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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한자어의 오용에 대하여
ysoo 추천 0 조회 207 18.10.15 18: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한자어의 오용에 대하여 :

한자의 형태 및 발음과 관련된 사례를 중심으로


팽 철 호*



1. 머리말


한국말에서 한자어의 비중은 매우 크다. 추상개념은 대부분이 한자어로 되어 있고, 일상생활과 관련된 어휘들 중에도 한자어로 된 것이 적지 않다. 개중에는 ‘심지어(甚至於)’ 등과 같이 하도 익숙해져서 그것이 본래 한자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든 것도 있고, ‘배추’나 ‘옥수수’ 같이 한자말의 중국어 발음이 변형되어 본래 우리말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많은 한자어가 우리말의 일부분이 되어 일상생활에서 별다른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자어를 정확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5만을 상회하는 한자의 수 자체가 이미 난공불락의 장애물이다.


그 많은 한자 중에는 형태가 비슷한 글자가 부지기수이고, 발음이 같거나 뜻이 비슷하여 구분하기기 쉽지 않은 것도 엄청나게 많다. 게다가 애초에 한자는 중국의 문자라서 그 운용방식이 우리말의 어순과 어긋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중국인들의 오랜 생활 경험에서 나온 성어나 전문용어가 우리말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러한 한자어를 원만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한자어가 우리말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이상 그것들을 올바르게 쓰는 것은 우리말의 품위를 지키는 한 방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세상에 유통되고 있는 문장 속에서 잘못 쓰였거나 어색하게 쓰인 한자어의 사례들을 수집하여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오늘날 여러 가지 원인으로 망가지고 있는 우리말의 환부를 어루만져주는 일이 될 것이다.


형태와 발음과 뜻과 배열순서 등 한자의 모든 방면과 관련된 사례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자어의 오남용과 관련된 문제점의 전모가 드러날 것이나, 글의 분량을 고려하여 여기에서는 먼저 한자의 형태 및 발음과 관련된 것들을 중심으로 하여 한자어의 오용과 남용 실태를 살펴보기로 한다.

자료 수집의 편의상 주로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에서 한자어가 잘못 쓰였거나 어색하게 쓰인 사례들을 수집하되, 문제의 심각성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하여 글을 쓰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글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였다. 다만 한자어의 오용과 남용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글쓴이들의 이름을 ‘○○’으로 표기하여 그들의 명예에 손상이 가는 것을 피하고자 하였다.


* 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2. 한자의 형태와 관련된 한자어의 오류


1) 형태가 유사한 다른 글자로 오인


글자의 수가 많은 한자에는 형태가 비슷한 것도 적지 않다. 그래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혼동하기 쉬운 것들이 많다. 개중에는 흔히 쓰이지 않는 글자를 그것과 형태가 비슷하면서 상대적으로 사용빈도가 높은 글자로 오인한 것이 유행하여 마치 올바른 것인 것처럼 통용되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1) 호열자(虎列刺)


40년 전쯤만 해도 콜레라라는 전염병이 자주 창궐하였다. 그때에는 이 병의 치사율이 상당히 높아 이 병이 유행하면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는데, 당시 이 병을 호열자(虎列刺)라고도 불렀다.

그 무렵 어른들은 콜레라라는 말보다 호열자라는 말을 더 흔히 사용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콜레라를 음역하여 ‘호열랄(虎列剌)’이라고 한다.1)
‘호열납(虎列拉)’이라고도 하는데,2) 중국어 발음은 별 차이가 없다. 그 발음을 우리말로 옮기자면 대략 ‘후례라’가 된다. ‘후례라’는 ‘콜레라’와 발음이 유사한데다 그 뜻에도 ‘호랑이처럼 무섭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족하였던 무서운 전염병 ‘콜레라’의 중국어 번역어로는 그럴듯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을 우리처럼 ‘호열자(호열자)’라고 했다면 뜻은 몰라도 발음은 콜레라와 거리가 멀어진다. ‘후례츠’가 되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중국에서 ‘호열랄’이라고 한 것을 그대로 수입해오면서, 누군가 우리말 한자에서는 잘 쓰지 않는 ‘랄(剌)’자를 그보다 흔히 쓰이는‘자(刺)’로 오인하여 ‘호열자’라고 했던 것이 그대로 굳어졌던 것이 분명하다.


