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불교는 왜 여성 신도를 ‘보살님’이라고 불렀을까?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이 말하는 ‘조선시대 불교의 여성 우대’
대한불교조계종의 최고 어른인 종정(宗正) 성파(性坡) 스님은 관심 분야의 폭이 참 넓은 분입니다. 특히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데 앞장서고 계시지요. 쪽[藍]을 비롯한 천연 염색과 한지, 도자기, 옻칠, 민화(民畵)뿐 아니라 차(茶)와 야생화까지 직접 연구, 복원, 보급하고 계시지요. 스님들 사이에서도 “뵐 때마다 항상 일하고 계시는 분”으로 통합니다
저는 작년과 올해 틈날 때마다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으로 스님을 찾아뵙고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내용을 모아 얼마 전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란 제목의 책으로 정리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수행자의 직관력으로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차원의 말씀을 많이 들려주었습니다. 그 말씀 가운데 분량의 문제 등으로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조선시대 불교의 여성 우대’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구체적으로는 ‘보살님’이란 호칭 이야기입니다.
성파 스님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 불교가 있지만, 여신도를 ‘보살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선 불교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찰에 가보시면 여성 신도를 ‘ 보살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더러 보셨을 겁니다. 식사를 준비해주는 분들도 ‘공양주 보살님’이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불교에서 ‘보살’은 무척 중요한 존재입니다. 사전에서는 ‘보살’을 ‘부처가 전생에서 수행하던 시절, 수기를 받은 이후의 몸’ ‘위로 보리(진리)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제도하는, 대승불교의 이상적 수행자상’ 등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관세음보살’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또 ‘문수보살’ ‘보현보살’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여성 신도를 이런 보살로 대우하고 있는 셈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부대중(四部大衆)’이란 말이 있습니다. 남녀 출가·재가자를 통칭하는 단어입니다. 구체적으로 나누면 비구(남성 출가자), 비구니(여성 출가자), 우바새(남성 재가자), 우바이(여성 재가자)를 가리키지요. 정식 분류는 이렇지만 실생활에서는 일반적으로 남성 신도는 ‘처사님’ ‘거사님’이라고 부릅니다. ‘처사(處士)’의 사전적 설명은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던 선비’이고 ‘거사(居士)’ 역시 ‘숨어 살며 벼슬을 하지 않던 선비’입니다. ‘처사’ ‘거사’에 비해 ‘보살’은 불교에서는 차원이 다른 호칭인 것이지요.
성파 스님은 한국 불교가 여성 신도를 ‘보살님’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을 조선시대부터로 봅니다.억불숭유(抑佛崇儒)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여성을 우군(友軍)으로 삼기 위한 방편의 하나가 ‘보살님’ 호칭이라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조선왕조를 개국(開國)과 함께 통치 이념으로 불교를 억눌렀습니다. 스님은 “조선의 억불숭유 정책은 중국 역사에서 불교를 탄압한 것으로 유명한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法難)’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의 멸불(滅佛) 정책”이라고 말합니다. 중국의 법난은 특정 황제 때 길어도 수십년간 벌어진 탄압이었지만, 조선의 억불숭유 정책은 500년 내내 이어졌기 때문이지요. 조선시대에 승려는 졸지에 천민으로 추락했고 한양 도성 출입도 금지됐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권이 바뀌면 관료와 지식인 사회의 지형이 바뀌곤 하지요. 하물며 왕조시대에 새 왕조가 건국이념으로 특정 종교를 배척하고 억압한다면 지식인과 관직에 나가려는 이들은 당연히 그 종교를 멀리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므로 조선시대 불교는 사대부 남성은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숨이 끊어질 지경에서 불교가 눈을 돌린 것이 여성이었다는 것이 성파 스님의 가설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에 여성의 활동이 활발했던 것에 비해 유교를 바탕으로 건국한 조선은 남존여비(男尊女卑) 사회였습니다. 불교와 여성은 조선 사회에서 억압받는 존재로서 동병상련(同病相憐)도 느꼈을 겁니다. 이런 배경에서 불교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여성에겐 ‘보살님’이란 호칭으로 우대했을 것이라고 성파 스님은 짐작했습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하던 여성들이 사찰에서 ‘보살님’으로 우대 받으면 기분이 어땠을까요. 게다가 사찰에선 철에 따라 다양한 행사가 많습니다. 가족의 안녕을 위해 기도를 드리러 사찰을 찾는 여성들을 굳이 집안에서도 막지는 않았겠지요. “교통도 불편하던 시절, 여성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찰을 오가는 길에 때로는 남편과 시어머니 험담도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사찰에 가서는 ‘보살님’ 호칭을 들으니 얼마나 좋았겠노”라는 게 성파 스님의 해석입니다.
이렇게 “멸불의 시대 500년 동안 불교가 버틸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은 여성 우대”라는 것이 성파 스님의 주장입니다. 요즘도 통도사 서운암에는 옻칠 민화와 차문화 등에 대한 강좌가 계속되는데, 많은 여성이 수강하고 있습니다. 성파 스님은 지금도 ‘여성 우대’를 실천하는 셈이지요. 물론 스님도 여성 수강생들을 “보살님”이라고 부릅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