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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희의 현장 속으로] 야구계의 한국판 ‘제리 맥과이어’
2015-08-28 20:56
스포츠 에이전트다. 세계적 스포츠매니지먼트사 ‘SMI’에서도 제일 잘 나가는 에이전트다. 그의 고객만도 72명. 세련된 외모와 능숙한 화술, 일에 대한 확고한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친 맥과이어는 선수들 사이에선 최고의 파트너로 꼽힌다. 스포츠 관련 학과 학생들이 맥과이어를 롤모델로 꼽는 것도 그래서 놀랄 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맥과이어가 허구 속 인물이란 걸 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실제로 맥과이어는 미국배우 톰 크루즈가 출연한 영화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의 가상 인물이다. 당연한 이유로 ‘SMI’라는 회사 역시 세상엔 없다.
그런데도 스포츠 관련 학과 학생들이 맥과이어에 열광하는 건 스포츠 에이전트 세계가 그만큼 흥미로우나 베일에 싸여 있으며, 아직 덜 익었지만 다 익으면 큰돈을 벌어줄 푸른 과일처럼 성공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믿는 까닭이다. 과연 그럴까.
미국 스포츠계를 본다면 틀린 말도 아니다. 스콧 보라스가 대표적이다. ‘괴물 투수’ 류현진의 LA 다저스행을 도운 보라스는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에이전트다. 미 메이저리그 유명 선수 200여 명이 그의 고객이다. 구단들로부터 “선수들 몸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은 악마”란 비난을 받기 일쑤지만, 역설적이게도 구단들은 선수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보라스에게 연락을 취하곤 한다.
보라스는 슈퍼 에이전트답게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선수 계약 시 평균 5%를 수수료로 챙기는 보라스는 한 해 평균 3천500만 달러(약 412억 원)이상의 고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구단, 선수 모두 ‘Win-Win’했던 FA 계약
메이저리그엔 에이전트 제도가 보편화돼 있다. 에이전트가 없는 선수를 손에 꼽을 정도다. 이것이 가능한 건 에이전트 제도가 활성화된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는 반대다. 에이전트 제도가 있긴 있지만, 아직 정식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2001년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구단, 선수협이 에이전트 제도 도입에 합의해 야구규약 30조에 ‘선수가 대리인을 통하여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면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한다’는 문구를 적시했으나 구단들이 “에이전트 도입은 국내 스포츠 시장이 좀 더 활성화한 이후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좋겠다”며 제도 시행을 14년째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선수권익 보호를 위해 에이전트 제도를 적극 권장할 움직임을 보이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에서도 에이전트 필요성을 누차 강조하면서 제도 시행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놀라운 건 제도 시행 전임에도 적지 않은 수의 에이전트들이 활발히 야구 현장을 누비고 있다는 것이다. 한 야구인은 “제도 시행 여부와 관계없이 몇몇 에이전트가 선수들과 직·간접 관계를 맺고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언제부터인가 야구계가 이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물론 과거에도 야구 에이전트들은 있었다. 그들은 주로 KBO리그 선수들이나 아마추어 선수들의 국외리그 진출을 도왔는데 이들의 도움으로 많은 선수가 미국, 일본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지금은 국외리그 진출뿐만 아니라 KBO리그 구단들과의 계약 협상과 선수들의 광고 계약에도 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과거엔 상상할 수 없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모 구단 운영팀장은 “최근 들어 FA(자유계약선수) 계약 협상 시 구단이 선수와 함께 선수 에이전트와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안다”며 “과거 같으면 ‘당신 뭐야’하고 대뜸 에이전트를 무시했을 일이지만, 요즘엔 에이전트를 ‘선수 분신’이라 판단해 점점 정식 파트너로 인정해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야구계에선 에이전트가 입단 협상에 참여해 양쪽이 만족한 결과를 얻은 예로 지난해 연말 모 구단에 입단한 투수 A를 꼽고 있다. 양측의 계약 진행과정을 잘 아는 한 야구관계자는 “FA 신분이던 A가 국내와 국외 에이전트를 각각 선임해 KBO리그 잔류와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동시에 고민했다”며 “모 구단과의 접촉 때도 국내 에이전트가 A의 협상 진행을 도와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효과는 좋았다.
이 관계자는 “A의 국내 에이전트 노력으로 모 구단과의 계약 규모가 예상보다 부쩍 커지고, 구단 측에서도 그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최대한 잡음을 내지 않고 A를 잡을 수 있었다”며 “에이전트와의 계약 협상이 반드시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 사례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A의 에이전트’는 B 씨로 알려졌다. B 씨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미국행을 도와주며 야구계에선 오래전부터 얼굴을 알린 이다. B 씨는 “A의 에이전트라고 알려졌으나, 실은 A의 고교 동창생으로서 몇 가지 조언을 해준 것뿐”이라며 “A가 입단한 구단도 예전부터 알고 있어 에이전트로서가 아니라 역시 그 구단이 잘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선수 측 이야기를 몇 번 전달한 게 전부”라고 겸손해했다. B 씨는 겸손하게 자신의 역할을 축소 설명했으나 야구계에선 ‘A의 대박’엔 B 씨의 공로가 숨어 있다고 평한다.