1) 《中文大辭典》(林尹·高明 主編, 臺北:中國文化大學出版部, 1973년 초판 1982년 第6版) 제8권 제282쪽 참조.
2) 《中韓辭典》(高大民族文化硏究院 中國語大辭典編纂室, 서울: 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院, 1989년 초판, 2004년 전면개정 2판 2쇄) 제795쪽 참조.


(2) 덕진풍(德津風)


개화기 때에 전화기를 ‘덕진풍(德津風)’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중국에서는 전화기를 ‘덕률풍(德律風)’이라고 하였는데, 그 중국말 발음은 ‘떠뤼펑’에 가까우니 영어 ‘텔레폰(telephone)’을 그럴듯하게 음역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덕진풍’을 둔갑하였다.

 ‘律(률)’자를 그와 형태가 비슷한 ‘津(진)’자로 오인하여 그것이 굳어진 것이다. ‘덕진풍’을 중국어 발음으로 하면 ‘떠찐펑’에 가까운 소리가 되니 엉뚱하기 이를 데 없는 변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때로는 득진풍(得津風)으로 쓰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도 중국어 발음은 같다. 앞의 ‘호열자’의 경우와 함께 중국과 문자로만 소통하였지 음성은 고려하지 못했던 시대적 배경이 빚어낸 우스운 언어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3) 나재민(羅災民)


다음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옛날 신문에 실려 있던 기사들이다.


(가) 兒童의 갸륵한 마음 劇收入을 羅災民에3)


(나) 羅災民(나재민) 深刻(심각)한 食糧難(식량난)에4)


(다) 브라질에 熱帶暴風 羅災民 4萬名 넘어 “20세기 최악의 열대 폭풍으로 「브라질」 「과나바라」 州에서 약 2백65명이 목숨을 잃고 4만명의 이재민을 낸 참사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리오데자네이로」의 전통어린사육제는 내달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소식[로이터]5)


이들은 ‘재난을 당한 국민’이라는 뜻의 ‘이재민(罹災民)’의 ‘이(罹)’자를 그와 형태가 비슷하며 사용빈도가 높은 ‘나(羅)’자와 심심치 않게 혼동하였음을 보여준다. 말은 ‘이재민’이라고 하고서도 한자는 ‘羅災民’으로 쓰기도 하고, ‘罹災民’을 ‘나재민’으로 읽은 다음 ‘羅災民’이라고 쓰기도 했던 것 같다. ‘이(罹)’자와 ‘나(羅)’자가 형태가 비슷한데다 ‘이(罹)’자보다 ‘나(羅)’자의 사용빈도가 높아서 생긴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3) 경향신문 1949년 2월 17일.
4) 동아일보 1956년 3월 11일.

5) 경향신문 1966년 1월 21일. 그런데 같은 날짜 신문 제3면에는 ‘罹災民에 溫情’이라는 제목도 보인다.


(4) 위적료(慰籍料)


위자료(慰藉料)의 ‘자(藉)’자는 우리말에서 그리 흔히 쓰이는 한자가 아니다. 이에 비해서 이 글자와 형태가 비슷한 ‘적(籍)’자는 ‘호적(戶籍)’이나 ‘본적(本籍)’ 등과 같이 비교적 쓰임새가 많다. 그런 연유로 ‘위자료(慰藉料)’가 ‘위적료(慰籍料)로 둔갑하는 기이한 현상이 빚어지기도 한다.


