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업(業)을 지어낸다.
사람들이 점이나 사주에 관심을 가집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나 일이 잘 풀릴지 아닐지 알고 싶을 때. 점을 봐요. (사주)
한국이나 중국에는 관상이나 손금을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눈썹이 이렇게 생겼으면 심기가 강하고 저렇게 생겼으면 유약하다
관상이나 손금 보는 법을 알면 업도 알게 돼요.
마치 이런 것과 같아요. 약간 덜 익은 과일은 색은 아주 고운데 맛은 별로 없어요.
약간 농익은 과일은 색도 탁하고 반점 같은 것도 있긴 하지만 아주 맛있지요.
그래서 과일 맛을 알려면 겉 상태를 아는 게 중요해요.
상태가 아주 좋고 색도 짙고 또렷하면 맛은 그다지 좋지 않을 거예요.
특정한 색이나 상태로 바뀌면 맛이 어떻다는 걸 알 수 있지요.
그러니 겉 상태를 알면 맛이 어떤지도 알 수 있어요.
이 말은 외형이나 사고방식 등 자신의 겉모습을 알면 업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과거 업과 미래 업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업은 일종의 형태 일종의 삶의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고하느냐가 마음의 습관으로 굳어지게 되고
이 마음의 습관이 스스로 만든 리듬이 되어 삶의 중심이 되고 삶을 형태 짓게 됩니다.
이를 업이라고 불러요. 생각이 업(業)을 만들고 업이 몸뚱이를 만듭니다.
몸뚱이에 집착하기 때문에 몸뚱이로 겪는 일이 생각과 업에 영향을 미치게 돼요.
업이 물리적 형태인 몸뚱이를 만들고 몸뚱이가 업을 만든다. 이 말입니다.
끊임없이 돌고 돌아요. 한국에는 사주를 봐주는 사람이 있어요.
출생 연월일시를 가지고 사주를 알면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지요.
통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저 사람 업은 저 사람이 짓고 내 업은 내가 지어요. 조건에 따라 나타나게 됩니다.
열심히 수행하면서 참선, 특히 염불이나 절을 하면서 곧장 나아가면(수행하면) 업이 바뀝니다.
업의 방향을 스스로 정할 수 있어요. 좋다 나쁘다 따지지 말고 그냥 수행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렇게 되면 서서히 업이 녹게 되고 삶이 바뀌게 됩니다. 사주도 더는 맞지 않게 된다. 이 말입니다.
업이 어떻게 바뀌어요?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지요. 내일 누가 죽는다고 칩시다.
이건 이 사람의 업, 즉 생각이 조건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미묘한 상호 작용의 결과예요.
누군가 이 사람의 미래를 보고 내일 사고가 일어나 이 사람이 죽는다고 예언해요.
한편 이 사람은 열심히 경이나 진언을 독송합니다.
그러면 사고가 일어나게 되는 원인과 조건이 원래 예언했던 그대로 일어나지 않게 돼요.
특정 방향으로 가고 있는 이 사람의 마음 에너지를 보고 예언했기 때문이지요.
이 사람이 자신의 마음 에너지만 따라서 그냥 산다면 이 죽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독송이나 염불을 해서 마음의 에너지인 업을 바로 잡으면 결과가 다르게 될 수도 있어요.
사고가 났는데 다리만 부러졌다든지 하는 거지요 죽지는 않아요. 생각이 업(業)을 만들어요
내식대로 생각하면, 내 업이 만들어지고 당신 식대로 생각하면 당신 업이 만들어져요.
생각을 잘 다스릴 수 있으면 그 생각에서 일어나는 인과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어요.
열심히 수행하면 업을 바꿀 수 있어요.
열심히 수행하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도 없고,
욕구나 분노나 무지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이런 것에 걸리면 윤회 할 수밖에 없어요.
업은 윤회에서 비롯되고, 이 업이 다시 윤회를 만들어 돌고-돌고 돌아요.
그러면 사주가 당신 삶의 주인이 되어 버려요.
……
이날은 이렇고 저 날은 저렇고 하면서
출생과 관련된 숫자 몇 개에서 모든 게 다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수행하면 마음이 텅 빈 허공과 같이 되고 찰나-찰나 삶을 바꾸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것입니다.
- 현각 스님의 <부처를 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