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등기와 등기의 공신력
우리나라 민법 제186조는 "부동산에 관한 법률행위로 인한 물권의 득실 변경은 등기해야 그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 형식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가령 부동산을 매수하여 잔금을 치르고 이를 인도받더라도 등기하지 않으면 소유권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1960년 우리나라 민법이 제정되기 이전, 조선 민사령 제1조로 우리나라에 의용되었던 일본 민법(이른바 '의용 민법'이라고 한다)은 등기를 요하지 않는 의사주의를 채택했는데, 민법을 새로이 제정하면서 물권변동의 존부와 시기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고, 물권 귀속에 관한 효력을 당사자 사이의 대내적 관계와 제3자와 사이의 대외적 관계를 통일시키고자 형식주의를 채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편 물권변동을 이해하기 위해 함께 알아야 하는 개념은 '등기의 공신력'입니다. 등기의 공신력이란 등기에 공시된 내용이 실제의 권리관계와 일치하지 않은 경우, 공시된 내용대로 물권이 존재하는 것으로 신뢰한 당사자를 보호하는 것을 말말하며. 모종의 이유로 등기에 기재되지 않은 실제 권리자가 있더라도 등기부에 표시된 내용대로의 법률관계가 인정되는 것입니다. 즉 공신력의 인정 여부는 부동산의 진정한 권리자와 등기를 믿고 거래한 당사자 중 누구를 더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법 체계는 특이하게도 물권변동의 형식주의를 채택하면서 동시에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앞선 의용민법이 형식주의 대신 의사주의를 채택하고 있었고, 6·25 전쟁으로 인해 부동산의 권리관계에 관한 서류가 상당 부분 멸실된 이유로, 등기되지 않거나 등기의 기재 내용이 부정확한 경우가 많아, 진정한 권리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높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소 절충적인 방안을 마련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형식주의와 공신력의 불일치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으나,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기 위해 개편해야 하는 행정절차와 법률문제, 그리고 비용적인 부분 때문에, 그동안 이를 위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최근 전세 사기 등의 문제와 맞물려 공신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다시 대두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서류를 위조해 등기부에 기재된 근저당권을 말소하여 부동산을 매도한 사례가 뉴스에 보도됐습니다. 제1심법원은 깨끗한 등기를 믿고 이를 매수한 매수인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항소심 법원은 진정한 권리자인 근저당권자의 손을 들어 부동산에 아직 근저당권이 남아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위와 같이 우리 등기 체계가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고, 이를 믿은 당사자보다 진정한 권리자의 보호를 더 우선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위와 같은 사례는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법체계에 내재한 위험이 현실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유사한 사례는 계속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등기를 믿을 수 없다면 당연히 거래는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도 현재 국회에서, 부동산 등기를 접수하면서 행정기관에 진위를 확인하게 하자는 법안이 발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사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