(가) <慰籍料에 관한 硏究>(이○○), <부당해고에 따른 사용자의 불법행위책임에 관한 연구: 벌칙적용 및 위적료청구권 중심으로>(현○○), <慰籍料算定에 관한 硏究>(이○○), <위적료산정 에 있어 고려되어야 할 諸般事情, 民法大講座 <特輯>>(이○○), <離婚等의 慰籍料와 財産分與制度>(이○○), <不法行爲로 因한 破害者의 兄第의 위적료청구권>(전○○)


(나) “교통사교 慰籍料 必要經費에 산입” - 국세청은 교통사고로 인한 위자료지급은 고의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소득금액 계산때 필요 경비에 산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6)


위의 예문들에는 ‘위자료’, ‘위적료’, ‘慰籍料’의 세 가지가 보인다. ‘慰藉料’를 ‘위적료’라고 읽고서는 그것에 맞추어 ‘慰籍料’라는 한자말을 만들어내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6) 매일경제신문 1980년 5월 29일.


(5) 목단(牧丹)


《국어대사전》에는 ‘모란(牡丹)’과 함께 ‘목단(牧丹)’이라는 어휘를 싣고 둘은 같은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7) 그런데 중국이나 대만에서 나온 한자어 사전과 일본에서 나온 일본어 사전을 보면, ‘牡丹(모란)’은 등재되어 있으나 ‘牧丹(목단)’이라는 단어는 실려 있지 않다. 그래서 ‘목단(牧丹)’이 좀 수상하게 여겨진다.

앞의 ‘나재민’이나 ‘위적료’의 경우에 비추어 보면 ‘牡丹(모란)’의 ‘牡(모)’를 그와 형태가 유사한 ‘牧(목)’으로인하여 ‘목단’으로 잘못 읽다가 나중에 ‘목단’이라는 음가에 맞추어 ‘牧丹’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으로 생각된다. 국어사전에서 ‘牡丹’을 활음조하여 읽은 ‘모란’과 ‘목단(牧丹)’을 같은 말이며 동시에 맞는 말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좀 있다고 생각된다. ‘위적료’나 ‘나재민’이 표준말로 인정될 수 없다면, 같은 이치로 ‘목단’도 표준말로 인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7) 《국어대사전》(제3판 1994년 전면 개정, 이희승 편저, 민중서림) 제1256쪽(모란)및 제1272쪽(목단) 참조.



2) 같은 발음의 형태가 유사한 다른 글자로 착각


정치적 성향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어느 언론인이 쓴 글 속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들어 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의 李明博 압승, 2008년 국회의원 선거의 한나라당 압승에 담긴 국민의 與望(여망) 은 從北척결에 의한 法治와 안보의 확보였다. 李 대통령은 법치와 安保의 기반이 되는 반공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중요성을 自覺(자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념을 낡은 것으로 규정, 이념투쟁을 포기한다는 선언을 하고 말았다.8)"


이 인용문 속의 굵은 글씨로 된 ‘與望(여망)은 ‘輿望(여망)’의 잘못이다.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같은 큰 사전에서는 ‘輿(여)’에는 ‘무리 중(衆)’자처럼 ‘여러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해설하고 있다. 거기에 ‘바라다’ 또는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望(망)’자를 덧붙인 ‘여망(輿望)’은 곧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곧 위 인용문의 ‘與望(여망)’은 ‘輿望(여망)’으로 고쳐야 문맥이 순조로워지는 것이다.


‘輿望(여망)’을 ‘與望(여망)’으로 쓴 것은 글자의 형태가 매우 유사해서 순간적인 착오에 의한 오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위의 언론인은 위의 글 이외에도 다른 글에서도 ‘與望(여망)’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9) 단순 착오가 아니라 그걸 그렇게 알고 있다고 여겨진다. 정치의 장에서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정당을 ‘여당(與黨)’이라고 하고, 그 여당의 범주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을 ‘여권 인사(與圈 人士)’, 또 그 범주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인물을 ‘여권 실세(與圈 實勢)’ 등으로 부르는 일이 많아 그런 착오를 일으키지 않았나 하고 추측해본다.


