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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聖蹟圖공자성적도 2 (何廷瑞本하정서본에 실린 38장면 中 2/3)
* 飛龍비룡 辛鐘洙신종수 總務총무 提供제공.
| * 何廷瑞本하정서본에 실린 38場面장면의 孔子聖蹟圖공자성적도: 中國중국 儒學유학의 始祖시조인 孔子공자의 一生일생과 行蹟행적을 여러 場面장면으로 圖解도해한 一種일종의 故事人物圖고사인물도이며, 聖蹟圖성적도·孔夫子聖蹟圖공부자성적도·聖蹟之圖성적지도 等등으로 指稱지칭되기도 한다. |
01-1. 선성소상(先聖小像) · 01-2. 니산치도(尼山致禱) 02-1. 기린옥서(麒麟玉書) · 02-2. 이룡오로(二龍五老) 03-1. 균천강성(鈞天降聖) · 03-2. 조두예용(俎豆禮容) 04-1. 직사위리(職司委吏) · 04-2. 명명영황(命名榮貺) 05-1. 직사승전(職司乘田) · 05-2. 학금사양(學琴師襄) 06-1. 문례노담(問禮老聃) · 06-2. 재제문소(在齊聞韶) 07-1. 안영저봉(晏嬰沮封) · 07-2. 퇴학시례(退學詩禮) 08-1. 심행동거(心行同車) · 08-2. 협곡회제(夾谷會齊) 09-1. 귀전사과(歸田謝過) · 09-2. 예휴삼도(禮隳三都) 10-1. 의주정묘(義誅正卯) · 10-2. 인번거로(因膰去魯) 11-1. 광인해위(匡人解圍) · 11-2. 추차동거(醜次同車) 12-1. 송인벌목(宋人伐木) · 12-2. 미복과송(微服過宋) 13-1. 적위격경(適衛擊磬) · 13-2. 서하반가(西河返駕) 14-1. 진정준집(陳庭雋集) · 14-2. 영공문진(靈公問陣) 15-1. 자로문진(子路問津) · 15-2. 재진절량(在陳絶糧) 16-1. 자서저봉(子西沮封) · 16-2. 작가구릉(作歌丘陵) 17-1. 행단예악(杏壇禮樂) · 17-2. 궤수적홍(跪受赤虹) 18-1. 서수획린(西狩獲麟) · 18-2. 몽전양영(夢奠兩楹) 19-1. 치임별귀(治任別歸) · 19-2. 한고사로(漢高祀魯) |
| ▲ 11-1. 匡人解圍광인해위(匡광나라 사람이 孔子공자를 풀어주다) : 孔子공자는 魯노나라를 떠나 衛위나라로 갔고, 衛위나라에서 다시 陳진나라로 가는데 匡광나라 땅을 지나야 했다. 魯노나라의 陽虎양호가 以前이전에 匡광나라 사람들에게 暴政폭정을 하였는데, 孔子공자의 모습이 陽虎양호와 닮았다 하여, 匡광나라 사람들이 孔子공자 무리를 닷새 동안 잡아두었다. 孔子공자는 隨從者수종자를 衛위나라 大夫대부 甯武子녕무자에게 보내 도움을 求구해서 풀려나게 되었고, 匡광나라 땅을 떠나게 된다. 匡人解圍:孔子離開魯國去衛國,從衛國去陳國,路過匡地,魯國的陽虎曾施暴於匡人,孔子長得像陽虎,匡人就把孔子師徒圍拘了五天,孔子派隨從求助於衛國大夫寧武子才解了圍,離開匡地(參見<史記˙孔子世家>、<論語˙子罕>、<孔子家語˙困誓>等)。 (匡人解圍광인해위: 孔子離開魯國去衛國공자리개노국거위국,從衛國去陳國종위국거진국,路過匡地노과광지,魯國之陽虎曾施暴於匡人노국지양호증시폭어광인,孔子長得像陽虎공자장득상양호,匡人就把孔子師徒圍拘了五日광인취파공자사도위구료오일,孔子派隨從求助於衛國大夫寧武子공자파수종구조어위국대부영무자 才解了圍재해료위,離開匡地리개광지(參見참견<史記사기<˙孔子世家공자세가>、<論語논어˙子罕자한>、<孔子家語공자가어 ˙困誓곤서>等등)。) |
| 57歲세(BC495) – 魯定公노정공이 死亡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 哀公애공이 卽位즉위함. ◇ 一說일설엔 司馬桓魋사마환퇴가 죽이려고 했다고 함. 58歲세(BC494) - 周敬王주경왕 26年년 魯哀公노애공 元年원년 ◇ 衛위나라에 居住거주함. 59歲세(BC493) 歷史역사 ◇ 衛위나라를 떠나 晉진나라로 가던 中중 黃河황하 附近부근에 이르렀을 때, 趙簡子조간자가 賢人현인 두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듣고는 衛위나라로 다시 돌아옴. ◇ 以後이후에 다시 衛위나라를 떠나 宋송나라로 向향하는데, 途中도중에 司馬桓魋사마환퇴가 죽이려고 하자 鄭정나라로 갔다가 다시 陳진나라로 向향함. ◇ 衛靈公위령공이 죽고 그 뒤를 이어 出公출공 輒첩이 卽位즉위함. |
