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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4월 팸투어 포스팅 스크랩 대구 근대역사의 숨결 - 골목 투어 떠나볼까요? (1)
행복한 별 추천 0 조회 186 11.05.06 13:2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대구 골목투어(1) 에서는 

대구 근대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계명대 동산 의료원옆에 자리하고 있는 청라언덕과 선교사 사택,3.1 운동길, 90계단,제일교회, 계산성당으로 이어집니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대한민국등록문화재

지정번호 등록문화재 제15호호
소재지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제작시기 일제강점기(1931년)
2002년 5월 31일 지정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啓明大學校東山醫療院, Keimyung University Dongsan Medical Center)은 1899년 미국 북장로교에서 파송한 우드브리지 O. 존슨(Woodbridge O. Johnson)선교사약전골목 구.제일교회 자리에 있던 초가에서 설립한 제중원(濟衆院)이란 이름의 조그만 서구식 진료소를 모태로 하여 대구·경북지역에서 최초로 서양의학을 도입, 시술한 의료기관으로 출발하였다. 존슨은 1903년 병원을 현재의 동산동으로 이전하였다. 동산의료원은 1980년 진료·교육·선교·연구를 이념으로 의과대학을 설립, 계명대학교와 병합하고 1982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으로 거듭난 후 의과대학, 간호대학, 동산병원, 경주동산병원을 산하에 둔 의료원 체제로 성장했다.

 

                                                                                                    자료출처 : 위키백과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면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나는 흰 나리 꽃 향기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런 우리 모두의 마음을 노래한 가곡 '동무생각-사우(思友)' 속의 청라언덕이 바로 대구에 있다.

 

 

1900 년대 대구의 몽마르트... "동무생각" 의 모티브가 된 담쟁이 길

 

 

 

박태준의 가곡 ‘동무생각’의 배경이 된 대구 중구 동산동의 ‘청라언덕’대구 근대문화의 중심지다. 그 아래로 3·1운동길, 선교 박물관, 의료 박물관, 90계단, 상화 고택, 약전 골목, 제일교회, 신명학교, 계산성당 등이 이어지면서 대구의 근대 예술가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 곳이다. 1900년대 대구의 몽마르트로 불리는 이곳은 1899년 그 언덕 아래로 십자가 모양의 계산 성당이 한옥으로 축성된 후 시인 이상화, 화가 서동진과 이인성, 작곡가 박태준 등이 그 언덕을 오가며 한국 근대 예술의 꽃이 된 아름다운 작품들을 피워냈다.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 자를 써서 '푸른 담쟁이 덩굴'이란 뜻을 가진 청라언덕은 당시 박태준이 다니던 계성학교의 아담스관과 맥퍼슨관, 그리고 언덕에 위치한 동산의료원 선교사 사택들이 푸른 담쟁이덩굴로 휘감겨 있는 모습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동무생각'은 박태준(1900~1986)이 마산의 창신학교 교사로 근무할 적에 만들어진 곡으로 동료교사이던 이은상(1903~1982)이 글을 붙인 우리나라 대표적인 가곡이다. 박태준이 계성학교를 다닐 무렵 신명 여학교에 다니던 한 여학생을 사모했는데 내성적인 성격 탓에 끝내 고백하지 못했고, 세월이 흘러 박태준의 애틋한 첫사랑 이야기를 들은 이은상이 즉석에서 가사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 노래 제목이 ‘사우’(思友), 바로 ‘벗을 생각함’이라는 뜻의 ‘동무생각’이다. 수줍은 청년의 로맨스를 간직한 청라언덕의 ‘동무생각’은 당시 청소년들의 애창곡으로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일본 식민지 시절의 노래들이 슬프고 우울한 데 반해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이 노래는 학교 창가나 유행가 외에는 마땅히 부를 게 없던 청소년들에게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당시 청라언덕에 백합은 없었고 노랫말은 백합처럼 희디흰 얼굴의 그 여학생을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대구에서 출생한 박태준은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터스칼럼대학, 웨스트민스터 음악대학을 거쳐 동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오빠 생각' '가을밤' '동무 생각' 등 150여 곡의 동요와 가곡을 작곡했다.

