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를 엘리트 종목으로!, 족구가 올림픽에 가는 그 날까지!!
'족구의 발전'이라는 어찌보면 뜬구름과 같았던 화두의 기약 없는 '최종 목적지'와도 같은 위의 슬로건은 족구가 성행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 부터 거의 30년동안 우리 족구인들의 마음 속에 계속해서 자리해 왔다. 하지만 이렇다 할 뚜렷한 대책도, 방안은 요원한채 사실상 제자리 걸음만 해왔던 것이 우리 족구의 현실이었다. 선수들의 기량은 날로 성장해 경기력은 올라갔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후속타가 나오지 않은 것은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면 족구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선수들의 경기력이 올라갔으니 이제는 동영상이라는 원재료에 양념을 얹어 제대로 된 음식을 완성할 때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고? 바로 스토리텔링을 통한 많은 컨텐츠들의 탄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8, 2019년 우리는 우리와 전혀 관련 없었던 한 나라의 축구에 열광했다. 바로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였다. 축구 약체였던 베트남은 박항서 감독 부임 이후 AFC U23 준우승, 아시안게임 4강, 스즈키컵 우승, 아시안컵 8강 등 지금까지 이루어보지 못했던 성과들을 만들어 내었다. 축구가 국기에 가까울 정도로 축구열기가 대단한 나라였지만 국제무대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베트남에서 이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했다. 흡사 2002년 대한민국의 붉은 물결이 베트남으로 그대로 옮겨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국내에서도 베트남 축구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2018 스즈키컵 결승 2차전의 국내 시청률이 자그마치 22%에 육박했다. 참고로 2018년 지구촌 최대 축구제전 러시아월드컵 결승전의 국내 시청률이 3사 통합 21%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제 아무리 주말 황금 시간대의 정규방송 편성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동남아 축구대회에 이렇게 관심을 가졌다는 점은 정말 이례적이었다.
과거에도 이러한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그리고 최근의 손흥민, 류현진 등 외국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의 경기에 우리는 열광했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의 성공은 앞서 언급한 선수들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들은 모두 국내 수준을 상회하는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의 성공이었지만 박항서 감독은 축구에 관한한 변방인 아시아, 그 아시아에서 조차도 변방인 동남아, 그런 동남아에서 조차도 강호로 인정받지 못했던 베트남에서의 성공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박항서 호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2018 아시안게임 4강전, 우리나라와 맞붙은 경기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은 손흥민 등을 앞세워 어렵지 않은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국내에서의 전지훈련 과정 중 상대한 국내 2군 프로축구 팀들과의 대결에서 1승 2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 1승조차도 FC서울의 2군과 유소년 선수들로 이루어진 급조된 팀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 아무리 평가전 성격을 고려하더라도 이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박항서 감독의 성공이 앞서 언급한 선수들처럼 세계 정상급 반열에 올라 선 한국인의 성공 신화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박항서 감독의 성공신화에 열광했을까? 단지 약체 베트남을 이끌고 지금까지 거두어 보지 못한 성적들을 거두어서? 아니다. 나는 그것은 바로 국내에서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 새로운 곳에서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환갑이 넘은 노장 감독의 인생역전 스토리에 있었다고 감히 생각한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조연에서 그 해 아시안게임 감독을 맡아 동메달을 따고도 성적부진을 이유로 경질, 이후 수많은 국내프로팀을 거치며 무수한 실패를 거듭한 뒤, 급기야 K3리그의 창원시청팀의 감독을 역임하다 야인이 된 그가 마지막 기회를 얻은 그 곳에서 거둔 성공은 21세기 금수저 논란이 가득한 대한민국의 평범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묘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주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듯 스토리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칼럼을 통해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스토리를 부각시키고 그 스토리를 재미있게 꾸며 많은 컨텐츠를 발생시키는 것이 우리 족구의 발전에 상당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족구는 스토리가 없을까? 그럴리가 있나?
