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의 두 얼굴 / 허숙희
조카 결혼식이 있어 서울에 갔다가 딱 5일 만에 내려왔다. 집 떠나기 전에는 으레 뜰에 잔디를 구석구석 다 깎고, 몇 안 되는 나무도 모두 전정한다. 다른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짧은 일정이라 그냥 가려 했으나 여느 때와 같이 잘 단장해 놓고 갔다. 내심 다녀와도 어수선하지 않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비워 두었던 집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이럴 수가.
그동안 한낮의 열기로 잔디 끝은 노랗게 탔고, 채송화를 비롯한 크고 작은 화초는 시들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러나 잡초는 마당 구석구석에서 파랗게 자랐다. 볕이 안 드는 돌 틈에도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감나무 밑에는 예초기 칼날을 맞고 쓰러진 시들한 달개비 줄기에 남빛 꽃이 피어 있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았는데 며칠 사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더욱 놀란 건 허둥지둥 떠나느라 미처 버리지 못하고 바구니 안에 담아 놓고 간 풀이다. 햇볕 아래 두고 갔는데 말라가는 흙 속에서 연두색 싹이 자라고 있었다. 물 한 모금 없이 기어이 싹이 트고 다시 살아나는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난 새삼 잡초의 생명력에 놀랐다.
8년 전 일이다. 20년 가까이 비워 두었던 시골집으로 내려왔다. 그때 남편은 "잡초랑 싸우는 건 못 이겨.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하는 게 좋겠어.”라고 말했다. 이웃집 이장도 “사람은 쉬는 날이 있어도 잡초는 절대 쉬지 않습니다.”라며 남편을 거들었다. 그 말이 이해되면서도 난 잔디를 깔아야겠다고 고집했다. 장에서 잔디를 사다 심었다. 잡초와의 끝없는 씨름이 시작되었다. 뽑아내면 다시 돋아나고, 밟혀도 얼마 후에 보면 푸르게 살아났다. 며칠만 호미를 내려놓으면 이름 모를 풀들이 여기저기서 야단법석이다. 넓지는 않았지만 자주 집을 비우니 관리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힘들어도 초록이 있어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우리 뜰엔 유난히 고양이 밥이라고 불리는 ‘괭이밥’과 ‘깨풀’이 많이 난다. 이들은 그대로 두면 꽃도 핀다. 잎이 달걀처럼 갸름한 깨풀은 여름에 꽃이 피는데 그다지 예쁘지 않아 미련 없이 눈에 띄면 바로 뽑아낸다. 아쉬움이 없다. 그러나 괭이밥은 다르다. 잎이 하트 모양으로 예쁘고,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 피는 노란색 꽃은 아주 작고 앙증스럽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예쁘다. 뽑을 때마다 망설여진다. 커다란 화분에 모아 심어 보았다. 정성을 들이지 않아도 잘 자랐다. 개나리꽃과 같은 색깔의 다섯 장의 꽃잎은 그 모양이 사랑스럽다. 그래도 잔디밭 주변과 나무 밑에 끊임없이 돋아나는 것들은 가차없이 뽑아낸다. 수분과 양분을 잘 빨아들이고 번식이 잘 되어 집을 비우기만 하면 온통 판을 친다. 잎과 꽃은 나약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뿌리는 땅속 깊이 뻗어있고 제법 강해서 뽑기도 힘들다.
잡초라 생각하던 풀도 좋은 선물이 된다. 봄이면 양지쪽 담 밑에 돋아나는 통통한 돗나물은 새콤달콤한 물김치를 만들 수 있고, 매실청과 들기름 그리고 발사믹(balsamic)식초를 넣고 버무리면 발효 향이 은은한 담백한 샐러드(salad)가 된다. 그 상큼한 맛은 입맛을 돋운다. 접시에 소복하게 담고 초고추장을 살짝 뿌려 얹으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는 밥반찬이 된다. 감나무 언저리에서 자라는 쑥은 쑥버무리, 쑥밥, 쑥전이 되어 별미를 맛보게 한다. 그때 함께 곁들이는 향기 진한 쑥차도 큰 선물이다. 웰빙(Well-being) 간식으로 최고다. 뿌리로 퍼지면서 생존력은 물론 번식력이 강해 늘 신경 쓰이지만 좋은 먹거리다. 담 밑 물고랑에서 자라는 미나리는 어떤가? 구석에 있던 몇 포기를 옮겨 심어 놓고 눈길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고 있다.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고, 삼겹살 구이에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또 남편이 좋아하는 매운탕에 송송 썰어 넣으면 미나리 향이 기가 막히다. 스스로 자라 소중한 먹거리가 되다니. 잡초의 또 다른 얼굴에 한 번 더 놀란다.
