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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
이곳은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방문을 해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개인이 찾아가기엔 마음을 먹기가 엄청 어려운 곳이다.
인천에서 백령도까지의 여객선 승선료가 김해에서 제주도 가는 비행기 값보다 비싼 것도 그 원인중 하나이다.
☞ 2015.10.29(목) ~ 11.1(일) 백령도 일원
6년 전 통일부 부설 ‘통일교육원’에서 실시하는 ‘사이버통일’ 과정을 연수한 후에 실시하는 평가에서 성적우수 수료생 전국대상 40명에 선발되어 통일부 비용 부담으로 2009년에 ‘판문점’을 다녀온 적이 있다.
금년에도 동일한 과정으로 연수를 실시한다.
연수 후 성적우수자를 대상으로 백령도 탐방코스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다.
정년으로 교직을 마감하는 해라서 이번이 나에겐 마지막 기회이다.
그리하여 굳은 결심으로 연초부터 3번의 각기 다른 과정에 도전하여 98점 1번과 100점을 2번 받았다.
결과는 전국에서 30명에 선발하는데 선발이 되어서 참여를 하게 되었다.
선발된 사람은 방송통신대 학생들이 교양과목으로 이수하는 통일과목 성적우수자가 20명, 교원 6명, 교육행정직 4명이다.
결과적으로 30명중에 교원은 6명인 셈이니 운이 굉장히 좋은 셈이다.
통일교육원에서 일체의 경비를 부담하는 서울 집결기준으로 1박2일 일정이다.
나는 원거리인 관계로 정식으로 하달된 공문에 의하여 가는 날과 오는 날 각 1일을 추가하여 3박4일 일정으로 다녀오다.
때마침 포항에도 ktx가 개통되어 왕복으로 이용하였으며 숙소는 광화문 부근에 위치한 ‘뉴국제호텔’을 이용하다.
▶ 1일차 : 29일(목)
14:08분 포항발 ktx 특실을 이용하였는데, 서울 도착이 16:24분으로 2시간 20여분이 소요되었다.
신기한 것은 1분도 연착 없이 승차권에 찍힌 도착시간표대로 도착을 하였다.
ktx를 자주 이용하지 않는 관계로 내가 탑승한 ‘특실과 보통실의 차이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결과 가로좌석이 보통실은 4줄인데 비하여 특실은 리무진버스처럼 3줄로 되어있어 공간이 엄청 넓었다.
그외 생수 등 간단한 음료가 제공되는 점이 특실과 보통실의 차이점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내일 아침 6시에 ‘정부중앙청사 후문’이 집결지이다.
이곳을 목표점으로 하여, 서울지리도 익히고 거리 구경도 겸해서 서울역에서 목표점을 향하여 걸어서 이동을 하였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1시간이 소요되다.
집결지를 확인하고 나니 짧은 가을해는 벌써 거리를 어둠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딱히 아는 호텔도 없고 하여 때마침 눈에 뛰는 광화문 앞에 위치한 ‘베이튼 호텔’로 향하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곳은 임대를 한다는 안내판만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광화문광장을 지나서 서울역방면으로 향하다 보니 ‘코리아나 호텔’이 나타난다.
평일인 관계로 빈방이 있으리라 기대를 했었는데, 중국인과 일본인 단체관광객들로 인하여 빈 방이 없었다.
몇 개 남아 있는 방은 1박에 25만 원 선이란다.
출장시 학교장급은 Ktx 탑승시 '특실'과 숙소는 '호텔급'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혼자서 굳이 비싼 방에 머물 필요가 없었기에 다른 호텔을 찾아 나서다.
점차 어두워져 오는 시간이라 조금은 급한 마음으로 찾아간 곳은 ‘뉴국제호텔’이다.
청계천이 시작되는 분수 부근에 위치한 곳으로 이곳도 비교적 싼 방은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전망이 좋은 방에 15만원으로 투숙을 하다.
여장을 푼 후 청계천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원대구탕’에서 대구탕으로 저녁을 때우다.
▶ 2일차 : 30일(금)
4시 30분에 기상을 하다.
집결시간까지 시간 여유가 있기에 욕조에서 어정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시간이 급해서 부랴부랴 짐을 꾸려서 호텔을 나서다.
