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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은 핍박받아도
2025년 6월 29일 마태복음 5:10-12
마 5:10-12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현대어성경 / 올바른 일을 하다가 박해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나의 제자라는 이유로 모욕당하고 박해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받을 때 너희는 행복하다. 12) 그럴 때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이같이 박해를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라.)
CHAT GPT / ‘핍박받는 자의 자세’는 매우 깊고 의미 있는 뜻으로 종교적, 철학적, 심리적 차원에서 다양한 해석을 가질 수 있다. 핍박을 받는 자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는지가 중요한 문제이다.
핍박받는 자의 자세에 대한 몇 가지 관점을 찾아본다.
인내와 용기 : 핍박을 받는 사람은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와 용기를 가지려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과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신앙인이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믿음과 원칙을 지키며 살아갔다.
자기 성찰과 성장 : 핍박받는 과정에서 자기 성찰(省察)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고난을 통해 성숙해질 수 있다. 어려움 속에서 더 강해지고, 세상과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희생과 대의 : 많은 경우 핍박은 개인의 신념이나 대의를 지키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신념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한 확신과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신앙인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고난을 겪으며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 : 핍박을 받는 자는 상황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자신만의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가치를 외부의 평가에 의존하지 않고, 내면의 평화와 힘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연대와 지원 : 혼자서는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거나, 그들의 지원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상호 지원을 통해 힘을 얻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핍박받는 자세는 결국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고난 속에서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1. 예수님 제자들의 순교
베드로(Petros) / 예루살렘교회를 인도하다가 로마에 복음을 전하던 중 네로의 박해 때에 순교했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에 처형되기 전 자신 같은 존재가 감히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죽음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자진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되었다고 한다.
안드레(Andreas) / 아가야에서 X자형의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 했다고 하며 그 후 X자형의 십자가를 안드레의 십자가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안드레의 유물 두 개를 운반해 가던 배가 키프러스섬 북동쪽에서 난파하여 그곳을 <안드레만>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전승도 있다.
야고보(James) /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는 헤롯 아그립바1세에 의하여 순교했다. 헤롯 대왕의 손자였던 아그립바1세는 갈릴리를 통치하면서 기독교를 증오하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당시 갈릴리 지역에 복음을 전하던 야고보를 살해하였다. 목 베임을 당해 순교했다.
요한(ωαννης-Ioannes) / 소아시아의 에베소에서 활동하다가 도미티아누스때에 밧모섬에 유배되었다고 한다. 사도들 가운데 유일하게 참혹한 죽음을 면한 사람이지만 복음을 위해 모진 고난을 당한 그의 삶은 순교의 삶이었다.
빌립(Philippos) / 북아시아에서 전도활동을 하다가 프리기아(터키 소아시아)에서 채찍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힌 후 A.D 54년에 기둥에 매달려 처형당했다.
바돌로매(Bartholomew) / 프리기아와 리카오니아 등지를 거쳐 아르메니아의 알팍지방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후 이방 왕에 의해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진 후 십자가에 못 박혀 머리가 베어져 순교하였다.
도마(Thomas) / 파르티아(현재의 이란 북부)에서 전도했다. 이교도 제사장들을 격노케하여 인도 코르만델에서 창으로 몸이 관통되어 죽임을 당했다.
마태(Maththaios) / 태국 파티아와 에티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A.D 60년경 에티오피아에 있는 나다바에서 미늘창(끝이 세가닥으로 갈라진 도끼, 창, 갈고리를 하나로 묶어놓은 무기)로 살해당했다.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James the Less) / 헤롯 아그리파가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된 후 그리스도인들에게 박해를 시작했던 때 열두사도 중에 최초로 참수형을 당했다.
다대오(Thaddaios) /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형제인 다대오는 아수르와 바사(페르시아)에서 전도하다가 십자가형으로 순교했다.
시몬(Simon) / 아프리카 미우리타니아와 영국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A.D 74년경에 페르시아에서 거꾸로 매단 채 톱으로 몸을 잘라 죽임을 당했다.
