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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86) 소패왕 손책의 활약상 <상편>
손책은 네 사람의 장수들과 궁을 빠져나오며 말한다.
"장군들! 반 시각내에 집을 정리하고 가솔들을 강동으로 은밀히 보내도록 하십시오."
그러자 황개가 반문한다.
"공자! 그렇게 서두를것까지야...."
"원술이 마음이 변하면 군사를 보내 추격할 겁니다. 지금은 원술과 싸울 때가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네사람의 장수는 일제히,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며 뿔뿔히 흩어졌다.
이리하여 소년장군 손책은 그날로 삼천의 군사와 혁혁한 장수 네 사람을 거느리고 원정 길에 올랐다.
손책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여범, 주치를 비롯하여 선친 때부터의 가신(家臣) 정보(程普), 황개(黃蓋), 한당(韓當), 조무(祖茂) 등의 믿음직스러운 장수들이었다.
손책 일행이 역양(歷陽)에 이르렀을 때, 홀연 젊은 무사 한 사람이 달려와 말에서 뛰어 내리며,
"손책 형님 오랜만입니다!"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오오, 자네는 주유 아닌가?"
손책은 너무도 반가워 자신도 말에서 뛰어내리며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젊은 무사는 여강(廬江) 출신의 주유(周瑜)로 손책과는 어린시절부터 각별히 지낸 죽마고우(竹馬故友)였다.
주유는 손책이 큰 뜻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그를 돕기위해 찾아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참 잘 와 주었네. 부디 나를 도와주게!"
"내가 형님을 위해서야 무엇을 아끼겠소. 목숨을 걸고 도와 드리리다."
두 사람은 마상에 올라 행군을 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형님! 대사를 도모하려면 많은 현인(賢人)이 있어야 하는데, 강동에 두 사람의 현인이 있다는 것을 아시오 "
"강동의 두 현인?.... 그 분들은 어떤 분인가?"
초야에 숨어 사는 두 현인으로, 한 사람은 장소(張昭), 또 한 사람은 장굉(張紘) 이라는 분이오. 장소라는 분은 천문 지리에 밝고, 장굉이라는 분은 재기(才氣)가 넘치는 분으로 경서(經書)에 능통하여 따를 자가 없다하여 두 분을 강동의 현자라고 합니다."
"그렇게나 휼륭한 분이라면 어떻게 해야 모셔올 수가 있겠나?"
"권력으로 굴복시키려 해도, 재물을 산처럼 싸 들고 가도 꿈쩍하지 않겠지만, 형이 직접 찾아가서 예의를 갖추고 뜨거운 마음으로 그들을 감동시켜 보시오. 그러면 마음을 움직이시지 않겠소?"
"그렇다면 내가 직접 그분들을 찾아 뵙기로 하겠네."
손책은 강동에 도착하자, 몸소 장소를 찾아갔다.
그리하여 자신의 뜻을 말하며 도와 줄 것을 정중히 간청하였다.
"하하하. 손 공. 보다시피 나는 초야에 묻혀 책이나 읽는 사람이오. 새삼스러이 어지러운 세상으로 나갈 마음이 없소이다."
"허나,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채찔질을 하셔서, 부친의 원수를 갚고 강동의 백성들이 선친의 시절처럼 걱정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손책은 수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뭐라 해도 내 마음은 바뀌지 않을 것이오. 이제 그만 돌아가 줬으면 좋겠소."
장소는 꿋꿋하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만, 허락을 하실 때까지 매일 찾아 뵙겠습니다."
그날부터 손책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같이 장소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장소의 서재에서 매일 같이 그가 읽는 책을 함께 물려 읽으며 여러 날을 함께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손책이 아침 문안을 드리자 장소가 손책을 곧 방안으로 들어 오라고 말하며,
"허어... 내가 손 공의 끈기에 졌소. 내가 힘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운명을 같이해 봅시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손책은 반색을 하며,
"정말이십니까?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많은 가르침을 주소서..."
