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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지금 여기 - 탑빈유 사원과 쉐산도 사원
버스를 타고 부페야 사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아노라타왕과 마누하왕의 질긴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왕의 신분에서 하루 아침에 포로가 되어 어두컴컴한 남파야 사원에 갇힌 마누하왕은 날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왕국을 멸망시킨 아노라타왕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아노라타왕의 청을 거절하지 말았어야 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다 이런 신세로 전락해버린 자기 처지에 대한 비관이었을까. 남파야 사원을 떠난 지 한참이 되었건만 나는 여전히 마누하왕이 되어 컴컴한 감옥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마누하왕의 처지가 되고 보니 아무래도 자신에 대한 자책이 심하다. 그 때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할 줄 뻔히 알면서 왜 그렇게 바보같은 결정을 했을까. 그 때 내가 조금만 참았더라면, 그 때 내가 조금만 자존심을 죽이고 상황판단을 제대로 했더라면 이런 참담한 상황으로 내 몰리지는 않았을 텐데.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이여.
마누하왕의 자책은 곧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이기도 하다. 잘못된 결정이 몰고 오는 파장을 겪으며 나 또한 마누하왕처럼 나 자신을 책망하고 자학하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조금만 양보했더라면 큰 사랑을 잃지도 않았을 텐데. 내가 조금만 부드럽게 말했더라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도 않았을 텐데. 내가 조금만 견뎠더라면, 내가 조금만 이해했더라면, 내가 조금만...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 있다. 한 번 흘러간 물에는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고, 한 번 어긋난 사랑 곁에는 다시 몸을 뉘울 수 없다. 헤어지고 지친 영혼이지만 지금 있는 이대로의 나를 긍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결국 인생 아니겠는가. 또 모르지. 지금의 내 모습이 최선이었다고 인생을 되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일지도.
이라와디강변에 세워진 부페야 탑은 바간에서 가장 오래된 탑으로 A.D 300년에 조성되었다. ‘호박 모양의 탑’이란 뜻의 부페야는 초기 미얀마탑의 형식을 알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그러나 1975년 지진으로 탑이 무너져 현재 세워진 탑은 옛 탑의 형식을 본 떠서 복원한 탑이다.
부페야 사원의 탑. 지진으로 파괴되어 다시 복원한 탑이다.
강물에 비친 쨍쨍한 햇살 때문일까. 아니면 계속되는 맨발 행군 때문일까. 이젠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혼자 다니는 여행이 아닌 만큼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없다. ‘고춧가루’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빨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어 있으면 보기 싫잖아요. 가이더를 하다보면 이빨 사이에 낀 고춧가루처럼 딱 빼냈으면 할 정도로 속 섞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고춧가루라고 불러요.” 농담 삼아 얘기했던 가이더의 말이 아니라도 단체 행동에서는 함께 움직여주는 것이 좋다.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계속해서 물을 마시고 바나나를 먹고 사탕까지 깨물어 먹는다. 이제 정말 멋있다는 장소만 남아 있지 않은가.
여유가 있어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빠듯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열흘 정도의 해외여행을 떠나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러니 여행지에 와서도 편하게 쉴 수가 없다. 어떻게 떠나온 여행인데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기억해야 한다. 여행객들의 그런 강박관념을 가이더 또한 잘 알기 때문에 하루 일정은 새벽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그래서 오전에는 조금 힘든 일정으로 채우고 사람들이 지치는 오후에는 아끼고 아껴두었던 장소를 안내한다. 마치 콘서트의 마지막에 대형 스타가 등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찾아간 곳이 탑빈유 사원이다. 탑빈유는 바간에서 가장 높은 사원으로 높이가 61m에 이른다. 아난다 사원을 만든 쟌시타 왕의 손자인 알라웅씨투에 의해 건립된 탑이다. 예전에는 사원의 1,2층에 스님들이 거주하고 3층에는 유물 보관, 4층은 도서관, 탑 상부에는 사리를 모셨다고 하는데 현재는 안전상의 위험으로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아난다 사원만큼 아름답고 정교하고 빼어난 탑빈유 사원을 보니 또 다시 마누하왕이 떠오른다.
