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6월 4일 토요일
송찬호 시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을 읽었다. 케이비에스 에프엠 클래식 프로에서 소개된 <찔레꽃> 이라는 시를 지은 시인이다. 나는 너무 마음에 들어 당장 시집을 사서 읽었다. 처음 작품을 펼쳤을 때 '아?' 그동안 네가 읽었던 시보다 한층 새롭고 신선한 시들이었다. 그래서 알 듯 모를 듯 더듬거리며 읽어야 했다. 한편의 동화같은 시들, 자연에 깃들어 사는 산비둘기, 염소, 고양이, 코끼리, 반달곰 , 기린, 악어, 사슴, 나비, 산토끼, 채송화, 오동나무, 칸나, 맨드라미, 동백, 산벚나무, 토란, 찔레꽃, 복사꽂, 살구꽃 , 유채꽃 ~~~ 이것들과 얘기하고 공감하면서 새로운 상생의 세상을 열어간다. 폭압적인 문명을 비판하고 억압된 어른의 미래를 깨뜨리는 어린이의 맑고 순수한 시가 열린다.
다 마음에 들지만 그의 시의 면모를 한 눈에 알아낼수 있는 시를 적는다.
* 나비
나비는 순식간에
째크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이다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 채송화
이 책은 소인국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을 땐 쪼그려 앉아야 한다
책 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
깨진 조각 거울이 그곳의 가장 큰 호수
고양이는 고양이 수염으로 알록달록 포도씨만 한 주석 달고
비둘기는 비둘기 똥으로 헌사를 남겼다
물뿌리개 하나로 뜨락과 울타리
모두 적실 수 있는 작은 영토
나의 책에 채송화가 피어 있다
* 반달곰이 사는 법
지리산 뱀사골에 가면 제승대 옆 등산로에서 간이 휴게소에서 운영하는 신혼의 젊은 반달곰 부부가 있다. 휴게소는 도토리묵과 부침개와 간단한 차와 음료를 파는데, 차에는 솔내음차, 바위꽃차, 산각시나비팔랑임차, 뭉게구름피어오름차, 등이 있다. 그중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차는 맑은바람차이다
부부는 낮에는 음식을 팔고 저녁이면 하늘의 별을
닦거나 등성을 밝히는 꽃등의 심장에 기름을 붓고 등산객들이 헝클어놓은 길을 풀어내 다둑여주곤 한다
그런데 반달곰씨의 가슴에는 큼직한 상처가 있다
밀렵꾼들의 총에 맞아 가슴의 반달 한쪽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일전에 반달보호협회에서도 찾아왔다. 그대들, 곰은 이미 사라져갈 운명이니 그 가슴의 반달이나 떼어 보호하는 게 어떤가 하고
돌아서 쓸쓸히 웃다가도 반달곰 씨는 아내를 보자
금세 얼굴이 환해진다. 산열매를 닮아 익을 대로 익은 아내의 눈망울이 까맣다 머지않아 아기 곰이 태어난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도 우리는 하늘을 아장아장 걷는 낮에 나온 반달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험한 산비탈 오르내리며 요즘 반달곰씨는 등산 안내까지 겸하고 있다. 오늘은 뭐 그리 신이 났는지 새벽부터 부산하다 우당탕 퉁탕 ㆍㆍㆍㆍㆍㆍ, 길 비켜라, 저기 바위택시 굴러온다
