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6(수) 경항공기 지역 신우회 예배순서
2020.5.6(수).hwp
제목 : 부활의 증언(3) -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본문 : 베드로후서1장1-21절
찬송 : 나는 예수 따라가는 (387장)
기도 : 각 사업장에서 선임자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는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 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것은 그 분의 정체성입니다.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분의 정체성을 공생애 기간 동안 두 번에 걸쳐 확증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을 때, 그리고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고 모습이 변모하셨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에 대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교롭게도 하나님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확인해주셨던 두 번 모두 예수님 인생에 있어 큰 전환기를 앞둔 때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이후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으며 변화산에서의 확증 이후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중 하나인 베드로는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음성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무엇이며 무슨 일이 예수님을 통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내내 우왕좌왕하며 여러 부끄러운 말들과 행동도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사랑이 어떻게 열매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열정이 넘쳐나 실수가 많은 베드로를 선택하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깊은 유대관계에서 내려진 선택이었습니다. 아버지 와 아들이 동시에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선택을 받았던 베드로는 마침내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 속에서 자신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시고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나라 구원이 임하고 있던 당시에 베드로는 가장 가까이서 그 구원을 목격하고 있었지만 그 뜻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던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구원 사역에 참 적절치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선택하신 분은 아버지와 아들이셨고 그 부르심은 결국 옳은 선택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많은 이들에게 전했습니다. 초대교회 역사가들은 베드로가 그렇게 복음을 전하다 로마에까지 이르렀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을 만나 이야기해 주셨던 것처럼 이제 자신이 원치 않는 곳으로 사람들에 의해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 보낸 것은 그의 전 생애를 놓고 보았을 때 3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은 그 보다 더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기간에 있었던 일들로 인하여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계속해서 어부로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 이제 로마에까지 왔고 그 분의 이름을 전하다가 목숨을 잃을 순간에까지 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과 함께 했던 시기들을 후회하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예수님을 앎으로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되며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되었음을 찬양했습니다. 더불어 자신이 목숨을 잃기 이전까지 계속해서 성도들에게 자신이 보았고 들었던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광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도저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곤혹을 치르실 때 세 번이나 그 분을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를 부르셨던 아버지와 아들은 동일하게 베드로를 다시 부르셨고 그 에게 자신의 양떼를 돌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를 부르셨던 때처럼 예수님은 다시 그를 부르셔서 그가 해야할 하나님 나라 구원의 일을 부탁하셨습니다. 참 덕도 없고 지식도 모자르며, 절제하지 않으며, 인내도 없고 상황에 따라 경건함이 왔다갔다하며,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사랑이 많지 않았던 그를 아버지와 아들을 부르셨고 계속해서 부르셨습니다. 그리하여 전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은혜 가운데서 마침내 베드로는 자신의 무지, 부덕함, 성급함, 불경건, 경쟁심, 부족한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둠에서 벗어나 참 빛으로 나아왔습니다. 성경의민족인 유대인었지만 하나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모르고 우왕좌왕하던 그가 마침내 참 빛을 발견했고 자신이 그토록 외우던 하나님 말씀의 참 의미를 깨달았고 이제 그것에 불들린 채 평생을 살았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은 바로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성도들에게 전해주는 베드로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베드로는 성도가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 부름 받아 선택받았던 것이 얼마나 귀한 은혜이며 그 은혜에서 참 의미를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나 같은 사람을 선택하신 아버지와 아들의 그 은혜는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