8) 趙○○ 2010.11.14 18:05.
9) 뉴데일리 조○○ 최종편집 2011.06.10 20:29:52 참조.




3) 글자의 특정 부분에 근거하여 발음 유추


(1) 변려문(騈儷文)


중국 육조(六朝)시대의 문단에는 유미주의가 성행하였고,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변려문(騈儷文)’이라는 문장이 유행하였다. 마치 말 두 마리가 나란히 달리듯이 두 구씩 짝을 지어가며 문장을 엮어간 탓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그것을 중문학계에서는 ‘변려문’이라고 읽었다. 그러나 중문학계 이외에서는 그것을 ‘병려문’이라고 읽는 것이 대세였다. ‘병려문’은 국어사전에도 당당히 올라 있다. 그러나 이 ‘騈’자를 중국에서는 ‘pian’이라고 읽고, 일본에서는 ‘べん’으로 읽는다. 중국어 발음은 대략 ‘피엔’이라고 할 수 있고, 일본어 발음은 ‘벤’에 가깝다. 모두 우리말 ‘병’보다 ‘변’과 가깝다. 물론 일본어에서는 ‘n’과 ‘ng’의 발음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일본어 발음의 증거능력을 의심할 수도 있으나, 우리말의 ‘변’에 해당하는 일본어 발음은 ‘헨’ 또는 ‘벤’에 가깝고, ‘병’에 해당하는 일본어 발음은 ‘헤이’나 ‘뵤’에 가깝게 발음되기 때문에 증거능력에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 ‘騈儷文’을 ‘병려문’으로 읽은 것은 ‘騈’자의 글자 형태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자의 형성자(形聲字)는 한 쪽이 뜻을, 한 쪽이 발음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으므로 ‘騈’자의 오른쪽에 ‘幷(병)’자가 붙어 있는 것에 착안하여 그 발음을 ‘병’으로 유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2) 개전(改悛)


‘개전(改悛)’의 ‘전(悛)’자를 ‘준’으로 읽는 것은 그것과 같은 형태소를 가지고 있는 ‘俊’·‘駿’·‘峻’ 등이 모두 ‘준’이라는 발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형태를 보고 발음을 유추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3. 한자의 발음과 관련된 한자어의 오남용


한자는 그 수에 비하여 발음되는 음절의 수는 현저히 적으므로 자연히 같거나 유사한 발음을 가진 글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하여 비슷하거나 유사한 발음에 뜻도 비슷한 경우가 적지 않으니, 통용되는 한자어의 발음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게 생기게 된다.


잘못된 발음으로 유통되는 한자어는 그 원인과 이유에 따라 여러 가지 경우로 분류될 수 있다. 어휘의 뜻과는 무관하지만 발음이 유사한 다른 어휘로 이해되어 쓰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러한 발음의 다른 어휘가 없는 유사 발음으로 이해되어 유통되는 것도 있다. 가장 흔한 경우는 의미상 약간의 관련성이 있으며 발음이 유사한 어휘와 혼동하는 경우이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서 발음과 의미가 유사하거나 관련성있는 어휘를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 밖에도 난이도 높은 어휘를 유사한 발음의 어휘로 재구성하는 경우, 사용 빈도가 낮은 발음의 어휘를 빈도가 높은 발음으로 오해하는 경우, 어휘가 특정하는 내용을 유사한 발음의 다른 특성으로 오해한 것, 두 가지 이상의 발음이 있는 어휘를 오독하는 경우, 한자어를 같은 발음의 다른 한국어로 착각하는 경우 등
도 있다. 간혹 순수 한국어를 섞어 쓴 어색한 한자어도 발견되기도 한다.