* 칸나
드럼통 반 갈라 엎어놓고 칸나는 여기에서 노래를 하였소
초록 기타 하나 들고 동전통 앞에 놓고
가다 멈춰 듣는 이 없어도 언제나
발갛게 목이 부어 있는 칸나
그의 로드 메니저 낡은 여행용 가방은
처마 아래에서 저렇게 비에 젖어 울고 있는데
그리고 칸나는 해질 녘이면 이곳 창가에 앉아
가끔씩 몽롱 한 잔씩을 마셨소
몸은 이미 저리 붉어
저녘노을로 타닥타닥 타고 있는데
박차가 달린 무거운 쇠구두를 신고 칸나는
세월의 말잔등을 때렸소
삼나무 숲이 휙휙 지나가버렸소
초록 기타가 히히항, 하고 울었소
청춘도 진작에 담을 넘어 달아나버렸소
삼류 인생들은 저렇게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초로를 맞는 법이오
여기 잠시 칸나가 있었소
이 드럼통 화분에 잠시 칸나가 있다 떠났소
아무도 모르게 하룻밤 노루의 피가 자고 간 칸나의 붉은 아침이 있었소
* 고양이
여기 경매에 내놓으려 하는 오래된 꽃밭이 있어요
꺾은 꽃가지에서 비린내가 나지 않으면 이제 그런 건 거들떠보지도 않네요
쉬잇, 지금은 고양이 철학 시간이에요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모서리 구멍을 응시하고 있어요
아마 지금은 사라져버린 사냥 시대를 생각하고 있겠지요
우리는 모든 어둠과 추위로부터 쫓온 무리랍니다
한때는 방 안을 뒹굴던 털실 몽상가와 잘도 놀았답니다
현기증 나는 속도의 바퀴와 아찔한 연애도 해봤구요
요즘은 부쩍 네발 달린 것에 믿음이 가는가 봐요
네발 달린 의자에 사뿐히 뛰어올라 털실이 떠나간
털실 바구니에 들어가 때때로 달콤한 오수를 즐기지요
앗,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방 안 모서리, 손거울, 집 열쇠, 어항의 물고기가 사라지고 없어요
다그쳐 물어도 종알종알 털만 핧을 뿐 모른다 도리질만 하네요
쫑귓 동그란 눈동자 ㆍㆍㆍㆍㆍㆍ , 그토록 짧은 혀로 그것들 모두 어디다 숨겼을까요
* 염소
저렇게 나비와 벌을 들이받고
공중을 치받고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울지 않고 버티기만 하는
저 꽃을 어떻게 불러야 하나
하여, 우리는 저 고집 센 꽃으로부터
뿔을 뽑아내기 위해
근육을 덜어내기 위해
짐승을 쫒아내기 위해
부단히 채찍질을 하였다
그리고 부지런히 말과 글을 배운
염소 학교 졸업식 날
그에게 많은 축복이 있었다
산과 들판은 절벽에 붙어살며
바위 사이를 뛰어다니는 쿠션 좋은 침대를
시간은 쉼 없이 풀을 씹어
향을 피워 올리는 검은 향로를
시냇물은 약간 소심한 낯짝의 거울을
구름은 근사한 수염을
그리고 우리는 고삐를 주었다
* 민들레역
민들레역은 황간역 다음
고삐 매에 있지 않은 녹슨 기관차 한 대
고개를 주억거리며 여기저기
철로변 꽃을 따 먹고 있다
에구, 이 철없는 쇳덩이야
오목눈이 울리는 뻐꾸기야
쪼르르 달려나온 장돩 한마리
대차게 기관차 머릴 쪼아댄다
민들레 여러분, 병아리 양말무릅까지
모두 끌어어올렸어요? 이름표 달았어요?
네 네 네네네. 자 그럼 출발!
