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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서 도산서원 쪽으로 난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낙동강 줄기를 끼고 산 언덕에 펼쳐진 한옥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40여 년 전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을 피해 옮겨 온 이곳은 ‘군자마을’이라고 불리는 오천유적지다. 오천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이 20여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한마을을 이루며 살아왔으며, 입향조 농수 김효로 이후 그의 아들과 자손 대에 까지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이들을 ‘오천 25현’이라 하였다. 이에 한강 정구가 ‘오천 한 동네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것을 들어 ‘군자마을’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이다.
[운암곡에 둘러싸인 오천 군자마을]
군자마을을 들어가는 길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특히 도산구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1곡 운암곡에 흐르는 물줄기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수풍경이 봄이면 분홍빛의 꽃나무로 물들고 여름이면 푸른 숲을 이루는가하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극치를 이룬다. 이 마을 안에 특히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바로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탁청정이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자이기도 하고, 그 앞에 연꽃으로 가득 찬 네모난 연못이 눈과 마음을 현혹시킨다.
[작약꽃이 만발한 탁청정 전경]
탁청정은 김효로의 차남 김유金綏, 1491~1555가 향촌사회의 교유와 친목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여러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며 교유하였다. ‘탁청濯淸’이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촌에서 효도와 접빈을 실천한 김유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판이 보이는 탁청정 내부]
[탁청정 현판 (소장:한국국학진흥원 소장:광산김씨 탁청정종가) ]
이틀 전에는 능동재사에 다녀오고, 전날에는 거인居仁에 가서 배소拜掃를 했다.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에 잠시 누워 있다가보니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단잠을 자다 깨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제법 뜨거운 햇볕에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냥 툇마루에 앉아 잠시 있다 보니 친족 한명이 찾아왔다. 동네의 여러 친족들이 탁청정濯淸亭에서 모여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왜 오지 않고 있냐며 재촉을 했다. 얼른 일어나 탁청정으로 건너가 친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매원일기』, (소장:한국국학진흥원 기탁_광산김씨 후조당종택) ]
위의 글은 1603년 탁청정의 주인 김유의 종증손 매원 김광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탁청정은 집안의 친족들과 손님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풍류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은 이웃의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를 비롯한 당대 거유들이 출입하며 정자의 경치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탁청정 마루난간에서 바라본 연못의 전경]
섬돌아래 사각 연못, 연못 위는 정자인데 階下方池池上亭 바람 부는 난간에 찬 기운이 감도누나 風傳欄檻嫩涼生 개울 골짝 휘도는 곳 앞산이 둘러싸고 溪環谷互前山擁 처마 넓고 하늘 낮아 북두칠성 비껴있네 簷豁天低北斗傾 마루 위에 가득한 술 손님을 취하게 하고 坫上酒盈留客醉 난간 옆에 과녁 마련하니 이웃사람 모여드네 軒邊帿設聚隣爭 우리처럼 늙어서 할 일 없는 사람들 多吾老退閒無事 언제든 불러서 정자의 맑은 술맛 나누어 주네 邀輒來分一味淸 | |
- 이현보李賢輔, 탁청정 시에 차운하다次濯淸亭 - |
[수운잡방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_ 광산김씨 설월당종가)]
특히 김유는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직접 음식 조리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수운需雲은 『주역』에 ‘구름이 하늘 위에 있음이 수괘이니, 군자가 이를 보며 음식연회를 즐겼다.’라는 뜻으로, 풍류를 알고 격조를 지닌 사람들에게 걸맞은 여러 조리법을 소개하였다. 표지를 넘기면 제일 첫 페이지에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욕심을 함부로 부리지 말며, 성색을 줄이고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경계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탁청정의 풍류와 수운잡방에 소개된 음식의 즐거움을 군자답게 즐기라는 메시지인 듯하다.
[건물 뒤편에서 바라본 탁청정과 마을 풍경]
오천군자마을은 비록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이건되면서 옛 선현들이 즐긴 풍경과 풍류를 그대로 짐작하기 어렵지만, 온 마을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고택과 정자, 역사와 문화,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건물과 마을이 아름다워 요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할 정도이다. 옛 김유가 즐겼을 풍류를 상상해 보며, 탁청정 마루에 올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새로운 풍류를 만들어 보길 추천한다.
[선비의 풍류를 간직한 탁청정]
한편,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2020년 7월 7일에 개최한 경북문화관광 콘텐츠 활용전시 ‘영남선비들의 누정’의 전시기간을 2021년 8월 29일까지 연장하여 개최된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의 누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고 있어, 옛 선비들이 누렸던 누정문화를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안동에서 도산서원 쪽으로 난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낙동강 줄기를 끼고 산 언덕에 펼쳐진 한옥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40여 년 전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을 피해 옮겨 온 이곳은 ‘군자마을’이라고 불리는 오천유적지다. 오천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이 20여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한마을을 이루며 살아왔으며, 입향조 농수 김효로 이후 그의 아들과 자손 대에 까지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이들을 ‘오천 25현’이라 하였다. 이에 한강 정구가 ‘오천 한 동네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것을 들어 ‘군자마을’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이다.
[운암곡에 둘러싸인 오천 군자마을]
군자마을을 들어가는 길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특히 도산구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1곡 운암곡에 흐르는 물줄기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수풍경이 봄이면 분홍빛의 꽃나무로 물들고 여름이면 푸른 숲을 이루는가하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극치를 이룬다. 이 마을 안에 특히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바로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탁청정이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자이기도 하고, 그 앞에 연꽃으로 가득 찬 네모난 연못이 눈과 마음을 현혹시킨다.
