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양산의 신비
강상률
백두대간을 업고
일어서는 희양산이
태고 적 신비를 읊고 있다.
바위 능선이 주봉을 향해
명산 절경을 타고 오르면
구름나그네 가던 길 멈춰서는
실경 산수화 열두 폭 펼쳐지는 곳
비경 그대로 가슴 적시면
청산을 끌어안고 도(道)를 여는
문경 희양산 봉암사 독경소리가
속세에 잠든 신비를 흔들어 깨운다.
돈달산
고홍림
하늘 바라보며
별을 안았네
배산임수 휘감은
돈달산 꽃구름자락
돈영정 올라
소리 지르면
그윽한 향기 뿜고
곱게 대답하는 메아리
아침 햇살 속으로
산 안개 자욱한
저 비단 치맛자락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다
혜국사 범종소리
-문경새재
권갑하
언제나 내 노래는 주흘산 이는 눈발
산목련 작은 등마다 환히 불이 켜지면
오십리 새재 구비에 그리움을 심었다
목청껏 반짝이는 물 오른 박달나무
헛딛는 쇠박새 따라 쉬어 영을 넘는데
노을빛 산꽃은 피어 별을 쏘아 올리네
간절한 언약 같은 혜국사 범종소리
계절은 가고 오고 하늘 몇 번 덮였음에도
당신의 말씀은 아직 댓잎처럼 푸르다
문경연가
권득용
지금도 하늘재 달빛은 교교하다
시인은 솔기를 맞대고
천의무봉을 꿈꾸며
하늘을 오르다
더러는
주흘 단산 대미 희양 운달 공덕 천주 황장으로
우뚝 서 어둠을 밝히면
기어이 문장의 강으로 흐르는
금천 영강이여
선비가 길의 문화 엮으며
새재 아라리에
찻사발을 굽고
사과꽃 오미자 향기
햇살과 바람의 현으로
유혹이 되는 사랑
문경 땅
김선옥
또 하나의 탯줄을 끊고
세상에서 제일 큰,
남편의 등짐으로 매달려 살아오는 동안
꾹꾹 새긴 발자국이 깊게 박힌 문경 땅
검은 먼지에 갇힌 채
날마다 부풀어가던 불정역의 역사는
철로 자전거 길에서 더 깊어진다
동행자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영강
겨울엔, 물의 뚜껑으로 굳게 닫혔다 열린다
전통시장의 풍상들이 공갈빵처럼 부푼다
밑지고 판다는 거짓말들이 수십 년째 뿌리박고 살아간다
두 다리는 어디다 숨기고
두 손으로 뚜벅뚜벅
칫솔 나프탈렌 수세미를 음악 소리에 싣고
묶인 길을 끌고 가는 사내 등 뒤로
왁자하던 하루해가 서둘러 시장통을 빠져나간다
절구와 공이로 쿵덕 쿵! 쿵덕 쿵! 살아가는 이곳엔
녹지 않는 추억과 얼지 않는 인정이
겨울날에도
여러해살이 엉겅퀴 뿌리처럼 굳게 뻗는다
우뚝 솟은 오정산 밑에
동쪽 창문을 내 집처럼 열고 아침이 온다
모전천 봄밤산책
김시종
꼭 껴안고 싶도록 부드러운 봄밤,
모전천변을 걷는다
모전천변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
하얀 벚꽃의 관능적 살결.
내가 사는 모전동은 아름다운 동네,
지천명의 나이에도 가슴 설렌다.