장소가 손책에게 넘어가자, 장굉도 쉽사리 그의 편이 되었다.
장소가 인정한 사람이라면 믿어도 될 것 같아서였다.
그리하여 손책은 장소를 장사(長史)겸 무군중랑장(撫軍中郞將 )에 봉하고,장굉은 참모 정의교위(正議敎尉)에 봉하여, 자신의 외숙 오경을 내쫓은 양주 자사 (楊州 刺史) 유요(劉繇)를 칠 일을 함께 논의하였다.
유요는 한실 종친인 태위 유총(太尉 劉寵)의 조카요, 연주 자사 유대의 아우이다.
따라서 그의 휘하에는 많은 맹장이 있었다.
유요는 손견의 아들 손책이 자기를 치기 위해 많은 군사를 몰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장수들을 불러 모아 상의하였다.
"놈이 제 외숙을 단양 땅에서 내몰아 버린 데 대한 앙심을 품고 왔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 손책의 병력은?"
"군선 수십 척에 병사는 대략 삼천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장영(張英)은 즉시 우저(牛渚)의 요새에 잠복해 있다가 손책을 쳐부숴라."
그러자 말석에 앉아 있던 한 젊은 사람이 큰소리로 외친다,
"저를 선봉으로 삼아 주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적을 쳐부수겠습니다."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바라보니, 그는 동래 황현(東來 黃縣)의 태사자(太史慈)라는 젊은 장수였다.
유요는 태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자네같은 풋내기가 이런 싸움에 선봉을 맡다니, 아직은 자격이 없다!"
하고, 일언지하로 퉁겨버렸다.
태사자는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다물었다.
만좌중에 수모를 당한 것이 몹시 불쾌했던 것이다.
장영은 군령을 받고 군사를 거느리고 우저로 나아가, 군량 십만 석을 저각(邸閣)에 쌓아 놓고 손책을 기다렸다.
한편 손책은 군사를 거느리고 우저로 진군하였다.
양편 군사들이 우저에서 맞서게 되자, 장영이 선두에 나서서 손책을 바라보며 호령한다.
"이놈, 손책은 듣거라. 너같이 어린 놈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내가 누구라고 감히 덤벼오느냐?"
장영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노장 황개가 장영을 향하여 창을 휘두르며 달려나온다.
"이놈아! 헛소리 그만하고 내 창을 받아라!"
황개와 장영이 한창 어울려 싸우는데, 돌연 장영의 군 뒤에서 까닭모를 소란이 일어난다.
장영이 놀라 군사를 돌이키니, 손책은 그 기회를 이용해 맹렬하게 엄습했다.
장영이 급히 본진으로 돌아오다 보니 성안에서 난데없는 불길이 타오르며 검은 연기가 하늘을 덮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게 웬 불이냐?"
"어떤 놈이 우리를 배반하고 배후에서 군량고(軍糧庫)에 불을 질렀습니다."
성을 지키던 부하들이 성밖으로 쫓겨오며 소리친다.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일을 계획했단 말이냐?"
장영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와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그러나 그 내막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을 모르는 점에 있어서는, 의외의 승리를 거둔 손책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적들이 지키고 있던 성안에서 불을 놓아 우리를 도와 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손책이 부하들과 그런 공론을 벌이고 있을때, 저 멀리 산 위에서 삼백여 기의 군마가 깃발을 날리고 진고를 울리며 이리로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손 장군 편이니, 공격하지 마시오!"
선봉에 선 대장인 듯한 사람이 이쪽을 향하여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윽고 거리가 가까워져오자, 대장인 듯싶은 두 사람이 말에서 내려, 손 장군을 만나게 해달라고 외친다.
한 사람은 얼굴이 시커먼 데다가 수염이 몹시 사납게 난 장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눈이 날카롭게 빛나 보이는 구 척 장신이었다.
"내가 손책이오. 당신들은 누구시오?"