| ▲ 11-2. 醜次同車추차동거: 孔子공자가 衛위나라를 떠나 蒲포나라 땅에 到着도착하였고, 한 달 쯤 뒤 다시 衛위나라로 돌아왔다. 하루는, 衛위나라 君主군주인 靈公영공과 夫人부인 南子남자가 함께 豪華호화로운 수레를 타고 侍從시종을 데리고 거리를 나들이할 때 孔子공자로 하여금 뒤따라오는 수레에 타라고 한 일을 부끄럽게 여겨 그곳을 떠난 逸話일화를 뜻합니다. 이때 孔子공자가 화를 내며 말하였다. "나는 이제껏 女子여자를 思慕사모하는 것처럼 德덕을 思慕사모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에 衛위나라를 떠났다. 丑次同車:孔子離開衛國,到了蒲地,一個多月又回到衛國。一天,衛靈公和夫人坐在一輛車上,讓孔子坐在後面的車上,孔子生氣的說:「我從沒有見過像喜歡美貌女子一樣喜歡美德的人呢!」於是離開了衛國(參見<史記˙孔子世家>、<論語˙衛靈公>、<孔子家語˙七十二弟子>等)。 [丑次同車추차동거: 孔子離開衛國공자리개위국,到了蒲地도료포지,一個多月又回到衛國일개다월우회도위국。一天일천,衛靈公和夫人坐在一輛車上위령공화부인좌재일량차상,讓孔子坐在後面之車上양공자좌재후면지거상,孔子生氣之說공자생기지설:「我從沒有見過像喜歡美貌女子一樣喜歡美德之人呢아종몰유견과상희환미모여자일양희환미덕지인니!」於是離開了衛國어시리개료위국(參見참견<史記사기<˙孔子世家공자세가>、<論語논어˙ 衛靈公위령공>、<孔子家語공자가어˙ 七十二弟子칠십이제자>等등)。] |
| ▲ 12-1. 宋人伐木송인벌목(宋송나라 사람이 나무를 베다) : 魯노나라 哀公애공 三年삼년(BC492年년, 孔子공자 60歲세) 孔子공자는 曹조나라를 떠나 宋송나라에 到着도착한 孔子공자는 큰 나무 아래에서 祭祀제사 禮節예절을 練習연습하는데 宋송나라의 司馬桓魋사마환퇴가 孔子공자를 죽이려고 큰 나무를 베어버렸다. 弟子제자들은 孔子공자에게 빨리 떠날 것을 勸권하였지만, 孔子공자가 말하길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品格품격과 德덕을 주셨는데, 桓魋환퇴가 나를 어쩔 것인가?"라고 하였다. 宋人伐木:魯哀公三年,孔子離開曹國到宋國,在大樹下演習禮儀,宋國的司馬桓魋要殺孔子,伐掉了大樹。弟子們勸孔子快走,孔子說:「老天使我有了這樣的品德,桓魋能把我怎麼樣?」(事見<史記˙孔子世家>、<論語˙述而>等)。 [宋人伐木송인벌목: 魯哀公三年노애공삼년,孔子離開曹國到宋國공자리개조국도송국,在大樹下演習禮儀재대수하연습예의,宋國之司馬桓魋要殺孔子송국지사마환퇴요살공자,伐掉了大樹벌도료대수。弟子們勸孔子快走제자문권공자쾌주,孔子說공자설:「老天使我有了這樣之品德노천사아유료저양지품덕,桓魋能把我怎麼樣환퇴능파아즘마양?」(事見사견<史記사기<˙孔子世家공자세가>、<論語논어˙ 述而술이>等등)。] |
| 60歲세(BC492) 王室왕실 ◇ "60歲세에 귀가 順해졌다[六十而耳順육십이이순]."라고 말함. ◇ 宋송을 지나 陳진으로 감. 63歲세(BC489) ◇ 陳진나라에 머물다가 吳오나라에서 陳진나라를 侵略침략하여 크게 混亂혼란스러워지자 陳진나라를 떠나 蔡채를 거쳐 負函부함으로 가던 中중 길이 막혀 7日間일간 끼니를 굶음. ◇ 負函부함에 到着도착하여 葉公섭공이 禮예로써 待遇대우하고 楚초나라의 昭王소왕이 孔子공자를 重用중용하려 했으나 奸臣輩간신배들의 反對반대로 成事성사되지 않음. |
| ▲ 12-2. 微服過宋미복과송: 孔子공자가 身分신분을 숨기고 襤褸남루한 옷차림으로 變服변복한 채 宋송나라를 남몰래 빠져나간 逸話일화를 뜻한다. 《孟子맹자》 '萬章上만장상' 篇편에 처음 登場등장하는 말이다. |
| - 孔子微服适宋#商丘#宋国 https://haokan.baidu.com/v?pd=wisenatural&vid=9285858335729603374 |
* 姙師齋임사재 裵貞淑 배정숙 會員회원 提供제공.
