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눌이 이곳에 온지 열흘이나 지났는데 아무데도 데려가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모처럼 큰 맘 먹고
읍내(대련시내) 나들이를 결심 했습니다.
필요한 물건도 좀 사고, 신자 분들이 귀국하면서 흘리고 간 생활용품이라도 몇 개 건져 볼까 하고 말입니다.
오지랖 넓으신 우리 성당 왕 언니께서 맡아 두었던 접시며, 컵, 커피잔, 전기 밥솥 등 한 보따리
를 내어 놓습니다.
모두 우리가 오늘 사려고 했던 것들입니다.
입이 귀에 걸립니다. 마치 로또 라도 당첨된양 기뻐합니다.
비록 쓰던 물건이지만 우리 신자 분들이 쓰던 것 이니 식구들에게 선물 받은 것 만큼이나 편안합니다.
이렇게 떠나는 분들이 남은 분들께 나누어 주고 가는 풍조를 우리 성당 전통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 알음 알음으로 이미 잘 하고 계신 거지만 성당 주보를 통해 공식적으로 공지를 하는건 어떨지)
혹은 모아두었다가 성전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를 계획해 보는 것 도 괜챦치 않을까 싶습니다.
(하기야 그것도 누가 모을 것이며 어디다 보관할 것인지 구체화 하기 시작하면 머리 아픈 일 일 테지요. 하지만
지역별로 역할 분담을 하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그렇게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나니 출출하기도 하여 민주 광장 근처 식당 으로 자매님 두분을 초대해
넷이 모였습니다.
2년여 만에 다시 만난 우리들은 그 동안 못 나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했고 빈대떡에 홍어무침을 곁들여
막걸리로 건배를 했지요.
"다시 뭉친 우리들의 만남을 위하여!!!"
마치 이산가족 상봉시간 만큼이나 정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저는 자매님들과 수다 떠는 게 훨 재미있습니다.
세상사는 이야기가 아기자기하니 감칠맛이 있거든요.
그래서 2년 전에도 자매님들만 모시고 봄 나물을 뜯으러 다니곤 했지요.ㅋㅋㅋ
일부 형제님들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기는 했지만 꼭 우리 마눌 동반 하에 그리하는 것이니
혹여 오핼랑 은 마시고…
식사 자리를 파하고 자매님들과 헤어져 숙소를 잡으려 하니 읍내엔 숙소가 이미 바닥이 난 상태
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말을 맞아 나 같은 촌놈들이 대련시내로 대거 몰려 왔다고 합니다.
중국에도 바다가 없는 도시가 많다 보니 대련으로 바캉스 오는 사람들이 많다네요.
담에 여러분도 혹 주말에 대련 나오시거든 숙소부터 미리 확보하시기를…
우여곡절 끝에 3.8광장근처 IBIS라는 체인 호텔에 방을 잡았는데 주말이랍시고 코딱지 만한 방을
318원이나 달랍니다.
눈물을 머금고 그 방이라도 잡을 수 밖에 없었지요.
원래 계획은 방을 잡고 마눌 하고 길 카페(길거리 꼬치집)에서 2차를 하기로 했던 것이었는데
갑자기 오한이 들고 삭신이 쑤시며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결국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습니다.
그땐 뭘 잘못 먹어서 그런 줄 알았었는데 지금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닌 것 이었습니다.
평소엔 199원이면 자던 방이 었는데… 도적놈들 한테 바가지 쓴게 억울해서 그랬었나 봅니다.
(쪼잔하기는…)
마눌과의 모처럼의 여행에서 뜨거운 밤은 커녕 그렇게 화장실을 오가며 밤을 지새고 아침을
맞았습니다.
눈이 퀭하니 끙끙거리는 내게 마눌은 밤새 고생한 속을 위해 죽을 먹으라 합니다.
난 사실 신라면에 쇠고기 김밥이 먹고 싶었었는데…
죽 을 먹으라고 하니 타지에 와서 촌놈이 죽 파는 가게를 어디서 쉽게 찾는단 말입니까.
