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마음을 풀어주는 ‘지관서가’ / 정희연
시베리아의 찬바람을 지나 북해도를 건너온 기러기 떼가 바람의 흐름을 타면서 낮게 날고 있다. 가족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자리를 찾는 중이다.
현장 사무실 근처에 방을 구했다. 버스로 두 정거장도 안되는 거리다. 업무가 끝나고 시간이 나면 머물 곳을 찾는다.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와 도서관이다. 다행히 집 근처에 분위기 좋고 커피 맛도 고급스러운 곳을 찾았다. 또 아무 때고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다음은 조금 오랜 시간 머무를 도서관을 알아본다. 행정 구역상 울산광역시에 속하지만 사실은 울주군의 면 소재지라 차로 30분 넘게 가야 했다. 낭패다.
울산에는 ‘지관서가’가 있다. 시민의 마음 건강과 행복한 삶을 기여하려고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칠 지(止)와 볼 관(觀)을 합해서 ‘지관’이라 부른다. 일상에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을 잠시 쉬고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인생의 지혜를 발견했으면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곳은 차와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다. 살면서 한 번쯤 고민해 보는 인생의 질문과 해답을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들어 찾는 이를 기다리고 있다.
울산 대공원에 있는 그곳은 ‘관계’, 장생포는 ‘일’, 선암 호수 공원은 ‘나이 듦’과 유니스트(UNIST, 울산 과학기술원)는 ‘명상’, 울산 시립미술관은 ‘아름다움’ 박상진 호수 공원은 ‘영감’을 주제로 총 일곱 곳이 운영 중이다. 내가 자주 찾는 곳은 현장과 가까운 장생포와 선암 호수 공원이다.
그중 장생포는 ‘장생포 문화창고’ 6층에 둥지를 틀었다. 힘차게 헤엄치는 푸른 고래가 그려진 이 건물은 1973년부터 어류 보관용 냉동창고로 쓰다가 2000년대부터는 버려두어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 되었다. 울산시가 장소를 내주고 플라톤 아카데미가 기획하고, SK 그룹에서 자금을 지원하여 만들어낸 독서 공간이다. 2021년 4월 울산 대공원에 1호점으로 시작되었고, 이곳은 2021년 9월 문화 센터(1~5층)와 함께 새롭게 문을 열었다. 안에서 어디서든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해 항구, 공장 그리고 예술인 창작촌을 아우르는 장생포의 광활한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커피를 마시며 다채로운 북 큐레이션(개인의 취향을 분석해 적절한 정보를 추전해 주는 일)으로, 책을 읽으며 장생포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일’이라는 태마에서 내가 만난 책은 21세기 북스에서 낸 것으로, 인간의 본질을 밝히는 첫 번째 질문으로 강신주 외, 나는 누구인가 성장하고 치유하는 삶을 위한 근원적 질문으로 고은 외, 어떻게 살 것인가, 아름다운 소멸을 위한 생의 마지막 질문으로 강영안 외,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보면, 인간은 결국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다. 죽지 않으려고 사는 것도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것도 아니다. 죽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으로, 의미있는 삶을 살다가 아름답게 죽음을 마무리하는 것까지가 인생의 완성이라 말한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책상이다. 그곳은 단순히 책을 읽고 업무를 보는 공간을 넘어 일상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잔무도 있고 방정리도 해야 하는데 머리가 복잡한 토요일 오후다. 책상에 앉아서, 그리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럴 때 찾으면 좋은 곳이 ‘지관서가’다. 유니스트(UNIST)로 향했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넓은 창으로 따뜻한 햇볕이 한가득 들어 온다. 넓은 탁자에 앉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모으며 서너 시간 머물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답이 나온다.
며칠 사이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낙동강 기슭에 자리 잡은 기러기 가족이 겨울을 잘 견뎠는지 궁금해진다.
첫댓글 선생님 자신을 위해 스스로 찾은 공간에서의 해법, 그저 부럽습니다. 일은 일, 그리고 자신의 꿈과 휴식을 위한 공간을 확보해놓고 열심히 사시네요.
저렇게 하면 잠깐 시간이 있을 때 쉽게 떠날 수 있어 좋더라구요. 고맙습니다.
다음에 울산 도시 해설사 같은 거 하시는 거 아니예요? 언니가 울산 사는데 담에 가면 '지관서가' 가 봐야겠어요. 궁금하네요.
부자 동네라 또 다른 맛이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이면 참 좋아 할 곳입니다.
UNIST는 대학 도서관 건물과 연결되어 있어 좋았습니다.
외부인은 도서관 출입이 안되는데, 엘리베이터로는 가능하더라구요.
울산에 그런 곳이 있었네요,지관서가. 바쁘게 일하면서 그렇게 의미있는 곳을 잘 이용하네요.
깨끗하면서 커피, 빵 등 음료와 함께 책을 볼 수 있어 좋은 공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