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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공녀(貢女) 기황후(奇皇后)
공민왕은 이와 같이 원나라 공주를 비로 맞이하고
원나라 조정의 후원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덮어놓고 원나라의 지배를 감수한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원나라와 맞서서 국력을 키우는 동시에
원나라에서 흘러 들어온 여러 가지 풍속을 버리고
자주독립국가로서의 면목을 회복하려고 노력(努力)했다.
공민왕이 이런 태도를 취한 데에는
공민왕 자신의 자립적인 정신도 작용되었지만
한편 원나라의 국운이 몹시 쇠퇴한 것도 한 원인(原因)이었다.
☆☆☆
공민왕이 즉위했을 무렵 대륙에서는
원나라 순제가 주색과 유흥에 빠져 국가 재정을 극도로 문란케 하고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각처에서 불평분자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대주(臺州=淅江省臺州)에서는 방국진(方國珍)이 군사를 일으키고
영평(永平=直隷省正定府樂城縣)에서는 한산동(韓山童), 유복통(劉福通) 등
소위 홍건적(紅巾賊)이 일어나고
호주(濠州=安徽省鳳陽府臨淮縣)에서는 곽자흥(郭子興)이 일어나고
그 밖의 장사성(張士誠)과 곽자흥의 부하 주원장(朱元璋) 등이 일어나서
대륙 전토는 전란(戰亂)의 도가니 속에 빠져 있었다.
원나라 조정에서는 반란군들을 평정해 보려고 노력도 했으나
이미 쇠퇴한 국력으로는 가망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공민왕 3년,
고우(高郵)에서 일어난 장사성 등을 토벌할 때엔
고려 조정에 원병을 청한 일까지 있었다.
이때 고려 측에서는
최영(崔瑩) 등으로 하여금 원군을 거느리고 협력케 한 결과
다소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고려의 군부에는
원나라 군사력의 허약함을 목격한 나머지
원나라에 대한 정책에 큰 변동을 가져오게 했다.
"우리 힘으로 도적을 토벌할 정도니 원나라라고 두려워할 것은 없다."
"원나라의 명령에만 복종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대로 자주적인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의견이 고려 조정에 대두하게 되었고
공민왕도 그 의견을 적극 채택하여 내치 외교에 진취적 방침을 세웠다.
"자주독립의 기풍을 세우려면 무엇보다도 몽고의 풍속부터 없애야 하느니라."
공민왕은 이렇게 말하고 전국에 변발( 髮), 호복(胡服) 등
몽고의 풍속을 폐지하도록 명령하는 한편
그 당시 쓰고 있던 몽고의 연호(年號) 관제를 폐지하고
문종 때의 옛 제도로 복구했다.
또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던 원의 정동행중서성 이문소(征東行中書省理問所)를 폐지하고
백년간이나 존속해 오던 원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폐지하여 원에게 빼앗겼던 영토를 복구했다.
그리고 원나라 황실과 인척관계를 맺고 권세를 부리던
기철(奇轍)일파를 숙청하기로 작정했다.
기철은 행주(幸州) 사람으로
기자오(奇子敖)와 전서 이행검(典書李行儉)의 딸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 식(軾)은 일찍 죽었으므로 그가 문중을 총관하게 되었다.
기철이 고려 조정에 당당한 권세를 부리게 된 것은
그의 누이동생이 원나라 순제의 후궁으로 들어가서 제 2황후가 되고 태자를 낳은 후부터였다.
기철의 누이 기씨가 황후가 된 것은 실로 우연한 기회였다.
처음에는 순제의 찬간에서 차나 끊이는 보잘 것 없는 궁인이었는데
하루는 뜻밖에도 조용한 자리에서 순제의 눈에 띄었다.
워낙 음탕한 순제라 한참 피어오르는 이국의 처녀를 대하니
춘정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를 달이는 기처녀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순제는 갑자기 그 손목을 덥석 잡았다.
궁인의 몸으로선 황제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아무리 무리한 명령이라도 복종해야 한다.
하물며 황제가 가까이 하려고 할 때에는 기꺼이 응하는 것이 궁인의 의무이기도 했고 영광이기도 했다.
