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이촌동 일대에 대한 개발기대감에 문의 전화가 몰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 아파트 매매시장이 얼어붙었다지만 이 곳은 딴 세상입니다.”(서울 용산구 이촌동 부동산뱅크공인 임애자 실장)
“10년 동안 꿈쩍않던 동소문동 중소형 아파트가 요즘 ‘귀한 몸’이 돼 호가가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서울 성북구 돈암동 태영부동산 성기완 사장)
‘음지’로 꼽히던 곳의 아파트가 ‘양지’로의 탈바꿈을 시도하는 경우가 요즘 부쩍 늘고 있다.
같은 이촌동 내에서 ‘동부’ 이촌동에 비해 낙후지역으로 꼽히던 ‘서부’이촌동이 용산역 개발 호재를 타고 주목받고 있는 것을 비롯해 의정부·시흥·안산시 등 수도권 소외지역과 서울 강북지역 아파트가 요즘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아파트값이 싸다는 저평가 메리트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낙후지역에 집중적으로 수혜가 돌아가는 각종 개발호재가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강남권에서 가장 인기없는 아파트 중 하나였던 도곡동 주공아파트가 지금 서울 강남의 대표적인 고가 아파트인 도곡렉슬로 탈바꿈할 것을 미리 읽어낸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지금 막 음지를 벗어나려고 꿈틀거리고 있는 지역의 아파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이유 있는 움직임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과 대출 규제로 대부분의 아파트 매매시장은 요즘‘개점 휴업’상태다.
그런데 이런 상황속에서도 매수세가 몰리고 값이 오르는 곳이 있다. 서울·수도권 내에서도 ‘소외지역’으로 꼽히던 곳이 대부분이다.
안산시 S부동산 관계자는 “인터넷상의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실제 거래가 이뤄졌는데도 중개업소 관계자들이 영업의 편의를 위해 ‘쉬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높은 가격에 팔린 것을 집주인들이 알면 집주인들은 당연히 호가를 올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개업소 입장에서는 매매거래를 성사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정부시의 경우 올 들어 아파트값이 9.71%나 급등했다. 최고 인기지역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아파트값은 같은 기간 동안 0.02%오르는 데 그쳤다. 안산시도 5.76% 급등했고 시흥시도 5.27% 올랐다. 서울 강북권도 같은 기간 4.48%나 상승했다.
2002년 초반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지속됐던 ‘뜨는 곳이 계속 뜨는’패러다임(틀)이 분명히 바뀐 것이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양극화’가 뚜렷하게 진행되면서 3년 동안 두 배 이상 집값이 오른 곳이 흔할 정도로 인기지역 집값이 너무 뛰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 규제까지 가해지자 인기지역 입성을 노리던 주변 수요자들이 이주를 포기하고 살던 곳에 눌러 앉는 경우가 늘어났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S부동산 관계자는 “외지에서 ‘강남 입성’을 계획하던 수요자들이 ‘포기’상태로 돌아선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입시제도 변화도 한 원인이다. 대입시 때 내신반영 비중이 높아지면서 대학 진학하는 데는 학생 간 경쟁이 심한 인기지역이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학부모들이 무리하게 인기지역으로 이사 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발 호재도 원인 중 하나다. 강북지역의 경우 ‘달동네’들이 ‘뉴타운’으로 탈바꿈하면서 주변 환경이 개선되고 있고 의정부 등의 수도권 외곽지역은 복선전철 등 각종 교통 호재가 잇따르고 있다.
인기 지역 집값이 크게 올라 상대적으로 소외지역의 저평가 메리트가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호재까지 덧붙여지자 집주인들은 집을 안 팔고, 지역 세입자나 외지인들은 이들 지역 아파트에 노크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 복선전철 개통 등 개발호재가 있는 일부 서울ㆍ 수도권 비인기지역 아파트의 매매 호가가
크게 오르면서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음지 아파트’계속 뜰까
해당 지역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이 같은 ‘소외지역의 반란’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지역에서 큰 평수로 ‘갈아타기’를 하는 수요나 전세에서 ‘사자’로 돌아서는 실수요는 꾸준한데 매물이 드물기 때문이다.
시흥시 정왕동 D부동산 관계자는 “지금 집을 팔아봤자 그 돈으로 평소 희망하던 인기 지역으로 옮기기가 힘들어지면서 아예 안 팔겠다며 매물을 걷어 들이는 집주인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개발 호재 때문에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큰 것도 집주인들이 집을 파는데 소극적인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계속 되기는 힘들다는 분석도 많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요즘 뜨고 있는 지역은 호재가 반영돼 저평가 국면이 해소될 때까지는 집값이 오를 수 있지만 그 이상 오름세를 지속하기 어려운 지역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 청계천 개발 호재를 타고 오르던 주변 아파트가 막상 청계천에 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오름세가 멈춘것과 같이 호재가 충분히 반영됐다고 판단될 즈음엔 오름세가 주춤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사장은 “호재가 반영된 이후에도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곳은 외지인들의 유입이 계속되는 곳”이라며 “집을 살 사람들은 교통여건이나 편의시설, 그리고 주변 환경 등이 어떻게 바뀔 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꾸준히 외지인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