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도시 로마 Roma>
17-18세기경 유럽의 귀족사회에서 유행했던 풍조 가운데 ‘그랜드 투어’라는 여행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것은 상류사회만의 전유물로 여겨진 대단위 스케일의 여행 패키지 상품이었는데 나중에는 시대적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인기리에 성행했다. ‘그랜드 투어’에 나선 귀족자제들은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장기간 스케줄에 참여해야 했으므로 이들을 위해 지불된 경비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필수장비로 갖추어야 하는 아이템 하나가 있었는 데 그것은 수 년간의 여행을 인도할 전문 가이드를 동행시키는 일이었다. 오늘날의 해외여행 가이드 시스템은 사실상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실력과 인격을 인정받은 훌륭한 마이스터(선생)의 인도를 따라 유럽 각지의 문화와 신앙, 철학, 예술, 정치, 사회등을 현장에서 배우고 토론하는 현장 중심의 교육프로그램이야말로 얼마나 환상적며 매력적이었겠는가? 그렇다면 ‘그랜드 투어’의 현장학습지역들은 주로 어디였을까? 그것은 말할 것 없이 이탈리아의 오랜도시들, 밀라노를 시작으로 베네치아 피렌체 베로나 볼로냐 그리고 로마에 이르는 이른바 로마제국시대의 유서깊은 폴리스(도시국가)들을 가리킨다. ‘그랜드 투어’라는 현장중심의 체험학습 공부는 현대에 이르러 ‘조기유학’이라는 형태로 판본을 바꾸어 등장한 셈인데 그 성과에 있어서는 지금이 과거에 비해 딱히 어떻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개인차의 문제로 여겨진다.
“맞아, 인간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때는 로마에 있을 때 뿐이었네 그 이후로는 단 한번도 그런 높은 경지에, 그런 행복의 감정에 도달해 본 적이 없다네” 독일의 시성 괴테는 로마에 도착해서 얻은 감동을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저작을 통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로마여행은 괴테의 일생 전체를 그의 말마따나 혁명적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이것이 진짜 ‘그랜드투어’이며 진실로 모두가 추구해야 하는 여행의 목표가 아니겠는가? 우리도 단 한 번의 여행을 통해 이런 놀라운 식견과 통찰력을 얻어 삶을 새롭고 풍성하게 만드는 변화의 모티브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겠는가? 비싼 돈과 고귀한 시간을 지불해 가면서 의미없는 관광만 하다가 그칠 것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전적으로 새롭게 전환시킬만 한 참다운 여행을 꿈꾸고 준비하는 것은 이 시대의 지혜있는 자들의 비전에 속한 일이다.
로마는 몇 차례 방문하여 감동했다고 해서 쉽게 풀어 말할 수 있는 그런 도시가 아니다. 로마는 광대한 퍼즐조각이다. 수수께끼 같은 조각들을 맞추어 내기엔 모든 게 역부족이다. 로마자체가 영원한 연구대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무엇보다 로마가 차지했던 공간은 너무나 광대하며 로마가 역사 속에서 생존한 시간은 납득이 되지 않을 만큼 길다. 로마가 제국의 옷을 입고 다스렸던 저 시공간의 지평이 너무도 크고 넓어 여행자들로 하여금 감탄보다는 혼란을 일으키게 할 정도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든 부담을 넘어서 로마를 방문하고 로마의 역사를 천천히 공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로마와 기독교는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가 공교히 엮여져서 역사의 지평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몸통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로마란 서구 유럽이 이룩한 기독교 문명’ 이라 말하고 싶다. 로마문명이라는 켜켜이 뭉친 역사의 실타래를 풀어놔야만 기독교의 민얼굴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화장끼와 기름끼가 쫙 빠진 생얼 말이다. 기쁨과 슬픔이 모자이크 되어 나타나고 훌륭한 유산과 버려야 할 쓰레기더미 같은 부끄런 불신앙의 역한 모습이 야누스의 두 얼굴 처럼 하나의 형상 속에서 야릇한 미소를 보내고 있다. 복잡한 문제를 풀기에 앞서 로마여행의 시작 지점 팔라티노 언덕에 먼저 가 보는 것이 순서일 게다. 바로 그곳에서 로마의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