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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쥬 비제 (Georges Bizet)의 "Je crois entendre encore (그대 목소리를 다시 한 번)"
작곡 : Georges, Bizet (1838-1875) 의 Opera, 진주조개 잡이 (Les Pecheurs de Perles) 中,
노래 : Slava, counter-tenor (슬라바, 카운터 테너) 입니다.
Georges Bizet 비제 / 프랑스 작곡가. 파리 출생 Georges Bizet, 1838∼1875
비제 [Georges Bizet 1838∼1875]
프랑스 작곡가. 파리 출생. 부모가 음악가로 일찍부터 음악적 환경에서 자랐다. 9살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여 F. 알레비·C. 구노등에게 배웠다. 재학중에 작곡한 《교향곡 C장조(1855)》는 빈의 고전주의 양식과 프랑스적 선율의 절묘한 결합 등이 특징인데 비제의 작품 중에서도 빼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1857년 칸타타 《클로비스와 클로틸드》를 작곡하여 <로마대상>을 받아 19살 때 로마에 유학하였다. 재학시절 이탈리아어 대본으로 도니제티양식의 오페라 《돈 프로코피오》를 작곡했다. 63년 작곡된 《진주잡이》는 이국적인 선율, 관현악의 표현으로 색채감·우아함 등을 갖추었지만 비제 특유의 서정적 음악 특성이 나타나 있지 않다. 67년 작곡된 《아름다운 퍼드의 아가씨》는 이전 오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습적 특징들 조차 신선하고 우아한 어법으로 구사되어 있다.
71년 피아노곡 《아이들의 놀이》 중에서 발췌한 관현악판, 72년 A. 도데의 희곡 《아를의 여인》의 부수음악(27곡)과 그 가운데 4곡을 연주회용으로 편곡한 조곡 《아를의 여인》이 각각 성공을 거두었다. 75년 초연 당시 사실주의적 성향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던 《카르멘》은 같은 시대 프랑스 작가 메리메의 소설을 기초로 만든 작품으로 오페라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제 4 막의 대단원 장면에서 합창과 관현악이 숨막힐 듯이 밀집되고 응결하는 극적효과에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지역적 색채, 진솔한 감정, 기술적 화려함이 풍부한 선율과 어우러져 음악가는 물론 일반 청중에게도 인기있는 작품이 되었다.
Georges Bizet (1838∼1875)
파리음악원에 다니며 구노와 알레비에게 사사(배웠다는 뜻)했는데 나중에 알레비의 딸과 결혼했다. 로마대상(콩쿨의 일종)의 최초의 도전은 2등으로 끝났는데 제 1회 때와 제 2회 때(이때는 1등을 차지)의 도전 사이에 첫 무대작품 '미라클 박사'(1856)을 작곡해, 입상작품은 부프 파리지앵에서 상연한다는 조건으로 오펜바하가 작품을 모집한 콩쿠르에 제출했다. 결과는 비제와 샤를 르코크가 상을 나누어 갖게 되고, 그 오페라타는 1857년에 상연되었다. 그것은 장래성을 보이는 작품이었지만 롯시니의 모방이 눈에 띄었다. 또 한 곡의 초기 오페라 '돈 프로코피오'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부파 양식으로 솜씨 있게 쓴 작품으로, 비제 최고작에서 볼 수 있는 서정적인 표현성도 약간 나타난다.
최초기의 작품 중 최후를 장식하는 것은 5막 짜리 그랜드 오페라 '이반 4세'이다. 이 작품은 그 소재는 장대한 것이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설정이 이국적이었기 때문에 이 작품 중 뛰어난 음악의 일부는 후기의 다른 작품에 전용되었다.
스리랑카를 무대로 한 비제의 첫 성숙작품 '진주잡이'(1863)는 이 작곡가각 발전의 분수령에 도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선율을 만드는 방법에는 아직도 구노의 영향이 보이며, 베르디에서 바그너에 이르기까지의 작곡가들의 영향도 인정된다. 이 작품에서 비제는 여사제 레일라를 상징하기 위해 전주곡의 선율을 사용하는 등, 성격묘사를 하려고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음악에는 이국적 요소에 대응한 뛰어난 점도 있다. 또 이 오페라 화성양식에는 대담한 점이 보이며, 반음계적 악구 밑에 페달음이 길게 지속되는 게 가끔 있는데, 이것은 나중에 비제의 화성의 특색들 중 하나가 된다.