어두운 새벽거리를 헤치고 집결지에 도착하여 6시에 인천항으로 출발하는 전세버스에 오르다.
그런데 버스에 타고 보니 아뿔싸!
급하게 서두르다가는 항상 낭패가 있기 마련이다.
이번 행사 때 요긴하게 사용할 ‘셀카봉’을 어제 저녁에 사전 작동을 하면서 꺼내둔 것을 빠뜨리고 나온 것이다.
할 수 없이 호텔로 전화를 하여 보관을 잘 하라고 부탁을 하였다.
셀카봉 때문에 내일 나오는 날 숙박도 그곳으로 예약을 하다.
인천항에서 7시 50분에 백령도로 출항하다.
배 삯이 편도 평일은 6만7천원, 주말 10%할증으로 72,200원 정도인데 이는 김해 - 제주도 비행기 삯보다 비싸다고 한다.
백령도에는 12시 30분 도착예정으로 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하모니플라워’호라는 배로 2천 톤 급으로 564명의 탑승정원에 승용차 적재능력이 60대가 되는 쌍동쾌속선이라고 한다.
쌍고동을 길게 울리며 여객선이 출항을 했다.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동북방향에 보이는 북녘 땅 '옹진반도'를 바라보며 운항을 하였다.
북한 땅이 바로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곳이라 긴장이 되었다.
더구나 최근에만 하여도 [연평해전], [천안함폭침사건]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바다, 바로 그곳을 통과하는 길이기에 더욱 긴장이 되었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니 저 멀리 ‘연평도’가 그림같이 희미하게 누워있다.
우리가 탄 배는 [연평해전]이 벌어진 바로 그곳을 통과하고 있다.
지도를 보면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는 모두가 북한 땅 코밑에 위치하고 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자기네 앞바다에 있는 섬인데 우리에게 빼앗겼으니 분통이 터질 것이다.
6.25당시 해군력에서 밀리다보니 코앞에 땅도 빼앗겼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연평도’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온 국민이 월드컵 열풍에 젖어 있을 무렵에 벌어진 [연평해전]을 비롯하여, [연평도 포격전]은 2010년 11월23일 북한이 기습적으로 방사포 170여발을 연평도 민간 시설을 포함한 군부대시설에 무차별적으로 쏜 사건이다.
해병대 연평부대는 북한의 1~2차 포격에 맞서 자주포 80여발을 대응 사격했다.
북한 포격으로 해병대 장병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부상을 당했다.
군부대 공사 중이었던 민간인 2명도 사망했다.
또 다른 사연은 1964년에 가수 최숙자가 발표한 ‘눈물의 연평도’의 배경이다.
1. 조기를 담뿍잡아 기폭을 올리고
온다던 그배는 어이하여 아니오나
수평선 바라보며 그이름 부르면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 ~ ♩♪♬ ~
2. 태풍이 원수더라 한많은 사라호
황천간 그얼굴 언제다시 만나보리
해저문 백사장에 그모습 그리면
등대불만 깜박이네 눈물의 연평도
♩♪♬ ~ ♩♪♬ ~
♣ [눈물의 연평도]는?
과거 '조기잡이'로 화려했던 연평도의 모습 뒤엔 태풍과 북한도발 등 아픈 역사가 있다.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월드컵 축구대회’때 연평해전이 벌어졌다.
연평도는 전쟁의 공포에 잠 못 드는 사람과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어 눈물짓는 이들이 함께하는 곳이다.
사연 많은 ‘연평도’가 가물가물할 무렵 10시 50분경에 ‘소청도’에서 하선하는 승객을 내려주었다.
잠시 후 도착한 ‘대청도’에서 하선하는 승객이 내린 후, 드디어 우리들의 목적지인 [백령도]에 도착을 하였다.
♣ [백령도]는?
백령도는 장산곶 남쪽 38°선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191.4㎞ 떨어져 있다.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 남한 본토보다 북한 내륙과 중국 산동성이 더 가깝다.
해안선의 길이가 52.4㎞이며 2015년 현재 3,100여 가구에 인구는 5,6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이다.
역사적으로 백령도는 고려시대부터 유배지로 이용되었다.
