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호4:4-5)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4]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5]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여로보암 2세부터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 때까지 약 30여 년간입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사역 초기인 여로보암 2세 때 북 이스라엘은 왜적의 침략 없이 영토의 회복과 찬란한 경제적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불꽃 같은 번영은 순식간에 어둠의 폐허가 되는데 여로보암 2세 이후에 네 명의 왕들은 모두 암살당하고 마지막 호세아 왕은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망하기 직전에 잠깐의 번영과 평화의 시기를 주셨는데 이스라엘은 호세와 선지자의 음란한 아내 고멜처럼 하나님을 멀리 떠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은 채 더욱 타락했으며 왕과 관리들은 물론 제사장들마저 본분을 저버리고 강도 때처럼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당연히 백성도 지도자들을 따라 저주와 속임, 살인과 도둑질 간음과 포악한 복수를 자행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이 이 모든 죄악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는 당장 보고 만지고 즐길 수 있는 것을 더 찾으려고 집중하고 그것을 더 많이 얻으려고 애썼습니다.
점점 더 자신들이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해졌지만 그들이 사랑한다고 여긴 대상은 ‘나무와 막대기’에 불과한 우상일 뿐이었습니다.
심판받을 사회의 특징은 서로 비난하는 모습입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속담처럼 서로가 비난하는 사회입니다. 서로 비난하면 사회가 정화될 듯싶지만 아닙니다. 증오와 미움만 증가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미 모두가 자격을 잃었습니다. 자기 눈의 들보를 빼어야 형제 눈의 티를 빼줄 수 있을 텐데, 자기 눈의 들보를 놔두고 티를 빼겠다고 설치니 견디기 어려운 사회입니다.
실천하는 자는 없고, 오로지 지적질만 난무하는 것은 사회 전체가 몰락할 징조입니다.
서로 남 탓하는 백성과 제사장들로 인해 나라가 조용할 때가 없습니다.
백성들은 낮에 넘어지고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집니다.
낮에 망하나 밤에 망하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망하면 집안 살림이 망가집니다.
네 어머니는 이스라엘을 뜻하고 결국은 망하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버린 것처럼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의 자손을 버리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여 심판을 받게 된 엘리 제사장과 그의 집안에 임한 심판을 연상케 합니다.(삼상3:11-14)
백성의 죄악을 지적하고 옳은 길을 가르쳐야 할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은 나라가 멸망하는 지름길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데, 그 지식을 전해야 할 제사장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율법을 버렸으므로 멸망의 때에 그들의 직분을 잃게 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의 지위를 잃게 될 것입니다.
1.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4)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그 원인이 서로에게 있다고 전가하거나 비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한 것은 누가 누구에게 떠넘길 그럴 사항이 아니라 제사장이나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완고하고 신실치 못한 불의함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 임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인이 서로 당신 때문이라고 “네 백성들과 제사장들과 다투는 자들이 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즉 이스라엘 제사장과 백성들 모두가 불법과 행악 가운데 빠져있음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다는 것은,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인데 이 제사장과 다툰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이처럼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죄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큰 위기이며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다는 뜻은 너무 쉽게 다투고 싸운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신실하고 거룩한 제사장하고 다툰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제사장들은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요 그것을 집행하는 재판관이기도 했습니다. 재판관과 다투는 자 같이 되어 그들의 권위에 항거하고 덤비면서 이스라엘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아무 사람도 다투거나 책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논쟁을 시작하셨으니 오직 그의 심판에 맡겨 드리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노골적인 죄악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심판의 정당성은 이스라엘의 핑계치 못하는 죄악 된 모습과 함께, 선지자들을 통해 계속된 경고를 이스라엘이 무시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겪게 될 다양한 차원에서의 심판은 다양한 죄악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실은 일이 잘못되어 사태가 악화 되면 사람들은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원초적인 책임 회피증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원죄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차례로 책임을 전가시켰지만, 하나님은 모두를 저주하셨습니다.
이스라엘왕 요람은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면서 나라의 위기 때에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의지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었으며, 나라의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통치자인 자신이 지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전가시키려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업신여기는 비열한 행위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선지자 엘리사에 의하여 '살인자의 자식'으로 규정되고 그의 군대장관 예후에 의해 그의 일족이 모두 피살되는 비운을 맞게 된 것입니다. 책임 전가의 죄는 하나님의 저주를 불러옴을 명심해야 합니다.