| ▲ 13-1. 適衛擊磬적위격경(衛위나라에서 鐘종(磬경)을 치다): 孔子공자가 蒲포나라에서 衛위나라로 갔다. 弟子제자들과 같이 (儀禮用의례용) 鐘종(磬경)을 치는데, 한 광주리를 멘 사람이 門문 앞에서 지나가며 말하였다. "깊은 뜻이 있도다, 鐘종(磬경)을 치는 者자여" 暫時잠시 後후 또 말하기를 "淺薄천박하도다, 쨍쨍거리는 輕薄경박한 鐘종(磬경)소리, 그만 치는 게 낫겠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詩經시경의 匏有苦葉포유고엽(박은 쓴 잎을 가지고 있다네)' 中중의 詩句節절시구절로 孔子공자에게 勸勉권면하기를 "물이 깊으면, 옷을 입은 채 지나며, 물이 얕으면, 옷을 걷어 올리고 지나갑니다"라고 하였다. 孔子공자가 衛위나라에 머물며 磬경쇠(打樂器타악기)를 演奏연주하던 中중, 삼태기를 멘 隱者은자를 만나 世上세상과 道도에 對대해 깊은 對話대화를 나누었던 [論語논어] <憲問헌문>篇편의 故事고사이자, 이를 그림으로 그린 [孔子聖蹟圖공자성적도]의 主要주요 場面장면 中중 하나. 適衛擊磬:孔子過蒲到衛國,和弟子們擊磬,有一個挑著草筐子的人從門前經過,便說:「有深意啊!擊磬的。」過了一會又說:「可鄙啊!磬聲硜硜,這就罷休好了。」,並以<詩經˙匏有苦葉>中的詩句勸諭孔子:「水深,穿著衣裳走過去,水淺,撩起衣裳走過去。」(參見<史記˙孔子世家>、<論語˙憲問>)。 [適衛擊磬적위격경: 孔子過蒲到衛國공자과포도위국,和弟子們擊磬화제자문격경,有一個挑著草筐子之人從門前經過유일개도착초광자지인종문전경과,便說변설:「有深意啊유심의아!擊磬之격경지。」過了一會又說과료일회우설:「可鄙啊가비아!磬聲硜硜경성갱갱,這就罷休好了저취파휴호료。」,並以병이<詩經시경<˙匏有苦葉포유고엽>中之詩句勸諭孔子중지시구권유공자:「水深수심,穿著衣裳走過去천저의상주과거,水淺수천,撩起衣裳走過去료기의상주과거。」(參見참견<史記사기<˙孔子世家공자세가>、<論語논어 ˙憲問헌문>)。] |
| ▲ 13-2. 西河返駕서하반가(黃河황하 西서쪽에서 가마를 돌리다.) : 孔子공자가 衛위나라에서 重用중용되지 못하자, 晉진나라로 가서 趙簡子조간자를 만나려고 길을 떠났으나 黃河황하 江邊강변에 다다라 晉진나라가 賢明현명한 士大夫사대부인 竇鳴犢두명독, 舜華순화를 죽였다는 말을 傳전해 듣고 "君子군자는 같은 君子군자를 害해치지 않는다"라며 다시 衛위나라로 가마 머리를 돌려 돌아갔다. '西河返駕서하반가'는 孔子공자가 衛위나라에서 晉진나라로 가려다가 黃河황하 江邊강변에서 賢人현인들의 죽음을 듣고 수레를 돌려 돌아온 逸話일화를 뜻합니다. 孔子공자의 生涯생애와 逸話일화를 그린 [孔子聖蹟圖공자성적도]의 主要주요 場面장면 中중 하나이다. 西河返駕:孔子在衛國得不到重用,想到晉國去見趙簡子,到黃河邊上聽說晉國殺了賢大夫竇鳴犢、舜華,他臨河嘆息,認為「君子諱傷其類」,便返歸衛國(事見<史記˙孔子世家>、<孔子家語˙閑誓>) [西河返駕서하반가: 孔子在衛國得不到重用공자재위국득불도중용,想到晉國去見趙簡子상도진국거견조간자,到黃河邊上聽說晉國殺了賢大夫竇鳴犢도황하변상청설진국살료현대부두명독、舜華순화,他臨河嘆息타림하탄식,認爲인위「君子諱傷其類군자휘상기류」,便返歸衛國변반귀위국(事見사견<史記사기<˙孔子世家공자세가>、<孔子家語공자가어 ˙閑誓한서>)] |
| ▲ 14-1. 陳庭雋集진정준집: 孔子공자의 全전 生涯생애와 逸話일화를 그린 그림인 孔子聖蹟圖공자성적도의 主要주요 場面장면 中중 하나이다. |
| ▲ 14-2. 靈公問陣영공문진: 《論語논어》 〈衛靈公위령공〉篇편에 나오는 逸話일화로, 衛위나라 靈公영공이 孔子공자에게 軍隊군대의 陣法진법(戰鬪전투 隊形대형)을 물었으나 孔子공자가 "禮法예법은 들었으나 軍事군사 일은 모른다"며 拒絶거절하고 다음 날 나라를 떠난 事件사건을 뜻한다. 衛靈公 問陳於公子 孔子對曰 俎豆之事 則嘗聞之矣 軍旅之事 未之學也 明日 遂行 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 子曰 君子 固窮 小人 窮斯濫矣 제 15편_위령공(衛靈公)01 衛靈公위령공이 問陳於孔子문진어공자한대 衛위나라 靈公영공이 孔子공자께 軍隊군대의 陳진 치는 法법을 물었다. 孔子對曰 俎豆之事공자대왈 조두지사는 則嘗聞之矣칙상문지의어니와 孔子공자가 對答대답하길 “禮法예법에 關관한 일은 일찍이 들었습니다만 軍旅之事군려지사는 未之學也미지학야라하시고 軍隊군대의 일은 아직 배우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시고 明日명일에 遂行수행하시다 다음 날 衛위나라를 떠나셨다. 在陳絶糧재진절량하니 從者病종자병하여 莫能興막능흥이러니 陳진나라에서 糧食양식이 떨어져 따라다니던 弟子제자들이 病병이 들어 일어나지를 못했다. 子路慍見자로온현왈 君子亦有窮乎군자역유궁호잇가 子路자로가 화가 나서 先生선생님을 뵙고 말했다. “君子군자도 困窮곤궁할 때가 있습니까?” 子曰자왈 君子군자는 固窮고궁이니 小人소인은 窮斯濫矣궁사람의니라 先生선생이 말하길 “君子군자는 本來본래 困窮곤궁하기 마련이다. 小人소인은 困窮곤궁하면 함부로 行動행동한다.”고 하셨다. |
* 昊天호천 金春植김춘식 會員회원 提供제공.