바간의 탑은 미얀마 국민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페야 준’이라는 노예들이 만든다. 페야 준은 전쟁에서 잡혀온 포로들로 구성이 되는데 그들은 평생동안 탑만 만들다 죽게 된다. 거대한 탑을 쌓기 위한 페야 준이 필요할 때 일부러 정복 전쟁을 일으켜 노예들을 끌고 오는 경우도 있다. 대우는 노예들과 달랐을 지 몰라도 마누하왕 역시 페야 준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탑빈유에 들어서자마자 손에 물건을 든 아이들이 우루루 달려들며 ‘언니, 예뻐요.’를 외친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행상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장소가 명소인가 아닌가는 물건을 파는 아이들의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끈질기게 팔찌를 내미는 아이한테 2달러 주고 엽서를 산 다음 사진을 찍는다. 내부를 들어갈 수 없는 대신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가 있다며 탑 뒤로 한참을 걸어간다. 맨발로 걷는 바닥은 신발을 신어도 걷기 힘들만큼 거칠어서 돌맹이와 나무뿌리가 발에 걸린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서 소위 ‘포토 존’에서 다시 한 번 사진을 찍은 다음 마지막 장소인 쉐산도 사원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탄다.
바간에서 가장 높은 탑 탑빈유 사원
다시 아노라타왕 얘기를 해야겠다. 바간의 일몰을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다는 쉐산도 탑은 아노라타왕이 전국을 통일한 후 첫 번째로 건립한 사리탑이다. 금으로 번쩍거리던 쉐지곤 파고다가 아노라타왕의 계획에 의해 세워지기 시작하여 아들인 쟌시타 왕 때 완공되었다면 쉐산도는 아노라타왕이 전국을 통일하던 첫 해에 완공되었다.
기단부 네 면에 가파르게 설치된 계단을 통해 쉐산도탑 위에 올라가면 바간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통일왕 아노라타가 바간 시내를 호령하듯 내려다볼 수 있는 쉐산도 탑을 세웠다면, 포로가 된 마누하왕은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답답한 마누하 사원을 세웠다. 대척점에 선 두 사람의 처지가 탑으로 극명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드디어 도착했다.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는 5층 테라스까지 올라가 멀리 펼쳐지는 바간 시내를 둘러본다. 내려다보니 정말 탑과 사원만이 있는 도시다. 지금은 모두 벽돌의 속살이 드러나 있지만 아난다 사원처럼 흰색 몸체 위에 금도금된 상륜부가 얹어져 있었을 건립 당시의 모습은 장관이었을 것이다.
아노라타 왕이 전국을 통일하고 처음 세운 쉐산도 사원(탑)
사진을 다 찍고 나서 해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오랫동안 서 있자니 캄보디아의 프놈 바케잉에서 봤던 일몰이 생각난다. 그 때도 지금처럼 이렇게 지쳐 있었다. 그런데 그 때가 그립다.다시는 돌아보기 싫을 정도로 힘든 시간도 지나놓고 나면 그리운 법이다.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고 생각한 이 곳도 뒤돌아서면 그리울까. 어쩌면 노을이 지거나 해거름이 되면 이 곳을 그리워할 지도 모르겠다. 문득『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황금빛 밀밭을 보면 금빛으로 빛나는 네 머리카락이 생각나서 너를 그리워하게 될 거야. 어쩌면 밀밭으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조차도 좋아지겠지.” 다행이다. 바간에서의 첫째날을 그리움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어서.(계속-조정육)
쉐산도 탑에서 본 바간의 일몰. 보는 사람을 정처없는 그리움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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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정육의 행복한 그림읽기 원문보기 글쓴이: 조정육

첫댓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이 싯귀처럼 생각들 때도 있지만, 지금 여기, 시절 인연에 온 숨결을 다해 위에 실린 바간의 일몰처럼 아름답게 일상을 꾸려가야겠지요. 참 고맙습니다! ***()()()
많은 이들의 수고와 희생 속에 피어 난 부처님의 보탑들이 참으로 아름답기만 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찬탄 공경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