1) 뜻은 무관하나 발음이 유사한 다른 말로 오해


(1) 목이버섯


인터넷상에 떠도는 글에서는 뜻은 전혀 관계없는데도 그것과 유사한 발음의 다른 어휘로 이해하여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다.
‘목이버섯’을 ‘모기버섯’이라고 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가) 모기버섯을 사용하는 음식과 그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방법을 가르쳐주세요.10)
(나)표고버섯 송이버섯 모기버섯 등이 있습니다.11)


식용하는 버섯 중에 겨울철에 뽕나무 말오줌나무 등의 죽은 나무에서 자라는 것으로서 그 형상이 사람의 귀를 닮았다 하여 ‘나무의 귀’라는 뜻을 가진 ‘목이(木耳)버섯’을 연음된 상태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듯하지만 그래도 남이 볼 수 있는 공개된 곳에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공개적인 글을 쓸 때에는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사전을 한 번 뒤적여보아야 할 것이다. 사전 찾기를 귀찮아하지 않는다면 한자말을 잘못 쓰는 일은 대폭 줄어들게 될 것이다.


10) 네이버 지식 in 모기버섯 요리하는 법 2006.04.29.
11) 네이버 지식 in 2010.08.29.


(2) 비위(가 상하다)


‘비위가 상하다’의 ‘비위’를 ‘비유’라고 하는 것도 위의 ‘목이버섯’의 경우와 같은 유형에 해당한다.


"판매 관계자분들이 이말 들으면 좀 비유가 상하실 수도 있고, 또 유저중에서도 해외구매는 A/S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으나 마음 편하게……12)"


‘비위가 상하다’의 ‘비위(脾胃)’는 신체의 장기 중에서 소화를 담당하는 비장(脾臟)과 위장(胃臟)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비위가 소화를 담당하는 만큼 음식의 맛에 대한 호오를 판단하는 기능을 가진다고 생각하여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 ‘음식이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의미가 확장되어 ‘어떤 사물이나 사태에 대하여 좋고 나쁨을 분간하는 기분’을 뜻하기도 하는 것인데, 이를 잘못 이해하여 ‘비유’라고 했던 것이다.


‘가계부(家計簿)’를 ‘가게부’라고 하고, ‘고려장(高麗葬)’을 ‘고래장’이라고 하며, 또 ‘공황장애(恐慌障碍)’를 ‘공항장애’, ‘마이동풍(馬耳東風)’을 ‘마의동풍’, ‘대증요법(對症療法)’을 ‘대중요법’, ‘국민교육헌장(國民敎育憲章)’을 ‘국민교육현장’, ‘물의(物議)를 일으키다’를 ‘무리를 일으키다’ 라고 하는 것 등도 같은 부류에 해당하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본래의 뜻과 거리가 먼 다른 유사한 발음의 어휘로 잘못 사용되는 한자어를 살펴보면, 얼마간의 난이도가 있는 어휘를 그보다 흔히 사용되는 다른 어휘의 발음으로 착각하여 사용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2) 카페 2011.01.06.



2) 의미와는 관계없이 유사 발음으로 왜곡


일정한 난이도가 있는 한자어를 잘못 이해하여 엉뚱한 말로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도 발견된다.


(1) 희한(하다)


"어린 시절 사진이어서 재밌게 넘겨보던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사진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남편의 과거 애인 사진이었다. 보는 순간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희얀하게도 외모뿐 아니라 옷 입는 스타일까지도 자신의 어린 시절과 흡사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13)"


위 예문에 보이는 ‘희얀하게도’의 ‘희얀’은 ‘드물다’는 뜻의 ‘희(稀)’자와 ‘한(罕)’자가 결합하여 일상적인 것과는 매우 다른 특이한 사물이나 사태를 형용하는 ‘희한(稀罕)하다’라는 말을 대충 들리는 대로 표기한것이다.


13) 아시아경제 온라인 이슈팀, 기사입력 2011.07.02 11:34, 최종수정 2011.07.02 11:54.