| ▲ 15-1. 子路問津자로문진(子路자로가 津나루를 묻다) : 孔子공자가 陳진나라에서 蔡채나라로 갔다가 다시 葉엽나라로 갔다. 葉엽나라에서 또다시 蔡채나라로 돌아올 때, 長沮장저가 桀溺걸익과 함께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고, 孔子공자가 子路자로를 보내 나루터가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桀溺걸익이 말하길 “洪水홍수처럼 못된 것들이 到處도처에 깔렸는데, 當身당신들은 누구하고 같이 改革개혁을 하겠다는 거요?, 當身당신 차라리 孔子공자하고 같이 못된 사람들을 避피하는 게 낫지, 어떻게 우리를 따라와 이 混濁혼탁한 社會사회를 避피할 수 있단 말이요?”라고 하였다. 子路問津:孔子從陳到蔡又到葉,從葉返歸蔡國,碰到長沮、桀溺在一同耕地,孔子派子路去打聽渡口。桀溺說:「像洪水一樣的壞東西到處都是,你們同誰去改變呢?你與其跟著孔子逃避壞人,哪裡跟得上隨我們逃避這汙濁的社會呢?」(事見<史記˙孔子世家>、<論語˙微子>)。 [子路問津자로문진:孔子從陳到蔡又到葉공자종진도채우도엽,從葉返歸蔡國종엽반귀채국,碰到長沮팽도장저、桀溺在一同耕地걸닉재일동경지, 孔子派子路去打聽渡口공자파자로거타청도구。桀溺說걸익설:「像洪水一樣的壞東西到處都是상홍수일양적괴동서도처도시,你們同誰去改變呢이문동수거개변니? 你與其跟著孔子逃避壞人이여기근착공자도피괴인,哪裡跟得上隨我們逃避這汙濁的社會呢나리근득상수아문도피저오탁적사회니?」(事見사현<史記사기 ˙孔子世家공자세가>、<論語논어 ˙微˙子미자>。] |
| ▲ 15-2. 在陳絕糧재진절량(陳진나라에서 糧食양식이 바닥나다) : 哀公애공 6年년(BC 486年년), 孔子공자가 楚초나라로 가는 途中도중 陳진나라와 蔡채나라의 士大夫사대부들은 楚초나라가 孔子공자를 重用중용하여 陳진나라와 蔡채나라에 危險위험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걱정하여, 함께 兵士병사를 보내 孔子공자와 弟子제자를 비어있는 들에서 包圍포위하였다. 糧食양식이 바닥나고, 따르던 사람들도 배고파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孔子공자는 如前여전히 詩시와 書서를 읊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하였다. 나중에 子貢자공을 楚초나라로 보내, 救援兵구원병을 보내달라고 請청하고 나서야, 비로소 빠져나올 수 있었다. 在陳絕糧:哀公六年,楚國派人聘請孔子到楚國去,陳楚的大夫們擔心楚國重用孔子會給陳楚帶來危險,於是共同發兵將孔子師徒包圍在曠野裡。糧食吃光了,跟隨的人餓得起不來,孔子仍然講誦詩書、撫琴歌詠。後來派子貢到楚國,請來救兵,才得以脫身(事見<史記˙孔子世家>、<孔子家語˙在厄>、<困誓>等)。 [在陳絕糧재진절량:哀公六年애공육년,楚國派人聘請孔子到楚國去초국파인빙청공자도초국거,陳楚的大夫們擔心楚國重用孔子會給陳楚帶來危險진초적대부문담심초국중용공자회급진초대래위험,於是共同發兵將孔子師徒包圍在曠野裡어시공동발병장공자사도포위재광야리。糧食吃光了양식흘광료,跟隨的人餓得起不來근수적인아득기불래,孔子仍然講誦詩書공자응연강송시서、撫琴歌詠무금가영。後來派子貢到楚國후래파자공도초국,請來救兵청래구병,才得以脫身재득이탈신(事見사현<史記사기˙ 孔子世家공자세가>、<孔子家語공자가어˙ 在厄재액>、<困誓곤서> 等등)。] |