6.25전쟁 시 백령도는 치열한 격전 지역이었다.
피아가 교대로 이곳을 점령하였으나 결국 아군이 승리하여 우리 땅으로 접수된 것이다.
접수당시에는 ‘달래섬’도 미군이 상륙하여 미군기지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북한으로 편입되어 있다.
‘백령도’와 북한 땅 가운데 있는 작은 섬 ‘달래도’까지는 불과 11km의 아주 가까운 곳이다.
주요 관광지로는 [사곶천연비행장]을 비롯하여 두무진·콩돌해안 등이 있는데, 두무진은 명승 제8호로 지정되었다.
사곶천연비행장은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콩돌해안은 천연기념물 제392호로 지정되었다.
1895년에 백령면이 되어 진촌, 사곶, 노화 등 17개 동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진촌, 가을, 연화, 남포, 북포, 대청, 소청 7개리로 개편되었다.
1945년에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북한으로부터의 피난민이 많이 정착하였다.
소청도 주민은 250여명이고 대청도는 1,500여명이다.
백령도는 어업이 주가 될 것 같은데 어업가구는 10%정도이고, 농업가구가 40% 정도라고 한다.
이는 2차례에 걸친 간척사업으로 농경지 면적이 엄청 늘어난 결과라고 한다.
실제로 살펴보니 섬인데도 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백령도에서 가장 좋은 숙소라는 ‘아일랜드 캐슬’에 여장을 푼 우리들은 한식뷔페로 중식을 하였다.
맨 처음 둘러본 곳이 ‘사곶천연비행장’이다.
이곳은 아주 작은 모래입자가 소금물과 결합하여 아스팔트를 깔아 둔 것처럼 아주 단단하게 자연적으로 형성된 천연비행장이다.
이렇게 형성된 비행장은 전 세계를 통틀어 2곳인데 1곳이 이태리의 ‘나폴리’로 길이가 1.8km인데 비하여 이곳은 3km로 더 우수한 천연비행장이다.
6.25때는 B29폭격기가 실제로 뜨고 내렸다고 한다.
광활하게 펼쳐진 바닷가 모래밭을 걸어보니 엄청 단단했으며, 버스가 다녀도 흔적조차 남지 않는 아주 훌륭한 활주로였다.
다음으로 둘러본 곳은 ‘해식동굴’이다.
이곳은 북녘 땅 장산곶을 마주 보는 곳으로 천연동굴이 형성되어 있다.
이 동굴에는 6.25때 주민들이 피난을 한 곳이라 한다.
동굴 앞에는 깨끗한 바닷물이 바위를 정신없이 때리고 있었다.
이 바위에는 자연 그대로 서식하는 ‘다시마’가 무진장이었다.
이곳은 군사작전구역이라 민간인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통일연수원측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우리들은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가이드가
“다시마를 채취해서 맛을 보시고 집에 가져가셔도 됩니다.”
라고 안내를 한다.
두 줄기를 채취하여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정말 가져가도 되는지
'긴가? 민가?'
하며 한 움큼을 더 채취하여 버스에 오르니 기사는 친절하게도 비닐봉투를 건넨다.
‘이런 것이 있는 줄 알았으면 사전에 담아 갈 커다란 봉투를 준비해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다시마는 귀가 후 건조시켜서 활용을 하니 질이 아주 좋은 훌륭한 다시마가 되었다.
이어서 우리들은 심청이가 ‘임당수’에 빠졌다는 얘기가 전해오는 북녘 땅 장산곶과 마주하는 곳에 위치한 ‘심청각’ 전망대에 들렀다.
심청이가 물에 빠진 후 연꽃을 타고 환생을 하였다는 이 곳 부근에 있는 ‘연꽃바위’에서는 불과 10km 전방이 북한 땅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다.
우리가 찾은 날은 청명한 날씨여서 효녀 심청 동상 뒤편으로 아주 깨끗하게 북한 땅을 관찰 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들린 곳은 백령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해발 184m) 해병대 807op다.
정훈장교의 브리핑으로는 이곳은 해병 흑룡부대(6여단)가 주둔하고 있으며 장산곶 까지는 17km라고 한다.
