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부터 한국노총 임원실에는 새 인물이 출근했다. 한국노총 상근부위원장으로 김주영(48) 전력노조 위원장이 임명(겸직)된 것이다. 한국노총 부위원장으로 거론됐을 때 김 위원장은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복수노조·전임자 문제로 협상과 투쟁을 병행하고 있는 한국노총의 사정을 더이상 나몰라라 할 수 없었다. 그는 전력노조와 함께 한국노총 부위원장직을 함께 수행하기로 한 것이다. 두 가지 업무를 수행하느라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김주영 부위원장을 17일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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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 | “어려운 시기 함께 힘 모아 돌파”
- 한국노총 상근부위원장으로 임명 됐다. 배경은.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이 어려운 시기이니 함께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설득했다. 내가 맡고 있는 전력노조도 현안이 많아 결정하기 쉽지 않았고, 전임자·복수노조 문제가 진척이 안 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할 일이 있다면 회피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와서 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전임자·복수노조 문제는 물론 공공부문 단협해지가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국노총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만큼 어떻게든 어려움을 돌파해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을 느낀다.”
- 한국노총 부위원장으로서 무슨 일을 맡고 있나. “전임자·복수노조 문제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다. 한국노총 지도부 모두가 그렇다. 노사정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 관계자를 만나며 한국노총 입장을 설득하고 총파업 지침이 최대한 이행될 수 있도록 뛰고 있다.”
“정부입장 강행시 노사피해 불가피”
- 복수노조·전임자 관련해 정부는 내년 시행을 못 박고 있다. “이 문제가 지난 13년간 유예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YS 말기부터 DJ, 노무현, 그리고 4번째 정부로 넘어왔다. 그동안 우리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기에 유예된 것이다. 사실상 사문화 된 것이다. 준비도 없이 시행한다는 정부 입장대로 간다면 노사 양측이 피해는 불가피하다. 당사자들이 피해를 보는데 정부가 방치하고 정부입장만 살린다면 바른 생각이 아니다.”
-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했는데. “97년 법 통과 당시 재정자립을 위해 기금출연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실제 금융노조는 은행연합회와 기금출연에 대한 합의까지 했지만 노동부는 그런 논의까지 막았다. 정부는 그런 기금출연에 대해 한 번도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지금에 와서 법대로 시행한다며 전임자임금 지급금지와 창구단일화 수준의 논의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바른 답인지 묻고 싶다.”
- 노사정 협상이 난파 위기에 빠졌다. 정부가 협상에 어떻게 임해야 한다고 보는가. “정부는 자꾸 언론에 이상한 정보를 흘려 노동계를 자극해선 안 된다. 정부의 고민이 뭔지 내놔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법대로 간다, 과반수 다수대표제로 한다, 전임자임금에 대해선 계속 말이 바꿨다.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엔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총파업 투쟁 과소평가 오판이다”
- 한국노총은 지난 9일부터 천막농성, 16일부터 총파업 찬반투표를 시작했다. 앞으로 협상이 결렬되면 전면투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현재 총파업 찬반투표를 마친 사업장의 결과를 보면 압도적 찬성으로 총파업 결의가 모아지고 있다. 이같이 많은 힘을 얻는다면 지도부는 정해진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시도지역 천막농성, 단위노조대표자 상경 삭발투쟁, 총파업 선언으로 이어진다. 총파업 선언은 정책연대 파기와 전면적 대정부투쟁을 의미한다. 반면 정부는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노동자가 투쟁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다. 지난 9일 사상 최대 규모의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단순히 노조전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합원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간다면 전 노동자가 심대한 노동기본권을 침해받는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정부가 간과한다면 오판이다.”
-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는 어떻게 해결돼야 한다는 보는가. “지금의 논의는 앞뒤가 바뀐 상황이다. 당사자인 노사가 해결 방안을 만들고, 정부가 법으로 그 방안을 보완해주는 것이 좋은 수순이다. 정부가 노사를 압박해선 좋은 방안이 나올 수 없다. 노사가 진지하게 고민해 방안을 마련한 후 국회와 행정부가 이를 마무리하는 게 바람직 노사관계를 위해 이상적이지 않겠는가. 정부는 노사가 합의해도 수용하지 않고 무조건 내년 시행한다니 진정성이 없다. 그러나 노사정 협상도 원론에서만 머물고 있는 것이다.”
“공공 노조무력화로 하향평준화 시도”
- 공공부문 노사관계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 정부는 정원 일방감축, 대졸초임 삭감, 성과급 삭감, 표준연봉제 도입 강요, 내년 임금동결, 학자금 삭제, 퇴직금 불이익 변경 등을 숱하게 쏟아내고 있다. 공공부문은 지금 공황상태다. 결코 현재 상황이 국가와 기업에 좋은 게 아니다. 건강한 노조가 있는 것이 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노조를 무력화하면 신자유주의가 일방통행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전 국민이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고 사회양극화는 더욱 심각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공공부문이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있다. 역대 정권마다 공공부문 개혁을 주장하는데 공공부문이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 솔직히 봤으면 한다. 정부가 단체협약을 무력화하거나 지침을 내려 모든 근로조건을 하향평준화 시키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 된다면 결국 공공부문에서도 폭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한국노총 차원에서는 공공부문 선진화방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지금 한국노총에는 전력노조·정보통신노련·금융노조·공공연맹·철도산업노조 등 5개 공공 산별조직으로 구성된 공공부문공동투쟁본부(공투본)이 결성돼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단결해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
“합리적 노동운동 평가절하 곤란”
- 전력노조가 오는 20일 창립 63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있다. 소감은. “전력노조는 63년이란 오랜 시간 동안 노사관계 형성해왔다. 지금 시점이면 더욱 성숙된 노조로 성장해 있어야 하는데 되돌아보면 허탈하다. 지금까지 합리적 노동운동을 해왔던 것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노동운동이 국민대중과 함께 가는 토양이 만들어지려면 오랫동안 합리적 노사관계 만들어온 사업장을 주목해야 한다.”
- 현재 전력노조의 현안은 무엇인가. “정부가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를 빙자해 실패한 분할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실시간 요금제를 적용해 주택이나 기업이 선택해 싸게 전력을 쓸 수 있게 하자는 것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허구다. 남들 안 쓰는 한 밤 중에 쓰면 싸게 해준다? 그게 가능한가. 또한 계량기를 달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과거에 추진했던 분할 민영화 등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재추진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혹을 불러온다. 분할하게 되면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 한편에선 정부가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과거 한전통합을 주장한 바 있는데. “정부가 KDI에 용역을 맡겼다고 하는데 결론이 나오지 않아 지금은 언급하기가 이른 것 같다. 완전히 노조가 배제된 상태다. 그 의도 역시 의심스럽다. 내가 재통합을 주장한 것은 글로벌 경쟁을 하려면 통합전력회사만이 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간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면 전력산업이 수출산업으로 완전히 자리 잡을 수 있게 된다. 예컨대 발전소를 수주하면 모든 기자재가 다 같이 수출할 수 있고 민간업체도 같이 살 수 있다. 제대로 통합된다면 글로벌 기업으로 반드시 자리매김 될 것이다.”
- 전력산별노조 추진은 주춤하고 있다. “전력산별이 오래전부터 추진돼 왔으나 상급단체 가입 등의 문제로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력산별은 추진돼야 한다. 회사가 통합되기 전 노조가 통합된다면 전력산업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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