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강은 경주와 포항을 휘감고 동해의 영일만으로 흘러간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품어 안고 수자원과 자연생태계를 제공하며 생색내지 않고 흘러가고 있다. 현재 경주시와 포항시가 환경부의 지원을 받아 활력, 상생, 생태, 동해 등 4개의 주제로 구성된 ‘신 형산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활력과 문화가 살아있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친환경의 형산강을 기대해 본다.
형산강은 우리나라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강 가운데서 가장 길며, 유역에 형성된 충적평야도 가장 넓다. 형산강의 유로연장은 약 63㎞, 유역면적은 1,133㎢이다.
형산강(兄山江)이란 두 형산 사이를 흐르는 강이란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형산은 하나의 산이었다. 신라의 김부대왕(金傅大王)이 죽은 후 용이 되어 꼬리로 산을 치니 산이 갈라져 호수의 물이 빠지고 안강 일대의 늪은 옥토로 변했다 한다. 지금도 변함없이 형산과 제산 사이를 흐르고 있다.
발원지는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도리 인내산이란 주장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백운산이란 주장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형산강의 주 하천이 서천이고 북천, 남천이 지류이며 인박산, 묵장산, 지화곡산 등 세 곳에서 발원한 서천이 굴연천, 어량을 거쳐 형산포로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인박산은 지금의 백운산이고 묵장산은 치술령에 있으며 지화곡산은 낙동정맥에 있는 경주의 부산으로 추정된다.
환경부 하천 정보 관리시스템(RIMGIS)을 보면 하천의 발원지는 하구로부터 가장 먼 곳(최장 발원지)을 기준으로 정한다. 하천 정보 관리시스템의 형산강 발원지는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도리 인내산 동쪽의 616m 서쪽 계곡(해발 475m 지점)이다.
경주 월성을 중심으로 서쪽은 형산강, 북쪽은 북천, 남쪽은 남천이 있다. 형산강은 경주의 서쪽에 있어 서천으로도 불린다.
형산강은 두서면의 복안천과 두동면의 중리천이 합류해 경주 방향으로 흐르다가 이조천을 만난다. 서면 인내산에서 흘러온 대천을 만나 강폭을 넓히고 토함산에서 발원한 남천과 만난다. 토함산 서쪽의 암곡천과 황룡천이 덕동호와 보문호를 거쳐 북천이 되고 그 물은 경주의 중심부를 흘러 형산강에 합류한다. 칠평천과 기계천을 만나 안강평야를 만들고 형산강은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포항을 거쳐 영일만으로 흐른다. 형산강 하구의 삼각주에는 대도, 상도, 해도, 죽도, 송도 등 5개 섬이 있었다. 1968년 포스코가 들어서면서 유로가 변경되며 복개되었다. 복개된 하수도의 오염 문제가 심각해지자 포항 운하를 복원했다.
경주평야는 형산강 여러 지류 중 유역면적과 유량이 많은 대천, 남천, 북천이 합류하는 선상지(扇狀地)로 홍수의 피해가 적고 경작이 쉬워 고대 국가 형성에 유리한 지역이다. 경주는 그 선상지에 있다.
신라시대에는 서천을 황천(荒川), 남천을 문천(蚊川), 북천을 알천(閼川)이라 했다. 형산강은 신라의 건국 설화에서부터 등장한다. 삼국유사에는 ‘나정’ 근처에서 알을 깨고 나온 박혁거세를 알천에서 목욕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났다고 한다.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은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는데 입술이 닭 부리 같아 알천에 목욕시키니 부리가 떨어져 나가고 미인이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지금의 경주 지도를 보면 나정은 반월성을 기준으로 남천의 월정교를 건너 남산 쪽에 있다.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를 나정의 물이나 남천의 물에 목욕시키지 않고 멀리 있는 알천에 목욕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나정이 우물이 아니거나 박혁거세가 알천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형산강은 왕궁과 사찰, 신분별 주택지구를 구별하고 식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으며 권력 싸움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진흥왕 때 원화 준정이 남모를 몰래 죽여 묻은 곳이 알천이고 선덕왕 사후에 생긴 김경신과 김주원의 왕위 분쟁도 형산강의 범람에서 시작됐다. 원효가 요석공주를 찾아갈 때 일부러 다리에 떨어져 옷을 적신 곳도 문천이다. 충신 박제상이 고구려에서 돌아와 집에 들르지도 못하고 눌지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하기 위해 왜로 떠나자, 박제상의 부인이 모래밭에 드러누워 대성통곡을 하였다는 벌지지(伐知地)도 문천이다.
소리 없이 흐르는 형산강은 신라 시조의 탄생부터 신라 귀족과 백성의 삶을 간직하고 있다.
경주에 가면 습관적으로 하는 드라이브가 있다. 형산강 나정교를 지나 금성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오릉에 간다. 오릉 주차장에서 잠시 쉬었다가 오릉을 끼고 좌회전하여 가다 문천교에서 우회전하여 남천을 끼고 일정로를 달린다. 남천에는 월정교가 있고 북쪽으로는 교촌마을, 계림, 월성, 동궁과 월지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국립경주박물관이 있다. 북천의 알천남로를 따라가다 보면 보문호가 나온다. 차를 세워놓고 보문호를 한 바퀴 산책한 후에 더 케이 호텔 온천에서 목욕하고 고향 집에 간다.
남천과 북천을 따라 드라이브하다 보면 남천에서 놀던 친구들, 홍수로 넘실대는 북천에 겁도 없이 뛰어들어 팔뚝만한 초어를 잡던 일, 시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모임인 ‘한마음’을 생각하며 실없는 웃음을 날리기도 한다.
현대에는 관광업이 쌀이요 돈이다. 경주의 지명이나 도로명, 다리, 주소 등은 대부분 신라시대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2021년에는 양북면이 문무대왕면으로 바뀌었다.
형산강은 선상지를 만들고 고대 국가 형성에 유리한 경주평야를 만들었다. 경주평야는 사로국, 서라벌, 신라 천 년의 역사와 함께 경주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인간은 물과 함께 살아간다. 물이 역사를 만들고 그 역사는 물과 함께 흘러간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강을 이루듯이 내 생각을 한올 한올 꿰어 나만의 염주를 만들고 싶다.
2024.7.27. 김주희
첫댓글 형산강의유래와 여러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덕분에 새로운것을 많이알게되어 감사합니다
형상강과 경주 신라의 발상 많은자료를 알게됩니다 글을 조금더 다듬으면 더욱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형산강에 얽힌 역사와 지리 그리고 설화가 어우러진 한편의 산문. 마치 길위에서 인문학을 대하는 것 같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