(2) 강퍅(하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백인에게 관대하고 흑인에게는 강팍하다.14)"


이 예문에서의 ‘강팍’은 ‘고집이 세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뜻의 ‘강퍅(剛愎)’을 대충 들리는 대로 짐작하여 ‘강팍’이라고 발음한 것으로 생각된다. ‘퍅(愎)’이라는 글자가 흔히 쓰이지 않고 발음도 괴상하게 들리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국어사전에서는 ‘강퍅’만 옳은 발음으로 간주하고 ‘강팍’은 틀린 것으로 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성미가 괴상하여 붙임성이 없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서 ‘괴퍅(乖愎)’이라는 단어를 올려놓고서 ‘괴팍’과 같은 말이라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괴팍’에는 한자를 부기하지 않았지만, ‘강퍅(剛愎)’의 ‘퍅(愎)’과 같은 뜻으로 쓰인 ‘愎’자를 ‘팍’으로 읽은 것은 분명하다. ‘剛愎’의 경우에 인정하지 않았던 ‘팍’이라는 발음이 ‘乖愎’의 경우에는 적용될 수 있다는 판단이 무엇에 근거했는지 궁금할 뿐이다.


14) CBS 노컷뉴스 박○○의 시사터치 “‘한국의 오바마’ 기대한다” 2008.11.07 08:49.


(3) 나침반


"불과 D-3를 남긴 4·27재보선 승패에 따라 여야에 쓰나미급 후폭풍이 예견되고 있다. 이번 선거가 내년 4·11총선-차기대선 ‘나침판’ 인 탓이다. 규모·관심도는 ‘미니멈급’이나 의미는 ‘메가톤급’ 함의를 띤 채 여야가 사활을 거는 배경이다.15)"


‘나침반(羅針盤)’을 ‘나침판’으로 잘못 읽은 경우다.


이들 중 (1)과 (2)에서는 발음이 특이하거나 힘든 것을 쉽게 발음하여 표기한 정황이 발견되며, (3)의 경우는 이와 달리 보다 더 선명한 발음을 지향한 결과가 오류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오류들이 앞의 ‘뜻은 무관하나 발음이 유사한 다른 말로 오해’한 경우와 차이가 나는 것은 그런 발음으로 사용되는 어휘가 없다는 점이 될 것이다.


‘보끌복’으로 흔히 쓰였으나 어느 인기 방송 프로그램 덕분에 크게 바로잡아졌던 ‘복불복(福不福)’, ‘독야청정(獨也靑靑)’을 ‘독약청청’으로 말하는 것 등도 이러한 범주에 드는 한자어 오용 사례라고 할 것이다. 표준말로 등록되어 있는 ‘미루나무’도 사실은 ‘미류(美柳)나무’가 와전된 것이다. 하도 널리 쓰이다 보니 그대로 표준어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복불복’의 경우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큰 매체는 우리말을 아름답고 올바르게 가꾸는 데에도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5) ⓒ 브레이크뉴스, 기사입력: 2011/04/24 [14:26]



3) 의미상 약간의 관련성이 있으며 발음이 유사한 어휘와 혼동


특정 어휘와 발음이 유사할 뿐만 아니라 그 뜻도 약간 관련이 있는 어휘가 존재할 경우, 그 특정 어휘를 그것과 혼동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러한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1) (국회의원) 당선(자)


"국회의원 당첨자 발표가 어제 있었다. 언론에서는 “우리 국민의 절묘한 선택”이라는 심층 어구를 선택하면서 여야의 의석을 비교 분석하고 왜 결과가 이케 나왔나를 다각도로 분석하는데……16)"


‘당선(當選)’이라고 써야 할 말을 ‘당첨(當籤)’이라고 한 것이다. ‘당선’ 이나 ‘당첨’은 모두 소망하는 것을 얻거나 이루게 되는 것을 나타내는 공통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발음도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생기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당선’은 의지를 가진 행위자가 선택하는 것이고, ‘당첨’은 무작위로 선정된다는 점에서 그 용법이 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6) 네이버 블로그 2008.04.10.