[작약꽃이 만발한 탁청정 전경]
탁청정은 김효로의 차남 김유金綏, 1491~1555가 향촌사회의 교유와 친목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여러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며 교유하였다. ‘탁청濯淸’이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촌에서 효도와 접빈을 실천한 김유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판이 보이는 탁청정 내부]
[탁청정 현판 (소장:한국국학진흥원 소장:광산김씨 탁청정종가) ]
이틀 전에는 능동재사에 다녀오고, 전날에는 거인居仁에 가서 배소拜掃를 했다.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에 잠시 누워 있다가보니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단잠을 자다 깨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제법 뜨거운 햇볕에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냥 툇마루에 앉아 잠시 있다 보니 친족 한명이 찾아왔다. 동네의 여러 친족들이 탁청정濯淸亭에서 모여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왜 오지 않고 있냐며 재촉을 했다. 얼른 일어나 탁청정으로 건너가 친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매원일기』, (소장:한국국학진흥원 기탁_광산김씨 후조당종택) ]
위의 글은 1603년 탁청정의 주인 김유의 종증손 매원 김광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탁청정은 집안의 친족들과 손님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풍류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은 이웃의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를 비롯한 당대 거유들이 출입하며 정자의 경치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탁청정 마루난간에서 바라본 연못의 전경]
섬돌아래 사각 연못, 연못 위는 정자인데 階下方池池上亭 바람 부는 난간에 찬 기운이 감도누나 風傳欄檻嫩涼生 개울 골짝 휘도는 곳 앞산이 둘러싸고 溪環谷互前山擁 처마 넓고 하늘 낮아 북두칠성 비껴있네 簷豁天低北斗傾 마루 위에 가득한 술 손님을 취하게 하고 坫上酒盈留客醉 난간 옆에 과녁 마련하니 이웃사람 모여드네 軒邊帿設聚隣爭 우리처럼 늙어서 할 일 없는 사람들 多吾老退閒無事 언제든 불러서 정자의 맑은 술맛 나누어 주네 邀輒來分一味淸 | |
- 이현보李賢輔, 탁청정 시에 차운하다次濯淸亭 - |
[수운잡방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_ 광산김씨 설월당종가)]
특히 김유는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직접 음식 조리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수운需雲은 『주역』에 ‘구름이 하늘 위에 있음이 수괘이니, 군자가 이를 보며 음식연회를 즐겼다.’라는 뜻으로, 풍류를 알고 격조를 지닌 사람들에게 걸맞은 여러 조리법을 소개하였다. 표지를 넘기면 제일 첫 페이지에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욕심을 함부로 부리지 말며, 성색을 줄이고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경계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탁청정의 풍류와 수운잡방에 소개된 음식의 즐거움을 군자답게 즐기라는 메시지인 듯하다.
[건물 뒤편에서 바라본 탁청정과 마을 풍경]
오천군자마을은 비록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이건되면서 옛 선현들이 즐긴 풍경과 풍류를 그대로 짐작하기 어렵지만, 온 마을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고택과 정자, 역사와 문화,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건물과 마을이 아름다워 요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할 정도이다. 옛 김유가 즐겼을 풍류를 상상해 보며, 탁청정 마루에 올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새로운 풍류를 만들어 보길 추천한다.
[선비의 풍류를 간직한 탁청정]
한편,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2020년 7월 7일에 개최한 경북문화관광 콘텐츠 활용전시 ‘영남선비들의 누정’의 전시기간을 2021년 8월 29일까지 연장하여 개최된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의 누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고 있어, 옛 선비들이 누렸던 누정문화를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안동에서 도산서원 쪽으로 난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낙동강 줄기를 끼고 산 언덕에 펼쳐진 한옥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40여 년 전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을 피해 옮겨 온 이곳은 ‘군자마을’이라고 불리는 오천유적지다. 오천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이 20여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한마을을 이루며 살아왔으며, 입향조 농수 김효로 이후 그의 아들과 자손 대에 까지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이들을 ‘오천 25현’이라 하였다. 이에 한강 정구가 ‘오천 한 동네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것을 들어 ‘군자마을’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이다.
[운암곡에 둘러싸인 오천 군자마을]
군자마을을 들어가는 길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특히 도산구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1곡 운암곡에 흐르는 물줄기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수풍경이 봄이면 분홍빛의 꽃나무로 물들고 여름이면 푸른 숲을 이루는가하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극치를 이룬다. 이 마을 안에 특히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바로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탁청정이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자이기도 하고, 그 앞에 연꽃으로 가득 찬 네모난 연못이 눈과 마음을 현혹시킨다.
[작약꽃이 만발한 탁청정 전경]
탁청정은 김효로의 차남 김유金綏, 1491~1555가 향촌사회의 교유와 친목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여러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며 교유하였다. ‘탁청濯淸’이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촌에서 효도와 접빈을 실천한 김유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판이 보이는 탁청정 내부]
[탁청정 현판 (소장:한국국학진흥원 소장:광산김씨 탁청정종가) ]
이틀 전에는 능동재사에 다녀오고, 전날에는 거인居仁에 가서 배소拜掃를 했다.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에 잠시 누워 있다가보니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단잠을 자다 깨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제법 뜨거운 햇볕에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냥 툇마루에 앉아 잠시 있다 보니 친족 한명이 찾아왔다. 동네의 여러 친족들이 탁청정濯淸亭에서 모여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왜 오지 않고 있냐며 재촉을 했다. 얼른 일어나 탁청정으로 건너가 친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매원일기』, (소장:한국국학진흥원 기탁_광산김씨 후조당종택) ]
위의 글은 1603년 탁청정의 주인 김유의 종증손 매원 김광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탁청정은 집안의 친족들과 손님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풍류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은 이웃의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를 비롯한 당대 거유들이 출입하며 정자의 경치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탁청정 마루난간에서 바라본 연못의 전경]
섬돌아래 사각 연못, 연못 위는 정자인데 階下方池池上亭 바람 부는 난간에 찬 기운이 감도누나 風傳欄檻嫩涼生 개울 골짝 휘도는 곳 앞산이 둘러싸고 溪環谷互前山擁 처마 넓고 하늘 낮아 북두칠성 비껴있네 簷豁天低北斗傾 마루 위에 가득한 술 손님을 취하게 하고 坫上酒盈留客醉 난간 옆에 과녁 마련하니 이웃사람 모여드네 軒邊帿設聚隣爭 우리처럼 늙어서 할 일 없는 사람들 多吾老退閒無事 언제든 불러서 정자의 맑은 술맛 나누어 주네 邀輒來分一味淸 | |
- 이현보李賢輔, 탁청정 시에 차운하다次濯淸亭 - |
[수운잡방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_ 광산김씨 설월당종가)]
특히 김유는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직접 음식 조리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수운需雲은 『주역』에 ‘구름이 하늘 위에 있음이 수괘이니, 군자가 이를 보며 음식연회를 즐겼다.’라는 뜻으로, 풍류를 알고 격조를 지닌 사람들에게 걸맞은 여러 조리법을 소개하였다. 표지를 넘기면 제일 첫 페이지에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욕심을 함부로 부리지 말며, 성색을 줄이고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경계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탁청정의 풍류와 수운잡방에 소개된 음식의 즐거움을 군자답게 즐기라는 메시지인 듯하다.
