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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한혼용체 읽기 연습> (한문) |
※주요 한자에는 밑줄을 그어 놓았습니다.
79. <이 時代 ‘族譜’란 무엇인가> (2015. 2. 12. 문화일보 칼럼) |
家族들이 모이는 설날에 단골 메뉴로 登場하는 話題가 祖上과 家門이다. 血緣이 갖는 社會的 意味가 커질수록 ①族譜 生産은 늘어난다. 18世紀 中盤 祖上의 ②淵源을 크게 올려 잡는 風潮가 일었다. 本貫을 달리해도 姓만 같으면 같은 祖上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祖上同源說이 ③亂舞했다. 다른 姓氏까지도 같은 兄弟에서 갈라섰다는 說이 나타났다. 1700年代 後半에는 安 氏·李 氏 同源說이 提起됐다. 18世紀와 19世紀에 盛行한 ‘身分 ④洗濯’ 手法은 本貫 갈아타기, 이름을 슬쩍 다른 사람 아래 갖다 붙여 族譜를 ⑤印刷하는 添刊, 朝鮮 初에 子孫 끊긴 이의 後孫되기 等 ⑥多樣했다. 歷史學者 박홍갑은 ‘우리 姓氏와 族譜 이야기’(山처럼)에서 “朝鮮 初期 逆賊으로 滅族當한 特定 本貫의 姓氏가 갑자기 불어나기도 했다”며 “族譜 장사가 ⑦盛行했다”고 밝혔다. 活字의 私的 所有가 ⑧許諾되지 않았던 英祖 때 漢陽 한복판에 印刷所를 차리고 새 族譜를 만들어주다 摘發된 事件이 벌어졌다고 한다. 지난해 10月 基準으로 南韓 人口 4900萬 名 中 伽倻系와 新羅系의 金 氏 1000萬 名, 朴 氏 340萬 名, 全州 李 氏 260萬 名을 헤아린다. 이들 세 姓氏가 總人口의 3分의 1이다. 金正日은 지난 2000年 南北 頂上會談 때 自身이 全州 金 氏라고 밝히기도 했다. 以後 全州 ⑨隣近에 ⑩間諜이 몰래 ⑪省墓를 온다는 所聞이 돌기도 했다. 各 姓氏들은 族譜를 根據로 結社體的 紐帶를 形成해왔다. 文廟에 모셔진 儒學者 子孫은 朝鮮의 甲族 兩班으로 特A級 ⑫待遇를 받을 수 있었다. 現代를 사는 우리는 ⑬門閥과 社會階層의 槪念에서 自由로운가. 13日 ‘韓國敎育⑭雇傭패널 學術大會’에서 父母의 敎育水準과 所得에 따라 子女의 進學率과 職場 所得이 높아진다는 패널調査 結果가 發表됐다. 大卒 以上 父母의 子女 大學修學能力 成績 1∼2等級 比率은 20.8%지만 父母의 敎育 水準이 高卒 未滿인 境遇 1%가 되지 않았다. 개천에서 龍이 나지 않는 問題에 對해 깊이 苦悶해야 할 時點이다. 多文化 ⑮移住民 增加로 우리 社會에서 階層과 家門의 問題는 더욱 ⑯尖銳해지고 있다. 韓國 國籍을 받은 外國人이 始祖가 되는 創姓創本이 急增하면서, 始祖 할머니까지 생겨나고 있다. 2006年에는 몽골 金 氏, 2008年 吉林 史 氏, 2009年 泰國 泰 氏, 2010年에는 紆州 黃 氏 等이 생겼다. 하지만 移住民과 內國人 간 ⑰葛藤은 如前하다. 설날에 家族들이 모이면 外國人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서운하게 한다는 시누이들의 怨聲이 쏟아진다. 映畵 ‘國際市場’에서 獨逸 鑛夫 出身인 老人 德洙는 移住民 男女가 데이트를 할 때 高等學生들이 “돈 벌러 왔으면 돈이나 벌지 커피나 마시고 있느냐”고 是非를 걸자 學生들을 호되게 나무란다. 移住民들은 德洙와는 또 다른 意味의 失鄕民인 셈이다. 우리는 家門과 族譜를 重視하는 생각 속에 자리한 ⑱逆機能보다는 ⑲順機能을 살려야겠다. 韓國人들은 훌륭한 祖上을 모신 後孫이라는 생각에 矜持가 높은 個人이 되고 그에 걸맞은 人物이 되고자 努力한다. 이런 情神을 살려 우리는 移住民들에게 ⑳剝奪感을 주는 代身 共同體的 情感을 나눠 가져야 한다. 傳統을 多文化 社會의 未來와 바람직하게 椄木할 때, 우리 民族의 未來는 밝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