민들레는 달린다
종알종알 달린다
민들레역은 황간역 다음
* 늙은 산벚나무
앞으로 늙은 곰은 동면에서 깨어나도 동굴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는 기라
동굴에서 발톱이나 깎으며 뒹굴다가
여생을 마치기로 했는 기라
그런데 또 몸이 근질거리는 기라
드미며 어깨며 방긋방긋해지는 기라
문득, 등 비비며 놀던 산벚나무가 생각나는 기라
그때 그게 우리 눈에 딱, 걸렸는 기라
서로 가려운 곳 긁어주고 등 비비며 놀다 들킨 것이 부끄러운지
곰은 산벚나무 뒤로 숨고 산벚나무는 곰 뒤로 숨어
그 풍경이 산벚나무인지 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우리는 한동안 산행을 멈추고 바라보았는 기라
중동이 썪어 꺾인 늙은 산벚나무가
곰 발바닥처럼 뭉툭하게 남아 있는 가지에 꽃을
피워
우리 앞에 슬며시 내미는 기라
* 코스모스
지난 팔을 아라비아 상인이 찾아와
코스모스 가을 신상품을 소개하고 돌아갔다
여전히 가늘고 긴 꽃대와
석청 냄새가 나는 꽃은
밀교에 한층 더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한때 나는 모가지가 가는 꽃에 대해서는
골똘히 바라보다 반짝이는
조약돌을 머리에 하나씩 얹어주는
버릇이 있다 코스모스가 꼭 그러하다
가을 운동회 날 같은 맑은 아침
학교 가는 조무래기 아이들 몇 세워놓고
쉼 없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저 꽃이 근육없는 무용을 보아라
코스모스 면사무소 첫 출근 날 첫 일과가
하늘 아래 오지의 꽃밭을 다 세는 일이었다
스물한 살 지방행정서기보
바람의 터번이 다 풀렀고나 가을이 깊어간다
대체 저 깊고 푸른 가을 하늘의 통점은 어디인가
나는 오늘 멀리 돌아다니던, 생활의 관절
모두 빠져나간 무릎 조용히 불러 앞세우고
코스모스 길 따라 뼈주사 한 대 맞으러 간다
* 토란 잎
나는 또르르 ᆢㆍㆍㆍㆍㆍ 물방울이 굴러가 모이는 토란
잎 한가운데 물방울 마을에 산다 마을 뒤로는 달팽이
기도원으로 올라가는 작은 언덕길이 있고 마을 동남쪽 해 뜨는 곳 토란 잎 끝에는 청개구리 도약대가 있다
청소년수련
원의 번지점프가 있다
토란 잎은 비바람에 뒤집힌 우산을 닮았다 가끔씩
빗방울 듣는 토란 잎 대궁 아래 앉아 아직 오
지 않은 버스를 기다리곤 한다 한번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던 군인이 하늘에서 길을 잃고 토란 잎에 착지한 적도 있다. 나는 그와 함께 초록 뱀이 짧게 발등을 스치고 지나간 청춘의 오솔길에 대해 오래 이야기하였다
때로 바람이 없어도 토란 잎은 온몸을 흔들며 경련
을 한다 어디든 삶의 격절과 단층은 있는가 보다 그
럴 때마다 물방울들은 의자나 기둥애 매달려 떨며 흔들리며 몹시 아프다
지난 여름 세차게 소나기가 토란 잎을 두드리며 연
주하는 가설무대가 들어온 적 있다. 한 달 간 소나기가
계속되었고 그다음 한달은 폭염이 세상을 지배했다
빗속 천둥과 번개가 토란 잎 위에서 뒹굴었고 그다음
전라의 젊은 남녀가 태양을 피해 토란 잎 그늘
로 뛰어들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을 한껏 치장하는데 앵
무새의 혀, 사자의 갈기, 원웅이의 다이아몬드 꼬리
잉어의 수염 등은 한낱 삶의 가면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난여를, 토란 잎을 둘러싼 탱자나무 울타
리에 커다란 해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어떠한 사소한 뉴
스도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를 뚫고 넘어오지 못했다
다만, 아무도 다치지 않은 채 오직 탱자나무 가시만
홀로 아팠다 그리고 훌쩍 여름은 지나갔다
언제나, 물방울들은 토란 잎 한가운데 모여 합창을
한다 또르르르 또르르르 쉼 없는 물방울들의 합창,
또르르르 또르르르 힘겨운 물방울들의 노 젓기, 토란
잎 이 배가 가 닿는 세상의 끝은 어디인가 나는 게으
르게 언덕에 누워 아득히 하늘을 지나는 비행기를 본
다 어디 저기에서 쓸만한 냉장고 하나 안 떨어지
