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엠비셔스 (Be ambitious)
성 병 조
버스에 올라오는 품이 여느 학생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당당하게 요금을 지불하고 좌석에 가 앉을 일이지 젊은이는 기사 옆에 붙어 서서 뭔가를 애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가방을 짊어진 학생이 무슨 아쉬운 일이 있다고 허리 굽혀 사정하는지 더욱 궁금하였다. 혹시 차비가 없어서 그러는 것일까.
나중에 보니 그의 손에는 모금함이 들려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종이 상자였지만 내 눈은 자꾸만 그것을 따라가고 있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이나 역 대합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오늘은 좀 색다르게 느껴졌다.
고교 시절, 나는 이년 가까이 학생 신문을 돌린 적이 있다.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실을 돌아다니며 팔았는데 처음의 쑥스러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선배가 나를 믿고 물려준 일이어서 마다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 참에 학비라도 조금 보탠다면 시골의 부모님이 무척 기뻐하실 거라는 생각이 무엇보다 앞섰다.
처음에는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각 교실에 들어가면 얼마나 소란스러운지 말을 꺼내기조차 힘들었다. 짓궂게 농담을 던져 혼란을 부르는 학우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돈을 속이는 친구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차츰 배포도 쌓이고 판매하는 요령도 조금씩 늘어갔지만 그 동안의 고통은 무척 컸다. 교탁 위에다 신문을 올려놓은 후 몇 걸음 비켜 서 있으면 학생들이 스스로 대금을 얹어두고 신문을 가져가는 식이었다. 나중에는 요령이 늘어 신문내용 중 흥미 있는 부분을 소개하여 판매 부수를 높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 당시를 떠 올릴 때면 나의 허약한 용기와 부끄러움만 가득하여 쓴 웃음을 짓곤 한다.
버스 속의 학생은 이런 나와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예상치 못한 위기를 헤쳐 나가는 재주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버스 안 승객들의 성분이 얼마나 다양하며, 그들의 시선 또한 얼마나 매정한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뭇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 않고 뛰어든 젊은이의 용기가 얼마나 가상한지 모른다. 본인을 먼저 소개한 후 모금함을 갖고 올라온 목적을 이야기하는 것 까지는 여느 사람들과 별 다름이 없었다. 평소 방문해 오던 복지시설을 여름방학 동안 보다 체계적으로 돕기 위해 모금에 나섰다고 하였다.
그 다음이 실로 가관이었다. 불쾌지수 높은 여름철에 이쯤의 사설에 귀 기울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임을 익히 알고 있어서 일까. 그는 피로한 승객들을 위해 먼저 노래를 선물하겠다며 너스레를 뜬다. 의외였다. 경쾌한 곡을 멋 떨어지게 부르다가 가사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승객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즉시 유모어로 봉합하는 등 순발력도 대단하였다.
한 곡이 끝나자 이곳저곳에서 박수소리가 울려 나왔다. 여기서 더 큰 용기라도 얻은 듯 학생은 노래 하나를 더 부르겠단다. 한 곡으로 끝내고 모금으로 들어 갈 줄로만 여겼던 관중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조그만 체구에 저만한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노래는 첫 노래에 비해 훨씬 자신감이 넘쳤고 아무른 실수도 없이 잘 마무리 지었다. 더 큰 박수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뒤이어 모금함을 들고 서서히 좌석을 도는데 여유까지 넘쳐나는 듯 하였다. 돈을 기부하는 사람이 적을까 봐 염려하는 측은 오히려 내 자신이었다. 잠깐 동안 그의 노래에 귀 기울였을 뿐인데 내 맘이 어쩜 이토록 동화될 수 있을까.
신문 팔던 나의 고교 시절이, 그리고 그와 비슷한 또래의 아들 녀석이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내가 먼저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낸 후 주위 분들에게 권유까지 하는 객기도 서슴지 않았다. 잠시나마 웃음을 선사해준 청년에게 작은 성의나마 베푸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느냐는 나의 의견에 호응하는 승객이 많았다. 그에게 돈을 건네는 순간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뜻도 좋고, 용기까지 출중하니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크게 위로해 주었더니 너무도 황송해 하였다.
초등학교 삼사학년 무렵 귀 동냥하여 들은 영어 문장이 생각난다.
Boys be ambitious! (청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중학교 진학률이 50%에도 채 미치지 못하던 어려운 시절, 시골의 한 초가집을 빌려 가진 진학 설명회에서 한 교사가 소개한 이 영문 글귀는 두고두고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우리들은 영어를 한답시고 ‘보이스 비 엠비셔스’를 반복해 외치며 돌아다닌 기억이 난다. 신설 중학교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진학을 앞 둔 아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인용한 것일 테지만 이후에도 야망에 대한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야망이란 게 도대체 뭔지,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영어 문장을 왜 어린이들 앞에서 사용했는지...
청년의 모습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쏟은 의욕과 정열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본보기인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았다. 천안의 모 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그 청년의 향기는 빛바랜 나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처럼 내 속 깊은 곳까지 투영되고 있었다. Boys be ambitious!
첫댓글 성선배! 젊은이 한테 좋은 용기를 주었내요. 복 받을 것입니다.
bj님은 도대체 못하는 게 뭐예요?
Man, U can be ambitious with your essays. Good luck.
I am very proud of my essays, but nobody knows my superiority. May b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