기처녀는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순제의 품에 안기었다.
몽고 여성들에게 식상(食傷)한 순제에겐 이국 처녀의 부드러운 살결은 신선한 매력이었다.
그후부터 순제는 기씨를 자주 불러 총애했다.
그리고 그 결과 기씨 몸에서 태자 탄생을 보았다.
태자를 낳았으니 황후를 봉해야 한다는 것이 순제의 생각이었으나
백안(伯顔)과 같은 권신은 "이국 여자를 황후로 삼다니 천부당 만부당한 처사로 아뢰오."
이렇게 말하며 극력 반대했으나
백안이 실각하자 순제는 마침내 기씨를 제 2황후로 봉했다.
☆☆☆
누이동생이 황후로 책봉되자
기철은 벼락감투를 쓰게 되었다.
즉 그는 원나라의 참지정사라는 고관이 되는 한편
고려에서도 정승을 삼고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했다.
기철은 누이동생인 황후의 힘을 믿고 극도로 권세를 부렸으며
그의 형제들과 일가친척들까지도 덩달아 갖은 행패를 다했다.
"아니 이거 어떻게 돼 가는 세상야.
이 나라의 어른은 상감님인가 기씨 집안 사람들인가?"
"세상이 망하지니까 별일을 다 보겠군."
"나도 예쁜 딸이나 있으면 공녀로 바쳐서 호강이나 할 게 아닌가."
백성들은 이렇게 수군거렸다.
지난 날엔 딸들을 공녀로 보내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던 고려 사람들이었지만
공녀로 들어간 몇몇 처녀들이
원나라 조정에서 출세하고 그 일가 친척들까지 영화를 누리게 되자
이제는 그것을 오히려 부러워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부러워하면서도 백성들은 기씨 일문을 원망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권세를 믿고 죄 없는 백성들을 괴롭힌 때문이었다.
백성들의 전답 중에서 욕심나는 것이 있으면 기씨 일문은 함부로 빼앗았다.
어여쁘고 젊은 여자만 눈에 들면 처녀이건 유부녀건 함부로 난행했다.
그리고 항거하는 자가 있으면 극형에 처했다.
백성들의 원한은 골수에 사무쳤지만
대국 원나라 황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그를 누를 사람은 없었다.
고려의 임금 역시 매한가지였다.
그러다가 원나라의 국운이 기울고 자주독립의 의욕이 강렬한 공민왕이 즉위하자
무엇보다도 손을 쓰려고 한 것은 기씨 일문의 숙청이었다.
그리고 그를 미워하던 여러 신하들도
적극적으로 그 뜻을 받들게 되었다.
☆☆☆
이때 원나라 황실에 공녀를 보내고 권세를 부리던 자로서
기철 이외에 권겸(權謙), 노책(盧 ) 등이 있었다.
이들은 공민왕이 자기들을 숙청한다는 풍문을 듣자
기철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새 임금의 동태가 아무래도 수상하오."
"원나라 풍속을 폐지시키고 관제를 폐하는 것을 보니
원나라와 맞설 생각을 단단히 품고 있는 모양인데 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어떻게 되겠소."
"말할 것도 없지 않소? 원나라 황실의 힘을 빌고 있는 우리를 어찌 가만 두겠소?"
"그렇다면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지 않소?"
"이를 말이요? 우리 목숨은 우리 힘으로 지켜야지."
그들은 여러 가지로 궁리하던 끝에
"원조가 아무래도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은데 아주 기울기 전에 우리 힘을 길러 두었다가
임금이 우리를 없애려 하는 눈치가 보이면
반대로 우리가 임금 일파를 없애고 정권을 잡읍시다."
드디어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는 친척과 심복들을 국가 요직에 포열(布列)시키는 한편
제도(諸道)의 병기를 검열하고 군사를 일으킬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
이러한 정보가 공민왕의 귀에 들어갔다.
"그놈들이 기어이 역적 모의를 하려는구나. 그놈들을 어찌해야 좋겠는고?"
왕은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있는 조일신(趙日新)에게 물어보았다.
