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972) - 깊어가는 가을, 의미 있는 발걸음 보스턴 생활 7주째, 9월 하순 도착할 무렵 초가을이더니 50여일 지나서도 아름다운 가을풍광이 이어진다. 봄가을은 짧다는데 깊어가는 가을날을 온전하게 즐기는 보스턴의 일상이 고마워라.
보스턴 중심가 공원에서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목요일(11월 3일), 불의에 과감히 맞서 싸운 학생의 날인 것을 새기며 뜻밖의 참사로 희생한 젊은 넋들에게 부끄러움과 비통함으로 고개를 숙였다. 언제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음을 내세울 수 있을까. 이날 저녁, 보스턴 중심가에 있는 올드 사우스 교회의 째즈 예배에 참석하였다. 20여일 전에 수백 년 역사와 전통이 서린 교회를 탐방하였을 때 매주 목요일 저녁에 째즈 예배가 있다는 공지를 보고 뒤늦게 찾은 것이다. 6시에 시작되는 예배 참석자는 50여 명, 음률에 맞춰 연주하는 악기와 노래의 화음이 경쾌하다. 차분한 어조의 선임목사가 전하는 메시지가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의 부목사가 리드하는 기도의 시간이 은혜롭다. 종교행사도 문화의 한 영역,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경건의 현장을 뜻깊게 참관하였다.
경쾌한 화음의 째즈 예배 모습
하늘 푸르고 햇볕 따뜻한 금요일(11월 4일) 오후, 주변경관이 빼어난 찰스 강변을 지나 도심의 시가지와 공원을 거닐며 유유자적하였다. 엄청나게 큰 공원의 안내소에서 살핀 팸플릿의 한 구절, ‘Greater Boston, America’s Walking City’가 눈길을 끈다. 3주 전에 찰스 강변을 걸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이 마음에 들어 다시 한 번 걸으리라 다짐한 터. 강변 길 끝나고 발걸음을 다운타운으로 확대하니 도로변에 즐비한 식당가에 손님들이 가득하고 여러 종류의 과자류를 푸짐하게 진열한 노변상점의 미끼상품이 행인의 마음을 넉넉하게 품어준다. 도심에 자리한 넓고 쾌적한 공원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의 표정이 여유롭고. 날마다 숙소 주변의 숲과 트랙, 연못을 10여km 남짓 걸으며 걷기를 즐기는데 당국에서도 Walking City를 자부하니 이에 화답하여 더욱 열심히 걸으리라.
찰스 강변의 아름다운 경관
토요일(11월 5일), 주중 바쁜 일과인 아들이 주말에 틈을 내어 안내한 곳은 보스턴에서 한 시간 거리의 페퍼렐에 있는 지붕 있는 다리(THE PEPPERELL COVERED BRIDGE), 보스턴 마라톤의 출발지점인 홉킨턴과 그 주변을 오가는 마사츄세츠 서부 평원지대다. 오전 10시에 집을 나서 한적한 시골마을의 페퍼렐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작은 강을 가로지르는 지점에 지붕을 씌운 아담한 다리가 눈에 띤다. 다리에 지붕을 씌운 것은 추운 겨울철에 내리는 눈에 빙판이 얼어붙는 것을 막기 위한 보온장치, 미국 동북부에 이런 다리가 여럿이라는 아들의 설명이다. 오래 전 세간의 화제가 된 영화의 무대, 메디슨 카운티 다리(시카고 인근의 오하이오 주에 있는)도 지붕 있는 다리의 한 예라는 설명에 동행한 가족들도 더 흥미로운 느낌으로 현장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1775년 독립전쟁 때 이 다리를 거점으로 영웅적인 활약을 한 여성, 페퍼렐 타운의 지도적 인사의 공덕을 기리는 비문이 우뚝하고. 다리에 얽힌 전설과 이야기는 어느 곳이나 있기 마련, 나로서는 이런 사연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청평에 사는 누님 댁을 찾아가는 길, 정류소가 있는 면소재지에 들어서기 전 강변에서 내려 지름길을 가로지르는 철교를 건너던 중 기적소리가 울렸다. 다리 중간지점에서 갑작스럽게 부닥친 위험상황, 순간적으로 무수한 상념이 머리를 스친다. 잠시 후 정신 차려 다시 들은 것은 택시의 빵~하는 크략숀 소리, 혼비백산했다가 후유하고 한숨 돌렸던 기억이 지금도 아찔하다. 그렇던 소년이 청장년 지나 노년에 이르렀다. 무심한 세월 잘 견뎌온 지난날들이 대견하여라.
지붕 있는 다리(THE PEPPERELL COVERED BRIDGE)
페퍼렐 다리에서 출발하여 향한 곳은 마사츄세츠 주 제2의 도시 Worcester의 ELM PARK, 조용하고 쾌적한 도시 한 복판에 넓게 자리한 공원에 어린이를 대동한 가족들이 많고 공원 한쪽에서는 11월 8일의 중간 선거를 앞둔 선거유세가 펼쳐지고 있다. 비어 있는 벤치를 찾아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점심식사, 울긋불긋 단풍 화려한 주변풍광을 살피며 화목하게 즐기는 야외식탁이 운치 있다.
귀로에 보스턴마라톤 대회의 출발지점인 홉킨턴에 들렀다. 사흘 전 보스턴 중심가의 도착지점을 살핀데 이어 현장탐사를 안내한 아들의 배려가 고맙다. 홉킨턴 타운 홀 인근의 출발장소는 호젓한 도로변, 높이 세운 현판에 MARATHON WAY라 새긴 글자가 선명하고 출발신호를 알리는 권총을 높이 든 신사복차림의 동상이 우뚝하다. 길 건너편에 있는 보스턴한인장로교회 건물이 아담하고 출발지점의 도로바닥에는 보스턴마라톤이라 크게 새긴 원형표지판이 그려져 있다. 보스턴 중심부까지 26마일을 힘차게 달리는 건각들의 행진을 그려보며 마라톤 출발지점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늘 그런 날들이어라.
홉킨턴의 보스턴 마라톤 출발지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