그 후로도 많은 작품들을 내고 있으나 비제는 좋은 대본작가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후의 작품인 동시에 최대작품이기도 한 '카르멘'에 이르러서, 비제는 거의 완벽한 대본을 만났다. 무대로 골라진 스페인은 프랑스에서는 매우 가깝지만 이국적 요소로 가득 차 있는 것은 틀림없다. '카르멘'의 대본은 오늘까지 씌어진 대본 중에서 최고라고 통상 여겨진다. 메리메의 소설에서 각색한 것인데, 그것은 1870년대 파리의 청중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중에 가서야 높은 인기를 얻은 작품의 하나가 되었다. 따라서 초연은 실패로 끝났다. 청중은 카르멘 그 주인공의 성격에 화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카르멘은 기고만장하여 남자의 마음을 유혹하는 여성으로, 처음부터 담배를 피우면서 무대에 모습을 나타낸다(그녀는 담배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현실적인 생활의 이런 묘사는, 후에 푸치니가 '베리즈모(사실주의)오페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카르멘은 바로 미카엘라의 순진과는 대조적인 입장에 놓이게 되는데, 대본이 제공하는 성격묘사의 기회를 비제는 더할 나위 없이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오페라 코믹이라는 명칭으로부터 그때는 이미 희극적인 연상이 없어져 가고 있었다 하더라도, 마지막 장면에 살인이 들어 있다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이 작품이 오페라 코믹이라고 말해진 것은, 소재가 그 비극적 요소도 포함해서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채택되었다는 이유밖에 없다. 실제로 '카르멘' 이후 그랜드 오페라와 오페라 코믹의 구별은 완전히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음악적으로 비제는 유명한 '하바네라'의 경우처럼 스페인풍의 음향을 가진 선율들을 이용하기도 했으며(이 선율은 실제로, 이라디에르작인 스페인계 미국 선율을 빌린 것이었다), 극의 내용에 알맞은 무엇인가를 거기에 함께 담았다. 이와 같이 카르멘의 '하바네라'는 에로틱하며 매혹적인 곡으로 다듬어졌다.
또 하나의 예는 에스카밀료가 노래하는 '투우사의 노래'이다. 이 곡은 악보에 '바보스럽게' 노래하라고 지정되어 있는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허세를 부리며 부르는 것이다. 또한 그 외의 특색으로는, 전곡을 통해 여러 가지 장면이 나타날 때마다 시도주제를 사용한 점과, 그 방면의 달인으로서 비제의 명성을 확립한 색채풍부한 관현악법이 있다. '카르멘'은 이 시대 최고의 오페라중 하나이다. 명료하며, 도덕적인 제약을 받고 있지 않다는 점, 일상생활에 접근하고 있으며 발군의 성격묘사가 되어 있는 것 등으로, 후에 바그너에 대한 '지중해적인' 해독제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자료출처: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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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crois entendre encore (그대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노래 : Slava, counter-tenor (슬라바, 카운터 테너)
Je crois entendre encore, 내가 다시 들은 것 같다, Caché sous les palmiers, 야자수 아래 숨어서, Sa voix tendre et sonore 그 목소리를 부드럽고 낭랑한 Comme un chant de ramier! 마치 산비둘기 노래처럼! O nuit enchanteresse! 오 매혹적인 밤이여! Divin ravissement! 숭고한 황홀경이여! O souvenir charmant! 오 매혹적인 추억이여! Folle ivresse! doux rêve! 광적인 취기여! 달콤한 꿈이여!
Aux clartés des étoiles, 투명한 별빛아래, Je crois encore la voir, 내가 그녀를 다시 본 것 같다, Entr'ouvrir ses longs voiles 그녀의 긴 베일을 살짝 열고 있는 Aux vents tièdes du soir! 훈훈한 저녁 바람에! O nuit enchanteresse! 오 황홀한 밤이여!... O nuit enchanteresse! 오 매혹적인 밤이여! Divin ravissement! 숭고한 황홀경이여! O souvenir charmant! 오 매혹적인 추억이여! Folle ivresse! doux rêve! 광적인 취기여! 달콤한 꿈이여!
Charmant souvenir! 매혹적인 추억이여! Charmant souvenir! 매혹적인 추억이여!
