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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 참다운 계행(戒行)이다.
2007년 2월 11일 관음재일 법문 중에서
오늘은 계율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계율하면 상당히 부담스럽고 따분한 얘기로 들릴 수 있겠지마는
우리 모두 계율의 의미를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계율은 불자와 비(非)불자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자 유일한 기준이기 때문이며
또한 계율에 따른 행(行)을 통해야 밝은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계율이란 무엇이냐? 윤리와 같은 거예요. 불교란 무엇이냐?
한마디로 윤리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어느 종교는 윤리가 없습니까?
모두 윤리를 이야기 하죠. 윤리를 이야기 하긴 하는데 다릅니다.
불교외의 다른 모든 종교는 ‘구원의 종교, 신앙의 종교다’라고
제가 정리했었습니다. 구원의 종교, 신앙의 종교에서는
오직 신앙, 신앙 중심 안에 있기 때문에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선을 추구하고 악을 멀리 한다고 하지만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일 뿐입니다.
그래서 만약 신앙과 선이 대립될 때에는 선이 악으로 변해 버립니다.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신을 안 믿으면 평화도 없다는 거예요.
그럼 불교는 무엇이냐? 신앙중심의 종교가 아닌 무슨 종교?
수행 중심의 종교, 신 중심이 아니라? 생명 중심의 종교입니다.
생명 중심의 종교가 불교이다. 피부색의 차이, 국가 간의 차이,
민족적 차이, 문화적 차이, 종교적 차이…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명이 우선이다, 라는 겁니다.
이 점에 불교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당나라에 백거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백, 두보와 함께 당나라 3대 시인으로 꼽히는 인물로
백낙천이라고도 하지요. 별호가 낙천이에요.
어쨌든 이 사람이 천재적인 인물이었다 하는 겁니다.
당시에 도림선사라는 당대의 최고 선사님이 계셨는데
하루는 그 선사를 찾아가서 불교에 대해 묻습니다.
여러분들 잘 아시는 이야기예요.
백거이가 불교란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니
도림선사가 뭐라고 했어요?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라,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법구경, 출요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모든 악은 짖지 말고 모든 선을 힘써 행하여
제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 곧 부처님의 말씀이다.
경전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 거예요.
백거이가, 어허~ 불교가 심오하다고 들었는데
세 살 먹은 아이도 알아듣는 이야기가 불교 입니까?
도림선사가 말하기를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아는데
팔십 먹은 노인네도 행하기 힘든 것이 바로 불교이니라.
불교가 엄청나게 뭔가 대단한 것 같지만
선을 행하고 마음을 자정(自淨)하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마음을 정화시켜라. 그러나 무엇이 선이고
어떻게 마음을 정화시킬 것인가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계율이 많습니다.
비구는 250계, 비구니는 348계,
여러분들도 세속오계가 있는가하면 보살계가 있단 말이에요.
이걸 다 지켜야 한다, 이겁니다.
엊그저께 모여서 차를 마시다가 계율이야기가 나왔어요.
서로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논쟁하고 있는 중에 들어갔어요.
고기를 먹어도 되냐? 먹지 말아야 되냐? 아주 심각하게 이야기해요.
여러분 어때요. 고기를 먹어도 된다, 손 한번 들어보세요.
여러분도 예외가 아니에요. 중이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면 못써.
똑같아. 수행자면 다 똑같은 수행자지, 머리를 깎았다고 수행자고
길렀다고 수행자가 아니고, 그런 게 아니여.
천만의 말씀, 똑같은 것이여. 여러분도 계를 받았잖아요?
그러면 수행자여. 자~ 고기를 먹어도 된다, 손 한번 들어봐요.
저 보살님 있을 때는 절대 안 먹어야겠네….
어쨌든 이걸 가지고 논쟁을 벌입니다.
계율이라 하는 것은 분명하게 부처님께서 지키라고 제정해 놓았습니다.
지킬 필요가 없으면 무엇하러 만들어 놓았겠어요. 그렇죠?
분명하게 덕목 하나하나 제시하면서 이건 지켜야 되느니라, 하셨죠.
스님이 됐다, 불자가 됐다, 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계약을 맺은 겁니다.
계약문서에 도장을 찍은 거예요. 내가 이것을 지키겠습니다.
