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한 모, 웃음 한 입
아빠를 기다렸습니다.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갈 거거든요. 그런데 침을 맞고 오시겠다며 휴대폰을 두고 나가신 겁니다. 아빠를 찾아서 동네 골목을 돌았습니다. 저만치에서 자전거 한 대가 다가옵니다. 아빠였습니다. 입가에 뭉실한 미소 한 자락 얹으시고 기분 좋은 표정이십니다. 큰딸이 온 게 반갑고 기쁘신 거지요. 자전거 바구니엔 까만 비닐봉지가 있었고, 아빠는 자랑하듯이 뭔가를 꺼내 보이십니다. 커다란 두부 한 모와 흙 묻은 당근입니다. 따끈한 두부에 김장 김치를 싸서 당근 주스랑 먹이고 싶었던 겁니다. 불과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찰나지만, 영화 어디에선가 봤음직한 장면 같습니다. 콧등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나려는 걸 참고 영화를 봤습니다.
아빠와 이렇게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고 싶었던 겁니다. 저는 오랫동안 아빠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빠는 세 살 때 할머니를 잃은 상실감 때문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술만 드시면 우셨습니다. 어린 제 눈에도 불쌍해 보일 정도였지요. 저는 태어나서 술을 드시지 않는 아빠의 모습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집안의 왕처럼 군림하시며 권위적이고 무서웠던 아빠는 엄마를 힘들게 하셨습니다. 자식들은 술 드시는 아빠를 견뎌야만 했습니다. 맏딸인 저와 엄마는 아빠의 인생이 하느님의 영 안에서 다시금 일어서고 변화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변하지 않았고, 저희는 좌절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기도는 누군가를 내 뜻에 맞도록 변화시키기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을요. 아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 십자가를 껴안아 보기로 한 겁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빠가 빨리 변하기를 바랐던 기도를 멈추었습니다. 아빠의 인생이 다 잘못된 것처럼 여기며 그분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제가 구원되고 변했기 때문입니다. 알코홀릭 아빠가 없었더라면, 저는 죽도록 기도하지 않았을 거고, 하느님을 만나지도 못했을 거며,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지도 못했을 겁니다. 아빠는 제게 구원의 도구인 동시에, 제 자신과 화해하게 해주신 정화(淨化)의 선물입니다.
아빠는 4년 전 폐암 초기로 수술을 받으신 데다, 작년엔 췌장암 2기로 생사를 넘나드는 개복수술을 받으셨습니다. 항암 치료까지 잘 마치셨지만 이제 더 이상 술을 드실 수가 없습니다. 엄마와 함께 바친 저의 기도가 응답받은 것일까요? 제 평생 술을 드시지 않는 아빠와 살아본 적이 없어서, 지금의 행복이 낯설기만 합니다. 큰딸이 온다고 갓 만든 두부를 사서 자전거에 싣고 오시며 배시시 웃던 모습, 그 따뜻한 사랑이 제겐 응답입니다.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 한 컷의 스틸 사진처럼 마음에 저장해 두었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술 안 드시는 아빠와 살아볼 기회를 주시고, 부녀간에 추억을 만드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빠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빠, 살아계셔 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대단하신 우리 아빠.”
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
고맙습니다
누군가를 내뜻에 맞게 변화하길 바라는기도를 저도 하고 있었네요 깨닫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