손책이 앞으로 나서며 대꾸하자, 검은 수염의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아, 귀 공이 손 장군이오? 나는 구강(九江)의 호적(湖賊) 두목으로, 장흠(蔣欽)이라 하고, 옆에 이 사람은 내 아우뻘 되는 주태(周泰)라고 하오."
"허어, 호적이라니?"
"호적이란 배 위에서 살면서 양자강(揚子江)을 오르내리는 배의 재물을 빼앗아 먹고 살아가는 일종의 해적이란 말이오."
그 소리를 듣자 손책은 정색을 하고, 꾸짖듯이 말했다.
"나는 불의를 징벌하고 양민을 돕는 사람이오. 그러한 나를 당신들은 무슨 까닭으로 찾아왔소?"
"우리들은 손견 장군의 아드님인 손책 장군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 옛날 양민의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개과천선(改過遷善)하려고 찾아온 것이오."
"음 ....선친의 양민시절로 돌아가겠다고요?"
"그렇소. 그렇다고 무작정 찾아와서 부하로 써달라기는 너무도 몰염치한 것 같아, 우리들이 장영의 진영으로 달려 들어가 군량고에 불을 질러 ,결국은 그들을 쫓겨가게 만든 것이오."
"응? 그러고 보니 적진에 불을 지른 사람들은 바로 당신들이었구려!"
손책은 휘하의 장수들에게,
"사람들이 솔직해 보이니,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 어떻겠소?"
하고 물었다.
그리하여 장흠과 주태는 손책의 부하가 되었다.
손책을 이로써 병력이 사천 가까이 불어난 데다가 군량이 매우 풍족하게 되었다.
한편, 철벽 같던 방어선이 불과 반나절만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는 보고를 받은 유요는 장영을 불러놓고 크게 분개하였다.
"네가 무슨 얼굴로 살아서 내 앞에 돌아왔느냐. 반나절만에 우저를 내 준것을 보니, 적들이 나타나자마자 겁을 집어먹고 내뺀 것이 틀림없다. 너 같은 놈에게 요새를 맡긴 내가 잘못이다. 네놈이 책임을 져라! 스스로 못하겠다면 내가 목을 쳐주마!"
유요는 칼을 빼어들고 하늘이 얕다고 펄펄 뛰었다.
"자,자 장군. 진정하십시오."
"다시 한번 생각하십시오."
휘하의 막료들이 유요를 에워싸고 만류하였다.
"애기를 들어보니 배반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장영 장군도 어쩔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상대는 갖 스물을 넘은 애송이 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요의 막료들이 앞다투어 위로했다. 그러자 유요는,
"옆에서 그렇게나 말리니 내 오늘은 용서하겠다."
하고 칼을 도로 넣었다. 그리고 휘하의 장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 더이상 손책이 제멋대로 굴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이제 지휘는 내가 직접 하겠다!"
유요는 본거지인 영릉성(零陵城)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신정산(神亭山) 남쪽 기슭에 진을 쳤다.
손책의 군사들도 이미 전날 밤에 신정산 북쪽에 진을 치고 있었다.
손책은 적과 대치한 채 , 촌락의 노인들을 불러 여러가지를 물어 보았다.
"이 산에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영릉(靈陵)이 있다 하던데 어딥니까?"
"광무제의 영묘는 신정산 고개위에 있습니다."
손책이 그 말을 듣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한다.
"내가 간밤에 광무제를 뵈었으니 오늘은 그곳에 참배를 다녀오겠소."
그러자 장사 장소(長史 張昭)가 말한다.
"신정산 남쪽에는 적들이 있으니, 광무제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은 후일로 미루는 것이 좋겠소이다."
손책은 자신있게 웃으면서 말했다.
"신령께서 나를 도우시는데,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다음날 손책은 무장을 갖추고 광무제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의 뒤에는 정보, 황개, 한당, 장흠, 주태 등 열세 명의 장수들이 따라나섰다.