조일신은 일찍이 공민왕이 세자로 있을 때
모시고 원나라에 가서 숙위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공민왕이 즉위하자 참리(參理)에 임명되었으며
귀국한 후에는 찬성사(贊成事)가 되고 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그는 일찍부터 왕을 모시고 다닌 공로를 빙자하고
조정에 세력을 휘두르고 안하무인격으로 날 뛰었다.
그러므로 고려 조정에서는 기철 등과 맞서는 일대 세력이었다.
"상감, 조금도 심려 마시오. 그놈은 신이 당장 없애버리겠소이다."
조일신은 기가 나서 소리쳤다.
기철 등을 없애버리면 고려 조정의 권세를 혼자 누릴 판이다.
왕은 기철의 존재도 두렵지만 그를 숙청하는 것을 계기로 조일신이 더욱 날뛰게 될 것도 염려되었다.
그래서 "기철 등을 없애버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로 말미암아 나라 안이 소란스럽게 된다면 심히 유감된 일이니 십분 조심하도록 하오."
이렇게 못을 박아 두었다.
그러나 속으로 딴 뜻을 품고 있는 조일신은
임금의 다짐 같은 것은 귓전으로 흘러 내렸다.
일신은 전부터 자기 도당인 정천기(鄭天起), 최화상(崔和尙) 등을
자기 집으로 불러 기철 등을 숙청할 것을 의논해 보았다.
"그놈을 죽이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전국의 군사들을 그놈이 장악하고 있으니 어떻게 손을 댑니까?"
정천기가 이렇게 근심을 하니까
최화상이 주먹을 휘두르며 큰 소리를 쳤다.
"그까짓 관군쯤을 염려할 것이 뭐요?
썩어빠진 관군보다는 거리의 장사들이 오히려 더 강할 거요.
내 그 사람들을 모으면 기철 일문은 하룻밤 동안에 몰살시킬 수 있소."
이 말을 듣자 조일신은 크게 기뻐했다.
"그렇다면 어서 그 장사들을 모아들이도록 하오."
최화상은 즉시 거리의 깡패들을 모아들이니 힘깨나 쓴다는 자,
무술에 능하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속속 조일신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이만하면 됐소. 당장 그 놈들을 처치해 버립시다."
조일신은 어두운 밤을 타서 기철과 그 아우 기륜(奇輪), 기원(奇轅)
그리고 그의 일당인 고용보(高龍普)의 집을 습격하게 했다.
그러나 모두다 놓쳐버리고
오직 기원 한 사람만 죽여버렸다.
"그놈들을 놓쳐 버렸다고?"
조일신은 발을 구르며 호통을 쳤다.
"그렇다면 어디로 도망쳤단 말이냐?"
"성입동 이궁으로 도망쳤다는 소문입니다."
"그리고 이궁에는 상감께서 계시다고 하니
쳐들어 갈 수도 없고 참 난처한 일입니다."
장사들이 하는 말을 듣자 조일신은 다시 고함을 쳤다.
"상감이 계시건 말건 도적을 잡는데 무슨 상관이냐? 어서 이궁으로 향하도록 하자."
조일신은 이번엔
몸소 장사들을 거느리고 이궁으로 향했다.
☆☆☆
조일신 일당이 들이닥치자
이궁을 지키고 있던 직숙관은 문을 굳게 닫고 들여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일신은
"이놈! 역적을 잡겠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이렇듯 방해를 노느냐?
네놈도 아마 역적의 일당일 게다."
그리고는
장사를 시켜 직숙관을 죽이게 한 다음 궁중으로 몰려들어갔다.
이궁에는 조일신이 찾는 기철 일당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조일신은 왕에게 매우 민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기의 경솔한 행동을 뉘우칠 조일신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술 더 떠서 투정을 했다.
"상감, 상을 주셔야 하겠소이다."
"상이라니?"
왕이 의아한 낯을 하자 조일신은 껄껄 웃으며
"역적을 잡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목숨을 걸고 궐기했는데
상을 주시지 않는다면 사기가 꺾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강제로 어보(御寶)를 열게 한 다음
자기 자신을 우정승에 임명하고 정천기를 좌정승에 임명하고
그 밖의 여러 도당들에게도 각각 벼슬을 주었다.