나 ㆍㆍㆍㆍㆍㆍ
* 복사꽃
옛말에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 핬으니
그런 눈부신 꽃을 만나면 멀리 피해 가라 했다
언덕 너머 복숭아밭께를 자날 때였다
갑자기 울긋불긋 복면을 한
나무들이 나타나
잎을 가로막있다
바람이 한 번 불자
나뭇가지에서 후드득 후드득,
꽃의 무사들이 뛰어내려 나를 에워쌌다
나는 저 앞 곡우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
사정했으나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땐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 하는데
나는 가까스로 시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
* 살구꽃
살구꽃이 잠깐 피었다 졌다
살구꽃 무늬 양산을 활짝 폈다가
사지는 않고
그냥 가격만 물어보고
슬그머니 접어 내려놓듯이
정말 우리는 살구꽃이 잠깐이라는 걸 안다
봄의 절정인 어느날
활짝 핀 살구꽃이 벌들과
혼인 비행은 떠나버리면
남은 살구나무는 꽃이 없어도
그게 누구네 나무라는 걸 눈을 감고도 훤히 알듯이
재봉틀 소리나는 곳이 살구나무 수선집이고
종일 망치 소리 나는 곳이 살구나무 철공소라는 걸
멀리서도 알고 있듯이
살구나무와 연애 한번 하지 않아도
살구나무가 입은 속옷이
연분홍 빤스라는 걸
속으로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 종달새
나는 달린다 달팽보다 더 빨리
지렁이보다 더 멀리 나는 달린다
종아리에 피리 구멍이 터져 흐를 때까지
나는 이제 당분간 통속한 새들의 시장을 떠난다
신문도 보지 않고 일기예보도 듣지 않고 화단에 물
도 주지 않는다
내 몸의 피리 구멍으로 무거운 피가 모두 빠져
나갈 때까지 나는 달려야 한다 더 가벼워져야 한다
강물 조약돌에 비친 물고기 눈 속에
갈대들이 부는 휘파림 속에
꼭 쥔 아이의 주먹 속에
공중에 파종할 새들의 씨앗이 들어 있다
나는 나뭇가지에 새로운 서정의 집을 짓는다
앞으로 내 꿈은 저 들판의 푸른 종자기,
나는 솟구친다 나는 비상한다
나는 온몸으로 꽃들을 타종한다
나는 달린다 바람보다
더 빨리 구름보다 더 멀리
내 푸른 종아리에 종달새 산다
* 오동나무
나는 아직도 오동나무를 찾아가던 그 시절을 생생
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어떤 푸른 그늘이 필요했다
하여 찾아간 오동나무와의 인사는 아름드리 그 나
무 허리를 한번 안아보았던 것
근처에서는 딸기나무 관리인인 검은 염소가
청동의 고삐를 잃어버린 것일까
온통 딸기나무 밭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오동나무는 말했다 나무 위쪽에 빼꼼한 하늘을
그냥 흑판으로 쓰는 작은 산비둘기 학교가 있고 발
아래
뿌리가 뻗어나간 곳까지 일궈놓은 이십여 평의 그
늘이 그의 삶의 전부라고
오동나무 따님이 내온 냉차는 얼마나 시원하든지
그때 계절은 참으로 치열하였다
염소의 두 뿔과 붉은 딸기가 얼마나 범벅이었는지
냇가에서는 돌과 잉어의 배가멀마나 딴딴해졌는지
떠날 때 오동나무는 잎을 따 주었다
몇 번 사양했지만 푸른 날들을 잊지 말라며
내 주머니 속에 기어이 오동 잎엧 장 꾸깃꾸깃 넣
어주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언덕 위 오동나무 그늘을 기억하고
있다
다리 건너 입구의 오동나무 편지통, 현관 오 분
늦게 가는 오래된 오동나무 괘종시계, 진흙이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던 오동나무 구두, 부엌에서 들리
던 오동나무 도마 소리 ㆍㆍㆍㆍㆍㆍ
* 소금창고
돈 떼먹고 도망간 여자를 찾아
물어물어 여기 소금 창고까지 왔네
소금 창고는 아무도 없네
이미 오래 전부터 소금이 들어오지 않아
소금 창고는 텅 비어 있었네
나는 이미 짐작한 바가 있어
얼굴 핀 소금 신부를 맞으러
서쪽으로 가는 바람같이
무슨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온 건 아니지만.