| ▲ 16-1. 子西沮封자서저봉(子西자서가 領地영지 封봉하는 것을 막다) : 孔子공자가 楚초나라에 到着도착한 뒤에, 楚초나라 昭王소왕이 書籍서적 發行간행을 위한 땅 七百칠백 里리를 그에게 下賜하사하려 하였다. 그러나 楚초나라 執政官집정관 子西자서가 孔子공자에게는 賢明현명한 弟子제자가 서로 돕고 있는데, 領地영지까지 그에게 封봉한다면 楚초나라에 不利불리하다 생각하였다. 楚초나라 昭王소왕은 이에 孔子공자에게 領地영지를 下賜하사하려던 생각을 取消취소하였고, 孔子공자도 楚초나라를 떠나 衛위나라로 돌아왔다. 子西沮封:孔子到了楚國,楚昭王想把書社之地七百里賜封給他。楚國的令尹子西認為孔子有賢弟子相助,再有了封地,將不利於楚國。楚昭王於是取消了賜封孔子的念頭,孔子也離開楚國,返回衛國(事見<史記˙孔子世家>)。 [子西沮封자서저봉:孔子到了楚國공자도료초국,楚昭王想把書社之地七百里賜封給他초소왕상파서사지지칠백리사봉급타。楚國的令尹子西認為孔子有賢弟子相助초국적령윤자서인위공자유현제자상조,再有了封地재유료봉지,將不利於楚國장불리어초국。楚昭王於是取消了賜封孔子的念頭초소왕어시취소료사봉공자적념두,孔子也離開楚國공자야이개초국,返回衛國반회위국(事見사현<史記사기 ˙孔子世家공자세가>)。] |
| 64歲세(BC 488) - 周敬王주경왕 32年년 魯哀公노애공 7年년 ◇ 負函부함을 離떠나 衛위나라로 돌아옴. 65歲세(BC 487)王室왕실 ◇ 夫人부인 兀官氏올관씨가 別世별세함. ◇ 3月월, 吳오나라가 魯노나라를 侵入침입했지만 吳오나라가 크게 敗패함. 이 싸움에서 弟子제자 有若유약이 큰 功공을 세움. 67歲세(BC 485) ◇ 一說일설에는 夫人부인 兀官氏올관씨가 別世별세했다고 함. 68歲세(BC 484) ◇ 봄에 齊제나라가 魯노나라를 侵犯침범하자, 弟子제자 冉孺염유가 右軍우군을 指揮지휘하여 勝利승리함. ◇ 季康子계강자가 幣帛폐백을 보내 招聘초청하니, 13年년 間간의 天下遊說천하유세를 마치고 魯노나라로 돌아옴. ◇ 魯노 哀公애공과 季康子계강자를 도와 國政국정을 諮問자문했으나, 官職관직에 나가지 않고 弟子敎育제자교육과 五經오경 編纂편찬에 專念전념함. ◇ 詩시와 書서와 禮예를 整理정리함. |
| ▲ 16-2. 作歌丘陵작가구릉(丘陵구릉의 노래를 짓다) : 魯노나라 哀公애공 11年년(BC 484年년), 孔子공자가 68歲세 때 衛위나라에 있었다. 魯노나라 執政官집정관 季康子계강자가 禮物예물과 함께 禮예를 갖추고 사람을 보내 孔子공자에게 魯노나라로 돌아올 것을 請청하였고 孔子공자는 歸國귀국하였고, ‘丘陵구릉의 노래’(孔子공자의 本名본명이 丘陵구릉(孔丘공구)을 지어 自己자신의 感概감개를 吐露토로하였다. 作歌丘陵:魯哀公十一年,孔子六十八歲,在衛國。魯國執政大夫季康子派人攜帶禮物請孔子回國。孔子歸國,作丘陵之歌,抒發自己的感概(事見<史業子˙記問>)。 [作歌丘陵작가구릉:魯哀公十一年노애공십일년,孔子六十八歲공자육십팔세,在衛國재위국。魯國執政大夫季康子派人攜帶禮物請孔子回國노국집정대부계강자파인휴대예물청공자회국。孔子歸國공자귀국,作丘陵之歌작구릉지가,抒發自己的感概서발자기적감개(事見사현<史記사기˙ 孔子世家공자세가>)。] |
* 昊天호천 金春植김춘식 會員회원 提供제공.
| ▲ 17-1. 杏壇禮樂행단예악(살구나무 祭壇제단 上상에서 禮예와 樂악을 가르치다) : 孔子공자가 魯노나라에 돌아온 뒤, 十십 餘年여년 列國열국을 周遊주유하던 生活생활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魯노나라는 孔子공자를 任用임용하지 않았고, 孔子공자 亦是역시 官職관직을 求구하지 않았다. 그는 古代고대 文獻문헌인 書서(글), 典전(禮儀예의), 刪산(詩시), 定정(音樂음악), 贊찬(自然原理자연원리) 等등 文獻문헌을 整理정리하였으며, 살구나무 講壇강단에서 詩書禮樂시서예악으로 弟子제자를 가르쳤다. 弟子제자의 數字숫자가 無慮무려 3,000餘여 名명에 이르렀으며, 몸소 六藝육예에 通達통달한 者자가 72人인이었다. 杏壇禮樂:孔子回到魯國,結束了十幾年的周遊列國生活,但魯國不用孔子,孔子也不求仕,整理古代文獻,序<書>、傳<禮>、刪<詩>、正<樂>、贊<易>,以詩書禮樂教育弟子,弟子三千,身通六藝者有七十二人(事見<史記˙孔子世家>)。 [杏壇禮樂행단예악:孔子回到魯國공자회도노국,結束了十幾年的周遊列國生活결속료십기년적주유열국생활,但魯國不用孔子단노국불용공자,孔子也不求仕공자야불구사,整理古代文獻정리고대문헌,序<書서>、傳전<禮예>、刪산<詩시>、正정<樂악>、贊찬<易역>,以詩書禮樂教育弟子이시서예악교육제자,弟子三千제자삼천,身通六藝者有七十二人신통육예자유칠십이인(事見사현<史記사기˙ 孔子世家공자세가] |