[건물 뒤편에서 바라본 탁청정과 마을 풍경]
오천군자마을은 비록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이건되면서 옛 선현들이 즐긴 풍경과 풍류를 그대로 짐작하기 어렵지만, 온 마을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고택과 정자, 역사와 문화,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건물과 마을이 아름다워 요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할 정도이다. 옛 김유가 즐겼을 풍류를 상상해 보며, 탁청정 마루에 올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새로운 풍류를 만들어 보길 추천한다.
[선비의 풍류를 간직한 탁청정]
한편,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2020년 7월 7일에 개최한 경북문화관광 콘텐츠 활용전시 ‘영남선비들의 누정’의 전시기간을 2021년 8월 29일까지 연장하여 개최된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의 누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고 있어, 옛 선비들이 누렸던 누정문화를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안동에서 도산서원 쪽으로 난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낙동강 줄기를 끼고 산 언덕에 펼쳐진 한옥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40여 년 전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을 피해 옮겨 온 이곳은 ‘군자마을’이라고 불리는 오천유적지다. 오천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이 20여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한마을을 이루며 살아왔으며, 입향조 농수 김효로 이후 그의 아들과 자손 대에 까지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이들을 ‘오천 25현’이라 하였다. 이에 한강 정구가 ‘오천 한 동네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것을 들어 ‘군자마을’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이다.
[운암곡에 둘러싸인 오천 군자마을]
군자마을을 들어가는 길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특히 도산구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1곡 운암곡에 흐르는 물줄기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수풍경이 봄이면 분홍빛의 꽃나무로 물들고 여름이면 푸른 숲을 이루는가하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극치를 이룬다. 이 마을 안에 특히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바로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탁청정이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자이기도 하고, 그 앞에 연꽃으로 가득 찬 네모난 연못이 눈과 마음을 현혹시킨다.
[작약꽃이 만발한 탁청정 전경]
탁청정은 김효로의 차남 김유金綏, 1491~1555가 향촌사회의 교유와 친목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여러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며 교유하였다. ‘탁청濯淸’이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촌에서 효도와 접빈을 실천한 김유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판이 보이는 탁청정 내부]
[탁청정 현판 (소장:한국국학진흥원 소장:광산김씨 탁청정종가) ]
이틀 전에는 능동재사에 다녀오고, 전날에는 거인居仁에 가서 배소拜掃를 했다.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에 잠시 누워 있다가보니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단잠을 자다 깨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제법 뜨거운 햇볕에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냥 툇마루에 앉아 잠시 있다 보니 친족 한명이 찾아왔다. 동네의 여러 친족들이 탁청정濯淸亭에서 모여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왜 오지 않고 있냐며 재촉을 했다. 얼른 일어나 탁청정으로 건너가 친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매원일기』, (소장:한국국학진흥원 기탁_광산김씨 후조당종택) ]
위의 글은 1603년 탁청정의 주인 김유의 종증손 매원 김광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탁청정은 집안의 친족들과 손님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풍류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은 이웃의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를 비롯한 당대 거유들이 출입하며 정자의 경치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탁청정 마루난간에서 바라본 연못의 전경]
섬돌아래 사각 연못, 연못 위는 정자인데 階下方池池上亭 바람 부는 난간에 찬 기운이 감도누나 風傳欄檻嫩涼生 개울 골짝 휘도는 곳 앞산이 둘러싸고 溪環谷互前山擁 처마 넓고 하늘 낮아 북두칠성 비껴있네 簷豁天低北斗傾 마루 위에 가득한 술 손님을 취하게 하고 坫上酒盈留客醉 난간 옆에 과녁 마련하니 이웃사람 모여드네 軒邊帿設聚隣爭 우리처럼 늙어서 할 일 없는 사람들 多吾老退閒無事 언제든 불러서 정자의 맑은 술맛 나누어 주네 邀輒來分一味淸 | |
- 이현보李賢輔, 탁청정 시에 차운하다次濯淸亭 - |
[수운잡방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_ 광산김씨 설월당종가)]
특히 김유는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직접 음식 조리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수운需雲은 『주역』에 ‘구름이 하늘 위에 있음이 수괘이니, 군자가 이를 보며 음식연회를 즐겼다.’라는 뜻으로, 풍류를 알고 격조를 지닌 사람들에게 걸맞은 여러 조리법을 소개하였다. 표지를 넘기면 제일 첫 페이지에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욕심을 함부로 부리지 말며, 성색을 줄이고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경계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탁청정의 풍류와 수운잡방에 소개된 음식의 즐거움을 군자답게 즐기라는 메시지인 듯하다.
[건물 뒤편에서 바라본 탁청정과 마을 풍경]
오천군자마을은 비록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이건되면서 옛 선현들이 즐긴 풍경과 풍류를 그대로 짐작하기 어렵지만, 온 마을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고택과 정자, 역사와 문화,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건물과 마을이 아름다워 요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할 정도이다. 옛 김유가 즐겼을 풍류를 상상해 보며, 탁청정 마루에 올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새로운 풍류를 만들어 보길 추천한다.
[선비의 풍류를 간직한 탁청정]
한편,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2020년 7월 7일에 개최한 경북문화관광 콘텐츠 활용전시 ‘영남선비들의 누정’의 전시기간을 2021년 8월 29일까지 연장하여 개최된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의 누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고 있어, 옛 선비들이 누렸던 누정문화를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안동에서 도산서원 쪽으로 난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낙동강 줄기를 끼고 산 언덕에 펼쳐진 한옥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40여 년 전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을 피해 옮겨 온 이곳은 ‘군자마을’이라고 불리는 오천유적지다. 오천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이 20여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한마을을 이루며 살아왔으며, 입향조 농수 김효로 이후 그의 아들과 자손 대에 까지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이들을 ‘오천 25현’이라 하였다. 이에 한강 정구가 ‘오천 한 동네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것을 들어 ‘군자마을’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이다.