이곳은 ‘여단’ 급이 주둔하지만 연평도 포격 도발 후 군 장비는 ‘군단’ 급으로 배치하여 북의 도발에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곳 전망대에서 분통이 터지는 장면을 목격하다.
중국 어선들이 제집 안방에서 작업을 하듯이 NLL선을 따라서 조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 측에서는 조업사실을 뻔히 알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
중국 어선들이 이곳에서 조업을 하다가 우리 측 경비함이 출동하면 북측으로 살짝 넘어가 버린다.
그리고 북측에서 출동하면 우리 측으로 살짝 넘어온다.
이렇게 양측을 오가며 교묘한 일을 반복하니 단속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최고의 단속 방법은 남과 북에서 동시에 단속을 하면 가능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를 않는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출어했던 남·북 양측 어선들이 제각각 모항으로 입항을 한다.
남아있는 중국 어선들만 더 활개를 치고 어린 고기 까지 싹쓸이를 해가는 현상을 바라만 보아야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실제 우리가 방문한 오늘도 중국어선 10여척이 여유롭게 작업을 하고 있으니 얄미운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장소를 이동하여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둘러보았다.
북침에 의하여 우리 꽃다운 46용사가 희생을 당한 안타까운 장소이다.
위령탑의 방향이 침몰을 당한 바다 쪽을 향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참배객들이 참배를 하기에는 육지 쪽을 향하는 것이 나을지 몰라도 만약에 바다 쪽을 향했다면, 물속을 두더지처럼 다니는 북의 잠수함을 46용사가 투시를 하면서 지키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두무진 절경’트레킹이 오늘의 마지막코스이다.
오랜 세월동안 비와 바람에 의해서 깎이고 깎인 기묘한 형상의 기암괴석이 보는 이의 감탄을 연발하는 곳이라 ‘소금강’이라 칭하는 곳이다.
특히 금년 첫추위(서울지역 최저기온 1도)속에 바라보는 일몰이 일품이었다.
저녁은 두무진항에 위치한 ‘해당화회 식당’에서 하다.
‘우럭’과 ‘놀래기’회, ‘성게’회로 푸짐한 만찬을 하다.
모두가 자연산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은 양식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양식고기도 없다고 한다.
이유는 파도가 엄청 세고 유속이 세기 때문에 양식시설 설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식된 고기를 육지에서 싣고 오는 것은 배 운임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자연산으로 준비할 수밖에 없단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회 맛이 엄청 좋았다.
이후 우리들은 가이드의 설명대로 백령도에서 가장 시설이 좋다는 ‘아일랜드 캐슬’에서 숙박을 하였는데 내 룸메이트는 인천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세무사’였다.
그는 ‘세무사’일을 하면서 또 다른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통신대학을 다니는 중이라고 하였다.
이번 일행들 30명은 방송통신대학 재학생이 20명, 교원이 6명, 교육 행정직이 4명이다.
▶ 3일차 : 31일(토)
한식뷔페로 조식을 마친 후 8시에 ‘두무진’항으로 유람선을 타러 가다.
어제는 풍랑이 너무 심해서 유람선 운항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다행히 운항을 하였다.
‘두무진관광 5호’에 탑승한 우리들은 인천아시안게임의 마스코트인 ‘점박이 물범’의 서식처를 둘러보기 위하여 출발을 하였다.
그런데 파도가 너무 세어서 물범 구경은 하지 못하다.
대신에 어제 트레킹을 하면서 둘러보았던 ‘두무진 절경’을 이번에는 유람선을 타고 바다 쪽에서 쳐다보며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관광을 하였다.
육지 쪽에서 바라본 느낌과 배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또 다른 감동을 주는 일정이었다.
물론 북한 땅 코앞에서 섬을 일주하는 유람이어서 약간의 긴장감도 있었다.
‘만약에 우리 유람선이 혹시 기관고장이라도 일어나서 북한 수역으로 넘어가면…….’
아찔한 상상이었다.
섬에 거주하는 인구에 비하여 백령도에는 교회가 12곳이나 있고 절은 2곳이 있다.
주민의 80%정도가 기독교인이라 한다.
이곳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인 ‘중화리교회’를 둘러보았다.