Slava, counter-tenor (슬라바, 카운터 테너) (1964, Vyatchelsav Kagan-Paley)
Slava, counter-tenor (슬라바, 카운터 테너)는 1964년 러시아 출생으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카운터 테너 가수인데 어린 시절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공부하고 벨로루시 음악원을 거쳐 벨로루시 아 카데믹 카펠라에서 노래를 시작, 1987년경 슬라바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과 공연한 슈만의 "레퀴엠"에서 소프라노 솔로를 맡아 공식 데뷔하였고 1995년 일본에서 Caccini의 Ave Maria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언뜻 들어 보면 여성의 목소리가 아닌가 생각 할 만큼 매끄럽고 아름다운 여성(女聲)의 음역을 가진 카스트라토(중세까지 교회에서 여성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특히 소년 시절에 거세하여 변성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썼다고 합니다.) 로 착각 할 정도의 미성(美聲)인데다 호흡이 길고 성량도 풍부하여 성역(聲域)이 넓은 특징으로 더욱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듯 합니다.
또한 이 곡은 세계의 유명한 다른 가수들에게도 많이 불리어 졌는데 1968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출생으로 피렌체 음악학원 정통성악을 공부한 출중한 외모와 미성으로 유명한 알렉산드로 사피나(Alessandro Safina)와 1962년 남아공화국 아디에무스 출신 미리엄 스토클리(Miriam Stockiey)의신비한 음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듀엣도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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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의 "Je crois entendre encore 그대 목소리를 다시 한 번"
어쩌면 이렇게 천상의 노래처럼 아름다운 멜로디일까 감탄하게 만드는 곡들이 있다. 짧고 단순하면서도 서정성이 풍부한 경우에 그런 느낌이 더욱 커진다. 비제가 약관 26세에 작곡한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중 ‘그대 목소리를 다시 한 번(Je crois entendre encore)’이 그런 예이다. 실론(지금의 스리랑카)을 배경으로 한 이국적인 작품인데, 주인공 나디르는 베일을 쓴 채 이 고장에 온 새 무녀(巫女)의 목소리만 듣고도 한때 사랑했던 여인임을 알아채고 꿈결 같은 감정에 사로잡힌다.
이 곡은 대부분의 음표가 고음역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무척 감미로우면서도 아찔한 느낌을 준다. 비제가 이런 곡을 쓸 수 있었던 비결은 보통의 테너보다 가늘고 높은 소리를 내던 오트 콩트르라는 프랑스 옛 전통을 되살린 것에 있다. 고유의 스타일을 잘 이용한 덕분에 프랑스 오페라다운 뉘앙스를 최고로 끄집어낸 명곡이 될 수 있었으리라 ...
BIZET, Georges (1838-1875)
BIZET, Georges (1838-1875)Bizet, Georges (baptismal names, Alexandre-César-Léopold), great French opera composer; b. Paris, Oct. 25, 1838; d. Bougival, June 3, 1875. His parents were both professional musicians: his father, a singing teacher and composer; his mother, an excellent pianist. Bizet’s talent developed early in childhood; at the age of 9 he entered the Pans Cons., his teachers being Marmontel (piano), Benoist (organ), Zimmerman (harmony), and (for composition) Halévy, whose daughter, Genevieve, married Bizet in 1869. ~n 1852 he won a 1st prize for piano, in 1855 for organ and for fugue, and in 1857 the Grand Prix de Rome. Also in 1857 he shared (with Lecocq) a prize offered by Offenbach for a setting of a 1-act opera, Le Docteur Miracle; Bizet’s setting was produced at the BouffesParisiens on April 9, 1857. Instead of the prescribed Mass, he sent from Rome during his 1st year a 2-act Italian opera buffa, Don Procopio (not produced until March 10,1906, when it was given in Monte Carlo in an incongruously ed. version); later he sent 2 movements of a sym., an ovçrture (La Chasse d’Ossian), and a 1-act opera (La Guzla de l’Emir; accepted by the Paris Opera-Comique, but withdrawn by Bizet prior to production). Returning to Paris, he produced a grand opera, Les Pêcheurs de perles (Theatre-Lyrique, Sept. 30, 1863); but this work, like La Jolie Fille de Perth (Dec. 26, 1867), failed to win popular approval. A 1-act opera, D.jamileh (Opéra-Comique, May 22, 1872), fared no better. Bizet’s incidental music for Daudet’s play L’Arlésienne (Oct. 1, 1872) was ignored by the audiences and literary critics; it was not fully appreciated until its revival in 1885. But an orch. suite from L’Arlésienne brought out by Pasdeloup (Nov. 10, 1872) was acclaimed; a 2nd suite was made by Guiraud after Bizet2~ death. Bizets next major work was his masterpiece, Carme’il (based on a tale by Mérimée, text by Halévy and