이런 방약무인(傍若無人)한 태도를 보고도
왕은 그 힘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니
조일신의 행패는 더욱 심해졌다.
역적들을 없앤다는 말을 빙자하고
기철의 모처(母妻) 등 죄 없는 여인들까지 함부로 잡아 옥에 가두고
역적의 잔당이라 해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잡아죽이니
거리는 비명과 곡성으로 뒤흔들리게 되었으며 온통 피로 물들었다.
"조일신이란 놈이 이러다간 웬만한 사람은 모두 잡아죽일 생각이로군."
"기철이 놈보다 몇 갑절 더 악독한 놈이야."
백성들의 원성은 날로 높아갔다.
이렇게 되니 방약무도한 조일신도 약간 난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성들의 원망을 너무 사면 결국 망하는 법이니까
어떻게 백성들의 마음을 무마할 도리는 없을까?)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결국 많은 사람을 참살하고
나라 안을 어지럽히게 한 죄를 자기 부하들에게 뒤집어씌우려고 마음먹었다.
☆☆☆
그래서 어느 날 밤
이번 난에 가장 앞장서서 활약한 최화상을 데리고 이궁으로 들어갔다.
호젓한 방에 단둘이서 환담을 하다가 첫닭이 울 무렵
조일신은 그제야 눈에 띄었다는 듯이 최화상이 찬칼을 가리키며
"아니 최공은 참 좋은 칼을 찼구료. 어디 구경 좀 할 수 없겠소?"
슬쩍 이렇게 말했다.
조일신이 이런 말을 던진 것은 은밀히 마음먹은 바가 있어서 한 것이었지만
그런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한 최화상은 칼을 칭찬해 준 것만 신나서
"이 칼이 사람의 목숨을 많이 끊었습죠.
자 구경해 보십시오. 천하 보검입니다."하고
허리에 찼던 칼을 자루 채 뽑아 내주었다.
"천하 보검이라면 어디 천천히 구경 좀 합시다."
조일신은 그 칼을 뽑아 높이 들고 구경하는 척하다가
"이 칼로 네 목숨마저 끊어버리겠다." 소리치고
한 번 내리치니
최화상은 비명도 못 지르고 그 자리에 죽어 넘어졌다.
최화상을 죽이고 나자 조일신은 즉시 왕의 거처로 달려갔다.
"요즈음 기철 일당을 잡는다 빙자하고 많은 사람을 괴롭힌 최화상을 지금 신이 참했사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도당들이 남아 있으니 토벌할 것을 윤허하시오."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했다.
☆☆☆
그러나 왕은 제 부하를 죽이고 도적을 토벌한다는 조일신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허락을 하지 않았으나 조일신은 거듭 간청했다.
"최화상과 그 무리들로 말미암아 장차 더 많은 피를 흘리느니
보다도 지금 몇몇 도적들의 목을 베는 것이 훨씬 현명한 처사가 아닙니까?"
이 말에는 왕도 더 반대할 이유가 없어서
마침내 그의 청을 허락하고 최화상의 부하 팔, 구명을 체포한 다음
그 목을 베고 거리에 내걸게 하였다.
그 뿐 아니라 조일신은 자기를 도와 거사한 부하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즉 정천기를 옥에 가두는 것을 비롯해서 여러 부하들을 죽이고 혹은 멀리 귀양을 보냈다.
모두 백성들의 원성을 그들에게 돌리자는 수작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그 공로로 자기 자신의 벼슬을 좌정승으로 높여 온 나라안을 호령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만조백관(滿朝百官)은 입을 다물고 그의 눈치만 살필 지경이었다.
☆☆☆
공민왕은 원래 녹록한 인물이 아니었다.
조일신의 행패를 도저히 참고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은밀히 삼사좌사(三司左使)로 있는 이인복(李仁復)을 불렀다.
이인복은 이조년(李兆年)의 손자로 원래 용모가 웅위하고 성품이 강직한 인물이었다.
남의 선행(善行)을 들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반드시 기뻐했으며,
그릇된 일이 있으면 불같이 노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는 항상 말하기를
"내 성미가 워낙 조급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면 크게 실수할 염려가 있으니
무슨 말이든지 입밖에 내기 전에 열번 스무번 다시 생각하는 거요."
