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육군 방공포병의 공군 전군(轉軍)과 나의 보병 전과(轉科)-윤용수
이 회고는 대열임관50주년 기념책자 (가칭: 대열 반세기 여정)에 수록할 대열의 현역시절 활약 약사를 병과별 해당 동기들의 대표집필을 통해 제공받은 내용으로, 책자발간 이전에도 동기생들이 함께 보며 공감하기 위한 회고담으로 전재(轉載)해 올립니다.
아래 내용은 육군방공포병 병과의 약사인데, 대표집필 동기가 마땅히 없어 방공포병출신인 윤용수 동기에게 부탁했지만, 김규 동기의 특이한 경우처럼 육군방공포병이 공군으로 전군되는 과정에서 보병으로 전과(轉科)한 경우여서, 전반을 다 알 수 없다 사양하는 것을, 본인 경험만이라도 써주길 간청해 응락 받았는데, 지방 대구에서 등기우편으로 보내온 서신 내용이 참으로 진솔해, 개별적 군문회고로 처리하려다, 이 또한 육군 방공포병 병과의 기구한 운명임이 분명하다 생각해, 병과별 약사로 올리게 됐습니다.
더 이상의 세부 내용은 동봉해온 당시 국방일보 기사와, 권안도 동기의 포병병과 약사와 김규 동기의 육방포 공군전군 내용 속에서 해당 부분을 인용해 편집자 주(註)로 보충했으니 유념해 양해바랍니다. -편집위원 김명수 (註)
♣ 육군 소속이던 방공포병사령부 공군으로 전군(轉軍)
-1991년 7월1일 부.
윤용수
육군 방공포병의 공군 전군으로, 균형적인 “방공전력의 통합작전”을 가능케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본인의 군 생활도 육군 방공포병에서 육군 보병 병과로의 전과가 이루어지는 기회가 주어졌다.
대부분 전투병과에서 기행병과로 전과하는 경우가 있는데, 포병소위 임관 후 전방에서 2년간 근무 중 야전포병 병과에서 방공포병 병과로, 그리고 2번째로 보병병과로 전과하여 군(軍)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편집자 주1]
1971년 말에는 육군의 방공전력 강화 노력의 일환으로 김규, 윤용수, 신형화, 최두상 동기가 최신 방공무기체계인 발칸포병 창설 요원으로 선발되어 도미 유학을 통해 미군의 방공전력 운용에 대한 군사지식을 습득하여 한국군 방공 선진화의 견인차적 역할을 수행 하였으며, 김규동기는 1991년에 공군으로 전군하여 공군 방공 건설의 주인공이 되어 방공사령관을 역임하였다. (이상 권안도 동기의 포병병과 약사 중에서)
방공포병의 첫 혜택은 인생 처음으로 미국에서 공부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일정기간 미 방공학교에서 교육 수료 후 수도 서울에서 근무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으며, 거의 초급 장교생활을 보내면서, 결혼도 하게 되었다.
방공OAC 수료 후, 강원도 호크 유도탄 대대 참모와 2차 포대장(소령급) 근무 후 육본 보직으로 율곡사업과 연계된 업무를 보게 되었고, 육군대학을 거쳐 국방부 군수국 방공사업집행 업무를 보면서 무상 군원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호크 유도탄 대대장으로 보직을 받아 근무하면서 팀스피리트 훈련부대로 참관하는 영광도 얻어 충청도 부대기지에서 강원도 훈련지역까지 부대이동도 경험하였다,
수방사 방공단 부단장과 3군사 포병부 방공과 보직을 거쳐 국방대학에 입교 수료하였고, 방공여단 참모장을 마친 후 육본 작전처 방공과장 재직 시에 방공포병의 공군 전군 업무와 함께 육군 잔류 방공포병 장교들의 병과 선택 문제를 결정하였다. 결코 신상에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는 인참부의 공식발언을 신뢰하면서, 자의적인 병과 선택방법에 의거 본인은 보병병과로 결정,
보병병과 마크를 수령하여 본인 스스로 병과 마크를 교체하였다.
[편집자 주2]
1991년 7월1일 부로 육군방공포병사령부가 공군으로 전군 되었다. 육군방공포병학교, 유도탄특수병기지원부대와 육군본부에 편성된 유도탄 관련 기능부서도 함께 약 1만여 명(완편:13,00여 명)의 병력과 편성장비, 관련 부동산, 군수지원시설 등이 모두 공군으로 이관된, 창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군 조직 개편 작업이었다. 육군은 전체 방공특기(당시는 포병의 일부) 약 2만여 명의 50%가 공군으로 이관되자, 잔여 1만여 명인 50% 병력은 육군 보병 병과에 방공특기로 편입 시켰다. 이때 대공포로만 편성된 이 보병병과 방공특기는 무기 특성을 고려하여 후일 다시 육군방공포병 병과로 재창설 되었다 (이상 김규 동기의 육군방공포병 공군 전군 약사 중에서)
[편집자 주3]
방공포병은 6.25전쟁 직후인 1955년 육군 고사포 1여단으로 창설됐었다. 육군 방공포병의 전군은 (실제 시행된 1991년 7월1일 보다) 훨씬 오래전인 1971년부터 거론되기 시작했고, 1988년1월1일부로 육군방공포병사령부를 공군 작전사령부가 평시 작전 통제하도록 결정된 바 있다. 공군은 1988년 4월1일부로 비행단에 전개해 있던 육군대공포를 인수해 제88방공포 전단을 창성함으로써 방공전력 통합의 기초를 다져나갔다. (이상 육군방공포병의 공군전군 30주년에 즈음한 2021년7월3일자 국방일보 ‘軍史타임머신’기사 중에서)
이후 최초 보직은 마침 동기생이 근무하고 있는 3사교 학생연대장 후임으로 발령 받아 교수부 학생단장직까지 마쳤으며, 2군사 관리차장으로 해서 50사단 부사단장과 최종 근무는 5군지사 부사령관으로 영광스럽게 군 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이러한 제 병과에서 잘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 동기생들의 물심양면 도움과 배려 덕분이었음을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대열 동기생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서, 공군으로 전군한 동기생과는 전혀 다른 나만의 새롭고 참으로 보람 있는 군 생활이었음을 회고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2021.7.27. 윤용수.
첫댓글 짧은 글이지만 방공포병의 흐름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네요. 그 흐름 속에 윤용수동기는 병과를 두 번이나 전과를 하다니 그 자체가 쉽지 않은 경험인데도 멋지게 군생활을 한데 대하여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