겪은혼란과열등감은 그대로우리말에반영되어 오늘에이릅니다.
조선이망하기전까지는 한문을배우느라온나라가진을빼더니, 일제강점기에는일본말에짓눌려숨이막힐뻔하다가, 해방후에는러시아어와영어가남북을갈라서 우리말의질서를송두리째흔들었습니다. 특히남한은잘못된국어정책으로 제말을가리키는문법용어를 제2외국어인한자로모조리바꾸고, 그런말을쓰는백성들은 한자말을영어로바꿔치기하느라바쁩니다.
특히최근에 방송을중심으로벌어지는상황을보면, 한자말만영어로바꾸는것이아니라, 우리말마저영어로갈아치우려는노력이 안쓰러움을넘어 황당하기까지합니다. 어떻게든우리말을안쓰려고 애쓰고또애씁니다. 이모든현상들이가리키는 한방향이있습니다. 그방향의끝자리는 바로열등감입니다. 남의말을섞어써야 자신의품격이높아진다고착각하는 일그러진사람들이대부분입니다. 이근거없는열등감이야말로 우리말을망치는가장큰원인입니다.
다른나라는어떨까요? 오히려반대로되어야하지않을까요? 외부에서들어오는말을 어떻게든걷어내고, 자신들이쓰는말을계속발굴하여, 제말을지키려는노력을 해야하지않을까요? 북한의경우는문화어를제정하여, 새로운문물에자기네말로붙이는노력을합니다. 그러는그들의말을 우리는비아냥거리며, 우스갯소릿감로써주죠. 저는이런노력이눈물겹기만합니다.
"<스타킹>을<살양말>이라고한대!"
"<아이스크림>을<얼음보숭이>래!"
외국어를쓰면 처발받는법을만들어지키는, 프랑스의사례는 벌써잘알려진사실입니다. 이런법제보다더중요한것은 국민들스스로제겨레의말을쓰려는노력입니다. 선진국들은어느나라나할것없이 모두이런자취가역력합니다. 예컨대독일의경우에는 한낱말의길이가길기로유명합니다. 언어는경제성에민감하여 적은노력으로큰효과를내려는 경향성이강합니다. 그래서될수록음절수를줄이려고하죠. 이런노력이낱말의음절수를줄이려는방법으로나타납니다. 영어에서라틴어를자꾸쓰는것이나 우리말에서한자말을자꾸쓰려고하는관성은, 바로이런경제성을추구하는경향성에서나오는결과입니다. 그래서내용파악이쉽지않은데도 자꾸만한자말을끌어들여 낱말을만들곤하는것입니다.
하지만요즘대중들이끌어다쓰는영어를보면, 이와는거꾸로가는경향이훨씬더많습니다. 예컨대, <존경>이라는말을두고, <리스펙트>라는영어를끌어다씁니다. <혜택>이라는말을두고, <베네핏트>라는영어를끌어다씁니다. 음절수가2배인데도 굳이그걸쓰려고고집합니다. 언어의경제성원칙에서도벗어나는 이런짓을하는까닭은, 아주간단합니다. 그게멋있고우아하다고생각하기때문이죠. 이런허영기는 앞서말한열등감의산물입니다. 자신을남의것으로포장하지않으면, 남에게무시당할지도모른다는 정말희한한생각이 자신을그지경으로몰고가는거죠.
우리말로길게써야할말들도, 한자말을끌어들이면, 음절수가확줄어듭니다. 그래서옛날부터 한자로낱말을많이만들어쓴것입니다. 이댓가로우리는 어려움을겪어야하는반대급부를얻었죠. 조선시대는어차피 언어가지배층의통치수단이니, 필요한사람만이쓰는도구였습니다. 대부분은글자를모르고지냈죠. 그래서오히려순수한우리말이 일제강점기까지도잘지켜졌습니다. 신분상승할기회가없는평민들이 굳이지배층의어려운말을 배울필요가없었던셈이지요. 그래서근래에도생각지도못한 바람직한결과가나타나기도했습니다.