기독교를 믿지 않은 나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지만 교인들에게는 굉장한 감회가 일어나는 곳이었다.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형상을 한 ‘용트림 바위’를 둘러 본 후 이 곳의 마지막 일정인 ‘콩돌해안’으로 향하다.
가는 도중에 우리들은 백령도 유일의 다리 ‘백령대교’를 통과하였다.
대교라면 ‘한강대교’, ‘잠실대교’, ‘형산대교’ 등으로 엄청 큰 다리를 말한다.
그래서 이 다리도 엄청 큰 다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의 상황은
“에게게…….”
그러나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는 이해가 되었다.
“이 대교의 길이는 불과 10m에 불과하지만, 백령도에서는 가장 긴 다리이며 백령도 유일한 다리이므로 백령대교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대교를 건너니 ‘서해최북단 백령도’라는 기념비가 보인다.
기념비 뒤쪽 바다건너 북한 땅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인다.
‘저 곳도 우리 땅이건만......’
해안 주변에는 ‘콩돌해안’과 해안이 아닌 곳의 경계를 가르듯이 ‘해당화’가 경계선을 이루어 엄청 많이 피어 있었다.
이 해안에는 조약돌이, 작은 것은 완두콩 크기에서부터 달걀크기까지 있었으며 1km 길이를 자랑한다.
서울대 연구진의 연구결과 이 돌에서는 ‘원적외선’이 방출된다고 한다.
따라서 맨발로 걸으면 지압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한참을 체험하였는데, 나중에는 발이 얼얼하였다.
지금은 무분별한 반출을 막기 위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을 하여 반출을 제한하고 있었다.
‘메밀칼국수’로 중식을 해결한 후 12시 50분에 출항하는 들어갈 때와 같은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출발하였다.
인천항에 배를 타고 다니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인천대교’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인천항에 도착한 후 전세버스로 서울로 이동을 하였다.
그런데 당초 하차 예정지점인 ‘광화문’이 아닌 ‘경복궁역’에서 하차를 하였다.
오늘 ‘교과서 국정화 반대데모’를 하기 때문이란다.
저녁 7시가 넘어서 숙소인 호텔에 도착하였다.
때마침 호텔 인근 광화문에서 데모를 한다기에 TV뉴스에서만 봐오던 데모현장을 가까이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되었다.
청계천변에 위치한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어슬렁거리고 구경을 나서다.
다른 날은 어떠했는지 몰라도 내가 직접 현장을 확인하면서 본 오늘 그 장면의 저녁 뉴스는 잘못 전달된 것 같다.
뉴스에서 보니 화면이 가득 차게 편집을 해서 정말 엄청 많은 인파가 동원된 줄 착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직접 확인해본 관중들은 청계천 분수가 시작하는 곳에서 너비 30여 미터의 폭으로 5~60미터의 길이로 운집한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뉴스에서는 주최 측 주장 1만여 명이 참여했다나?
내가 관찰한 바와는 엄청 다른 참여인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1만 명이 누구 집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이는 편집으로 인한 착시현상인 것 같다.
운집한 군중 바로 앞에서 좁은 구역만 촬영을 하기 때문이다.
‘데모현장에서 일정 부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변장소도 함께 보이도록 촬영을 한 화면을 내 보낸다면 좀 더 객관적으로 군중들의 운집정도를 바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8시 40분에 출발하는 ktx산천호를 타고 최저 시속 250km에서 최고 시속 300km로 달려서 승차권에 찍힌 도착시간 11시 7분에 1분도 연착 없이 포항역에 도착하다.
서해최북단 섬 ‘백령도’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는, 저물어가는 2015년에 나에겐 정말로 의미 있는 행사였다.
첫댓글 백령도 가보고 싶은데 배 멀미 생각하면 도저히 갈수 없네요.
연평도 가는데도 멀미해서 행사에 참석 못하고 반쪽 구경만 하고 왔답니다.
간접여행 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입니다.
되돌아보니 찬스가 생길때 그 기회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재향군인회만 했다면 기회가 왔을텐데~~
연평도도 임원들만 갔었는데~~
담에 백령도 가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멀미가 장난이 아닐것 같아 미련없이 그만 두었지요.
송이골님 덕분에 다녀 온것처럼 잘 봤습니다.
진짜 좋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