이윽고 묘전에 도착하자, 손책은 묘전에 꿇어앉아 분향하고 축원을 올렸다.
"신령이시어! 저로 하여금 망부(亡父)의 유업을 계승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만약 제가 강동을 평정하면 묘소를 재건하여, 사시사철 성대한 제사를 올리도록 하겠나이다."
축원을 마친 손책이 거침없이 남쪽 적진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여러 장수들이 깜짝 놀라며 만류한다.
"장군! 그리로 가시면 적진입니다. 가까이 가시면 위험합니다."
"나도 알고 있소. 그러나 여기까지 왔으니, 적의 동정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옛? 군사도 없이 우리끼리요?"
"정탐은 인원이 적을수록, 적의 눈에 띠지 않을 것 아니오?"
그리하여 일행은 적의 진지가 바라다 보이는 곳까지 진출했다.
그러자 이들의 접근을 알아본 척후병에 의해 유요에게 즉각 보고가 들어갔다.
"장군님! 적장 손책이 불과 십여 명의 부하만을 데리고 우리 진지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뭐? 손책이 직접 나타났다구?... 그렇다면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술책이 아닐까?"
그러자 태사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장군님! 이런 기회에 손책을 잡지 않는다면, 기회를 잃는 것입니다."
태사자는 그렇게 말하고, 명령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는 듯이 말에 뛰어 오르며,
"용감한 자는 나를 따르라!"
하고 외쳤다.
그러자 한 장수가 그의 뒤를 따라 말에 올라타며,
"태사자야말로 용감한 장수다. 나도 그를 따라가리라!"
하고 말하며 뒤를 쫓는다.
한편, 적의 포진을 살펴본 손책이 말머리를 돌려 본진으로 돌아가려는데,
"손책을 도망가지 마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이 중에 누가 손책이냐?"
하고 묻는다.
"내가 손책이다. 그대는 누구냐?"
"나는 동래 태생 태사자다. 손책을 잡으러 왔으니. 각오하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태사자는 창을 꼬나쥐고 비호같이 덤벼들었다.
그리하여 창과 창이 서로 부딪쳐 불꽃이 튀고, 먼지가 자욱히 일어났다.
이렇게 오십여 합을 넘겼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 손책의 창이 태사자의 옆구리를 스치고 땅에 힘차게 꽂혔다.
그러자 태사자는 그제서야 전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숲속으로 쫓겨갔다.
손책은 말을 달려 쫓아가면서도 속으로 경탄했다.
(태사자, 저 사람은 보통 맹장이 아니로구나!)
태사자도 쫓기면서도,
(과연 소문에 듣던 대로 손책은 천하의 맹장이로구나!)
하고 제각기 감탄해 마지않았다.
숲속은 말을 타고 싸울 수가 없을 정도로 나무와 수풀이 무성했다.
태사자는 말에서 뛰어내려 창과 칼을 내던지더니 맨손으로 대항한다.
그러자 손책도 말을 버리고 맨주먹으로 달려들었다.
손책은 당년 이십일 세의 혈기 넘치는 용장이고, 태사자는 서른 살의 맹장이 아니던가.
두 사람은 주먹이 들어가고 발길이 나오고, 복장을 지르면 정강이를 걷어차고, 그야말로 쌍방이 육박전을 전개하였다.
이러다보니 어느틈에 두 사람의 전포(戰袍)는 찢어지고 흙투성이가 되었다.
손책이 재빠르게 태사자의 허리에 찬 단도를 빼앗아 들었다. 그
러자 태사자는 손책의 투구를 훌떡 벗겼다.
손책은 단도로 태사자를 찌르려 하였고, 태사자는 손책에게 빼앗은 투구로 단도의 공격을 막았다.
그순간, 두 사람의 뒤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며 유요의 군사 천여 명이 내달려 오는 것이 보였다.
(아차, 큰일났구나!)