[운암곡에 둘러싸인 오천 군자마을]
군자마을을 들어가는 길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특히 도산구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1곡 운암곡에 흐르는 물줄기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수풍경이 봄이면 분홍빛의 꽃나무로 물들고 여름이면 푸른 숲을 이루는가하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극치를 이룬다. 이 마을 안에 특히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바로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탁청정이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자이기도 하고, 그 앞에 연꽃으로 가득 찬 네모난 연못이 눈과 마음을 현혹시킨다.
[작약꽃이 만발한 탁청정 전경]
탁청정은 김효로의 차남 김유金綏, 1491~1555가 향촌사회의 교유와 친목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여러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며 교유하였다. ‘탁청濯淸’이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촌에서 효도와 접빈을 실천한 김유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판이 보이는 탁청정 내부]
[탁청정 현판 (소장:한국국학진흥원 소장:광산김씨 탁청정종가) ]
이틀 전에는 능동재사에 다녀오고, 전날에는 거인居仁에 가서 배소拜掃를 했다.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에 잠시 누워 있다가보니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단잠을 자다 깨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제법 뜨거운 햇볕에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냥 툇마루에 앉아 잠시 있다 보니 친족 한명이 찾아왔다. 동네의 여러 친족들이 탁청정濯淸亭에서 모여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왜 오지 않고 있냐며 재촉을 했다. 얼른 일어나 탁청정으로 건너가 친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매원일기』, (소장:한국국학진흥원 기탁_광산김씨 후조당종택) ]
위의 글은 1603년 탁청정의 주인 김유의 종증손 매원 김광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탁청정은 집안의 친족들과 손님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풍류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은 이웃의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를 비롯한 당대 거유들이 출입하며 정자의 경치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탁청정 마루난간에서 바라본 연못의 전경]
섬돌아래 사각 연못, 연못 위는 정자인데 階下方池池上亭 바람 부는 난간에 찬 기운이 감도누나 風傳欄檻嫩涼生 개울 골짝 휘도는 곳 앞산이 둘러싸고 溪環谷互前山擁 처마 넓고 하늘 낮아 북두칠성 비껴있네 簷豁天低北斗傾 마루 위에 가득한 술 손님을 취하게 하고 坫上酒盈留客醉 난간 옆에 과녁 마련하니 이웃사람 모여드네 軒邊帿設聚隣爭 우리처럼 늙어서 할 일 없는 사람들 多吾老退閒無事 언제든 불러서 정자의 맑은 술맛 나누어 주네 邀輒來分一味淸 | |
- 이현보李賢輔, 탁청정 시에 차운하다次濯淸亭 - |
[수운잡방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_ 광산김씨 설월당종가)]
특히 김유는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직접 음식 조리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수운需雲은 『주역』에 ‘구름이 하늘 위에 있음이 수괘이니, 군자가 이를 보며 음식연회를 즐겼다.’라는 뜻으로, 풍류를 알고 격조를 지닌 사람들에게 걸맞은 여러 조리법을 소개하였다. 표지를 넘기면 제일 첫 페이지에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욕심을 함부로 부리지 말며, 성색을 줄이고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경계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탁청정의 풍류와 수운잡방에 소개된 음식의 즐거움을 군자답게 즐기라는 메시지인 듯하다.
[건물 뒤편에서 바라본 탁청정과 마을 풍경]
오천군자마을은 비록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이건되면서 옛 선현들이 즐긴 풍경과 풍류를 그대로 짐작하기 어렵지만, 온 마을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고택과 정자, 역사와 문화,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건물과 마을이 아름다워 요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할 정도이다. 옛 김유가 즐겼을 풍류를 상상해 보며, 탁청정 마루에 올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새로운 풍류를 만들어 보길 추천한다.
[선비의 풍류를 간직한 탁청정]
한편,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2020년 7월 7일에 개최한 경북문화관광 콘텐츠 활용전시 ‘영남선비들의 누정’의 전시기간을 2021년 8월 29일까지 연장하여 개최된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의 누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고 있어, 옛 선비들이 누렸던 누정문화를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안동에서 도산서원 쪽으로 난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낙동강 줄기를 끼고 산 언덕에 펼쳐진 한옥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40여 년 전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을 피해 옮겨 온 이곳은 ‘군자마을’이라고 불리는 오천유적지다. 오천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이 20여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한마을을 이루며 살아왔으며, 입향조 농수 김효로 이후 그의 아들과 자손 대에 까지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이들을 ‘오천 25현’이라 하였다. 이에 한강 정구가 ‘오천 한 동네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것을 들어 ‘군자마을’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이다.
[운암곡에 둘러싸인 오천 군자마을]
군자마을을 들어가는 길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특히 도산구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1곡 운암곡에 흐르는 물줄기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수풍경이 봄이면 분홍빛의 꽃나무로 물들고 여름이면 푸른 숲을 이루는가하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극치를 이룬다. 이 마을 안에 특히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바로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탁청정이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자이기도 하고, 그 앞에 연꽃으로 가득 찬 네모난 연못이 눈과 마음을 현혹시킨다.