그래도 궁하면 통한다고 까루프 정문앞에 있는 식당을 찾아가 물어 봅니다.
“워 썅 츠 죠우! 커이 마?”
“커이”
이쯤 되면 마눌 앞에서 『음메 기 살어!” 』입니다.
“여보 죽 된대.”
종업원이 묻습니다.
“쌰오 미죠우 하이스 헤이 미죠우?”
커다란 솥단지의 뚜껑을 열어 보여 주면서 묻는데 이거야 말로 식은죽 먹기지요.
흑미죽을 가리키며 “양완죠우 하이요 이디에즈 샤오차이”
그렇게 도합 7원을 주고 죽 두그릇에 반찬 한 접시를 가져다 놓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신통 방통한 이 현란한 중국어 회화를 들으면서도 마눌은 전혀 감격을 안합니다.
“ 나 중국어 잘하지?” 그때서야 마지 못해 한마디 합니다.”그려! 잘 혀”
나야 뭐 그렇게 죽을 먹으면 되지만 마눌 한테는 아침식사가 너무 빈약한 지라 미안한 마음에
한 개 3원짜리 쇠고기 왕만두를 하나 시켜 주었습니다.
아침식사비 거금 10원!
장흥도 촌에서 옥수수 농사 짓다가 읍내 나와 이 정도 먹으면 진수 성찬인 게지요.
몇년전 한국에 있을 때 있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마눌과 시골장터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 웬 노 부부가 점심을 들고
계셨습니다.
노 부부는 장날을 맞아 모처럼 읍내 장 구경을 나오셨던 참인가 봅니다.
영감님은 짜장면을, 할머니는 짬뽕을 들고 계셨는데 서로 자기 것 맛 좀 보라고 내어 주시는
모습이 너무나 정겹고 아름답게 보였던 적이 있었었습니다.
그때 마눌에게 이렇게 말했던 걸로 기억 합니다.
“우리도 저 나이 되어 저 정도로만 정겹게 살아갔으면 좋겠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 별건가요?
남들 휘트니스 클럽에서 헬스할 때, 들길 걸으며 걷기 운동하면 되고
남들 유럽 여행 갈 때 손 붙잡고 읍내 귀경하며 국수 한 그릇 같이 말아 먹으니 눈 즐겁고
배 부르면 되는 거고.
있는 놈 타워팰리스 살 때 없는 우린 비 안새는 작은 집 있어 다리 쭉 펴고 잠 들면 그만이지요.
“난 죽어도 장흥도 골짜기에서는 못 사니까 그렇게 알어!”가 아니라
“그곳이 어느 곳이든 당신 있는 곳에 함께 있어 줄께.”라는 마눌이 있으면 행복한 거지요.
그렇게 죽으로 아침을 때우고 주일 미사 봉헌을 위해 성당으로 향 합니다.
성당은 옛 모습 그대로,신부님,수녀님 그대로인데 신자들 모습은 많이도 바뀌었습니다.
많은분들이 떠나갔고,또 새로운 분들이 오셨습니다.
항상 반가워 해주던 원마리아 자매의 얼굴도 안보이고,엘리죠도 안보이고,유스티노 형제님도 안보이네요.
알베르또도 안뵈고.
참! 미사 끝나면 나누어 주던 커피도 안보이고...
마눌이 이곳에 온지 며칠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주가 훌쩍 지났습니다.
이제 마눌도 보름만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 갑니다.
가기 전에 좋은 추억 하나라도 더 만들어 주어야 겠지요.
첫댓글 정겹게 살아가시는 두 분의 알콩달콩 이야기에 미소를 짓게됩니다. 이곳 금주( 구 개발구)에도 많은 성당 식구들을 보내고 마음이 허전하답니다. 오늘도 점심 때 두 자매님의 송별회식을...요즘 저 또한 한국이 그리워지네요...자매님이 가시기전에 금주에 오셔서 미사도 드리고 형제 자매님도 만나며...대련에서 좋은 추억 많이 만드시길 빕니다.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때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