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원봉사, 수광전 보살님
졸업식 다음날의 적광전 새벽예불.. 여행자님들은 여럿이 남으셨는데, 남행자는 나 혼자다.
석가모니불 왼편에 오롯이 앉아 대종 소리를 듣는다. 도반들의 빈자리가 느껴져 새벽의 한기는 더하지만,
이제 진정 스스로 만들어가는 수행의 시간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은 새롭기도 하다.
아침 일과로 우선 (졸업식 날 세탁하고 가신) 행자복들을 하나 하나 골라내어 다시 빨았다.
학생 행자님들이 지내던 동별당의 이불들을 꺼내어 세탁하고, 정리하고, 쓸고 닦고,
그 무렵의 자원봉사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 힘들기도 했지만.. 참 즐거웁기도 했다.
아침 공양 후, 주봉스님과 포행을 다녀와 꽁꽁 언 손발을 따스이 녹이며 보이차를 함께 했고..
며칠 열심히 봉사하던 어느 날은, 동은스님이 자원봉사 일행을 데리고 낙산사로 훌쩍 나들이를 데려가시기도 했다.
해운스님이 수심, 심정 등과 함께 사주셨던 횡계 어느 식당의 송OO.. ^^
오대산 진고개 '산에 언덕에' 에서 교무스님, 학감스님과 나누었던.. 음악과 구운 감자와 시원한 맥O 한 잔..
청운스님과의 그 많은 얘기들.. 그리고 동해안으로의 1박 2일 깜짝 여행..
(글이 너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
일주일을 함께 수고하니 모든 일은 거의 마무리 되고, 여행자님들도 대부분 회향길에 오르셨다.
그러던 어느날 법철스님께서, 주말에 큰 행사가 있으니 같이 수고 좀 하자 하신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Asian-Pacific) 외국인 학생 200 여명이 법륜전에서 발우 공양 체험을 하는 행사다.
마침, 3기 학생 행자님들 몇 분이 봄방학을 맞아 자원봉사 하러 월정사에 다시 오셨다.
수백명을 위해 발우를 닦고, 찬상 준비하고, 진행을 돕고, 다시 설거지하고.. 그날 모두들 정말 고생이 많았다. ()
수고하신 나이 어린 중학생 도반님들이 참 고마워서, 저녁 무렵 일주문 밖 식당에서 저녁 공양을 같이 하는데..
반가운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중학교 교사이던 덧버선^^ 행자님이 봄방학을 맞아 월정사에 오는 길이란다.
모두들 행사 준비로 종일 고생이 많았으니.. 하루 쯤 푹~ 쉬기로 하고, 내일 날이 밝으면 함께 상원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왼쪽부터 일력, 일불, 전화, 가성, 청운스님, 용진, 창화, 범본)
다음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청운스님과 같이 눈밭에서 뒹굴며 축구도 했다. (위에 있는 핸드폰 사진^^)
오전 한 때 즐거운 시간 보내고, 모두 함께 버스에 올라 상원사로 향하니 흩날리던 눈발이 차츰 거세어진다.
상원사 문수전 앞 계단의 눈을 쓸고 계시던 행자님(단기출가학교 1기)은, 우리 일행에게 반가운 미소를 건네며
초코파이, 과자 등을 한보따리^^ 챙겨주셨다. (지금은 비구계를 받으신 법은스님)
인광스님께 차도 얻어먹고, 초코렛도 얻어먹고, 즐겁게 이야기 나눈 후.. 버스 타러 내려오니..
이런~ 갑작스런 폭설에 시내버스 운행이 중지 되었단다. 지나가는 차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날은 어두워가고, 발을 동동 구르는데.. 다행히 진부 내려가는 우체국 차가 있어, 기사님께 부탁 말씀 드리고
짐칸에 들어 앉았다. 함박눈 퍼붓는 산 길에, 짐칸에 모두 쪼그리고 앉아, 깔깔 웃으며 초코파이를 나누던,
아.. 꿈결같은 시간들.. ()
다음날이 되어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 이제는 정말 나 혼자로 남는다.
공양간 일을 마치고 가끔씩 수광전에 들러, 보살님과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3기 수행 때 수광전 소임을 앞서 맡았던, 그 일불 행자님의 얘기를 참 많이 하셨다.
맑은 웃음과 밝은 성품이 무척 마음에 드셨나 보다.
한 술 더하여, 내 나이를 물어보시더니.. '둘의 인연이 참 좋네~' 말씀 하신다. ^^*
절집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내다 보니.. 어떤 스님은 만날 때마다 출가를 권하시기도 하고,
큰스님 조차 슬쩍 웃으시며 '이제는 출가하지?' 농담을 건네시기도 한다.
며칠전 법당에 단정히 앉아, 원각경의 환(幻)을 돌아보다가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나와 나 아닌 모든 생명의 소중함, 또한 안타까움에 대해.. (당연하고도 작은 그 깨달음에..)
그리고, 이제는 내 삶의 자리로 돌아갈 때라 살며시 결심했었다.
사중에 말씀드리고 (동안거 해제 후 며칠을) 상원사에서 자원봉사 하기로 했다.
지장암 봉사를 마치신 대도님(1기), 보궁에 기도 오신 심상님(3기)과 동행 했다.
상원사 종무실 이전하는 일을 돕고, 총무스님(인광스님) 방을 이사 및 정리해 드리고,
문수전 주지스님(나우스님)의 방에서 컴퓨터 등을 정리하며.. 잠시 3기 도반들의 지대방에 글 하나를 남긴다.
다음날 혼자 비로봉을 다녀와서
월정사 큰 절로 내려가 인사 드리고는
내가 살아온 바로 그 자리.. 나는 비로소 서울로 돌아왔다. ()
홑이불같은 옅은 구름이 오대를 포근히 감싸는 따스한 겨울낮입니다.
내일이면 단기출가학교를 졸업한 지 꼭 한 달이 되는군요.
저는 이제 회향을 준비합니다.
오늘 상원사 스님들과 보살님 처사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월정사 큰절로 내려가 하루이틀 인사드리고 일하고 정리하며
이제서야 회향하려 합니다.
어젯밤 상원사 뜰위에서 반짝이던 반달은 왜 그리도 쓸쓸하던지요..
알면서 대들지 못하고 이제는 그만 돌아서려 하는 제 모습이 오히려 쓸쓸했던 게지요..
청정하게 살지 못한다면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는데,
자신은 과히 없으면서도 이제 일주문 밖을 나서려 합니다.
좋은 인연을 만들어 주신 부처님들, 스님들, 월정사 직원여러분, 그리고 도반님들..
참으로 마음 깊이 감사드리며 인사를 대신합니다.
정말 행복했던 두달간이었습니다.
(2005년 봄, 월정사 홈페이지 3기 지대방에 올린 글에서)
2010. 2. 7. 선일
0. 출가
1. 자자회
2. 꿈길과 버스안에서
3. 탁발 그리고 덧버선
4. 채공
5. 자원봉사, 수광전 보살님
6. 프로방스의 스파게티
7.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
8. 크리스마스 출산
9. 함께하는 수행의 길
(MBC 출가 Original Sound Track)
첫댓글 참 아름다운 인연을...언제나 청정하게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작년 겨울 월정사에서 자봉하면서 수광전 청소하러 가면 수광전 보살님이 차한잔 주시면서 가끔씩 들러주시곤 했습니다, 그 때 저 정말 어떤 분이신지 무척이나 궁금했어답니다....단기 전에 율이 원주실에서 전화 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아직도 그 때을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다음호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보궁에서 설겆이 고마웠습니다...
연재물 마감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기다리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