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2 - 까나리 방학
2008. 4. 25. 고 영 옥
봄나물이 풍성한 재래시장에서 금방 뽑아온 열무와 얼갈이배추를 사다가 김치를 담는다. 우리 열무김치가 맛있다고 비법을 알려 달라는 이도 있는데 비법이라 할 것 까지는 없고 다만 까나리 액젓을 조금 넣는 것이다. 오늘도 액젓을 넣으려고 뚜껑을 여니 짭짜름하고 비릿하면서도 달큰한 냄새는, 잊고 지냈던 내 어린 시절 그 바다를 닮은 냄새인 것이다. 오늘도 까나리 액젓을 넣어 김치를 담구며 아련한 추억에 잠긴다.
내 고향 대청도는 백령도와 함께 까나리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그곳 生까나리 액젓에는 일곱 가지의 필수아미노산, 칼슘, 단백질 등이 고루 들어 있는 영양가 높은 전통식품이다. 그곳 여행사 이름 중 까나리 여행사도 있을 만큼 까나리는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나는 그 젓을 항상 유렴하여 두고 귀하게 사용한다. 미역국 끓일 때도 집 간장과 섞어서 끓이면 맛이 일품이다.
까나리는 삼면 연안에 모두 서식하는 냉수성 어종으로 계절의 변화와 함께 바다의 수온을 따라서 북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성어기가 짧다. 그 짧은 기간에 바다에 나가서 잡아오고 잡아온 것을 갈무리 하여야 한다. 농촌에서 모를 심는 시기에 농번기 방학을 했던 것처럼 그곳에서는 까나리를 수확하는 시기에는 일손이 모자라 초등학교 아이들도 방학을 한다. 그 정확한 명칭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까나리 방학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방학을 하면 우리처럼 어업에 종사하지 않는 집 아이들은 어디든 까나리 막에 가서 일을 돕는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경자네 까나리 막으로 가는 걸 좋아했다. 아침이면 숲속에 오솔길로 재깔거리며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마냥 즐거웠다. 그 길에서 다람쥐와 달리기 시합도 하고, 찔레도 꺾어 먹고, 나무 열매도 따면서 잠시지만 숲속에 요정이 되어보는 것이었다.
청색 등에 배는 은백색인 까나리들이 뾰족한 주둥이를 흔들며 파닥 파닥 뛰는 채로 배에 하나 가득 실려 오면 여럿이 힘을 합하여 세척하고 선별한다. 해묵은 큰 것은 액젓이 적게 나오고 내장 특유의 쓴 맛이 배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큰 것은 골라 삶아서 말리고 1년 미만, 10㎝내외의 작은 것은 주로 젓을 담근다. 아이들 이지만 일을 척척 잘도 한다. 나도 작은 것과 큰 것을 가려내는 일은 곧잘 할 수 있었다. 매끌매끌하고 차가운 감촉이 지금도 손끝에 살아 있는 것 같다.
일을 하다가 지루해지면 바다 물속으로 풍덩,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움직이듯 손발을 움직이며 물고기 친구가 되어 보기도 하였다.
저녁이 되면 경자 어머니는 물 좋은 까나리를 한 사발씩 들려주신다. 그곳 섬에서는 여자 아이들은 고기 배에 잘 태워주지 않는데 경자 아버지는 우리를 배에 태워 가까운 선창가 까지 데려다 주셨다. 우리가 배에서 내릴 때쯤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어 왔다. 세상이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 것 같다. 하늘도, 넘실대는 바다 물결도, 끼익 끼익 날아오르는 갈매기도, 그 속에 우리들 까지도……. 무어라 표현 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취한 우리들은 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곡을 싣고 고기잡이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가요. 희망에 찬 아참바다 노~저어가요.
저녁바다 갈매기는 행복을 싣고, 고기잡이배들은 고기를 싣고, 넓고 넓은 바다를 노 저어 와요, 넓고 넓은 바다를 노 저어와요.♬♪
배에서 내린 우리는 함박웃음을 담은 얼굴로 집으로 달려가 까나리 바구니를 자랑스럽게 어머니 앞에 내밀었다. 그때 까나리 방학은 정말 즐거웠다. 그래서 다음해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을 게다.
빛바랜 내 기억 속에 까나리 방학에는, 까나리와 저녁바다가 사이좋은 친구처럼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그날 노을이 곱게 물든 저녁바다는 내 뇌리에 찍혀져 지금까지 더 예쁘게 더 멋있게 각색되며 간직되어오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와 짝하여 금방 잡아온 까나리로 국을 끓여 먹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았던 그 맛도 감지하여 본다. 또한 삶아서 널어놓은 까나리가 비들비들 마르면 똥을 발려내고 먹는 그 맛을 어떤 맛과 견줄 수 있으랴. 입안으로 침이 가득 고인다. 오늘 저녁에는 까나리 액젓을 넣어서 금방 담근 열무김치에 썩썩 비벼먹으며 온 몸으로 짙은 향수에 흠뻑 젖어보리라.
첫댓글 글을 읽으니 마치 내가 그 시절에 그 곳에 있었던 것 처럼 착각이 드네요.
수업시간에 발표 덕분으로 정감있는 작품으로 변했네요. "까나리방학" 인상적입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작품을 둘로 갈라 놓았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까나리 방학 감상 잘 했습니다. 지내놓고 보니 별의별 방학이 다 있었네요? 고향 바다의 추억을 잘 간직해서 아름다운 수필로 우리에게 들려 주시니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소서.
^^ 바다이야기 잘 보았습니다...ㅎㅎ 까나리 방학이라는 것이 '가정실습'이 아니었던가요? 저는 보리 베던 때 쯤해서 집안 일손 거들라면서 몇일간 학교가 쉬었는데 가정실습으로 기억하고 있답니다.
가정실습 맞습니다. 그런거 였습니다. 정확한 명칭을 기억해내지 못하니.... 감사합니다. 많은 가르침을 기다립니다.
까나리 방학 정말 재미있게 추억을 되살려 내었네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