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祈禱) 김현승 / 시인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구비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높고 푸른 하늘 사이로 보이는 흰 구름이 참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상큼하고 신선한 공기가 가을을 실감케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김현승 시인의 첫 시집 『김현승 시초』에 수록되어 있는 『가을의 기도』라는 시를 읽어 봅니다. 가을을 흔히 수확의 계절, 풍요의 계절이라고 부르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종언을 고하는 생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이 시는 가을을 맞이하여 내적 충실을 갈망하는 기도조의 시로, 엄숙하고 경건한 시풍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을의 쓸쓸함과 겸허함 속에 생의 가치를 추구하고 열망하는 자세를 경건하게 표현되었으리라. 가을은 충만한 계절이면서 고독과 허무의 계절, 시련과 역경, 환희와 기쁨조차도 넘고 마른 나뭇가지 위의 까마귀를 통해 가을의 의미를 찾은 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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