[작약꽃이 만발한 탁청정 전경]
탁청정은 김효로의 차남 김유金綏, 1491~1555가 향촌사회의 교유와 친목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여러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며 교유하였다. ‘탁청濯淸’이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촌에서 효도와 접빈을 실천한 김유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판이 보이는 탁청정 내부]
[탁청정 현판 (소장:한국국학진흥원 소장:광산김씨 탁청정종가) ]
이틀 전에는 능동재사에 다녀오고, 전날에는 거인居仁에 가서 배소拜掃를 했다.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에 잠시 누워 있다가보니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단잠을 자다 깨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제법 뜨거운 햇볕에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냥 툇마루에 앉아 잠시 있다 보니 친족 한명이 찾아왔다. 동네의 여러 친족들이 탁청정濯淸亭에서 모여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왜 오지 않고 있냐며 재촉을 했다. 얼른 일어나 탁청정으로 건너가 친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매원일기』, (소장:한국국학진흥원 기탁_광산김씨 후조당종택) ]
위의 글은 1603년 탁청정의 주인 김유의 종증손 매원 김광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탁청정은 집안의 친족들과 손님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풍류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은 이웃의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를 비롯한 당대 거유들이 출입하며 정자의 경치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탁청정 마루난간에서 바라본 연못의 전경]
섬돌아래 사각 연못, 연못 위는 정자인데 階下方池池上亭 바람 부는 난간에 찬 기운이 감도누나 風傳欄檻嫩涼生 개울 골짝 휘도는 곳 앞산이 둘러싸고 溪環谷互前山擁 처마 넓고 하늘 낮아 북두칠성 비껴있네 簷豁天低北斗傾 마루 위에 가득한 술 손님을 취하게 하고 坫上酒盈留客醉 난간 옆에 과녁 마련하니 이웃사람 모여드네 軒邊帿設聚隣爭 우리처럼 늙어서 할 일 없는 사람들 多吾老退閒無事 언제든 불러서 정자의 맑은 술맛 나누어 주네 邀輒來分一味淸 | |
- 이현보李賢輔, 탁청정 시에 차운하다次濯淸亭 - |
[수운잡방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_ 광산김씨 설월당종가)]
특히 김유는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직접 음식 조리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수운需雲은 『주역』에 ‘구름이 하늘 위에 있음이 수괘이니, 군자가 이를 보며 음식연회를 즐겼다.’라는 뜻으로, 풍류를 알고 격조를 지닌 사람들에게 걸맞은 여러 조리법을 소개하였다. 표지를 넘기면 제일 첫 페이지에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욕심을 함부로 부리지 말며, 성색을 줄이고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경계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탁청정의 풍류와 수운잡방에 소개된 음식의 즐거움을 군자답게 즐기라는 메시지인 듯하다.
[건물 뒤편에서 바라본 탁청정과 마을 풍경]
오천군자마을은 비록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이건되면서 옛 선현들이 즐긴 풍경과 풍류를 그대로 짐작하기 어렵지만, 온 마을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고택과 정자, 역사와 문화,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건물과 마을이 아름다워 요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할 정도이다. 옛 김유가 즐겼을 풍류를 상상해 보며, 탁청정 마루에 올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새로운 풍류를 만들어 보길 추천한다.
[선비의 풍류를 간직한 탁청정]
한편,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2020년 7월 7일에 개최한 경북문화관광 콘텐츠 활용전시 ‘영남선비들의 누정’의 전시기간을 2021년 8월 29일까지 연장하여 개최된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의 누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고 있어, 옛 선비들이 누렸던 누정문화를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안동에서 도산서원 쪽으로 난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낙동강 줄기를 끼고 산 언덕에 펼쳐진 한옥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40여 년 전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을 피해 옮겨 온 이곳은 ‘군자마을’이라고 불리는 오천유적지다. 오천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이 20여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한마을을 이루며 살아왔으며, 입향조 농수 김효로 이후 그의 아들과 자손 대에 까지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이들을 ‘오천 25현’이라 하였다. 이에 한강 정구가 ‘오천 한 동네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것을 들어 ‘군자마을’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이다.
[운암곡에 둘러싸인 오천 군자마을]
군자마을을 들어가는 길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특히 도산구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1곡 운암곡에 흐르는 물줄기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수풍경이 봄이면 분홍빛의 꽃나무로 물들고 여름이면 푸른 숲을 이루는가하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극치를 이룬다. 이 마을 안에 특히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바로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탁청정이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자이기도 하고, 그 앞에 연꽃으로 가득 찬 네모난 연못이 눈과 마음을 현혹시킨다.
[작약꽃이 만발한 탁청정 전경]
탁청정은 김효로의 차남 김유金綏, 1491~1555가 향촌사회의 교유와 친목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여러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며 교유하였다. ‘탁청濯淸’이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촌에서 효도와 접빈을 실천한 김유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판이 보이는 탁청정 내부]
[탁청정 현판 (소장:한국국학진흥원 소장:광산김씨 탁청정종가) ]
이틀 전에는 능동재사에 다녀오고, 전날에는 거인居仁에 가서 배소拜掃를 했다.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에 잠시 누워 있다가보니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단잠을 자다 깨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제법 뜨거운 햇볕에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냥 툇마루에 앉아 잠시 있다 보니 친족 한명이 찾아왔다. 동네의 여러 친족들이 탁청정濯淸亭에서 모여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왜 오지 않고 있냐며 재촉을 했다. 얼른 일어나 탁청정으로 건너가 친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매원일기』, (소장:한국국학진흥원 기탁_광산김씨 후조당종택) ]
위의 글은 1603년 탁청정의 주인 김유의 종증손 매원 김광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탁청정은 집안의 친족들과 손님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풍류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은 이웃의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를 비롯한 당대 거유들이 출입하며 정자의 경치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탁청정 마루난간에서 바라본 연못의 전경]
섬돌아래 사각 연못, 연못 위는 정자인데 階下方池池上亭 바람 부는 난간에 찬 기운이 감도누나 風傳欄檻嫩涼生 개울 골짝 휘도는 곳 앞산이 둘러싸고 溪環谷互前山擁 처마 넓고 하늘 낮아 북두칠성 비껴있네 簷豁天低北斗傾 마루 위에 가득한 술 손님을 취하게 하고 坫上酒盈留客醉 난간 옆에 과녁 마련하니 이웃사람 모여드네 軒邊帿設聚隣爭 우리처럼 늙어서 할 일 없는 사람들 多吾老退閒無事 언제든 불러서 정자의 맑은 술맛 나누어 주네 邀輒來分一味淸 | |
- 이현보李賢輔, 탁청정 시에 차운하다次濯淸亭 - |
[수운잡방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_ 광산김씨 설월당종가)]
특히 김유는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직접 음식 조리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수운需雲은 『주역』에 ‘구름이 하늘 위에 있음이 수괘이니, 군자가 이를 보며 음식연회를 즐겼다.’라는 뜻으로, 풍류를 알고 격조를 지닌 사람들에게 걸맞은 여러 조리법을 소개하였다. 표지를 넘기면 제일 첫 페이지에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욕심을 함부로 부리지 말며, 성색을 줄이고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경계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탁청정의 풍류와 수운잡방에 소개된 음식의 즐거움을 군자답게 즐기라는 메시지인 듯하다.
[건물 뒤편에서 바라본 탁청정과 마을 풍경]
오천군자마을은 비록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이건되면서 옛 선현들이 즐긴 풍경과 풍류를 그대로 짐작하기 어렵지만, 온 마을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고택과 정자, 역사와 문화,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건물과 마을이 아름다워 요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할 정도이다. 옛 김유가 즐겼을 풍류를 상상해 보며, 탁청정 마루에 올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새로운 풍류를 만들어 보길 추천한다.