B 씨는 “선수와 구단이 원만하게 계약 협상을 하면 선수는 야구에 더 몰두하고, 구단은 잡음없이 선수를 내식구로 만들 수 있다”며 “양측의 중간에서 원만한 협상을 위해 가교역할을 하는 게 에이전트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B 씨는 “아직 KBO리그에서 에이전트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이라, KBO리그 선수들의 국내 계약에 관여할 생각은 아직 없다”며 “지금까지처럼 FA 선수들의 국외리그 진출과 아마추어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도전만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얼마 벌게 해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더 행복하게 해주느냐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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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수호신' 오승환. 오승환의 에이전트인 김동욱 대표는 KBO리그 구단들의 견제를 받거나 구단들과의 갈등은 고사하고, 여러 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B 씨가 자신의 역할을 조심스럽게 한정한다면 김동욱 스포츠인텔리전스 대표는 2013시즌 종료 후 오승환의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진출을 도우며 국내 야구 에이전트계의 최고 실력자로 우뚝 선 이다. 사실 김 대표는 세계적인 스포츠용품사 ‘푸마’에서 오랫동안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며 이미 스포츠계에선 ‘능력있는 마케터’로 잘 알려진 이였다.
그런 그가 ‘유명 에이전트’로 변신한 계기는 2009년 경기도 용인 삼성트레이닝센터(STC)를 찾았다가 그곳에서 재활 중이던 당시 삼성 투수 오승환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물론 이때만 해도 그가 에이전트로 변신하리라곤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김 대표는 “(오)승환이를 만나자마자 서로의 생각과 취향이 잘 맞아 금방 친해졌다”며 “승환이가 슈퍼스타임에도 원체 인간성이 좋고, 소탈한 친구라 만남을 지속하면서 자연스럽게 형, 동생 사이로 발전했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푸마’에서 유명 스포츠 매니지먼트사인 ‘IB 스포츠’로 이직하면서 에이전트 세계에 발을 담갔다. IB 스포츠에서 선수 매니지먼트 업무를 익힌 김 대표는 단기간에 ‘유능한 에이전트’로 발전했다. 축구, 농구 등 여러 종목의 스포츠 선수가 김 대표를 찾아와 흔쾌히 김 대표의 고객이 되길 원한 것도 그의 출중한 능력을 믿은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건 김 대표의 에이전트관(觀)이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지금이나 그때나 선수들을 ‘돈을 벌어주는 기계’보단 ‘꿈을 위해 도전하는 이들’로 생각하고, 나 역시 에이전트업(業)을 ‘수익을 극대화하는 비즈니스’보단 ‘선수들의 도전을 서포트하는 조력자’로 규정하고 있다”며 “내 에이전트관(觀)을 많은 선수가 이해해준 덕분에 에이전트로서의 출발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즈음 김 대표는 IB스포츠로부터 ‘회사의 주요고객인 모 선수의 전담 에이전트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에이전트라면 누구나 탐낼 업무였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국외리그 진출을 계획하던 오승환이 “형, 제 일 좀 도와주세요”라고 요청하자 김 대표는 모 선수의 에이전트 업무를 정중히 사양하고, IB스포츠를 떠나 ‘스포츠인텔리전스’라는 전문 스포츠 에이전트 회사를 세워 오승환 서포트에 나섰다.
김 대표는 “이때도 승환이를 통해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단 ‘내가 좋아하는 동생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야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일념이 더 강했다”며 “승환이의 국외리그 진출 의사가 강하다는 걸 확인한 2013년 3월부터 일본 프로야구 5개 구단과 수십 명의 메이저리그 관계자를 만나면서 오승환 세일즈를 진행했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의 노력으로 오승환은 그해 일본 프로야구 명문구단인 한신과 2년 계약을 맺었고, 올 시즌까지 2년 연속 ‘한신의 수호신’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현재 임창용(삼성), 이대은(지바롯데) 등 국내외 많은 선수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고 어느 에이전트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김 대표는 “선수에게 많은 돈을 안겨주는 것만치 선수가 더 많은 유의미한 가치를 생산하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게 에이전트의 역할이라 생각한다”며 “‘이 계약으로 선수가 얼마를 벌 수 있을까’하는 계산보단 ‘이 계약으로 선수가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를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에이전트가 갖춰야할 가장 기본적인 시각이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김 대표의 이런 성향을 잘 아는지 그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겠다는 선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나와 동고동락을 함께한 승환이 서포트만으로도 매우 바쁘다. 상황이 이런데 더 많은 선수와 파트너십을 맺게 되면 혹여 승환이를 비롯한 기존 선수들에게 무관심해질 수 있다”며 “고객수보단 단 한 명의 선수라도 그 선수가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내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은퇴 후 삶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포트해주고 싶다."