2019시즌 벌어졌던 '향수옥천배'로 가보자.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조이킥스포츠'의 멤버들에게 그 날의 결승전이 마지막 경기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좌수비 김광훈, 세터 임상욱이 가정사로 인해 팀을 떠나기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실을 영상 속 자막이나 다른 방법 등으로 알려주고 영상 중간마다 이들을 좀 더 클로즈업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더욱 비장하게 경기에 임하는 이들의 모습이 비춰지며 좀 더 영상의 효과가 가미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2016년 울산광역시장배를 돌아보자. 우승을 차지한 현대파워텍의 우수비 천유빈은 대회가 벌어지기 일주일 전, 부친상을 당했다. 그래서 팀 동료들은 이 대회 불참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유빈은 민경철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꼭 뛰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동료들은 유빈의 그러한 마음가짐을 알고 최선을 다해 경기해 우승을 차지했다. 유빈의 부친은 그가 족구로 현대파워텍에 입사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었고, 2015년 이 대회에서 유빈이 우승하는 모습을 직접 경기장에서 보고 진심으로 기뻐했다고 한다. 유빈은 그런 부친이 가시는 길, 작은 선물이라고 드리고 싶어 했고, 우승을 차지하며 그 목적을 이루었다.
흔히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하지만 스포츠에는 드라마틱한 스토리 전개가 필요하다. 촬영 중 벌어지는 무수한 실황 장면에 어떤 시각과 전후 이야기, 역사를 녹이느냐에 따라 동영상은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고,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다양한 상상과 참여를 가져다 주는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도 있다.
지난 해, 국내에서도 중계되었던 '2019 코파아메리카컵' 준결승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중계의 시작과 끝은 모두 리오넬 메시였다.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린 클럽에서와는 달리 국가대표팀에서는 무관에 그치고 있는 그에게 이 대회가 그의 메이저대회 정상 등극에 얼마 남지 않은 기회였다는 사실은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카메라는 집요하리만치 메시를 따라다녔고, 패배가 확정된 후 그의 허탈해하는 표정은 여과 없이 전파를 타며 이 날 경기의 최고의 컨텐츠가 탄생했다.
생활체육에 불과한 '족구'에서 이러한 것들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이미 성공사례도 있다. 동네 PC방에서의 일반유저들끼리의 오락게임이었던 스타크래프트는 광안리해변에 10만의 안파를 불러 모으는 프로리그로 격상되었다. 이는 게임성 이상의 선수 개인의 개성을 담은 캐릭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 등은 각자의 플레이 스타일을 반영한 직관적인 혹은 스토리 중심의 개성 있는 별명으로 캐릭터를 완성했다. 그들의 대결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컨트롤과 전략도 흥했지만 게이머 자체의 캐릭터의 대결이 평범한 게임을 프로리그로 완성시켰다. 그 뒤에는 선수들의 뒷 이야기를 충실하게 소개하는 해설자들의 뒷담화 등 파생 컨텐츠가 쏟아지며 상업적 규모는 점점 커졌다.
우리 족구도 미세하지만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언제나 든든하게 족구대회장을 지키며 변함없는 영상을 제공하고 있는 조이킥스포츠의 김종환 대표, 요즘에는 선수들의 이름을 딴 족구화를 마치 시리즈처럼 출시하며 또 다른 의미의 컨텐츠까지 추가로 만들어 가고 있다. 방송사 출신답게 지금까지의 영상과는 질이 다른 고화질의 화질과 고품격의 편집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족구인', 구수한 말솜씨로 영상 이상의 재미를 선보이는 '02랑',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최고의 족구블로거 '하이트맨', 현재의 영상은 물론 과거 1세대 족구동영상을 편집하여 올려주며 과거를 회상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정청식 논산공고 족구단 감독'등은 말 할 것도 없고, 새로운 유튜버들의 등장으로 많은 컨텐츠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자신들의 훈련 모습을 공개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보여주는 '호크마댕댕이', 평소 만나기 힘든 선수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이를 보여주는 '진주금산족구', 실력 향상에 애를 먹고 있는 이들을 위해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족구이론을 설명해주는 '최성욱의 족구교실', '홍성우 족구교실', '김준호 족구교실', '이태호 족구교실' 등 많은 컨텐츠의 탄생은 우리 족구를 발전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
경기력만을 강조해서는 우리 족구가 결코 여타의 엘리트 종목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뽀로로가 디즈니를 이기고, BTS가 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경기력에만 갇힌 시야를 벗어나면 스토리텔링, 캐릭터, 컨텐츠의 힘을 볼 수 있는 예다. 우리 족구도 경기력만을 팔아야 한다는 아마추어적인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스토리를 담은 컨텐츠' 중심으로의 사고를 전환 할 때, 엘리트 종목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고 나아가 상업적인 성취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