오늘도 밭일 의자인 ‘엉덩이 방석’을 깔고 앉아 치자나무 옆에 비집고 자리 잡은 ‘소루쟁이’ 뿌리를 호미로 헤집으며 찾고 있다. 분명 얼마 전 뽑아낸 기억이 있는데, 선명한 초록빛 새순이 고개를 내밀고 제법 자라 있다.
문득 뜰에 돋아난 잡초가 꿋꿋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우리 또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일어서야겠다고 다짐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첫댓글 대부분 시골집 마당이 시멘트로 포장되어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는데 선생님은 잔디를 깔았네요.
현명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관리가 귀찮기는 하지만 어디 시멘트 마당과 비교할 수 있겠어요.
잔디가 깔린 시골집, 그 자체만으로도 예쁜 풍경이 될 것 같습니다.
네 저도 아주 잘 한 것 같아요. 뜰은 작지만 계절마다 바뀌는 모습을 바라보는 행복이 시골집에서 지내는 날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입니다.
깨풀과 소리쟁이를 아시다니 대단합니다. 저도 돌나물 무침 좋아하지요. 입에 침이 고이네요.
어릴때 할머니가 봄이면 소리쟁이(소루쟁이)로 된장국을 끓여 주곤 했어요. 약간 미끌미끌 했고 제 입엔 맞지 않았죠. 키만 크고 꽃도 찐한 갈색으로 너무 미워요. 큰 놈은 그 뿌리가 굵고 마치 인삼같아요. 뽑기 너무 힘든 풀이랍니다.
잔디가 무성해지면 풀이 덜 나요.
처음에 잔디 심을 때 띄엄띄엄 말고 바짝 심으면 잡초가 덜 난답니다..
집 주변이나 밭에 오며 가며 잡초가 보일 때마다 뽑아야해서 오롯이 내 시간이 별로 없어요.
장에서 사온 잔디가 좋지 않은 건가 봐요. 빼곡히 자라는데 잡초들이 사정없이 그 틈을 노린답니다. 뽑고 뒤돌아 보는 순간 새로운 풀들이 나오는 듯 합니다. 넓지 않아 불만이었는데 이젠 그게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자연과 더불어 지내시는 선생님 모습이 그려집니다. 잔디가 깔려있는 마당은 저의 로망이거든요. 매번 맛깔스러운 글 잘 읽습니다.
아주 작은뜰이지만 저에겐 천상입니다. 문 열고 창가에 앉아 '뜰멍'시간은 너무 행복해요.
마음 따뜻하게 시골 살이에 적응해 가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정말 잡초라서 이름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깨풀이나 소루쟁이를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언제나 따뜻하게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낯선 곳에 옮겨와 살게 되었지만 잡초가 씨 떨어진 곳이 아무리 열악하더라도 싹이 트듯이 저도 순응해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기가 더 좋아요.
저도 올해부터 농사일에서 손을 떼었지만 잡초가 많이 괴롭혔답니다.그래도 자연이 주는 안식때문에 같이 공생하는 거지요.
처음엔 텃밭도 조금 일구어 봤는데 허리가 탈나서 접었어요. 좁은 뜰 관리가 유일하게 흙과 접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나마 없었더라면 의미 없는 시골 생활 이었을 것 같아요.
선생님 마지막 단락에 즐비하게 늘어선 잡초들의 초강력 울트라 쓰임새에 감탄합니다. 세상에 잡초가 퓨전요리사를 탄생시켰네요. 고놈들 참 물건들이네요. 하하
두쪽 분량 때문에 언급하지 못하고 밀린 '까마중' 열매 도 그 맛이 불루베리 이상입니다. 좁은 마당에 한 포기 남겨 맛보고 있습니다.
잔디 마당이 있는 시골 집이 제 소망인데 부럽습니다. 곧 풀과의 전쟁도 끝나겠네요. 아쉬운 작별인가요? 하하.
처서도 지나고 한로도 지나갔으니 잡초도 주춤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