본문4절에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처참한 저주의 결과를 놓고 서로 책임 전가하고 책망하게 되는 일이 일어날 텐데 그러나 그것은 죗값이요 하나님의 심판이므로 누구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탓하는 것은 우리 조상 아담 때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살아있는 세계에서는 모두 내 책임입니다. 문제가 터졌다 하면 그 문제는 내 탓입니다. ‘나 때문입니다’를 고백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자신의 죄와 수치를 감추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죄를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죄를 범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의 속성 중에는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또 다른 범죄를 행하게 하는 연속성이 있습니다.
불행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이나 불행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궁지에서 벗어나 마음 편해지기 위해 즉각 다른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립니다.
물론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잘못을 직면해야 하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번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나면 책임을 떠 넘기는 것은 좀처럼 떨쳐버릴 수 없는 습관으로 굳어집니다.
환경을 탓하고 남을 탓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태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부족함이 없는데 내가 문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받은 상처는 평생 잊지 못하지만 받은 은혜는 금방 잊어버립니다. 잘되면 자기가 잘 나서 된 것이고, 잘못되면 남을 탓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대부분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이유가 있고 핑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의 이유는 다 일리가 있고 다 그럴싸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유야 어떠하든 조건이야 어떠하든 하나님을 멀리하고 떠나면 그 영혼이 시들고 죽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에 백성을 인도하여야 할 이들이 도리어 우상숭배와 같은 악영향을 미치는 일에 앞장섰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원인을 알았으면 빨리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땅도 회복되고 사람들과 들짐승과 새와 고기들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돌아오지 않으면 멸망하고 돌아오면 삽니다.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는 말씀을 깨닫고 죄 된일을 변명하지 말고 책임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낮과 밤에 넘어지리라(5)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이스라엘 자손이 ‘낮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은 밝은 대낮에 눈으로 얼마든지 장애물을 식별할 수 있음에도 걸려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스라엘 자손의 상태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는 보통 사람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도 올바르게 길을 찾아 백성을 인도해야 할 책임이 선지자에게 있습니다. 선지자 자신이 밤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은 선지자 직무를 올바르게 수행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 29:1)
한편 제사장들은 낮에 넘어지겠고, 선지자들은 밤에 넘어지는 것은 제사장들의 제사와 제사장들과 함께 있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폐한다는 의미로 보는 것도 틀리지 않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이제 무의미해 집니다. 그들이 이방신을 찾고 분향하던 그 모습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며 그들의 분향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들과 함께 있는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일 것이며 이방 선지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해서 거짓말을 일삼은 그들의 예언을 백성들은 더 이상 듣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 허무한 데서 오는 모든 것을 쓸모없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넘어진다는 것은 죄에 대한 형벌과 심판을 의미합니다. 너희들이 범한 죄에 대해서 분명하게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네 어머니를 멸하겠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이야기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권이 있는 나라 전체까지도 멸망시키겠다는 하나님의 강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죄악된 길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악 된 길에서 돌아서야 하고,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현상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성령님의 역사가 줄어들고 나타나지 않는 것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습니다. 교인수가 줄거나 헌금이 줄어들면 야단이 나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언약의 보증인 성령의 역사와 은혜가 사라지고 있는데도 그것을 별로 문제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업이 넘어가면 난리가 납니다. 자식이 떨어지면 난리가 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성령님의 은혜가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본문5절에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그런데 이런 현상이 온 땅이 그리합니다. 영적으로 황무한 세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고소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지금 돌이킨다면 아직 우리는 가망이 있습니다. 진실과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도 하지 않으며, 말씀을 전해도 듣기조차 싫어하니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려 더 이상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여기서 ‘너’는 제사장을 의미한다. 제사장이 넘어질 것이라는 것은 이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죄의 결과로 더 이상 사역을 못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이 대체 어떤 죄를 지었는가?
제사장들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만일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쳤었다면, 백성들이 여호와와 바알을 혼돈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제사장들이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음으로 인해 백성들은 멸망의 길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정리하면, 제사장들은 한 마디로 자신의 소명을 잘 감당하지 않은 직무유기의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제사장들은 더 이상 그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지자들은? 호세아는 제사장은 낮에, 선지자는 밤에 넘어질 것이라 하였습니다.