그럼으로써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부처님 제자가 아닙니다, 이렇게 약속한 거예요.
지키면 미래의 복을 구축하는 것이고
안 지키면 재앙을 불러오게 되는 것, 이것이 계율이에요.
그러나 꼭 지켜야 한다, 라고만 하면 재미가 없어,
불교의 맛이 안나, 그리고 불교를 완전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에요.
꼭 지켜야 된다고 본다면, 부처님께서도 계율을 어겼어요.
사슴이 사냥꾼을 피해서 도망 왔는데 그 도망 온 사슴을 얼른 숨겼어요.
사냥꾼이 와서 사슴이 어디 있습니까? 물으니
못 봤다고 시치미를 뚝 떼었습니다. 망어계(妄語戒))를 어긴 겁니다.
거짓말을 한 거예요.
이렇게 상충되는 면이 상당히 많아요.
원광법사의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보면 ‘살생유택(殺生有擇)’이 있어요.
골라가면서 죽여라. 말인 즉 골라 가면서 죽여라.
불교에서 꼭 지켜야할 첫 번째 계율, 첫 번째 덕목이 무엇입니까?
불살생(不殺生)이예요. 살생하지 말아라.
서로 상충되지요? 말이 안 됩니다.
여덟 가지 깨달음으로 가지 못하게 묶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에 한 가지가 형식이나 계율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계율이나 형식에 묶이지 않아야만 깨달음으로 갈수 있다는 것이죠. 상충됩니다.
불교에는 또 개차(開遮)라는 것이 있습니다.
열고 닫는 것, 때와 상황에 따라서 지혜를 바탕으로 해서
열고 닫아야 한다는 겁니다. 상황에 따라 계율을 어겨도 된다,
이것입니다. 어느 때는 어겨도 된다? 애매모호해요.
요즘 한국 불교를 이야기할 때 계율이 실종되어 버리니까
윤리가 실종되고, 윤리가 실종되어 버리니까 중들이 욕을 얻어먹는다,
그러죠. 그런데 스님네들한테 물어보면 고기를 먹는데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요.
보살들이 점심을 먹자고 하는데 어딜 가겠냐고?
다 고기집인데. 냉면 한 그릇을 먹어도 거기에 고기가 들어가는데,
육수가 고기육수 아니에요? 냉면 하나도 제대로 못 먹고,
하다못해 라면도 스프에 고기가 들어갔다고 해서 못 먹고,
무얼 먹느냐는 것이여, 무엇을…. 보살들 앞에서는 안 먹고
몰래 혼자 쇠고기라면 끓여서 먹으면 역시 계율을 어기는 것이여.
그러니 나는 그렇게 이중적인 마음을 쓰느니 터놓고 걸림 없이 행하겠다.
그렇게 해가지고 먹어요. 이야기 들으면 먹을 만해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중이 고기를 먹었네! 하지요, 사주지도 않았으면서.
인터넷에 글이 하나 올라 왔는데 댓글이 엄청나게 달렸어.
내용인 즉,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이 나왔는데 고기가 나왔나 봐요.
스님이 그걸 먹는걸 보고 글을 올렸어.
중이 비행기 안에서 고기를 먹더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올렸어요. 나도 봤어, 나도 봤어,
우리 동네 절이 있는데 그 스님은 삼겹살도 구어 먹어….
별 이야기가 많아, 인터넷 그거 못 쓰겠더만….
내돈주고 내가 먹는데도 그래요. 그런데 부처님 당시부터
고기를 안 먹었느냐? 부처님 당시에도 고기는 먹었어,
부처님도 고기는 드셨어요. 부처님 당시에 바루공양을 하는데,
바루공양이 얻어먹고 다니는 거잖아요.
스님들이 고상해 보이지만 거렁뱅이예요.
여러분들 자식들이 출가 한다면 거렁뱅이 되는 거예요.
얻어먹고 다니잖아요. 얻어먹는 놈이 고기는 주지 말고
채소로만 주시오. 이야기할게 뭐 있어요.
주면 주는 대로 먹어야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러느냐?
계율이라 하는 것은 방편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방편을 잘 썼을 때만 목적한 결과가 옵니다.
과정이라는 것이 결과를 낳기 때문에
과정이 옳아야 결과가 제대로 나오죠. 그래서 계율은 잘 지켜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계율을 위한 계율이 되면 안 된다, 라고 하는 겁니다.