| 69歲세(BC 483) - 周敬王주경왕 37年년 魯哀公노애공 12年년 ◇ 魯노나라에 居住거주함. ◇ 아들 鯉리가 마흔 아홉의 나이로 죽음. / 一說일설에는 顔回안회가 죽었다고 함. 70歲세(BC 482)王室왕실 ◇ 魯哀公노애공이 政事정사를 물음. ◇ “70歲세가 되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데로 行행해도 法度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칠십이종심소욕 不踰矩불유구].”라 告白고백함. 71歲세(BC 481) ◇ 魯노나라 歷史역사책인 『春秋춘추』를 지음, 魯노나라에서 기린을 잡음. ◇ 弟子제자 顔回안회가 죽자 “하늘이 날 버렸구나, 하늘이 날 버렸구나[天喪予천상여, 天喪予천상여].”라고 通哭통곡함. |
| ▲ 17-2. 跪受赤虹궤수적홍(무릎 꿇고 붉은 무지개를 받다) : 孔子공자의 著作저작이 完成완성된 後후, 몸을 淨潔정결히 하고 北斗星북두성을 向향해 完成완성을 告고하려고 할 때, 갑자기 붉은 무지개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노란 玉옥이 되었다. 거기에 이와 같이 새겨져 있었다. “孔子공자는 하늘의 命명을 받들어 일을 하고, 하늘의 法법에 順應순응하여 穩全온전한 忠誠충성으로 만들어 냈다.” 孔子공자는 무릎을 굽혀 절을 하고 받았다. 跪受赤虹:孔子著作既成,齋戒向北斗星告備,忽然有赤虹自天而下,化成黃玉,刻「孔提命作,應法為赤制」,孔子跪拜接受(參見<春秋演孔圖>)。 [跪受赤虹궤수적홍:孔子著作既成공자저작기성,齋戒向北斗星告備재계향북두성고비,忽然有赤虹自天而下홀연유적홍자천이하,化成黃玉화성황옥,刻각「孔提命作공제명작,應法為赤制응법위적제」,孔子跪拜接受공자궤배접수(參見삼현<春秋演孔圖춘추연공도>)。] |
| ▲ 18-1. 西狩獲麟서수획린(西서쪽에서 麒麟기린을 사냥하여 잡다) : 哀公애공 14年년(BC 481年년) 봄, 魯노나라에서 한 마리 異常이상한 짐승을 사냥하여 죽였는데 形狀형상이 마치 노루 같았고, 살로 된 뿔이 자라나 있었다. 孔子공자는 麒麟기린이라 여겼다. 麒麟기린은 仁愛인애의 動物동물로서, 世上세상에 道도가 비로소 出現출현하였으나, 只今지금 天下천하가 無道무도하니, 麒麟기린이 나타나자마자 죽임을 當당하였다고 여기고 ‘나의 道도가 不足부족하구나’ 라고 하여, 魯노나라 歷史書역사서 ‘春秋춘추’의 編纂편찬을 中止중지하였다. 西狩獲麟:哀公十四年春,魯國打獵打死一頭異獸,形狀像麕,長有肉角,孔子認為是麒麟。麒麟是仁獸,天下有道才會出現。現在天下無道,麒麟出而被殺,「吾道窮矣」,於是停止了魯國史書<春秋>的編寫(參見<史記˙孔子世家>、<公羊傳>、<孔子家語˙辯物>、<孔子業˙記問>)。 [西狩獲麟서수획린:哀公十四年春애공십사년춘,魯國打獵打死一頭異獸노국타렵타사일두이수,形狀像麕형상상균,長有肉角장유육각,孔子認為是麒麟공자인위시기린。麒麟是仁獸기린시인수,天下有道才會出現천하유도재회출현。現在天下無道현재천하무도,麒麟出而被殺기린출이피살,「吾道窮矣오도궁의」,於是停止了魯國史書<春秋>的編寫어시정지료노국사서<춘추>적편사(參見참현<史記사기˙孔子世家공자세가>、<公羊傳공양전>、<孔子家語공자가어˙辯物변물>、<孔子業공자업˙記問기문>)。] |
| 72歲세(BC 480)歷史역사 ◇ 겨울 衛위나라에 政變정변이 發生발생하여 弟子제자 子路자로가 죽음. 73歲세(BC 479) - 周敬王주경왕 41年년 魯哀公노애공 16年년 ◇ 夏曆하력 2月월 11日일(周曆주력 4月월 11日일, 陽曆양력 4月월 18日일) 生생을 마침. ◇ 魯城노성(現在현재의 曲阜곡부) 北북쪽에서 葬事장사지냄. ◇ 魯노나라 哀公애공이 祭文제문에서 孔子공자를 ‘尼父니보’라고 尊稱존칭함. |