이예랑 ‘리코스포츠 에이전시’ 대표는 야구 에이전트계의 ‘홍일점’이다. 2009년부터 컨설팅 사업을 하던 이 대표는 자신의 고객이던 프로야구 선수들을 보며 에이전트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야구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안타까운 적이 많았어요. 적지 않은 선수가 투자 실패로 큰 낭패를 보곤 했어요. 그런 문제를 하나둘 해결해주다가 선수들의 고민과 애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죠. 그러다 KBO 야구규약을 들춰보면서 ‘제도적 한계’를 공부하는 거로 발전했어요(웃음). 야구계에 선수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줄 전문적인 사람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미국으로 건너갔죠.”
미국에서 유명 에이전트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이 대표는 대학원에서 본격적인 에이전트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와 야구 에이전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대표가 에이전트로 활약한지 채 3년이 되지 않지만, 그의 고객수는 김동욱 대표와 함께 가장 많다. 이 대표는 “혹여 선수들에게 영향을 줄까 싶다”는 말로 선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올 시즌 최고 FA 대어들을 비롯해 각 구단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치는 주요 선수들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한 상태다.
이 대표가 이토록 단기간에 선수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한 에이전트는 “리코스포츠는 메인 스폰서 계약이나 광고 계약에서 매우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며 “지난해 박병호(넥센)가 골프의류 광고에 나온 것도 리코스포츠의 작품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인텔리전스와 리코스포츠 등 ‘잘 나가는’ 스포츠에이전트사에 자극받아 야구계에선 에이전트를 자처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증가한 상황이다. 어떤 에이전트는 선수들과 아이돌 지망생들의 장기 계약을 연상케하는 7년 계약을 맺기도 한다. 허황된 말로 선수들과 억지로 계약을 체결하고서, 선수 이름을 팔아 돈을 챙긴 뒤 소리없이 사라지는 이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대표는 “구단, 선수들과 상생하려면 KBO 야구규약을 존중하고, 선수들과의 계약관계에서도 기본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리코스포츠의 계약 범위는 명확합니다. FA 선수가 국외리그로 진출하거나 국외리그에서 뛰던 선수가 한국으로 돌아올 경우엔 ‘에이전트가 계약협상에 참여한다’는 문구를 명시해요. 하지만, KBO리그 선수들과는 '구단과 연봉 계약 시 협상장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내용을 적어요. 왜냐? 현 KBO 야구규약에서 아직 에이전트 시행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다소 불합리한 내용이라 생각하지만, KBO와 구단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거든요. 무엇보다 미국, 일본처럼 언제든 계약관계를 자유롭게 해지할 수 있도록 계약서에 명문화했어요. FA가 되려면 좋으나 싫으나 9년 동안 한 팀에서 뛰어야 하는 선수들인데 에이전트마저 장기계약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고객이었던 선수의 은퇴 후 활동까지 가장 가까운 조언자로서 책임지고 싶은 게 에이전트로서의 꿈’이라고 밝힌 이 대표는 “앞으로도 선수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발로 뛰는 에이전트로 살아갈 계획”이라고 다짐했다.
최초의 에이전트는 누구였을까.
최초의 메이저리그 에이전트는 확실하지 않다. 단서가 있긴 하다. 1891년 1월 10일자 <스포팅뉴스>엔 ‘시카고 콜츠(현 컵스)의 W.R 헤링턴이 자신을 관리해주고, 계약을 대신해줄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를 참고하면 지금으로부터 124년 전에 이미 메이저리그에선 에이전트가 활동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한국야구 최초의 에이전트는 누구일까. 원로 야구인들은 입을 모아 ‘영원한 롯데 에이스’ 고 최동원의 아버지 고 최윤식 씨를 ‘최초의 야구 에이전트’로 꼽는다.
최 씨는 아들 최동원이 어렸을 때부터 에이전트 역할을 자임했다. 최동원이 롯데에 입단한 뒤에도 해마다 연봉협상에서 아들을 대신해 궂은 일을 도맡았다. 이 때문에 최 씨는 일부 야구계 인사로부터 “아들을 팔아 자기 잇속을 챙기려 한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는 최 씨가 가장 원했던 그림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최동원은 아버지 덕분에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최 씨는 생전 “한국 프로야구에 에이전트 제도가 활성화돼 선수들이 야구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 프로야구는 여전히 에이전트 제도를 전면 시행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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