제가군대가서깜짝놀란것이, 소총을분해할때필요한용어였습니다. 개머리판, 공이, 방아틀뭉치, 방아쇠, 가늠자, 가늠쇠, 총열, 멜빵, 총구, 꼬질대...... 너무쉽고아름답지않나요? 왜이랬을까요? 조금만생각해보면, 답을알수있습니다. 딩동댕! 일제강점기부터해방전후의어지러운상황에서 총을든사람들이누구였을까요? 대부분글자를모르는백성들이었습니다. 군대를이끈사람들은지식인이지만, 정작소총을들고싸운사람들은 대부분농사꾼이거나 우리사회의하층민들이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그들에게친숙한말로설명을해야 그들이쉽게받아들입니다. 예컨대, <개머리판>이라는말을보십시오. 요즘생각하면, 이게얼마나무식한느낌이납니까? 하지만, 총을어깨에받치는부분은 정말개머리를닮았습니다. 무지한사람들때문에, 오늘날소총의부품용어가 순우리말의형태를, 고스란히유지한것입니다. 만약에유식한사람들이군대의주요구성원이였다면, 적어도<개머리판>이라는말을쓰지는않았을겁니다. 썼더라도한자말로바꿔서썼겠죠. 예를들면, <견두판>이라는식으로말이죠. 열등감보다실용성이더절실해서나타난현상입니다.
언어의교양성과효율성을지향하는것은, 다른나라라고해서다르지않습니다. 그렇지만자신들의모습을지키려고노력하는데는 오히려이런교양성과효율성을 역행하는경우도많습니다. 오히려음절수를늘리더라도 자신의모습을드러내는게 더중요하다고생각하는나라도많습니다. 독일이그런경우인데, 라틴어를끌어다쓰면될법한말들도 자신들의말로길게늘어쓰는경우가많습니다. 그래서우리가상상도못하는음절수를가진낱말들이 기네스북에오릅니다. 다음과같은말이있습니다.
Grundstücksverkehrsgenehmigungszuständigkeitsübertragungsverordnung
굳이번역하자면, <부지교류허가권한이양규정>이라고할수있는데, 우리말로는12음절인데 독일어철자로는67개입니다. 우리나라같으면, 어떻게든줄이고줄이려고 한자말을끌어다댔을것입니다. 독일이라고해서그렇게못할까요? 라틴어를동원하면, 훨씬더짧은낱말을만들수있을것입니다. 하지만이들은친절하게 자신들이쓰는말로이어서 낱말을만들었습니다. 이런것을보면, 우리와달리 독일사람들은열등감이없는듯합니다. 오히려자기말에대한자부심이철철넘침을 이런길고도불편한낱말을감당하는 그들의태도에서충분히'느낄'수있습니다. 이런나라의국민들에게박수갈채를보냅니다.
영어에도이런게있죠. '진폐증'이라는말인데, 낱말이이렇습니다.
pneumonoultramicroscopicsilicovolcanoconiosis
알파벳이48개입니다. 중간에낯익은말들을보니, '크다'는말도있는것같고, '하나'라는말도있는것같습니다. 제가그래봐야 <허파에잔먼지가끼어곪는탈'쯤이라고, 할수있겠지요. 이렇게긴말을쓰기싫으니까, <진폐증>이라는한자말로 대신쓰는겁니다. 간단하고좋기는한데, 한자에대한소양이있어야 뜻이한눈에들어오죠. 요즘학생들에게진폐증이란 정말어려운말입니다.
어쨌거나, 자기말을사랑하려는노력은 선진국의또렷한징표이기도합니다. <객관적>이라는이상한말을 <누구나다그렇게여기는>으로바꿔쓰려는저의노력도 이런것에서출발한것이면좋겠습니다. 우리말로바꾸어서라도 한자말과영어를뜯어고치고싶은것은 저의열등감이기보다는 안타까움같은것입니다. 길어지는것을두려워하지않은용기가 열등감을넘어서는첫걸음임을 힘주어말하고자합니다.
첫댓글 최근 들어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알게된 사실은 일제가 우리말과 역사에 상당한 부정적 단어와 열등감을 느끼도록 만든 단어가 많다고 합니다.
이번 정권들어서 이러한 역사 바로잡기도 할성화되는 것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