| ▲ 18-2. 夢奠兩楹몽전양영(聖殿성전 두 기둥을 꿈꾸다 ) : 哀公애공 16年년(BC 479年년), 孔子공자의 病병이 重중하여 子貢자공이 問安문안하였는데, 孔子공자가 子貢자공에게 왜 이와 같이 늦게 왔냐고 물으며, 슬픔에 찬 노래를 하였다. “泰山태산의 무너짐이여, 대들보(棟梁동량)의 부러짐이여, 賢人현인의 衰弱쇠약함이여!” 눈물이 노래와 함께 흘렀다. 孔子공자가 말하길, “어제 꿈에 祭祀제사 聖殿성전 兩양 기둥 사이에 앉았는데, 恰似흡사 殷은나라 사람이 喪상을 치르는 儀式의식을 하는 것 같아서, 自己자기는 곧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7日일 뒤 4月월 乙丑時을축시(北京時間북경시간 1時시~3時시)에 孔子공자는 世上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夢奠兩楹:哀公十六年,孔子病重,子貢拜見,孔子問子貢為什麼來得這麼晚,並傷心地唱道:「泰山其頹乎!梁木其壞乎!哲人其萎乎!」淚隨歌下。孔子說,昨天夢中坐奠兩柱之間,很像殷人殯喪的制度,認為自己快要死了。四月乙丑去世(事見<史記˙孔子世家>、<禮記˙檀弓上>等)。 [夢奠兩楹몽전양영:哀公十六年애공십육년,孔子病重공자병중,子貢拜見자공배현,孔子問子貢為什麼來得這麼晚공자문자공위사마래득저마만,並傷心地唱道병상심지창도:「泰山其頹乎태산기퇴호!梁木其壞乎양목기괴호!哲人其萎乎철인기위호!」淚隨歌下눈수가하。孔子說공자설,昨天夢中坐奠兩柱之間작천몽중좌전양주지간,很像殷人殯喪的制度흔상은인빈상적제도,認為自己快要死了인위자기쾌요사료。四月乙丑去世사월을축거세(事見사현<史記사기˙ 孔子世家공자세가>、<禮記예기˙ 檀弓上단궁상> 等등)。] |
| ▲ 19-1. 治任別歸치임별귀(맡아 지키고 떠나 돌아가다) : 孔子공자는 魯노나라 都城도성 北북쪽 泗水사수 江강 岸언덕에 埋葬묻혔는데 弟子제자들이 心喪심상 3年년을 喪服상복을 입고 지낸 뒤 서로 作別작별을 告고하고 떠났으나, 子貢자공은 홀로 무덤 옆에 오두막을 짓고 3年년을 더 지킨 뒤 떠나갔다. 治任別歸:孔子死後埋葬在魯國都城以北的泗河邊上,弟子服喪三年,相別而去,獨有子貢在墓側結廬守墓六年才離去(事見<史記˙孔子世家>、<孟子˙滕文公上>等)。 [治任別歸치임별귀:孔子死後공자사후 埋葬在魯國都城以北的泗河邊上매장재노국도성이북적사하변상,弟子服喪三年제자복상삼년,相別而去상별이거,獨有子貢在墓側結廬守墓六年才離去독유자공재묘측결려수묘육년대리거(事見사현<史記사기˙ 孔子世家공자세가>、<孟子맹자˙ 滕文公上등문공상>等등)。] |
| ▲ 19-2. 漢高祀魯한고사로(漢한나라 高祖고조가 魯노나라에서 祭祀제사지내다) : 孔子공자 死後사후에, 사람들은 每年매년 時期시기에 맞춰 孔子廟공자묘에 祭祀제사를 지냈다. 孔子공자의 옛 집은 祠堂사당이 되었고, 孔子공자 生前생전에 使用사용하던 衣옷, 冠관, 거문고(琴금), 수레(車거), 冊책을 保管보관하였다. 漢한나라 高祖고조 劉邦유방은 曲阜곡부를 지날 때, 太牢태뢰(豚돈(돼지), 羊양, 牛우 三삼 가지 犧牲物희생물)를 바쳐 孔子공자에게 祭祀제사지냈다. 漢高祀魯:孔子死後,人們每年按時祭祀孔子墓。孔子故居被改作廟宇,保存著孔子生前使用過的衣、冠、琴、車、書。漢高祖劉邦經過曲阜,也以太牢(豬、羊、牛三牲)祭祀孔子(事見<史記˙孔子世家>)。 [漢高祀魯한고사로:孔子死後공자사후,人們每年按時祭祀孔子墓인문매년안시제사공자묘。孔子故居被改作廟宇공자고거피개작묘우,保存著孔子生前使用過的衣보존저공자생전사용과적의、冠관、琴금、車거、書서。漢高祖劉邦經過曲阜한고조유방경과곡부,也以太牢야이태뢰(豬저、羊양、牛三牲우삼성)祭祀孔子제사공자(事見사현<史記사기˙ 孔子世家공자세가>)。] |
*****(2026.08.25)
* 曉潭禪師효담선사 李起仁이기인 會員회원 提供제공.