나는 또, 사슴 같은 바다를 보러 온 젊은 날같이
연애 창고인 줄 알고
손을 잡아 뛰어드는 젊은 날같이
함부로 이 소금 창고를 찾아온 것도 아니지만,
가까이 보이는 바다로 쉬지 않고 술들의 배가 지나
갔네
나는 그토록 다짐했던 금주의 맹세가 생각나
또 여자의 머릿결 적시던 술이 생각나
바닷가에 쭈그리고 앉아 오랫동안 울었네
소금 창고는 아무도 없네
그리고 짜디짠 이 세상 어딘가에
소금같이 뿌려진 여자가 있네
나는 또, 어딘가로 돌아가야 하지만
사랑에 기대는 법 없이
저 혼자 저렇게 날아갈 수 있는 건
오직 여기 소금 창고뿐이네
* 진남교 벚꽃
경북 문경시 진남교반에는
문을 연 지 백년이 넘는다는
아주 오래된 벚꽃 은행이 있는데요
해마다 사월이면 나는 그 벚꽃 은행을 찾는데요
갈 때마다 꽃 사태 사람 사태
천지간 온통 희부옇게
벚꽃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지는데요
그렇게 꽃을 퍼내다 그 늙다리 나무
은행 파산하는 거 아닌지 몰라!
늦은 오후, 풀풀 날리는 꽃그늘 아래
한 평짜리 평상 휴게실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빗자루 경비가 들려주는 말,
오늘은 내 앞으로 딱 두 사람
고모산 흰 사슴과
서울 사는 비단 구두 장수가 다녀갔다는데요
* 맨드리마
맨드리미 머리에 한 됫박 피를 들이붓는 계관
식 날이었다
폭풍우에 멀리 날아간 우산을 찾아 소년 무지개가
집을 떠나는 날이었다.
앵두나무 그늘에 버러진 하모니카도 썩은 어금니
로 환하게 웃는 날이었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맨드라미 동문들이 찾아와 축
하를 해준 날이었다
우리도 가만있을 순 없지, 일요회 소속 맨드라미파
화가들도 풍경화 몇 점 남긴 날이었다
이거 약소한데요, 인근 슈퍼에서 후원한 박카스도
한 번씩 돌리는 날이었다
오늘 참 이상한 날이네 웬 붉은 깍두기 머리들이
이리 많이 모였자?
땀 뻘뻘 흘리며 나비 검침원이 여기저기 찔러보고
날아다니는 긴긴 여름날이었다
* 코끼리
나는거대하다
나는 천천히 먹고 잠자고 천천히 이동한다
벌써 나는 삼만년 째 석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미 오래 전 사녕꾼들에게 그림자를 빼앗겼다
그들은 내 몸을 마구 파헤쳤다 내 눈앞에서
초원은 시들고 강과 호수는 사라져버렸다
그들의 배로 열차로 군대로
내 삶과 피를 조각내 운반해갔다
그들은 내 몸을 쇠사슬로 묶었다
내 등에 그들의 의자가 놓여있다
그들의 식탁과 사무실과 침대가 올라타 있다
그러나 보아, 그들이 아무리 채찍을
휘둘러 재촉해도 나는 굳세게
천천히 먹고 잠자고 천천히 이동한다
나는 십만년 째 석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거대하게 사라져 간다
* 유채꽃
십만 평 너른 강변에 노란 유채꽃밭은 좋아라
십만 평 아지랑이 하늘도 좋아라
유채 강 그물에 퍼득이는 팔뚝만한 잉어들도 좋
아라
방금 앉아 놀다간 스무 살 처녀들 꽃방석은 더욱
좋아라
그리고 유채밭 한 귀퉁이 미나리꽝은 푸르러
온종일 아이 생각에 미나리 다듬는 조급한 마음만
푸르러
멀리 강둑에 혼자 나와 앉아 하모니카 부는 눈먼
아이
어메 아즉 안 오나, 더욱 목이 길어진 전봇대 한 주
미나리꽝 보이나ㆍㆍㆍㆍㆍㆍ 전봇대 끝 종다리 노랗게 눈
곱 끼겠다
<좋은 시 성실히 읽고 다 적음. 나도 이렇게 시롤 쓰고 싶음 모두 좋은 시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