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에 대하여
文 熙 鳳
젊음이란 둘도 없이 소중한 재산이다. 청년의 몸은 용수철이다. 탄력이 있다. 오뚝이를 보았는가? 자빠지면 일어나고 자빠지면 또 일어나는 오뚝이 말이다. 그들에게 패배란 없다. 사전오기, 칠전팔기란 말도 그들 사전에는 없다. 무조건 자빠지면 일어난다. 젊음은 평범한 것을 가지고 비범한 것을 만들어내는 초능력의 시기이다.
인생은 한 그루의 나무다. 나무도 눈보라와 북서풍이 없다면 곧고 맑게 자라지 못한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몸짓을 지니지 못한다. 젊었을 적 시련은 그래서 의미 있는 것이다. 저무는 들녘에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억새풀처럼 늙어가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의 고난극복은 필수요소다.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살아갈 수 있는 갈대의 삶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꽃나무들이 경쟁하듯 활기차게 색칠을 하고 있다. 그들만의 청춘 향연이다. 꽃잎이 떠나간 자리에 새로운 열매가 열린다. 욱일승천하던 이삼십 대와 결실을 누리는 오륙십 대의 풍요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야무진 씨알로 태어나 얼마간의 시련을 딛고 기름진 땅에 뿌려져 좋은 일기 속에 자란 청춘은 그 열매도 크고 충실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청춘 시절의 그 소중함이 실감나게 오버랩 된다. 청춘 시절 육신의 탄력성을 생각하면 저절로 신이 난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노라 회고해 보는 것 자체가 즐겁다. 수줍어 수줍어 동경으로 청춘을 물들이는 진달래 같은 시절이 있었다. 좁다란 평균대 같은 삶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별 하나 내게로 달려와 작은 씨앗 하나 심어주었다. 그런 후로 허공에 조금씩 조금씩 초록꿈이 자라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을 ‘절벽을 세워 수려한 산수병(山水屛)을 꾸미는 산’에 비유하면 어떨까. 내가 만든 그 산은 정녕 유명 화가의 그림이요 조각가의 작품이었다.
참된 젊음은 겁내는 것을 모른다. 사자라도 때려 잡을 용맹이 있다. 결코 사자에게 패배할 체력이 아니다. 그것뿐인가? 고난 앞에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인고의 과정을 끈덕지게 이기고 살아남은 후에야 5월 농부요 9월 신선이 된다. 이순의 인생은 9월의 나무요, 산수(傘壽)의 인생은 11월의 나무다.
아무리 큰 장애가 앞을 가로 막아도 청년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대지를 박차고 용감하게 도전한다. 준비가 잘 된 젊음이라야 너그러운 가슴으로 열려있는 들녘을 꾸며 계절을 대표하는 전령사가 된다.
거기에 청년의 혼이 있다. 설령 일시적으로 패하고 좌절해도 그 젊은 도전의 정신 그 자체가 청년을 한 차례 두 차례 크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커가면서 성인시절의 토양을 준비한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 승리하기 위한 귀중한 '무엇인가'를 가슴에 새긴다.
엊그제 다녀온 치악산 계곡은 넉넉하고 길었다. 나는 그곳에서 정결하게 지려하는 꽃을 보았다. 나무는 계곡물로 하여 기름지게 성장하고, 계곡은 나무숲으로 하여 더욱 운치로웠다. 하얗게 희어버린 꽃대궁에서 세월에 시달린 한 인생의 고뇌를 연상하게 하는 억새를 보면 나도 모르게 동공이 촉촉하게 젖어옴을 느낀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내려앉은 시절이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처마 밑에 있는 녹슨 호미 마음은 남새밭에 가 있지만 그건 정말 마음뿐이다. 예전에 살갑게 지내던 친구들도 산수를 넘기고서는 저마다 구렁이 담구멍에 스며들 듯 소식이 끊어진다. 젊음이 소진됐다는 증거이리라.
공을 보면 차고 싶고, 테니스장 곁을 지나면 유니폼 갖춰 입고 들어가 뛰고 싶다. 아직은 육신이 내 뜻에 복종하고 있으니 좋다. 지금 내 인생은 한 칸씩 밀려 쓴 답안지 같지 않으니 다행이다. 살아 생전에 하고 싶은 일, 못하고 죽으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드릴 말씀이 없다. 산을 오를 때도 쓰디쓴 인생의 여정이라 생각하고 참고 견디며 개척한다는 정신으로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 배가 나온 중년은 한 칸씩 늘어감이 걱정이고, 연만한 어르신은 한 칸씩 줄어듦이 걱정이다. 그래도 받아들일 일이다.
젊음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의 보물산을 앞에 두고 고난이나 노고에 주저하거나 되돌아오는 그런 기개 없는 젊음을 나는 싫어한다. 새순을 피워놓고 사그러져 가는 등걸을 생각한다. 만남은 반갑고 이별은 서럽다. 아름다운 행려에는 언제나 아쉬움이 뒤따르는 것이다. 아쉬움과 허전함이 앙금처럼 남는다. 흘러가는 세월은 매어둘 수 없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주위의 찬란한 별들의 호위 속에 둥근 달 나뭇가지에 걸려 ‘지화자’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젊은 날 쏜 화살이 이제사 내 앞을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