| ◎ 현명한 사람은 늙을수록 단순하게 산다 ◎ |
| 현명한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심플한 삶을 선택하는건 우연이 아니다. 미니멀리스트 (Minimalist)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사람들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삶의 지혜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는 것, 그게 바로 단순하게 사는 방법이다. 1. 복잡한게 너무 피곤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 저것 다 해보고 싶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물건도 이것 저것 사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다. 관리할게 많으면 많을수록 스트레스도 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옷장에 옷이 가득해도 입을 옷이 없다고 고민하고, 친구가 많아도 진짜 힘들 때 연락할 사람은 몇 명 안된다는 걸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들은 정말 소중한 것들만 남기기 시작한다. 그러면 오히려 삶이 훨씬 편해진다. 2.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젊을 때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혼자 있으면 뭔가 외로워 보이고, 재미없는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된다. 진짜 나 자신과 편하게 지낼 수 있어야 다른 사람과도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혼자 커피 마시며 책 읽는 시간, 산책하면서 생각 정리하는 시간,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멍 때리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된다. 이런 시간들이 오히려 마음을 충전시켜 준다. 3. 어차피 죽으면 다 놓고간다. 젊을 때는 뭐든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도 많아야 하고, 친구도 많아야 하고, 경험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니 많다고 좋은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옷은 정말 좋아하는 몇 벌만 있으면 되고, 친구는 진짜 마음 맞는 몇 명이면 충분하다.여행도 이곳 저곳 다니는 것보다 한 곳을 깊이 있게 즐기는게 더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선택과 집중을 하다보니 오히려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4. 여백의 미를 발견하게 된다. 젊을 때는 뭔가로 꽉 채워져 있어야 안심이 됐다. 일정도 빽빽하게, 집도 물건으로 가득 채워놓고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여유로운게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된다. 아무 약속없는 주말 오후의 여유로움, 깔끔하게 정리된 방에서 느끼는 평화로움, 이런게 진짜 사치라는 걸 깨닫는다. 말로 꽉 채우지 않고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되고, 계속 뭔가 하지 않고 그냥 쉬는 것이 더 큰 힐링이 된다. |
| ♡ 기쁨수명(Joy Span)을 늘려라 ♡ |
|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쁘게 사는 시간을 얼마나 늘리느냐입니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명(Life Span)이 늘어난 만큼 기쁨수명(Joy Span)도 함께 늘어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이제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기쁨수명이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활기차게 움직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며 살아가는 행복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100세 시대의 진정한 목표는 **“몇 살까지 살 것인가?”가 아니라 “몇 살까지 즐겁고 의미 있게 살 것인가?”**에 있어야 합니다. 돈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고, 건강하다고 저절로 기쁜 것도 아닙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매일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때 우리의 기쁨수명은 길어집니다. 걷고, 배우고, 웃고, 사랑하고, 나누는 삶. 이 다섯 가지가 어쩌면 기쁨수명을 늘리는 가장 좋은 처방인지도 모릅니다. 수명은 시간의 길이이고, 기쁨수명은 삶의 깊이입니다. 남은 인생의 목표를 단순한 ‘장수(長壽)’에서 ‘희수(喜壽)’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오래 사는 것보다 잘 살고, 즐겁게 살고, 의미 있게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장수이며, 우리 인생의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기쁨수명’입니다. |
| [ 삶은 메아리 같은 것 ] |
| 삶은 메아리 같은 것입니다. 내가 삶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라보면 삶 또한 나에게 긍정적인 선물을 주고 내가 삶을 부정적인 생각으로 바라보면 삶 또한 나에게 부정적인 선물을 줍니다. 삶은 우리가 준 것을 충실하게 되돌려 주는 습관이 있습니다. 우리들 생각 말 행동 표정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삶은 또 벽에 다 대고 공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벽에 다 대고 공을 던지면 그 공이 어김없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처럼 세상에 불평을 던지면 자신에게 불평이 돌아오고 세상에 미소를 던지면 자신에게 미소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삶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으면서 삶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주지 않는다며 투덜대는 사람, 자신의 얼굴에 접근 금지라고 써 놓고서 다른 사람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은 아닌지요? |
| 🌳 '풀꽃' 詩人의 인생 🌳 |
| ‘풀꽃’이란 시(詩)로 꽤 널리 알려진 '나태주'라는 시인이죠. 시골 초등학교 교장(校長)으로 은퇴하신 분답게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시골 할아버지입니다. 나태주 시인이 쓴 시(詩) 중에 가슴에 울림을 주는 시(詩) 한편을 올립니다. 병원(病院) 중환자실 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을 만큼 중병을 앓고 있을 때,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썼다는 시(詩)입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라는 제목(題目)의 시(詩)였는데, 아내를 위해 하느님께 하소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느님! ]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느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病)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 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 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사는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느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 * 아내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 뭉뚝뭉뚝 묻어나는데,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남편의 글에 화답하여 쓴 아내의 글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남편이 드린 기도보다 더 간절한 기도, 시인 아내의 절창(絶唱)이었습니다. [ 너무 고마워요 ] 남편의 병상(病床)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 주신 하느님! 이제는 저 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罪)로, 한 번의 고통(苦痛)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느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詩)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 내 온 남자예요. 시(詩)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 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 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느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의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 * 부부가 나누는 지극한 사랑이 따뜻한 감동으로 전해집니다.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는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라는 기도 앞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마는. 이만 한 기도를 물리치시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토록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
* 曉潭禪師효담선사 李起仁이기인 會員회원 提供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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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81년,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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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 이야기 아니다"...우리도 대비해야 할 대형 재난 [Y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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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청소년 SNS 심야 셧다운에 하루 2시간 제한…꼬리 내린 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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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덮친 '빙하 재앙'...한국인 노동자 연락 두절 [뉴스특보 2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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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하나로 세계를 뒤흔들었다”…'노란 호박' 야요이 쿠사마, 97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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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킨지 "한국·일본, 경쟁 넘어 AI 반도체 공급망 함께 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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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40% 떨어졌다" 한국까지 와서 사가더니 이젠 '비상'…남아도는 쌀 때문에 난리 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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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日 주식 열풍 놓칠 수 없다"…K자산관리·투자앱으로 '승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