넘어지는 것은 제사장만이 아닙니다. 선지자 역시 제사장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선지자는 어떤 면에서 보면 늘 제사장과 척을 지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의 주 사명은 잘못된 종교를 바로 잡는 일이고 잘못된 종교에는 항상 제사장들이 선봉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세아 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이 서로 한통속이 되어 백성들을 쌍으로 잘못 인도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제사장들도 문제지만, 선지자들도 양심을 팔아먹고 제사장에게 붙어 자기 잇속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이런 상황을 ‘넘어진다’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낮과 밤’은 모든 시간을 상징하는 쌍입니다. 또한 ‘제사장과 선지자’ 역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리더쉽을 총체적으로 상징하는 쌍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선지자들의 주요 비난 대상 중 하나가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선지자는 이러한 상황을 이스라엘 종교의 모든 리더쉽이 시도 때도 없이 흔들리고 넘어진다고 표현합니다. 마치 술취한 사람이 넘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들이 진노의 잔을 마셨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는 증표들중 하나로 훌룡한 리더쉽의 부재를 듭니다.“
[엑스포지멘터리]
3.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5)
”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성경에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제사장들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에 대해 여러 군데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례미야6장11-15절에 ”[11]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12] 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5]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호세아 선지자 시대에도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가게 한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지도자들은 선지자와 제사장이었습니다.
아무리 백성들이 잘못된 길로 가도, 이들만은 깨어 있어야 했습니다. 설사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해도, 지도자들이라도 달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일반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악을 조장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앞당기는데 주역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대낮에 악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선지자라고 불리는 자들은 낮에는 선지자 행세를 하며 거룩한 체하지만, 밤에 몰래 악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위선자들이며,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과연 이런 사회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고 하십니다. 네 어머니는 즉 백성이나 선지자, 제사장 모두를 포함한 한 국가를 의미합니다. 한 국가가 이렇게 멸망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이스라엘 국가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국가는 파멸될 것이라는 선고입니다. 개인이 타락하면 개인이 파멸하는 법입니다. 가정이 타락하면 가정이 패가망신하는 법입니다. 국가가 타락하면 국가가 망신하는 법입니다.
분문 5절에서의 ‘네 어미’로 번역된 히브리어 ‘임메카’(אמך)는 2장2절에서 이스라엘 왕국 자체를 상징하는 용례로 사용되었습니다. 본절도 동일한 의미입니다.
국가나 왕국이 ‘네 어미’로 상징되는 것은 사람들은 그 땅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에는 당시 북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이 아니란 의미도 내재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하나님 백성들은 그 땅, 그 왕국의 백성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빌립보서3장20절에서는 성도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씀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 말씀에는 이스라엘의 멸망에는 종교 지도자들의 책임이 그만큼 컸다는 사실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모든 나라가 공멸할 만큼 죄악이 차고 넘쳤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멸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나라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교회가 질서가 있고 교회가 든든히 서 있을 때 나라도 든든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면 끝장입니다. 백성들의 무지가 마침내 나라를 망치고 저주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 무지가 문제입니다. 자식이 무지하면 부모가 탄식을 합니다. 백성이 무지하면 그 후손 들이 탄식을 합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이 무지하면 하나님이 탄식을 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배반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몰고 왔으며 그래서 땅은 번민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백성의 죄를 고발하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형식만을 사랑하고 신령한 것은 없는 백성을 향해 "네 어미(국가 전체를)를 멸하리라" 선포하십니다.
”멸하리라(마쉐히탐)“ 는 ‘멸망하다, 파괴하다’라는 뜻으로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복을 베푸시는 반면 악인에게는 멸망으로 보응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주시는 이 경고는 지나간 이스라엘의 심판 이야기로 보고 읽고 지나가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 때,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이지만, 오늘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 이야기 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패역한 길에서 돌아오기를 거부할 때, 심판은 문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준엄한 선포입니다. 이 땅은 이미, 파렴치하고 패역한 자들의 사악함을 용인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마땅히 제사장적,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자들로 믿는 모든 성도들 가운데 본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하고 인도할 뿐 아니라 그릇 행하는 세상, 그 릇 행하는 성도들을 책망하고 권고하여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목회자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말하면서 지극히 인색하거나 평신도, 심지어 불신자보다 못한 도덕적,윤리적 삶을 사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교회를 대표하는 그들의 삶의 면모가 그러한 데 세상이 교회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말할 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았듯 과거 북이스라엘이 멸망을 앞둔 총체적인 난국이 펼쳐지는 시점에서 가장 먼저 개혁되어야 할 대상을 든다면 바로 제사장과 선지자들입니다.
이는 오늘날 실로 크나큰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교회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말씀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목회자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패역한 길에서 돌아서 회개하며 하나님앞에 나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1.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4)
2.낮과 밤에 넘어지리라(5)
3.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