 

 

자료출처 : 매일신문

 

 

 

 

지금은 박태준 선생의 '동무생각'을 기념하는 '청라언덕' 비가 세워져 있는 동산 의료원 사택지 안에는 이외에도 여러 대구의 역사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제일교회에서 오르는 길에는 일제강점기 대구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3·1운동길'이라는 운치있는 90개의 계단길이 있으며 사택지 안에는 1900년대 초반 대구에 도착한 선교사들의 의료 및 선교 활동을 기리는 여러 기념관들도 마련되어 있어 좋은 역사교육도 함께 할 수 있다.대구하면 사과를 떠올리는데 대구 사과가 1900년대 선교사들이 처음 가져와 심기 시작한 것이라는 기록도 확인할 수 있다.

 

 

 

3.1 운동길 ( 90계단 )

 



 

 

 

 

선교사 챔니스 (Chamness) 주택 (Missionary Chamnes's hpuse )

1910년 경 미국인 선교사들이 거주하기 위해 지은 주택으로 ,

그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 유행한 방갈로풍의 모습으로 지금까지 그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

 

 

 

 

선교사 블레어 (Blair ) 주택 ( Missonary Blair's house )

1910년 경 미국인 선교사들이 지은 주택으로 그 당시 미국에서 유행한 방갈로풍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 스윗즈 (Switzer ) 주택 ( Missionary Switzer's house )

 

 

1893년부터 대구를 찾아와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인 선교사들이 1910년경 지은 서양식 건물로,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와 내부구조는 지을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대구 초기의 서양식 건물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당시 미국에서 들어온 한국 최초 서양 사과나무의 자손목으로서  동산의료원의 역사를 말해 줄 뿐 아니라

대구를 사과의 도시로 만든 의미있는 생명체이다.

초대 병원장인 존슨 박사가 미국 의료 선교원으로 동산병원에 재임하면서 미국 미조리주에 있는 사과 나무를 주문하여 이곳에서 재배한 것이

대구 서양 사과나무의 효시이다 .

 

 

 

 

 

은혜 정원

 

                                              우리가 어둡고 가난할 때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릎쓰고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여기에 고이 잠들어 있다 .

 

 

 

 

 

청라언덕안에 이렇게 은혜정원이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대구 제일교회  :  유형문화재 제 30호

 

 

경북지방에 처음 생긴 기독교회로, 선교사들이 이 지방을 개화시키기 위해 근대적 의료 및 교육을 전개했던 곳이다.

고종 32(1895) 부산에 있었던 북장로교 선교본부가 대구로 옮겨지고, 광무 2년(1898)에 기와집 4동을 교회당으로 사용하였다. 계속해서 신도가 늘어 1908년에 재래양식과 서구 건축양식을 합작시킨 새로운 교회당을 지었다. 1933년 신도들의 헌금과 중앙교회의 성금으로 교회당을 새로 짓고 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1937년에 이주열 권사가 높이 33m의 종탑을 세웠고, 1969년에 내부공사를 하고 1981년에 건물 뒤에 156평의 성전을 늘렸다.

현재 이 건물의 전체적인 양상은 평면이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이고, 앞면 중앙에 현관을 두고 오른쪽에는 종탑을 세운 간결한 고딕 건물이다. 1층은 사무실·유치원·청소년 예배실로 사용하고, 2층은 전체를 예배실로 사용하고 있다.

대구제일교회는 대구의 수많은 교회 건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고,기독교가 근대화에 기여한 상징물로서 근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자료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계산 성당  (천주교 대구대교구 계산 주교좌 대성당 ) 

 

 

대구 계산성당은 천주교 대구 대교구 본당으로 19세기에 세워진 우라나라에 세워진 고딕양식의 건물로서, 사적 제 290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계산성당은 본당을 비롯해 성모당, 성바오로수녀원미넷관으로 나뉘어져있는데  성모당은 프랑스 루드르 동굴을 본따서 만들었으며  적벽돌과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아름답고도 정교한  건물들과 입구에는 예수님의 일대기를 그린 10개의 부조상이 길을따라 나란히 세워진 우리나라 전국적으로 유명한 천주교 성지로 꼽히고 있습니다.

 

 

 

 

제일교회와 계산성당

 

계산성당 주차장에서는 대구 근대 역사의 산물인 제일교회와 계산성당을 동시에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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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5.07 01:04

    첫댓글 상당히 많은 곳을 이동하며 본거 같은데 지도로 보니 진짜 골목투어라는 말처럼 비슷한 가까운 곳을 빙빙둘러 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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