이인복은 이와 같이 강직하고 신중한 인물일 뿐 아니라
충숙왕 때부터 공민왕 때까지 5대나 임금을 모셔온 공신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왕은 누구보다도 그를 믿고 부른 것이다.
"조일신의 행패가 이렇듯 극심하니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경은 생각하오?"
왕의 자문을 받자 이인복은 즉시 대답하지 않고 한참 궁리에 잠겼다.
이런 때에도 그는 신중한 성격을 나타낸 것이다.
한참만에 그는 의연한 성격을 나타낸 것이다.
한참만에 그는 의연히 고개를 들더니 우렁찬 소리로 잘라 말했다.
"신하가 난을 일으켰을 때 벌을 주는 것은 법에 없더라도 당연한 일이옵니다.
하물며 지금 이 나라에는 그런 죄에 대한 법령이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
어찌 망설이겠습니까?
하루를 망설이면 그만치 그 화가 상감께 미칠 것을 신은 염려하는 바이옵니다."
"음... 알겠소. 경의 말이 옳소."
왕은 마침내 조일신을 주살할 것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곧 원로대신들을 불러모아 은밀히 의논하니
대신들 역시 이인복과 같은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당장 그자를 불러다가 목을 베야 하겠는데 누가 그 일을 맡겠는고?"
이렇게 말하고 대신들을 둘러보니 한 대신이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그 일을 신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 사람은 바로 김첨수(金添壽)였다.
김첨수는 충혜왕 때 대호군을 지낸바 있으며
조적의 난에 왕이 원나라로 잡혀가자 시종의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었고
후에 충혜왕이 게양(揭陽)으로 귀양가게 되자
첨수 등도 왕의 근신이란 이유로 원나라로 잡혀가서
원주 땅에 귀양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그러다가 공민왕 때 다시 등용된 것이다.
왕은 즉시 김첨수를 행성(行省) 문밖에 숨어 있게 하고
한편 사람을 보내어 조일신을 불러들였다.
이런 계교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는 조일신은
잔뜩 위세를 부리며 행성문을 들어서려 할 때
뜻밖에도 김첨수가 나타나서 한칼에 목을 베었다.
☆☆☆
조일신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백성들은 춤을 추며 기뻐했다.
"그 동안 그자가 행패를 부리는 통에 천지가 잔뜩 어두운 것 같더니
이제야 환히 밝은 것 같군!" 이렇게 수군거렸다.
조일신의 존재가 백성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짐작할 수 있는 말이다.
▶조일신이 죽고 나자 그 동안 자취를 감추고 있던 기철이 다시 나타나서 세도를 부리기 시작했다.
조일신의 행패도 미웠지만
원나라 황실의 힘을 믿고 행패를 부리는 기철 등도 숙청해야 한다.
그래야 왕은 자기 포부 껏 정사를 돌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조일신이 한 것과 같이 군사를 일으켜 토벌한다면
기철 등은 그 동안 거리의 불량배들을 한층 더 많이 모아 일대 세력을 이루고 있는 만큼
큰 내란으로 확대될 염려도 있고 그로 말미암아 어떤 변이 파생할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선 계교를 써서 기철 등 괴수를 먼저 죽인 다음
지도자를 잃어 당황하는 잔당을 토벌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
왕은 궁정에 크게 곡연(曲宴)을 베풀었다.
그리고 여러 재상들을 불러모으는 한편 기철과 권겸 등도 사람을 시켜 불러들이게 했다.
왕이 곡연을 베푼다는 말에
기철과 권겸 부자는 위세당당히 궁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이 궁문에 들어서자
머리 위로부터 난데없는 철퇴가 떨어져 그들을 박살하고 말았다.
왕이 미리 숨겨둔 장사가 내리친 철퇴였다.
☞ 기철과 권겸 부자를 죽이고 나자 왕은
즉시 근위군을 풀어 노책(盧 ) 등 잔당을 모조리 죽여 버렸으니
이로써 원실에 들어간 공녀들의 치맛바람을 믿고
행세하던 무리들의 영화도 종말(終末)을 고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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