스님네들 중에서도 계율을 위해 계율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다수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비구니 스님들 공양을 대접하는데,
비구니 스님들이 까탈스러워요, 아주 까탈스러워요.
그래도 신경 쓴다고 뷔페를 모셔 갔는데 음식에
전부 미원 들어갔다고 안 먹고, 오신채(五辛菜)가 들어갔다고 안 먹고,
김치는 젓갈이 들어가 냄새난다고 안 먹고,
딱 가져오는데 뭐냐면 밥하고 물김치하고 두 가지 가져왔데….
내가 진짜 손을 달달 떨면서 돈을 냈는데 말이여…
속에서 어떻게 열불이 나던지… 오지를 말 것이지, 오지를 말지….
거짓말이 아니여.
그러면서 속인들은 어떻게 이런 냄새나는 것을 먹는지 몰라,
그러고 있어. 먹는 속인들 다 이상한 사람 되었어, 나까지 그냥….
계율이란 것이 승려의 위상을 나타내는 것이죠.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권위가 되고 아상(我相)이 되면
목적을 상실한 것이죠.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것이 아만(我慢)이예요.
그런데 계를 통해서 아만이 생기고 아집(我執)이 생기고
그러면 계율의 목적이 상실되어 버린 거죠.
그러면 안 된다. 또 말 그대로 나는 걸림 없이 산다하고는
맨 날 쫓아다니면서 이 음식이 맛있고, 저 음식이 맛있고,
심지어는 벌건 대낮에도 맥주 한잔에 삼겹살 구워 먹으면서도
뻔뻔스럽게 먹는 그런… 개차라 해가지고 열고 닫는다 해서
계율에 묶이지 않는다, 걸림이 없이 산다 해가지고
아무 생각 없이 도덕 불감증에 걸려서
처먹는 거 일삼는 이것 또한 안 된다.
그럼 스님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쩌자는 것예요?
무엇이 선이고 어떻게 해야 선하게 사는 겁니까?
어쩌자는 거예요? 결론을 이야기할게요.
돌이켜 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요. 마음을 돌이켜 보면 됩니다.
스스로의 마음은 속일수가 없어요.
지가 지 마음을 어떻게 속여. 마음을 가만히 보면,
나는 계율을 통해 아상(我相)을 내고 있구나, 라고 하면 그게 죄여.
나는 지키고 있으니까 지키지 않는 사람은 다 아랫것들이고,
지키지 않는 사람은 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고,
지키지 않는 사람은 중도 아니고, 불자도 아니다, 라고
폄하하는 것이 죄여.
본인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 보면 죄를 짓는가,
선을 행하는가, 알 수가 있어요.
개차를 명분삼아, 열어놓은 것을 명분삼아서
맨 날 희희낙락하고 돌아다니고, 아무것이나 먹어쌌고 하는 것은
말할 바도 안 됩니다.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내가 진정으로 선을 행하고 있는가는 마음을 봐야 돼.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알려면 자정기의(自淨其意),
마음이 깨끗한지 깨끗하지 않는지를 보면 알 수가 있어요.
계율을 가지고 논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요. 아시겠어요?
내 마음이 맑고 깨끗한가를 돌이켜서 봐야할 것이지,
누가 계율을 어겼느냐, 안 어겼느냐,
어느 절에 가 고기를 먹네, 안 먹네, 스님이 고기를 먹네, 안 먹네…
오늘 법회 끝나면 회일스님 고기 먹어? 안 먹어?
난리가 날 것이네, 난리가 나…
이렇게 이야기 들어보면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저렇게 들어보면 안 먹는 것 같고… 그걸 논하지 말어라,
그런 게 계율의 목적이 아니다.
스스로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 계율의 진정한 뜻이다.
더불어 한 가지 꼭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육식을 하더라도 부처님이 금한 육식은 안해야 한다는 겁니다.
즉, 개고기는 먹어서 안 되고, 낚시질하여 먹어선 안 되고,
먹고 싶다고 해서 그놈 잡아다가 먹어선 안 되고,
잡는 것을 보고서 먹어서도 안 됩니다.
열심히 정진하는 여러분이 되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전주 참 좋은 우리 절
회일 주지 스님 법문 중에서
출처: 참 좋은 우리 절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