맛디아(Maththias) / 가룟 유다 대신에 12사도 반열에 오른 맛디아는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질을 당하여 죽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순교는 복음을 위한 헌신과 믿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들의 죽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증거로 여겨지며, 후대 신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순교자의 피 : 초대교회가 형성된 후부터 지금까지 70,000,000명 정도의 신앙인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를 당했다. 공개적으로 순교된 사람들만 헤아려도 이 정도이니 비공개적으로 순교한 자들까지 세자면 100,000,000명이 족히 넘을 것이다.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은 참으로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동물의 가죽으로 덮혀진 후 개들에게 찢겨 죽었고, 타르에 흠뻑 적셔진 후 불붙임을 당해 로마의 밤을 밝히는 땔감처럼 죽였다. 맹수에게 먹잇감으로도 던져졌고, 교수형을 당하기도 했으며, 공개적으로 강간과 고문을 당하다가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터툴리안은 이 질문에 순교자들의 핏속에는 생명의 씨앗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렇다. 이들의 담대한 죽음은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까지 전해져 칼날과 맹수와 끓는 기름 앞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용기를, 믿지 못하던 자들에게는 믿음을 가져다 주었다. 이렇게 순교자들이 흘린 피 위에는 어김없이 생명의 싹이 돋아났던 것이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요한계시록 6장을 보면 앞으로 다가올 대환난시에 피를 흘릴 순교자들이 또 등장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영혼들’이다. 초대교회 때만 순교자의 피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세상의 역사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도 순교자의 피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순교자의 피가 필요하지 않은 때는 없다. 언제나 어디서나 주저 없이 흘리는 순교자들의 피가 생명이 되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마지막 한 사람에게까지 흘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2. 초대교회와 박해의 시작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후,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공동체에서 비롯되었다. 사도행전 2장에 따르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며 수천 명이 회심하여 교회가 급성장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신앙은 유대교 지도자들과 로마 제국의 권위에 위협으로 여겨졌다. 사도행전 7장에서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초대교회에서 발생한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졌다.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불법 종교로 간주하며 신자들을 체포하고 처형했다. 네로 황제 시기(AD 64년)에는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며 대규모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많은 신자가 사자 굴에 던져지거나 불에 태워지는 등 잔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러한 박해는 약 300년간 간헐적으로 이어졌으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AD 313년 밀라노 칙령까지 계속되었다.
1. 순교자들의 신앙
초대교회 순교자들은 단순히 죽음을 감수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믿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신앙은 박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강해졌다. 예를 들어, 폴리캅(Polycarp)은 AD 155년경 스미르나(오늘날의 터키 이즈미르)에서 순교한 초대교회 지도자이다. 그는 86세의 나이에 체포되어 화형을 당할 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86년 동안 그를 섬겼는데, 그가 내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 내가 어찌 나의 왕이요 구주를 모독하겠는가?’ 폴리캅의 이 말은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신앙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겼으며, 세상의 권력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더 높이 여겼다. 또한, 그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의 전환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그들이 고난 속에서도 기쁨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2. 대표적인 순교자들의 삶
❶ 스데반(Stephen)은 초대교회에서 일곱 집사 중 한 명으로 선출된 인물이다(사도행전 6:5).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복음을 담대히 전했으나, 유대교 지도자들의 반발을 샀다. 재판에서 그는 구약의 역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증거했지만, 결국 돌에 맞아 죽었다. 그의 죽음은 사도 바울(당시 사울)의 회심에 영향을 미쳤으며, 초대교회에 큰 영감을 주었다.
❷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는 AD 107년경 로마로 끌려가 사자들에게 찢겨 죽었다. 그는 순교를 앞두고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서 그는 ‘내가 하나님의 밀알이 되어 짐승의 이빨에 갈려야 순수한 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그나티우스는 순교를 통해 그리스도와 더 깊이 연합되기를 갈망했다.
❸ 펠리치타스와 페르페투아(Felicitas and Perpetua)는 여성 순교자로 AD 203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순교하였다. 페르페투아는 귀족 출신의 22세 여성으로 갓난아기를 둔 어머니였고, 펠리치타스는 그녀의 종이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버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투기장에서 짐승들에게 찢겨 죽었다. 페르페투아의 일기에는 그녀가 본 환상과 순교 직전의 감동적인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3. 순교자들의 삶이 주는 교훈
❶ 그들은 신앙의 대가를 기꺼이 치렀다. 현대 사회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이 때로는 불편하거나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초대교회 순교자들은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켰다. 이는 우리에게 신앙의 소중함과 헌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❷ 그들은 용서와 사랑의 모범을 보였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다(행 7:60).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용서를 떠올리게 한다. 순교자들은 원수를 미워하기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의 정신을 실천했다.
