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을 떠나(제2차 선교 여행시) 전도한 소아시아(지금의 터어키) 지방에 다시 와서 북방 “비두니아” 지방으로 가려고 애썼으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아 무시아 앞 드로아에서 밤에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았는데 바다 건너편 마게도냐 사람이 와서 도와 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하나님의 지시로 믿고 유럽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게도냐 지방 첫 성인 빌립보에 이른 바울이 안식일날 성 밖 강변(앙기데스강)에서 기도하려고 모인 여자들에게 전도하였는데 그중에 “루디아”라고 하는 여자가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아 들였습니다. 이에 저가 크게 은혜를 받고 바울의 선교에 힘썼던 것입니다. 유다를 위하여 예루살렘 교회가 있고 아시아를 위하여 안디옥 교회가 있고 구라파를 위하여 빌립보 교회가 있다고 하면 이 빌립보 교회는 바로 루디아가 세운 교회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루디아는 바울이 유럽 전도에서 얻은 최초의 여신도로 자주장사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생각하면서 이 여인의 신앙의 모습을 배우고자 합니다.
1. 말씀을 사모하는 신앙자입니다. (행16:14)에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강변 전도는 그 중 부인들이 몇 사람 들었는데 다른 이는 잘 몰라도 유독 “루디아”는 마음을 열고 바울의 전도하는 말을 청종하였습니다. 청종(聽從)이란 말의 뜻은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아멘”하고 순종하였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무시아 앞에서 기도 중에 나타난 “마게도냐” 사람은 곧 루디아 였습니다. “루이다”는 안식일을 성수하여 “앙기스데” 강변에서 기도하다가 바울의 설교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행10:33)에“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고 했습니다. “고넬료”도 이방인으로서 무엇보다도 베드로의 전하는 말씀을 경청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참으로 믿음이 훌륭한 자들이었으니 무엇보다 사도들의 전하는 말씀을 바로 받아 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말씀을 잘 듣는 것을 기뻐하시며 격려하시기를 마리아를 향하여 (눅10:42) 저는 좋은 편에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태도를 보아서 그 자의 신앙심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 작은 자는 말씀을 듣는 태도가 없다 하나 신앙이 좋은 자는 언제나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아멘”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유두고”가 죽을 뻔 했던 것은 말씀 듣는 시간에 졸고 있다가 2층루에서 떨어졌기 때문인데 우리 성도들은 루디아처럼 주의 말씀에 경청해야 하겠습니다. 이것만이 나의 영이 살고 생애에 복되게 사는 길입니다.
2. 가정 식구를 주께로 인도한 자입니다. (행16:15)에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했습니다. 강변 전도에서 마음의 결심을 하게 된 루디아는 자기 개인만 믿고 그친 것이 아니라 집에 돌아와 온 가족에게 전도하여 결심시키고 바울에게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의 가족 사항이 소개되어 있지 않으나 남편과 자녀가 2-3명은 있었으리라고 추상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구원 뿐아니라 가족이 구원을 받게 했던 것입니다. 25-34절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구타하고 감금하였던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기적으로 옥문이 열렸는데도 탈출하지 않은 일에 감동되어 “선생들아 내가 어찌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호소하였을 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에 모셔 그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온 가족이 예수 믿고 구원에 참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가 일약 대교회로 비약 발전하였다고 추측을 하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세리였던 “마태”도 “삭개오”도 모두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면서 음식 대접도 하며 온 가족이 다 모이게 되었고 가이사랴의 “고넬료”도 “베드로” 사도를 자기 집에 모실 때 가족과 이웃 친구들까지 함께 모였다가 같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복음의 전파력은 개인에게서 가정으로 또는 사회로 민족에게 파급되어 온 세계가 같이 믿게 되는 것입니다. 내 가족을 내가 먼저 전도해야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 전도를 등한시합니다. 루디아는 자기 가족을 먼저 전도했습니다. 우리도 이자의 행위를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불신자보다 악하다고 (딤후5:8)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불신자보다 선한 자가 되기 위해서도 가족을 주께로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3. 전도자 바울을 잘 도운 자 (행16:15)에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비록 장막을 만드는 일을 하여 전도비를 자작 자급한다고 할지라도 찬없는 밥이라도 끓여줄 사람이 없고 새우잠이라도 다리 뻗고 잠 잘 자리도 변변치 못했을 터인데 루디아가 자기 집에 유숙하도록 한 것은 전도자를 잘 섬김의 뜻입니다. 루디아는 받은바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까 생각하다가 전도자 바울을 잘 도와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루디아의 가정은 바울의 전도 사업에 전적으로 수고한 가정입니다. 바울의 전도 사업에 협조하기 위해 헌금을 보내준 일도 많았습니다. (빌4:15-16)에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했습니다. 루디아는 참으로 헌신의 봉사자입니다. 저의 직업은 상인이었습니다. 여자로서 봇짐을 이고 다니면서 고생하여 번 돈을 전도비에 많이 충당한 것을 보니 빌립보 교회의 보배의 신자였음이 분명합니다. 이는 오늘의 성도들이 꼭 배워야 할 봉사 정신의 사상입니다.