[선비의 풍류를 간직한 탁청정]
한편,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2020년 7월 7일에 개최한 경북문화관광 콘텐츠 활용전시 ‘영남선비들의 누정’의 전시기간을 2021년 8월 29일까지 연장하여 개최된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의 누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고 있어, 옛 선비들이 누렸던 누정문화를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안동에서 도산서원 쪽으로 난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낙동강 줄기를 끼고 산 언덕에 펼쳐진 한옥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40여 년 전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을 피해 옮겨 온 이곳은 ‘군자마을’이라고 불리는 오천유적지다. 오천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이 20여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한마을을 이루며 살아왔으며, 입향조 농수 김효로 이후 그의 아들과 자손 대에 까지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이들을 ‘오천 25현’이라 하였다. 이에 한강 정구가 ‘오천 한 동네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것을 들어 ‘군자마을’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이다.
[운암곡에 둘러싸인 오천 군자마을]
군자마을을 들어가는 길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특히 도산구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1곡 운암곡에 흐르는 물줄기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수풍경이 봄이면 분홍빛의 꽃나무로 물들고 여름이면 푸른 숲을 이루는가하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극치를 이룬다. 이 마을 안에 특히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바로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탁청정이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자이기도 하고, 그 앞에 연꽃으로 가득 찬 네모난 연못이 눈과 마음을 현혹시킨다.
[작약꽃이 만발한 탁청정 전경]
탁청정은 김효로의 차남 김유金綏, 1491~1555가 향촌사회의 교유와 친목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여러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며 교유하였다. ‘탁청濯淸’이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촌에서 효도와 접빈을 실천한 김유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판이 보이는 탁청정 내부]
[탁청정 현판 (소장:한국국학진흥원 소장:광산김씨 탁청정종가) ]
이틀 전에는 능동재사에 다녀오고, 전날에는 거인居仁에 가서 배소拜掃를 했다.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에 잠시 누워 있다가보니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단잠을 자다 깨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제법 뜨거운 햇볕에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냥 툇마루에 앉아 잠시 있다 보니 친족 한명이 찾아왔다. 동네의 여러 친족들이 탁청정濯淸亭에서 모여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왜 오지 않고 있냐며 재촉을 했다. 얼른 일어나 탁청정으로 건너가 친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매원일기』, (소장:한국국학진흥원 기탁_광산김씨 후조당종택) ]
위의 글은 1603년 탁청정의 주인 김유의 종증손 매원 김광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탁청정은 집안의 친족들과 손님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풍류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은 이웃의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를 비롯한 당대 거유들이 출입하며 정자의 경치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탁청정 마루난간에서 바라본 연못의 전경]
섬돌아래 사각 연못, 연못 위는 정자인데 階下方池池上亭 바람 부는 난간에 찬 기운이 감도누나 風傳欄檻嫩涼生 개울 골짝 휘도는 곳 앞산이 둘러싸고 溪環谷互前山擁 처마 넓고 하늘 낮아 북두칠성 비껴있네 簷豁天低北斗傾 마루 위에 가득한 술 손님을 취하게 하고 坫上酒盈留客醉 난간 옆에 과녁 마련하니 이웃사람 모여드네 軒邊帿設聚隣爭 우리처럼 늙어서 할 일 없는 사람들 多吾老退閒無事 언제든 불러서 정자의 맑은 술맛 나누어 주네 邀輒來分一味淸 | |
- 이현보李賢輔, 탁청정 시에 차운하다次濯淸亭 - |
[수운잡방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_ 광산김씨 설월당종가)]
특히 김유는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직접 음식 조리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수운需雲은 『주역』에 ‘구름이 하늘 위에 있음이 수괘이니, 군자가 이를 보며 음식연회를 즐겼다.’라는 뜻으로, 풍류를 알고 격조를 지닌 사람들에게 걸맞은 여러 조리법을 소개하였다. 표지를 넘기면 제일 첫 페이지에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욕심을 함부로 부리지 말며, 성색을 줄이고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경계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탁청정의 풍류와 수운잡방에 소개된 음식의 즐거움을 군자답게 즐기라는 메시지인 듯하다.
[건물 뒤편에서 바라본 탁청정과 마을 풍경]
오천군자마을은 비록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이건되면서 옛 선현들이 즐긴 풍경과 풍류를 그대로 짐작하기 어렵지만, 온 마을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고택과 정자, 역사와 문화,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건물과 마을이 아름다워 요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할 정도이다. 옛 김유가 즐겼을 풍류를 상상해 보며, 탁청정 마루에 올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새로운 풍류를 만들어 보길 추천한다.
[선비의 풍류를 간직한 탁청정]
한편,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2020년 7월 7일에 개최한 경북문화관광 콘텐츠 활용전시 ‘영남선비들의 누정’의 전시기간을 2021년 8월 29일까지 연장하여 개최된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의 누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고 있어, 옛 선비들이 누렸던 누정문화를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안동에서 도산서원 쪽으로 난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낙동강 줄기를 끼고 산 언덕에 펼쳐진 한옥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40여 년 전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을 피해 옮겨 온 이곳은 ‘군자마을’이라고 불리는 오천유적지다. 오천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이 20여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한마을을 이루며 살아왔으며, 입향조 농수 김효로 이후 그의 아들과 자손 대에 까지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이들을 ‘오천 25현’이라 하였다. 이에 한강 정구가 ‘오천 한 동네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것을 들어 ‘군자마을’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이다.
[운암곡에 둘러싸인 오천 군자마을]
군자마을을 들어가는 길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특히 도산구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1곡 운암곡에 흐르는 물줄기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수풍경이 봄이면 분홍빛의 꽃나무로 물들고 여름이면 푸른 숲을 이루는가하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극치를 이룬다. 이 마을 안에 특히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바로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탁청정이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자이기도 하고, 그 앞에 연꽃으로 가득 찬 네모난 연못이 눈과 마음을 현혹시킨다.