그들은 영원한 소망을 품고 살았다. 초대교회 순교자들은 이 세상의 고난이 잠시일 뿐이며,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이 소망은 그들이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했고, 우리에게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상기시킨다.
초대교회 순교자들은 신앙과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한 이들이다. 그들은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여주었고, 그들의 희생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데 기여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신앙의 가치를 되새기고, 그들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삶은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는 살아있는 증거이다.
3. 한국 기독교 초대교회 순교자
우리나라 기독교 초대교회 순교자들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다.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한 시점은 18세기 말, 특히 1784년 한국에 최초로 개신교가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신교 순교자들은 대체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발생한 순교와 관련이 많았다.
개신교 초대 순교자들 : 한국 개신교의 순교자들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기독교의 전파가 활발해지면서 등장했다.
❶ 이상근목사는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초기 선교사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 활동하며 많은 순교자가 발생했지만 당시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를 향한 박해가 강했던 시기였다.
❷ 주기철 목사는 1940년대 일본의 종교 탄압과 관련하여, 일본의 신사 참배 강요에 반대하며 순교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944년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결국 고문 끝에 순교하였다.
순교자들의 의미와 영향 : 초대교회 순교자들은 단순히 신앙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희생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의 순교는 후에 한국 교회가 더욱 성장하고 굳건히 뿌리를 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기독교의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킨 이들은 교회의 초석을 마련한 인물들로, 현재까지 한국 기독교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 중요한 상징적 인물로 남아 있다.
순교자의 후손과 전파 : 순교자들의 후손이나 그들의 교훈을 받들어 교회를 이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한국 기독교의 영향력은 더욱 확장되었다. 순교자들의 희생은 단순히 교리의 전파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그들의 신앙과 삶의 방식이 큰 영향을 끼쳤다.
4. 북한에서 벌여지고 있는 핍박
2020년 국제 기독교 박해 감시단체는 ‘(북한 기독교인들이 처한) 상황이 잔혹하다. 탈북민들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극심한 탄압 사례들을 전하며, 기독교인과 그 가족이 수용소로 보내지면 빠져나오는 경우가 드물다고 설명한다’라고 지적하면서 북한 내 14개 수용소 수감자들이 질병과 굶주림, 학대로 인해 생명을 잃고 있는데 전체 25만여명의 수감자 중 5만에서 7만명이 기독교인일 것으로 추산했다.
2022년 10월 14일 한국교회 백주년기념관에서 ‘순교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란 주제로 열린 선교연구원 세미나에서 두 번째로 이반석 목사(모퉁이돌선교회 총무)가 ‘순교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를 주제로 발제했다. 이 목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교가 지속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북한”이라며 “북한은 극심한 박해가 이어지고 순교의 피가 계속 흐르고 있지만, 북한 지하교회는 도리어 선교하는 교회라는 사실을 발견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의 지하교회는 김일성의 공산정권 아래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교회가 가정에서 예배함으로 초대 지하교회 형태를 갖추며 북한의 지하교회가 태동하게 되는 뿌리가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지하교회는 은밀하게 지속되는 가운데 많은 순교자들이 나오게 되었으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성장하여 왔다”라며 “1945년부터 2006년까지 책과 문서에 정리된 순교한 성도 수만 16,984명이다. 1953~1972년 10,897명 이후, 1972~1988년에 299명, 1988~1995년 741명, 1995~2006년 3,720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특히 조직체(교회)에서 발각된 성도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 수치는 지하교회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특히 “순교자 16,984명 중 1945년 이후에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수가 5,723명에 달했다”라며, “이들 중 부모의 영향으로 기독교인이 된 수는 3,398명, 개인이 전도해 기독교인이 된 수는 1,789명, 탈북 상황에 기독교인이 된 수는 340명, 라디오와 성경책을 통해 기독교인이 된 수는 86명, 외부인과 선교사로 인해 기독교인이 된 수는 3명, 외국에 나간 중에 기독교인이 된 수는 19명, 성령의 임재로 기독교인이 된 수는 7명, 그 외의 통로로 기독교인이 된 수는 81명이었다.”라고 전했다.