문희설경
김영우
관산에 내리는 서설은 풍년의 조짐이고
하늘이 만든 풍광은 신비를 이루었네
산산 분분 낙엽은 흩날리고
비비 편편 소리없이 눈이 내리네
구불구불 흰 눈길 이화령
고결한 은송 조곡성
갑자기 고향은 신선 세계
자연의 조화에 감탄의 정을 느끼네
벚꽃 지는 모전천
김종호
헤벌쭉 입 벌린 채
낮달이 졸고 있다
일교차 큰 탓일까
감기 걸린 벚나무들
목 아파
기침할 때 마다
화르르 나는 꽃잎
하늘은 저리 높고
구름 한 점 없는데도
함박눈 쏟아지니
봄인가 겨울인가
아쉬운 마음 탓인지
몸살 기운 감돈다
진남교반
방대혁
구름이 나무 가지에 앉아
강물에 취하고
울다 지친 매미 옷 날갯짓이
수없이 분 바람에도
껌딱지처럼 나무옷에 매달려 버티다
마지막 기력을 다하여
이제 그만 가야지
바람을 타고 사라진다
천년 고모산성
역사의 함성
삼국회오리 속에 사라진 영혼들
수없이 많은 사연 진남교반
토끼비리를 스치며 흔적을 묻혔건만
형체는 없고 소리만 백지위에
먹물로 뿌려져 흐르고 있네
월봉정(月峯亭)에서
안장수
비산비야 월봉정
만대이서 영강을 내려다 본다
문장대와 새재에서
걸음마 하던 물방울 아해
견탄에서 누렁이 급물살에 밀리듯
국군체육부대 감돌고
호계에서 으르렁 내달리더니
영순 쌍다리 지나며 순해지누나
돈달산은 월인천강 영순보 강물결에
수석 한 점으로 춤추고
강섶 늙고 남루한 자라 한 마리
목을 늘어뜨렸다 움츠린다
월봉정 상산사호 선비들
시경 읊조리고
왜적 침공 한달 만에
문경산하 노략질 때
용사실기 의병으로 용처럼 날랬어라
영순 김용리 황룡 월봉정 도학자
오늘도 당나귀 등을 두드리며
산북 김용리 청룡 퇴경당 만나러 간다
모전천
엄다경
아득하여라
환한 꽃나무 아래에 서는 일
모전천 고운 물길을 따라 봄은 찾아오고
이생이 다 저물도록 시들지 않을 사랑처럼
다시 벚꽃은 피어난다
꽃그늘 아래
잠시 황홀하다 서둘러 져버리는 것이
사랑이라고 해도
몇 날의 짧은 환희 뒤로 쉽게 져버린다 해도
이 눈부신 봄날에 나는
몇 생의 시간을 건너고 또 건너서라도
모전천 분홍 꽃그늘 속으로
또다시 돌아오겠네
대야산
장용복
산기슭 용추계곡
사랑굿 하늘연못
백두간 즈려밟고
승천한 비룡폭포
수운의 선유구곡에
도원의 대야산하.
선유동 금강계단
구름강 운해로다
희양산 반야산사
봉암사 목어소리
구름밭 예불 소리에
합장하는 대야산.
교귀정
정의리
정한수 조강지처 영원한 정성만큼
평소에 갈고닦은 시서와 삼경 구절
개나리 봇짐 속에다 청운에 꿈 묶는다
짚신을 갈아신길 몇 번째 이었던가
한양서 부산동래 오가는 천리길에
경상도 문경새재에 교귀정 올라서니
어화사 삼현육각 울리며 환향해서
이곳에 교인식을 하기를 다짐하며
가문에 영광을 위해 새재 넘는 선비여
영강에서
정형석
먹뱅이 돌아가나
작달비 긋던 지난여름
여린 기억 저 편 언덕
마른 갈대 서걱되는데
내 사랑 서러운 정은
그렇게 가나 봐요
찔레꽃 마냥 환하게 웃던
눈매 고운 그 사람은
무서리 치던 늦가을 새벽
뒷걸음 쳐 떠났지요.
지금도 달려 올 것 같은
서파재는 눈이 와요
엄혹한 동안거 든
옥녀봉 올동백은
햇봄이면 꽃잎 열고
마실 길 간다지요.
먼 사랑 가녀린 맥박도
다시 뛸 날 있을까요
문경, 문학관을 낳다
조남명
백두대간 남쪽사면에 걸친 여럿 명산과
가람을 품어 안은 명승지 문경
길 위의 역사 고개의 문화를 간직한 관문 여러 개
새재 넘는 선비 발자국 소리
그칠 새 없었던 옛길의 요충지
여기, 대가람 김용사 입구
문경팔경 운달계곡 명지에
이천십팔 무술년 십이월 초하룻날
문경은 문학관을 낳았다
잘 끓인 미역국을 산모에게 올린다
문화예술 화려히 커나가고
문학창작의 산실이 되어
세상에 필요한 적어도 세상을 어지럽히는 글이 아닌
언어를 잘 다루는 장인
끊임없이 이어져 나오는
문기집문의 요람 가히 되고도 남을 거다
문경에 문학관을 낳다
봉암사 가는 길
최의용
호젓한 자리
봉암사 가는 길
산새 지저귐에
막힌 귀 열리고
걸음걸음 은빛 바람결
들풀들이 일어선다.
자그만 개울
지치고 으깨어진 육신
털썩 자리에 팽개치고
두발 담아
시린 영혼의 먼지를 씻어낸다.
그래도 남는
이 지긋한 삶의 찌꺼기
앞서가는 노스님의
걸망 속에 던져 버린다.
살다 보면
홍 기
아들아,
살다 보면 인간사에 풍상도 있으리라.
너는 문경 산북 대하리 반송처럼
그 무엇에도 맞서지 마라.
그가 이름 얻어 저토록 창연한 것은
모진 비바람 천둥 번개를
침묵으로만 받아내었기 때문이다.
너도 그처럼 갖은 시련 아픔 분노에
오직 미소로만 화답하라.
그리하여 그 닮아
네 안의 너를 더욱 빛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