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kyo Babylon
▷ 작품 소개 - 동경 바빌론이란 작품에 대한 이야기
여기 한 소년이 있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그로 인해 어느 누구보다 아름답고 슬픈 미를 간직할 줄 아는 이였습니다. 소년은 자라면서 인간이란 주위 상황에 따라 자신의 꿈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당연한 운명으로 받아 들이며 행해갔습니다.
소년은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생업의 특성상, 일상적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 몇 가지 사항에 극단적으로 처한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소년은 그 극단적 상황에 처한 이들의 고민과 선택을 보며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애정과 증오와 슬픔과 괴로움 등을 하나하나 받아들여 갔습니다. 소년의 내부가 너무 깨끗한 터 였던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마음이 너무도 자연스레 그에게 각인되고 기억된 것은. 본래 새하얀 캔버스에는 어떤 색이든 그 존재감을 확고히 드러낼 수 있기 마련이지요. 물론, 캔버스와 같은 색인 하얀 색은 예외가 됩니다. 그래서 다른 색을 가진 다른 이들의 마음은 쉽게 갈무리하여 새길지언정, 자신의 하얀 마음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었던 것일 테지요. 진정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그런 것일 터입니다. 결코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고, 혼자서는 모든 마음의 길을 다 받아들일 수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소년은 늘 자신의 주위에서 자신을 돌봐주는 두 명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마음을 알아채는 것이 너무 늦었던 탓인지, 그렇지 않으면 너무 순수한 마음에 너무 순수한 방법으로 색을 물들여 갔던 탓인지, 그는 그 둘을 너무도 허무하게 잃어 버리게 되고 맙니다. 자신이 살아온 「멸망을 향해 즐기며 가고 있는 도시 - 동경」에서의 모든 인간애를 마음에 담고, 그 어느 것보다 무서울 수 있는 인간에의 배신으로 인해 그는 결국 자신의 새하얀 캔버스에 최종의 색을 입히는 겁니다. 아니, 그것은 입혔다기 보다는 지금까지 갈무리 해 온 많은 색들이 모여 만들어낸 것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여러 가지 색이 모여 섞이면 검은 색이 되는 이치와 부합되는 일이었을 지도요. 물론 그 색이 모여 휘저어 섞이는 일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이 촉매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일반적인 색상은 모이면 검은 색이 되지만, 빛은 모일수록 하얀 색이 되어가는 것은 미처 깨달을 겨를이 없었을 지도요....)
『동경 바빌론』은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환경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영향. 그 환경을 만들어 내는 인간들의 노고와 욕망. 그 영향으로 인한 인간의 삶 - 그 자체.
발달한 불야성의 도시에서 인간이 겪는 고난. 그 고난을 겪는 이들의 선택과 마음. 토지문제, 인간성 상실의 문제, 범죄, 노인 문제 등을 결국 인간의 배신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에 귀착시키면서, 단순한 현실 사회의 모순에 따른 사회상의 고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소년의 가슴 아픈 변모를 통한 일종의 경고를 담은 작품이라고. (안타까운 것은 고발과 경고만큼 그 해결책은 명확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일까요, 하지만 아직 그 바톤을 이어 받았다고도 할 수 있는 『X』의 결말이 나지 않았으니까, 이것도 섣불리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메라기 스바루」- 그는 CLAMP가 지정한... 뭐라고 할까요, 하얀 캔버스... 아니, 그 보다는 기록장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는 누구도 범접치 못할 것처럼 보이던 순수한 하얀 마음으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많은 문제들의 많은 마음을 담아 갑니다. 그로 인해 비록 자기 본래의 하얀 색을 잃어 버릴 지언정, 타인의 마음만큼은 어느 무엇보다도 말끔하게 저장시켜 가는 겁니다. 그는 음양사의 장이라는 입장에 거의 반 강제적으로 앉혀지지만, 언젠가는 그 족쇄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희망」만큼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에겐 누구보다도 엄격하다...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 역시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는 한 인간에 불과할 뿐이라는 거죠. 그 때문에, 그의 캔버스는 단순한 기록장에서 벗어나, 타인의 마음과는 다른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겁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 충실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과감히 버리는 결단력을 보여 줍니다. 이건 다른 작품에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지만, 지금까지의 스바루라면 당연한 지구를 지키는 용의 의무를 내치고, 복수를 이루겠다는 자신의 욕망-소망이라고 표현되죠. 또한, 이 소망은 사실 복수 외에 다른 것도 담고 있는 듯 합니다만, 여기서는 이만 각설하고;;-을 쫓아가고 마는 겁니다. 순수하게 인간으로 시작해, 고난을 겪고, 이겨 나가고 다시 좌절하고, 깨어나 자신의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모습. 다른 이들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의 인간의 삶. 결국, 그는 CLAMP가 내세운 「인간사를 살아가는 인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메라기 호쿠토」- 그녀는 혼자일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가 살아가는 데 필수 불가결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뒤를 받쳐주는 버팀목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의지할 수 있는 상대로서, 인간-스바루-의 뒤를 받쳐줄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여러 가지 조언을 애정이란 이름으로 주고, 아껴주는..이라고 할까요. 인간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으므로 해서, 약해지기도 하고 강해지기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로 인한 영향과 결단이 적지 않다는 거죠. 따라서 그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인간의 삶에 큰 획을 긋는 요소가 되고 맙니다. 즉, 그 존재의 유무와 존재 정도에 따른 인간의 삶의 변화. 세이시로의 배신으로 인한 스바루의 실혼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바로 호쿠토였었죠.-실제 행동의 목적이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귀결점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호쿠토는 「인간의 삶에 있는 버팀목 혹은 많은 변수」라고 할 수 있겠군요.
「사쿠라즈카 세이시로」- 위와 연관을 짓는다면, 그의 역할은 당연한 부분에 도달하게 되죠. 아마도 그는 인간이 가진 환경이 주는 고난과 행복의 집결 혹은 그로 인한 영향. 그의 양면적인 모습은 작품 전반에 걸쳐 등장합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달콤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도, 현실은 냉혹히 수많은 고난을 닮고 있는 인간사 그 전체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떨 때는 인간을 돕고, 어떨 때는 칼을 들이밀고, 어떨 때는 이용하고, 어떨 때는 다독여 주는.... 스바루라는 한 인간이 겪는 변모에 그의 영향이 매우 지대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겁니다. 스바루와 세이시로라는 캐릭터에 관해서 라면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이건 다른 파트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작품상에서의 캐릭터에 대한 것은 이정도로 그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어쨌든 『동경 바빌론』이란 작품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단연 우선적으로 CLAMP의 수작으로 칭해지고 있는 만큼, 모든 수작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즉, 인간이라는 그 자체-인간의 감정, 변화, 삶 모든 것-를 현실 상황과 결부 지어 뛰어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도 CLAMP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이 작품이고요. 솔직히 말한다면, 작품 그 자체보다는 작품 보다 더 간결히 인간 그 자체의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들 탓인 이유가 더 큽니다만....
『동경 바빌론』은 1990년부터 Shinshokan의 계간지「South」(후에는 월간지로 바뀝니다만.)에서 1993년까지 연재(단행본 마지막 권인 7권은 1994년 3월에 발행되었지만요)되어, 총 7권의 단행본과 2편의 OVA와 1편의 실사영화, 4편의 라디오 드라마와 2편의 뮤직 클립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2000년 11월에서 12월에 걸쳐 총 5권의 문고판으로도 발행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주) 대원 출판사에서 총 7권의 번역본이 나온 바 있습니다.
※ 위에 적힌 사항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말 그대로의 사견일 뿐이므로, 부디 괘념치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