이 목사는 “예배 등 종교활동과 성경 등 종교 물품 간직 등 핍박 사례를 분석해 보면, 복음 전파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라며 “북한종교자유백서에 따르면, 탈북자 중 1.2%에 해당하는 168명의 응답자가 북한에서 종교활동에 몰래 참가한 적 있다고 했다. 특히 168명의 응답자 중 159명은 2001년 이후 탈북자들이었다. 또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비밀 종교활동 경험자 비율이 증가했다.”라고 했다.
그는 “2020년 7월 기준 북한 종교 박해 사건은 1,411건이며, 그 중 종교 활동에 의한 경우가 5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종교 물품 소지 23.5%, 종교 전파 10.3%, 종교인 접촉 4.5% 순으로 나타났다.”라며 “또 2000년 이전 탈북자 중 성경을 본 경험자는 16명에 불과하였지만, 2000년 이후엔 559명에 달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북한에 성도들이 늘어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5. 핍박을 받은 자의 복(마 5:10-12)
이 세상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해서 좋은 말만 듣게 되고, 모든 일들이 내 뜻대로 잘 되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기만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으니 또한 핍박도 겸하여 받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 살다보면 좋은 이웃이 있는가 하면 원수같은 이웃도 있다. 모든 일들이 수월하게 잘 풀려가는 때도 있지만 또한 그렇지 아니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좋지 못한 이웃을 대하는 나의 마음의 문제가 중요하다. 일이 그릇될 때 나의 태도가 중요하다.
본문은 특별히 믿는 사람들이 핍박을 받게 될 때 그것을 복으로 여기는 자세와 태도뿐 아니라 그것의 실재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씀하셨다. 믿음은 핍박을 면제케 하는 것이 아니라 핍박이라도 달게 받게 하는 것이다. ‘믿음이면 내가 싫어하는 모든 것이 면제되리라’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1. 구체적으로 핍박을 받는 자란?
‘핍박을 받는다’는 의미 파악, 개념 정리를 먼저 하려고 한다. 핍박이라고 해서 이것도 저것도 모두 싸잡아 핍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핍박’은 ‘처벌’과는 전혀 다르다. 내가 잘못해서 받는 것은 핍박이 아니라 그것은 처벌이다. 그러므로 내가 잘못해서 오는 핍박은 사실 핍박이 아니다. 나의 잘못이나 나의 실수나 허물이나 죄 때문에 당하는 것은 핍박이 아니라 처벌이다.
벧전 2:20 /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우리의 무능이나 불성실함으로 오는 여러 가지 고초 역시 핍박이 아니다. 직장에서 업무량을 감당하지 못해서 당하는 욕은 핍박이 아니라 무능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것 때문에 당하는 것은 핍박이 아니다. 많은 경우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경우 때문에 핍박을 당한다.
예를 들자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 광신자들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당한 핍박은 핍박의 범주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만 내세우면서 그리스도인 답게 살지 않을 때 당하는 그런 것은 핍박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닌 것 때문에 당하는 것은 핍박이 아니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과 죄악된 성품 때문에 당하는 욕이나 핍박은 핍박이 아니다. 이런 일로 핍박받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베드로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벧전4:15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이런 것으로 인해서 당하는 것은 핍박이 아니라 내 허물로 인한 욕을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복’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냥 핍박받는 자의 복이 아니다.
때때로 애매한 고난 애매한 핍박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분명히 불조심을 했는데 이웃에 있는 사람이 불조심을 하지 아니해서 불이 나는 경우는 애매한 것이다. 나는 자동차 운전을 잘 했는데 옆 사람이 한눈팔다가 사고를 내서 당하는 사고는 정말 애매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애매한 고난이나 핍박이 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핍박은 이런 애매하게 당하는 핍박을 말하고 있지 않다. 애매하게 고난 받은 것도 사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내게 어떤 사인을 주시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정도 수준에서 핍박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다.
진짜 핍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서 오는 고난이다. 주를 위하고, 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오는 고난이다. 예를 든다면 주일 성수를 위해서, 우상에게 절하거나 불의와 타협하기를 거절함으로써 오는 고통,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진력하다가 고초를 당하는 것,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명예가 실추되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통제를 받는 것 등이 있다.