4. 빌립보 교회의 개척자입니다 빌립보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유럽전도의 발판의 기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즉 저는 자기 집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며 뭇 영혼들을 구원케 하는 장소로 제공한 것입니다. 상인은 다른 사람보다 물질에 애착심이 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주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그 같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자기 집까지 주를 위해 내어 놓을 수 있었으니 성도들이여 집을 내어 놓은 이 여인같이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주님께 부끄럼없이 많은 봉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후에 많은 사랑과 칭찬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5. 기도를 많이 하는 자입니다. (행16:13)에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했습니다. 바울의 일행이 그 선교 사업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기도를 능력 받는 방편으로 생각하고 기도처를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또한 루디아도 이 같은 맘이 있었는지는 미상하나 저도 그 기도의 장소에 이른 것입니다. 사도 이후의 모든 참된 주의 종들이 기도의 인물들이었습니다. 기도는 하늘의 은혜를 섭취하는 방편입니다. 그것이 끊어지면 신자의 영적 생명은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사망의 골짜기에 처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중에 들어가서 공사하는 자가 공기흡취(空氣吸取)하는 장비(裝備)를 가지듯이 우리는 기도를 가져야 하나님의 은혜를 하늘에서 공급받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는 죽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는 (사55:6)에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했습니다. 성도들이여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다윗은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6.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입니다. (행16:140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자란 말입니다. 공경한다는 말은 가치를 돌리는 예배 행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의 교회에 가장 필요로 하는 여신도의 모습은 루디아와 같이 하나님께 열심히 예배하고 섬기는 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란? 1)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의미이며 2) 하나님을 섬기므로 종교적 높은 사랑에 대한 봉사인 것입니다. 3) 예배의 본질, 정의를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보로 하여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만남 또는 교제입니다. * “존헉스타 볼씨”는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대화라고 했습니다. 최근에 근대 예배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나왔는데 “신비주의적 예배 방법과 성육신의 방법이 있다고 했으니 신비주의적인 예배방법은 절대자를 인식하는 일이며 성육신의 예배방법은 역사와 인간을 위하여 성취하신 하나님의 구속적 사건을 축하하는 행위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릴 때에는 마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처럼 예배를 드리어야 하며 확실한 느낌없이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은 알맹이 없는 빈 껍데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를 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라고 하셨습니다(요4:23-24). 사도 바울은 (롬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여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최대의 경외를 표하면서 드리어야 하겠습니다. 루디아가 유명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예배의 정성을 드림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7. 직업을 가진 여성 14절에 “루디아성의 자주 장사”라고 했습니다. 자색 물감 곧 자주 빛 옷감을 파는 여자였습니다. 그는 신경을 써야할 직업을 갖고 있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예배자였고 영혼을 위하여 시간을 낼줄 아는 자였습니다. 직업과 신앙은 서로 잘 조화가 되어야 합니다. 직업 때문에 개인적 가정적 신앙의 임무를 할 수 없다거나 또는 교회 집회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돌보아야 할 가계가 있고 신경을 써야할 직업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영혼을 돌볼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앙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의 직업을 포기하라는 것은 또한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 안에서 들어가도록 지시하십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주를 위해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생존 경쟁입니다. 그러므로 원만한 직업을 가지고 생존경쟁에서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결 론 기도회에 참여와 말씀의 경청 가족전도 전도자를 도와 선교 사업에 협조를 하며 한 교회의 설립과 기둥의 역할을 하면서 봉사한 루디아의 신앙의 행위는 빌립보 교회에서만 있어야 될 신지가 아니라 지상에 그 어떤 교회에서도 요구하고 찾는 신자입니다 성도들이여 이 요구하고 찾는 성도가 되도록 노력하고 힘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