Meilhac), produced, after many difficulties with the management and the cast, at the Opéra-Comique (March 3,1875). The reception of the public was not enthusiastic; several critics attacked the opera for its lurid subject, and the music for its supposed adoption of Wagner’s methods. Bizet received a generous sum (25,000 francs) for the score from the publisher Choudens and won other honors (he was named a Chevalier of the Legion d’Honneur on the eve of the premiere of Carmen); although the attendance was not high, the opera was maintained in the repertoire. There were 37 performances before the end of the season; the original cast included Galli-Marie as Carmen, Lhérie as Don José, and Bouhy as Escamillo. Bizet was chagrined by the controversial reception of the opera, but it is a melodramatic invention to state (as some biographers have done) that the alleged failure of Carmen precipitated the composer’s death (he died on the night of the 31st perf. of the opera). Soon Carmen became a triumphant success all over the world; it was staged in London (in Italian at Her Majesty’s Theatre, June 22, 1878), St. Petersburg, Vienna, Brussels, Naples, Florence, Mainz, N.Y. (Academy of Music, Oct. 23, 1878), etc. The Metropolitan Opera produced Carmen 1st in Italian (Jan. 9, 1884), then in French, with Calve as Carmen (Dec. 20, 1893). It should be pointed out that the famous Habanera is not Bizets own, but a melody by the Spanish composer Yradier; Bizet inserted it in Carmen (with slight alterations), mistaking it for a folk song. Bizet also wrote an operetta, La Prêtresse (1854); the operas Numa (1871) and Ivan le Terrible, in 4 acts (Bordeaux, Oct. 12, 1951; the score was believed to have been destroyed by Bizet, but was discovered among the MSS bequeathed to the Paris Cons. by the 2nd husband of Bizets widow); the cantatas David (1856) and Clovis et Clothilde (1857); Vasco do Gama, symphonic ode, with Chorus (1859); Souvenirs de Rome, symphonic suite in 3 movements (Paris, Feb. 28, 1869; publ. in 1880 as a 4-movement suite, Roma); orch. overture, Patrie (Paris, Feb. 15, 1874); Jeux d’en fonts, suite for Piano, 4-hands; about 150 piano pieces of all kinds (Bizet was a brilliant pianist); etc. Bizet’s 1st Sym., written at the age of 17, was discovered in the Bizet collection at the Paris Cons. in 1933, and was given its 1st performance anywhere by Felix Weingartner in Basel on Feb. 26, 1935; it rapidly became popular in the concert repertoire. Bizet also completed Halévy’s biblical opera, Noe (1869),
2014/04/13 예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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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쥬 비제 (Georges Bizet)의 "Je crois entendre encore (그대 목소리를 다시 한 번)"
작곡 : Georges, Bizet (1838-1875) 의 Opera, 진주조개 잡이 (Les Pecheurs de Perles) 中,
노래 : Slava, counter - tenor (슬라바, 카운터 테너) 입니다.
첫댓글 청년시절에 절재되기 힘들게 분출되는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연정, 열정을 25세 청년 작곡가 비제가 자신의 삶을 토해낸듯한 감정을 느낍니다.
오 매혹적인 밤이여, 숭고한 황홀경이여, 광적인 취기여, 달콤한 꿈이여, 매혹적인 추억이여, 매혹적인 추억이여!-----------
"그대 목소리 다시한번"슬라바, 카운터 태너의 감미로운 음성으로 다시 듣습니다.
위 가사내용을 보며 듣는 노래 젊은청년의 열정,안타까움등 느겨집니다.
오늘 "슬리바의 노래-그대 목소리 다시한번"들으며 비제의 '"카르맨" 작픔 이야기도 자세히 읽습니다.
1870년대에도 카르맨 같은 사랑에 열정적이고 "하바네라"노래로 사랑하는 사람을 유혹하고, 마지막에는 애인의 사랑을 확인하며 죽음까지도 피하지 않았던 여인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런 여인을 당시 파리 청중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분위기, 돈 호세와 같은 영혼을 바치는 청년의 열정적 사랑이야기 당시 젊은 비제의 이야기인듯 싶군요.이같은 돌격적 사랑이야기 요즘 청년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옛날 이야기라 생각됩니다.---비제가 있어 프랑스 음악의 독창성 돋보이는듯 합니다,
짧은 생을 살다간 프링스의 음악가 Bizet 이야기 작품해설과 함께 Slava의 감미로운 "그대 목소리 다시한번" 몇번 감상합니다.빅톨 유고와 함께 프랑스를 빛낸,인류에게 위대한 예술적 작품을 남긴 영웅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