이런 핍박만이 진정한 핍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핍박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핍박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욕을 당하고, 팝박을 받고, 거짓으로 악한 말을 듣는 것이야말로 본문을 통하여 ‘의를 위하여 팝박을 받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니엘은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함을 받았을 때 잠시 기도를 쉬면 핍박을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단 6장). 그러나 하나님 앞에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아니함으로 사자굴에 던져졌다. 다니엘의 세 친구 역시 단 한 번만 왕이 세운 우상 앞에 절을 하면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상 숭배를 금하신 하나님 앞에 의를 지키기 위해 풀무불에 던져지는 쪽을 택하였다. 이처럼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니 세상에서 핍박이 따라온다.
초대교회는 유대교인들과 이방인들로부터 이중적인 핍박을 받았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단으로 몰려 핍박을 받았고, 로마인들에게는 황제숭배를 거부한다고 핍박을 받았다. 과거에나 현재에나 미래에나 언제나 세상의 풍조에 순응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되고 있으며, 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핍박한 것이다.
믿음을 지키고, 성결을 지키고, 순리와 법칙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은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핍박을 하는 것이다. 미친 세상에서는 미치지 않는 사람이 두려운 법이다. 죄악된 곳에서는 죄악 되지 않는 이가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참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는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선포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운 것이다. 백로가 까마귀 동네에 가서 대접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딤후 3:12 /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세상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기 마련이다. 바르게 살려면 고난을 당한다. 요셉은 바로 살려다가 고난을 당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핍박을 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가? 성도를 구별하기 위해서 핍박을 허락하신다. 핍박은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핍박을 허락하신다. 핍박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게 되고, 말씀을 묵상하게 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게 하려고 핍박을 허락하신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알게 된다.
2. 구체적으로 어떠한 복이 주어지는가?
❶ 내가 의롭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전혀 핍박을 받지 않는다면 나도 악한 사람이 된다. 거짓된 사람들 사이에서 전혀 핍박을 받지 않는다면 나도 거짓된 사람이 된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내가 의로운 사람임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핍박은 역으로 내가 의로운 사람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❷ 핍박을 통해서 악에 빠지지 않게 된다. 악과 타협하는 자는 악에 빠진다. 그러나 핍박을 받는 자는 그 핍박을 통해서 더욱 강해진다. 초대교회 신학의 형성 발전은 이단적인 가르침의 만연에 기인한 바 크다. 시원찮게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없다는 도전 앞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설명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신앙심이 자라나게 된다. 도전을 받아야 강해지고 생각이 정리되기 때문이다.
❸ 핍박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것은 시험을 보아야 우등생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에 속한다. 핍박이 있어야 의, 믿음이 귀한 것임이 드러난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게 된다. 핍박이 있어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고 그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❹ 많은 가난한 사람들과 많은 어린아이들이 주를 위해 화형을 당한 일부 순교자들보다 천국에서 더 높은 지위를 가질 수도 있다. 경력아닌 인격이 천국에서의 지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개의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완전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그 뿌리에서부터 서서히 잎이 나고, 나중에 이삭이 피고, 결국 그 이삭에서 무르익은 열매가 열린다.
여기에 인격에 대한 예수님의 이상이 있다. 영적 가난, 애통해함, 온유, 의에 대한 목마른 갈망, 긍휼, 마음의 청결, 화평케 함, 의를 위해 핍박받음, 이것이 복이다.
3. 핍박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❶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
벧전 3:14-17 /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담대히 의를 행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❷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하나님은 감당 못할 핍박을 우리에게 주지 않으신다. 감당할 시험밖에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핍박은 우리가 장차 받을 하늘의 상급을 더 크게 할 뿐이다. 핍박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역경이 위인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핍박이 닥치면 이전에 못보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본다. 핍박은 더욱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헌신의 열심을 불러일으킨다. 고난 속에서 기도하게 하시고, 핍박 속에서 더욱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신다. 핍박은 의를 위한 더욱 큰 열심을 내게 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해야 한다.
결론으로 주기철 목사님의 일사각오(一死覺悟) 설교문을 본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을 무서워 예수를 저버리지 맙시다. 풀과 꽃과 같이 시들어 떨어지는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그 아니 두렵습니까? 한번 죽어 영원한 천국 복락 그 아니 즐겁습니까? 이 주목사가 죽는다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나는 결단코 하나님 외에 무릎 꿇고 절할 수 없습니다. 더럽게 사느니보다 차라리 죽어 없어져 주님 향한 정절을 깨끗이 지키려 합니다. 주님 따르는 죽음은 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나에게는 일사각오(一死覺悟)가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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