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0일 하늘언어교회
성경봉독: 마태복음 5장 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설교: ‘완전함의 확장’ 조영찬 전도사
날씨가 급속도로 더워지고 있습니다.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무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7월도 안 되었는데 이 정도니 본격적인 여름이 오면 얼마나 덥고 힘들지 염려됩니다. 부디 무더위에 건강 상하지 않도록 늘 몸, 마음 잘 챙기시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여름을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주에 읽었던 본문입니다. 오늘은 완전함의 ‘전체성’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이 완전하시다라고 했을 때 그것은 어느 특정 부분의 완전이 아닙니다. 사랑만 완전하고 정의는 불완전한 것처럼 부분적인 완전이란 참된 완전이 아닙니다. 또한 그렇게 부분적으로 발달한 존재를 우리는 하나님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들의 내면에 형성된 하나님상은 전체적으로 완전한 하나님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의 하나님은 사랑은 무한하신데 공의가 흐려져서 악을 심판하는 것에는 무능합니다. 어떤 이의 하나님은 악에 대한 심판은 철저한 반면에 사랑의 능력을 상실해버려 공포의 대상으로 전락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불완전하고 문제투성이인 하나님상은 그 사람의 성장배경과 심리상태를 반영한 산물입니다. 즉 자라온 환경에서 형성된 불완전하고 왜곡된 하나님상을 그대로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가지 상처와 트라우마와 다양한 경험이 빚어낸 심리기전의 산물일 뿐 참된 하나님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하나님상을 끝없이 부정해야만 참된 하나님에 대한 열린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없이 오직 사랑밖에 모르는 바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심판만 일삼는 정죄꾼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가 십일조를 좀 했다고 해서 30배, 60배, 100배로 재산을 불려주시는 분도 아닙니다. 십일조를 안했다고 해서 질병으로 보복하는 하나님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누구의 설교나 강의를 들을 때는 그 내용을 긍정하는 동시에 부정하면서 들어야 합니다. 만일 긍정만 한다면 내용의 오류까지 다 흡수하게 됩니다. 만일 부정만 한다면 내용의 좋은 면까지 다 부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과 정보를 접할 때는 긍정과 부정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동시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판단중지’의 자세도 필요합니다. 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고 응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긍정, 부정, 판단중지 등은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오직 긍정, 오직 순종만 강요해 왔기 때문입니다.
만일 목사나 신부가 전지전능해서 완전히 오류 없는 순진리만 가르칠 수 있다면 절대긍정으로 순종함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성직자도 완벽하지 못하고 일한 성도와 똑같이 오류와 트라우마와 다양한 문제를 가진 인간이기에 인간의 언어에 대해 절대긍정을 요구한다는 것은 큰 죄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잘못된 교설들과 내면의 선입견 등으로 왜곡된 하나님상을 올바르고 전체적인 하나님상으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전체적 회복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나의 모든 것들이 죄로 인해 왜곡되고 일그러져 있음을 먼저 시인하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부분화, 파편화된 부분들을 전체화, 완전화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영, 혼, 육 전체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 육적인 운동, 정신적인 공부, 영적인 신앙 이 세가지를 조화롭게 해나가야 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처럼 자기 한 몸부터 시작해서 가정, 국가, 세계에 하늘나라를 확장해 가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 손수 완전한 세계를 구축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치국평천하는 고사하고 수신조차 평생 제대로 못하는 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 단독으로 하려 해서는 안 되고 완전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회복해 나가야 합니다.
인간은 불완전에 멈춰서도 안 되고 완전에 도달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불완전에 멈추면 퇴보하고 완전에 도달하려고 하면 율법주의나 교리주의 등 여러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은 각자가 할 수 있는 한에서 꾸준히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자세입니다.
완전성, 전체성을 우리 삶의 현장에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세상의 수많은 문제들을 다 파악하고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은 머나먼 남의 나라 기아문제만 거론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 교회, 가정 안의 약자부터 챙기는 일입니다. 그 약자들의 모든 필요를 다 챙길 수는 없습니다. 단지 잠깐 시선을 주는 것, 외로움의 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것, 가끔씩 서로 만나는 것 등 소소한 일부터 실천하면 됩니다.
전체성을 자기 자신의 약한 부분에도 적용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스스로 외면하고 싶은 약한 부분들이 다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저체중, 과체중, 수족냉증, 불면증 등이 있고 정신적으로 우울증, 조울증 등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대인공포증 등으로 외롭고 친구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은 영혼육과 사회적 관계 등 모든 부분에 아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외면하고 방치하면 점점 악화되어서 겉잡을 수 없는 중증 환자가 됩니다. 우울증이 있다면 기쁨을 회복할 방법을 다양하게 시도해봅니다. 불면증이 있다면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합니다. 소통할 친구가 없다면 이웃과 인사라도 나눌 수 있도록 훈련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전체성을 놀이와 게임에 적용해볼까요? 요즘은 핸드폰으로 할 수 있는 게임 앱들이 많아서 하루종일 핸드폰만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게임 앱도 한두가지만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들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오프에서 바둑, 장기, 체스와 같은 지능게임도 해보는 것이 좋고 몸으로 하는 다양한 놀이와 스포츠도 즐겨야 합니다. 특히 성장기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이런 전체적 놀이를 가르치는 것은 균형 있는 성장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공동체소식
1. 최소한의 사회 만들어가기
우리 하늘언어공동체 예배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크게 감각장애인과 활동지원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활동지원사의 역할은 크게 가사지원, 이동지원, 사회활동지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 장애인들은 사회활동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란 학교, 직장, 동아리 등 다양한 대인관계를 말하는데 저희는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그런 활동이 여의치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 공동체 식구들이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가야 합니다. 외부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동호회를 알아보고 내부적으로는 자립센터 등 최소한의 사회를 구축해 가야 합니다.
2. 손벗회원 3단계
손벗회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한 다양한 분들을 만나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3단계를 두고 손벗회원을 모집하려고 합니다.
1단계 이름회원: 이름만 회원으로 등록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름 회원은 명목상 회원으로 보기 쉽지만 우리 공동체에서는 그 이름만이라도 참으로 소중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도 이름들을 많이 접해서 이름을 우습게 여길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게 이름조차 알고 지낼 활동무대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이름을 매우 중시여기는 종교입니다.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되어 있듯이 이름은 그 존재의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회원으로 등록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2단계 소통회원: 카톡으로 소통하거나 만나서 대화하는 회원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카톡으로 한 두마디 나누다가 차차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3단계 우주(무한) 회원: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시도하고 체험해가는 단계입니다. 이렇게 3단계로 생각하시고 부담없고 편안한 마음으로 손벗회원으로 동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윤성도님의 해피 여행
윤금련 성도님께서 3박 4일간의 중국여행을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소득은 백두산 천지를 목도한 것이라고 전하셨습니다. 백두산 천지는 늘 안개에 쌓여 있어서 백두산을 100번 가야 볼 수 있다는 호수인데 그것을 단번에 봤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실 때 선물을 쇼핑빽에 꽉 채워서 사오셨습니다. 선물은 ‘대추호두말이’인데 오늘 오시는 성도님들께 나누어주신다고 합니다. 행복한 여행과 좋은 선물로 기쁨을 선사해주신 윤성도님께 감사드립니다.
4. 오늘 읽을 말씀은 창세기 11장-15장까지 입니다.
첫댓글 한주의 시작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것처럼 삶의 균형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이번주도 좋은 하루 되시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