[작약꽃이 만발한 탁청정 전경]
탁청정은 김효로의 차남 김유金綏, 1491~1555가 향촌사회의 교유와 친목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여러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며 교유하였다. ‘탁청濯淸’이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촌에서 효도와 접빈을 실천한 김유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판이 보이는 탁청정 내부]
[탁청정 현판 (소장:한국국학진흥원 소장:광산김씨 탁청정종가) ]
이틀 전에는 능동재사에 다녀오고, 전날에는 거인居仁에 가서 배소拜掃를 했다.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에 잠시 누워 있다가보니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단잠을 자다 깨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제법 뜨거운 햇볕에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냥 툇마루에 앉아 잠시 있다 보니 친족 한명이 찾아왔다. 동네의 여러 친족들이 탁청정濯淸亭에서 모여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왜 오지 않고 있냐며 재촉을 했다. 얼른 일어나 탁청정으로 건너가 친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매원일기』, (소장:한국국학진흥원 기탁_광산김씨 후조당종택) ]
위의 글은 1603년 탁청정의 주인 김유의 종증손 매원 김광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탁청정은 집안의 친족들과 손님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풍류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은 이웃의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를 비롯한 당대 거유들이 출입하며 정자의 경치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탁청정 마루난간에서 바라본 연못의 전경]
섬돌아래 사각 연못, 연못 위는 정자인데 階下方池池上亭 바람 부는 난간에 찬 기운이 감도누나 風傳欄檻嫩涼生 개울 골짝 휘도는 곳 앞산이 둘러싸고 溪環谷互前山擁 처마 넓고 하늘 낮아 북두칠성 비껴있네 簷豁天低北斗傾 마루 위에 가득한 술 손님을 취하게 하고 坫上酒盈留客醉 난간 옆에 과녁 마련하니 이웃사람 모여드네 軒邊帿設聚隣爭 우리처럼 늙어서 할 일 없는 사람들 多吾老退閒無事 언제든 불러서 정자의 맑은 술맛 나누어 주네 邀輒來分一味淸 | |
- 이현보李賢輔, 탁청정 시에 차운하다次濯淸亭 - |
[수운잡방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_ 광산김씨 설월당종가)]
특히 김유는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직접 음식 조리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수운需雲은 『주역』에 ‘구름이 하늘 위에 있음이 수괘이니, 군자가 이를 보며 음식연회를 즐겼다.’라는 뜻으로, 풍류를 알고 격조를 지닌 사람들에게 걸맞은 여러 조리법을 소개하였다. 표지를 넘기면 제일 첫 페이지에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욕심을 함부로 부리지 말며, 성색을 줄이고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경계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탁청정의 풍류와 수운잡방에 소개된 음식의 즐거움을 군자답게 즐기라는 메시지인 듯하다.
[건물 뒤편에서 바라본 탁청정과 마을 풍경]
오천군자마을은 비록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이건되면서 옛 선현들이 즐긴 풍경과 풍류를 그대로 짐작하기 어렵지만, 온 마을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고택과 정자, 역사와 문화,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건물과 마을이 아름다워 요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할 정도이다. 옛 김유가 즐겼을 풍류를 상상해 보며, 탁청정 마루에 올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새로운 풍류를 만들어 보길 추천한다.
[선비의 풍류를 간직한 탁청정]
한편,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2020년 7월 7일에 개최한 경북문화관광 콘텐츠 활용전시 ‘영남선비들의 누정’의 전시기간을 2021년 8월 29일까지 연장하여 개최된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의 누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고 있어, 옛 선비들이 누렸던 누정문화를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안동에서 도산서원 쪽으로 난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낙동강 줄기를 끼고 산 언덕에 펼쳐진 한옥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40여 년 전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을 피해 옮겨 온 이곳은 ‘군자마을’이라고 불리는 오천유적지다. 오천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이 20여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한마을을 이루며 살아왔으며, 입향조 농수 김효로 이후 그의 아들과 자손 대에 까지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이들을 ‘오천 25현’이라 하였다. 이에 한강 정구가 ‘오천 한 동네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것을 들어 ‘군자마을’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이다.
[운암곡에 둘러싸인 오천 군자마을]
군자마을을 들어가는 길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특히 도산구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1곡 운암곡에 흐르는 물줄기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수풍경이 봄이면 분홍빛의 꽃나무로 물들고 여름이면 푸른 숲을 이루는가하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극치를 이룬다. 이 마을 안에 특히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바로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탁청정이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자이기도 하고, 그 앞에 연꽃으로 가득 찬 네모난 연못이 눈과 마음을 현혹시킨다.
[작약꽃이 만발한 탁청정 전경]
탁청정은 김효로의 차남 김유金綏, 1491~1555가 향촌사회의 교유와 친목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여러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며 교유하였다. ‘탁청濯淸’이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촌에서 효도와 접빈을 실천한 김유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판이 보이는 탁청정 내부]
[탁청정 현판 (소장:한국국학진흥원 소장:광산김씨 탁청정종가) ]
이틀 전에는 능동재사에 다녀오고, 전날에는 거인居仁에 가서 배소拜掃를 했다.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에 잠시 누워 있다가보니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단잠을 자다 깨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제법 뜨거운 햇볕에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냥 툇마루에 앉아 잠시 있다 보니 친족 한명이 찾아왔다. 동네의 여러 친족들이 탁청정濯淸亭에서 모여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왜 오지 않고 있냐며 재촉을 했다. 얼른 일어나 탁청정으로 건너가 친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매원일기』, (소장:한국국학진흥원 기탁_광산김씨 후조당종택) ]
위의 글은 1603년 탁청정의 주인 김유의 종증손 매원 김광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탁청정은 집안의 친족들과 손님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풍류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은 이웃의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를 비롯한 당대 거유들이 출입하며 정자의 경치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탁청정 마루난간에서 바라본 연못의 전경]
섬돌아래 사각 연못, 연못 위는 정자인데 階下方池池上亭 바람 부는 난간에 찬 기운이 감도누나 風傳欄檻嫩涼生 개울 골짝 휘도는 곳 앞산이 둘러싸고 溪環谷互前山擁 처마 넓고 하늘 낮아 북두칠성 비껴있네 簷豁天低北斗傾 마루 위에 가득한 술 손님을 취하게 하고 坫上酒盈留客醉 난간 옆에 과녁 마련하니 이웃사람 모여드네 軒邊帿設聚隣爭 우리처럼 늙어서 할 일 없는 사람들 多吾老退閒無事 언제든 불러서 정자의 맑은 술맛 나누어 주네 邀輒來分一味淸 | |
- 이현보李賢輔, 탁청정 시에 차운하다次濯淸亭 - |
[수운잡방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_ 광산김씨 설월당종가)]
특히 김유는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직접 음식 조리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수운需雲은 『주역』에 ‘구름이 하늘 위에 있음이 수괘이니, 군자가 이를 보며 음식연회를 즐겼다.’라는 뜻으로, 풍류를 알고 격조를 지닌 사람들에게 걸맞은 여러 조리법을 소개하였다. 표지를 넘기면 제일 첫 페이지에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욕심을 함부로 부리지 말며, 성색을 줄이고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경계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탁청정의 풍류와 수운잡방에 소개된 음식의 즐거움을 군자답게 즐기라는 메시지인 듯하다.
