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도 모병제(募兵制)?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선출되면서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 다가왔다. 정치권과 국민 모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권획득을 위한 여야(與野)의 정쟁은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양상이다. 정권획득은 전적으로 표와의 싸움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산다고 하지 않는가. 표심(票心)을 사기 위한 공약들도 난무한다. 재탕, 삼탕도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모병제다.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후보인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의 공약이다. '100만 가구 신혼주택 무상융자'와 함께 들고 나왔다.
20대들의 정치 참여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투표권을 가진 만 19세를 포함한 20대 유권자의 수가 약 760만명에 이른다. 전체 유권자 수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20~30대에게 관심을 끄는 신혼주택 무상융자, 사병복무기간 단축 등과 함께 젊은이들의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대권 후보들도 이들을 겨냥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정치인들은 20대 유권자들이 강력한 정치적인 힘이라는 것을 각종 선거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특히 모병제는 전방의 총기사건이 발생했을 때나, 또 최근 치러진 여러 선거를 통해 심심찮게 등장했다. 김 후보는 '군대가 젊은이의 꿈을 빼앗을 수 없다.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하려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군대 안에 월 200만 원 정도를 받는 양질의 일자리 20만 개를 만든다는 것이다. 또 징병제 폐지로 감축된 청년들이 경제활동에 종사함으로써 약 35조원의 GDP 상승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했다. 김 후보의 말대로라면 군대는 젊은이들의 꿈을 빼앗는 곳이 된다. 병장으로 제대한 김 후보나 '군대에서 썩는다'는 발언을 한 상병 출신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군대에 대한 생각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신성한 병역의 의무가 국민의 4대 의무에 들어 있다. 젊은 시절 몸바쳐 국가의 존립요소인 영토를 수호했다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
또한 세계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분단국가이다. 모든 국민이 병역의 의무를 지니는 국민개병제(皆兵制)는 그동안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온 힘의 원천이다. 외부와 차단된 병영생활이 젊은이들에게는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기는 하다.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애국심과 극기심의 배양, 인간관계의 확장, 자존감의 회복 등 군생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소중한 경험들이 있다. 인생의 예행연습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어떤 꿈을 빼앗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기는 '병역면제 트리오' 정부라니,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병역 면제자 투성이의 정부'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사회지도층 자녀의 병역면제 비리도 한동안 매스컴을 장식했다. 본인들이야 정당하게 면제처분을 받았다지만 곧이 듣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당당하게 군복무를 마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런던올림픽 축구 일본과의 3, 4위전을 병역혜택이 걸린 경기라고 표현한 국민들이 많았다. 경기 전 브라질의 기자가 '일본과의 경기에서 지면 한국 선수들은 군대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통쾌하게 동메달을 땄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감정일까? 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 메달리스트들에게 국위선양을 이유로 병역혜택을 주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연금 포상금 등 보상을 주고 있지 않은가.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과의 형평성이 고려돼야 한다.
모병제. 아직은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다. 병력을 줄여 장비를 현대화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자리라 생각하고 지원하는 자가 얼마나 될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 후보들이 공약으로 선뜻 내세울 게 아니다. 찬반의 논란이 첨예하게 대립하겠지만 국민적인 공감대와 주변 여건이 성숙돼야 한다. 공론화 과정과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때가 올 것이다. 100세를 사는 시대에 20개월이라는 기간 나라를 위해 젊음을 투자하는 것은 평생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이런 대통령도 있었다. 미국에 가서는 "미국이 없었다면 나는 북한 수용소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중국에선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마오쩌둥(毛澤東)을 꼽는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는 한국이 가까이할 나라로 일본→중국→미국 순으로 손가락을 구부렸고 프랑스에서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프랑스혁명"이라고 엄지를 세웠다. 그런 대통령을 당시 전 세계 언론은 어떻게 평가했을까. 김일성과 함께 6·25 남침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을 살상케 한 마오를 존경하다니! 더욱 어처구니없는 건 '미국이 없었다면 북한 수용소…운운'한 그가 가까이할 나라로는 미국을 세 번째로 꼽은 점, 더더욱 알 수 없는 건 프랑스혁명을 최고라고 한 점이다.
프랑스혁명 평가는 그리 단순치 않다. 부르봉(Bourbon)왕조의 절대 권력인 구제도를 타파하긴 했어도 그 과정은 공포정치의 표본이었고 나폴레옹이 참여, 군사독재 제1 제정(帝政)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제1공화정(La Premiere Republique)이었고 한국서는 멋도 모르고 제1공화국, 2공화국 하며 '공화정'을 '공화국'으로 착각, 잘못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이 그런 혁명을 찬양했다면 자신이 인정치 않던 비슷한 성격의 5·16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걸 그의 참모들도 간과했던 것인가. 대통령은 대외적인 국가 브랜드다. 그의 발언 하나하나가 그 나라의 국격(國格) 표출이다. 그런데 그는 또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독도를 무심코 '다케시마'로 말해 일본 언론의 악의적인 기사거리가 돼버렸다.
새누리 대통령 후보 결정으로 야당만 남았다. '북한에 무조건 경제 지원, 평화협정 추진, 서울대 폐지' 등을 외친 대통령 예비 후보도 있고 160조원의 복지 예산과 모병제(募兵制)를 각각 들고 나선 후보들도 있다. 영어 president의 뜻은 넓다. 대통령, 주석, 총통, 수상, 총리를 비롯해 회사 사장, 이장, 통장, 반장까지 모든 '長'이 프레지던트다. 대통령 감다운 후보를 선출, 멋진 대결의 드라마를 연출하길 기대한다. 결국 국민 수준, 국민 손에 달렸다.
2012. AU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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