손책은 위험을 깨닫자 태사자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 하였으나, 그나마 태사자는 손책의 투구를 움켜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유요의 군사들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번에는 손책의 편에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정보, 황개 등 장수들이 손책을 구하려고 달려들었다.
손책과 태사자는 싸우기를 단념하고 제각기 자기 편으로 돌아갔다.
마침 그때 소나기가 심하게 퍼부어서 그날의 싸움은 그것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자, 손책은,
"오늘이야말로 태사자를 사로잡고 유요의 목을 베어 오리라."
하고 외치며 다시 적진으로 말을 달렸다. 손책은 어제 싸울때 빼앗은 태사자의 단도를 깃대 꼬두머리에 꽂아들고 적진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태사자는 듣거라! 무인으로서 무기를 빼앗기고 도망을 치다니 부끄럽거든 당장 싸우러 나오라!"
그러자 이번에는 태사자가 깃대 끝에 어제 빼앗은 손책의 투구를 씌어 들고 나오며,
"손책아! 이 투구는 네 대가리가 아니더냐? 하하하하."
하고 소리를 크게 하여 웃는 것이 아닌가.
그 소리에 손책은 약이 바짝 올랐다.
"그렇다면 너와 나는 오늘이야말로 최후의 승부를 겨루자!"
그러자 이번에는 노장 정보가 손책의 앞을 가로 막으며,
"적의 욕설에 흥분하여 경솔하게 끌려 나가면 큰일 납니다. 태사자는 내가 맡을 터이니 장군은 잠깐 기다려 주시오."
하고 말하더니 나는 듯이 달려나가 싸움을 가로맡는다.
그러자 태사자는 정보를 보고 코웃음을 친다.
"동래의 태사자는 늙은이를 상대로 싸우지 않으련다! 빨리 손책을 내보내라!"
"이 철부지야! 건방진 소리 그만하고 칼을 받아라!"
정보는 늙은이라는 소리에 크게 화를 내며 태사자에게 덤벼들었다.
드디어 두 장수는 어우러져 싸우게 되었고, 대치한 양 군은 두 사람의 싸우는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일 합, 이 합, 삼 합....젊은 태사자도 날쌔지만, 산전수전을 모두 겪어낸 백전노장 정보도 젊은이 못지 않게 날쌔고 용맹하였다.
이런 싸움이 삼십 합이 다 되도록 승부가 나지 않았다.
바로 그때에 적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유요가 급히 징을 쳐서 태사자를 불러들이며 군사들에게는 퇴각령을 내렸다.
태사자는 정보와 싸우다 말고 영문을 몰라하며 급히 말을 돌려 진지로 돌아왔다.
"주상, 무슨 일로 퇴군령을 내리셨습니까?"
태사자는 유요에게 물었다.
"이 사람아, 큰일 났네. 우리가 목전의 적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주유가 우리네 본성(本城)을 급습해 왔다는 거야. 뿐만 아니라 진무(陳武)란 자가 적과 내통하여 성을 곱게 내주었다고 하니,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유요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말했다.
"옛? 본성을 빼앗겼다구요?"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본성을 잃었으니 우선 말릉으로 피하여 재기의 기회를 옅보는 수밖에 없겠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유요는 군사를 이끌고 말릉성을 향하여 달렸다.
싸움에 있어서는 임전무퇴의 맹장인 태사자도 대세가 기우는 것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태사자는 눈물을 머금고 유요의 뒤를 따라 퇴각의 길에 올랐다.
그러나 퇴각하는 적을 그냥 내버려 둘 손책이 아니었다.
"유요가 주유에게 본성을 빼앗기는 바람에 군사들이 전의를 상실했을 것이니, 오늘밤에 기습을 하여 적을 모조리 쳐부숴야 합니다."
장사 장소가 그렇게 제안하여, 손책은 그 말을 옳게 여기고, 이날 밤 군사를 여러 길로 나누어 유요를 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