[건물 뒤편에서 바라본 탁청정과 마을 풍경]
오천군자마을은 비록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이건되면서 옛 선현들이 즐긴 풍경과 풍류를 그대로 짐작하기 어렵지만, 온 마을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고택과 정자, 역사와 문화,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건물과 마을이 아름다워 요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할 정도이다. 옛 김유가 즐겼을 풍류를 상상해 보며, 탁청정 마루에 올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새로운 풍류를 만들어 보길 추천한다.
[선비의 풍류를 간직한 탁청정]
한편,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2020년 7월 7일에 개최한 경북문화관광 콘텐츠 활용전시 ‘영남선비들의 누정’의 전시기간을 2021년 8월 29일까지 연장하여 개최된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의 누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고 있어, 옛 선비들이 누렸던 누정문화를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안동에서 도산서원 쪽으로 난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낙동강 줄기를 끼고 산 언덕에 펼쳐진 한옥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40여 년 전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을 피해 옮겨 온 이곳은 ‘군자마을’이라고 불리는 오천유적지다. 오천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 사람들이 20여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한마을을 이루며 살아왔으며, 입향조 농수 김효로 이후 그의 아들과 자손 대에 까지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이들을 ‘오천 25현’이라 하였다. 이에 한강 정구가 ‘오천 한 동네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것을 들어 ‘군자마을’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이다.
[운암곡에 둘러싸인 오천 군자마을]
군자마을을 들어가는 길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특히 도산구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1곡 운암곡에 흐르는 물줄기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수풍경이 봄이면 분홍빛의 꽃나무로 물들고 여름이면 푸른 숲을 이루는가하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극치를 이룬다. 이 마을 안에 특히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바로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탁청정이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자이기도 하고, 그 앞에 연꽃으로 가득 찬 네모난 연못이 눈과 마음을 현혹시킨다.
[작약꽃이 만발한 탁청정 전경]
탁청정은 김효로의 차남 김유金綏, 1491~1555가 향촌사회의 교유와 친목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여러 선비들과 풍류를 즐기며 교유하였다. ‘탁청濯淸’이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촌에서 효도와 접빈을 실천한 김유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판이 보이는 탁청정 내부]
[탁청정 현판 (소장:한국국학진흥원 소장:광산김씨 탁청정종가) ]
이틀 전에는 능동재사에 다녀오고, 전날에는 거인居仁에 가서 배소拜掃를 했다.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에 잠시 누워 있다가보니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단잠을 자다 깨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제법 뜨거운 햇볕에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냥 툇마루에 앉아 잠시 있다 보니 친족 한명이 찾아왔다. 동네의 여러 친족들이 탁청정濯淸亭에서 모여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왜 오지 않고 있냐며 재촉을 했다. 얼른 일어나 탁청정으로 건너가 친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매원일기』, (소장:한국국학진흥원 기탁_광산김씨 후조당종택) ]
위의 글은 1603년 탁청정의 주인 김유의 종증손 매원 김광계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탁청정은 집안의 친족들과 손님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풍류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은 이웃의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를 비롯한 당대 거유들이 출입하며 정자의 경치를 사랑하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탁청정 마루난간에서 바라본 연못의 전경]
섬돌아래 사각 연못, 연못 위는 정자인데 階下方池池上亭 바람 부는 난간에 찬 기운이 감도누나 風傳欄檻嫩涼生 개울 골짝 휘도는 곳 앞산이 둘러싸고 溪環谷互前山擁 처마 넓고 하늘 낮아 북두칠성 비껴있네 簷豁天低北斗傾 마루 위에 가득한 술 손님을 취하게 하고 坫上酒盈留客醉 난간 옆에 과녁 마련하니 이웃사람 모여드네 軒邊帿設聚隣爭 우리처럼 늙어서 할 일 없는 사람들 多吾老退閒無事 언제든 불러서 정자의 맑은 술맛 나누어 주네 邀輒來分一味淸 | |
- 이현보李賢輔, 탁청정 시에 차운하다次濯淸亭 - |
[수운잡방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_ 광산김씨 설월당종가)]
특히 김유는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직접 음식 조리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수운需雲은 『주역』에 ‘구름이 하늘 위에 있음이 수괘이니, 군자가 이를 보며 음식연회를 즐겼다.’라는 뜻으로, 풍류를 알고 격조를 지닌 사람들에게 걸맞은 여러 조리법을 소개하였다. 표지를 넘기면 제일 첫 페이지에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욕심을 함부로 부리지 말며, 성색을 줄이고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경계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탁청정의 풍류와 수운잡방에 소개된 음식의 즐거움을 군자답게 즐기라는 메시지인 듯하다.
[건물 뒤편에서 바라본 탁청정과 마을 풍경]
오천군자마을은 비록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이건되면서 옛 선현들이 즐긴 풍경과 풍류를 그대로 짐작하기 어렵지만, 온 마을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고택과 정자, 역사와 문화,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건물과 마을이 아름다워 요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할 정도이다. 옛 김유가 즐겼을 풍류를 상상해 보며, 탁청정 마루에 올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새로운 풍류를 만들어 보길 추천한다.
[선비의 풍류를 간직한 탁청정]
한편,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2020년 7월 7일에 개최한 경북문화관광 콘텐츠 활용전시 ‘영남선비들의 누정’의 전시기간을 2021년 8월 29일까지 연장하여 개최된다.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의 누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고 있어, 옛 선비들이 누렸던 누정문화를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