(2) 장애인


"(가)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 장해인에게 창업점포를 임차, 지원하기로 하고 지원 신청자를 모집한다고 30일 밝혔다.17)"


"(나) 근로복지공단(이사장 신영철)은 산업재해로 인한 장해로 재취업이 어렵고 담보·신용 등 경제력이 부족한 산재 장해인에게 창업 점포를 임차·지원함으로써 직업복귀 촉진 및 경제적 자립기반 마련을 돕고자 창업점포 지원 신청자를 모집한다. 선발대상은 산업재해 보상보험법에 의한 장해등급을 받고 직업훈련, 자격증 또는 2년 이상 종사한 업종과 관련 업종으로 창업점포 지원을 희망하는 산재장해인이다.18)"


‘장애(障碍)’라고 해야 할 것을 ‘장해(障害)’라고 한 것인데, 위와 같은 예문으로 보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시중의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이 두 단어에 대한 해설을 보면 ‘장애’는 ‘막아서 거치적거림’이라고 하였고, ‘장해’는 ‘거리껴서 해가됨’이라고 하고 있어서 상당히 유사하다. ‘막다’라는 뜻을 가진 ‘장(障)’ 자가 공통으로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는 ‘행동이 여의치 않은 불편한 상태’를 말할 뿐이지만, ‘장해’는 ‘불편을 끼쳐 좋지 않은 일이 생기게 되는’ 변화의 과정을 포함한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어떤 연유로 ‘장해’를 입어 행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뜻도 비슷하고 발음도 비슷하니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틀리기 쉬운 경우라고 하겠다.


17)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1-30 21:51 / 수정: 2011-01-30 21:51.
18) 공감코리아 2011.01.31.


(3) 태극기


"이 장관은 지난 28일 자신의 트위터에 “민호(아들)야 내일 3.1절이다. 또 태국기 오후에 달고 망신 당하지 말고 일어나자마자 달아라. 태국기 달아놓고 다시 잠자라”라는 글을 게재해 누리꾼들의 질타를 받았다.19)"


정권의 실세 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이 모 장관이 트위터에 올린 글 속에 ‘태극기’를 ‘태국기’로 잘못 표기하였다가 누리꾼들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았는데, ‘태국기는 어느 나라 국기?’ 또는 ‘태국 가서 국기 달고 오세요’ 등의 비아냥거림을 받는 등 크게 곤욕을 치렀다. 장관 쯤 되는 사람이 저지른 실수라 비난이 거셀 수밖에 없었지만, 특정 발음이 잘 구분되지 않는 지역 출신의 사람이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잔머리를 굴려 이해를 하는 경우 범하기 쉬운 오류다. 태극기가 우리나라의 국기이기 때문에 그 ‘국기’에다 ‘태’자를 붙여 그 위세를 돋보이게 한것일 거라고 유추할 만한 공간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도 장관을 할 만한 역량이 있다는 사람이 그 나이 되도록 ‘태극기’를 ‘태국기’로 알고 있었다는 것은 예사 문제가 아니다.


이밖에 ‘귀양가다’를 ‘귀향가다’로, ‘자처하다’를 ‘자청하다’로, ‘기탁’을 ‘의탁’으로, ‘(비행기)조종’을 ‘(비행기)조정’으로 쓰는 것들도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오류 사례다.



4) 발음과 의미가 유사하거나 관련성 있는 어휘의 혼동


한자의 수가 워낙 많다보니 발음과 뜻이 동시에 유사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결과 발음과 뜻이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한자어가 구성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 그런 한자어를 정확하게 구분하여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정확한 언어생활을 위해서는 그러한 것들을 섬세하게 구분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사전 뒤지기를 게을리 하지않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1) 만반(의 준비)


(가) 본 학회에서는 이번 전시회가 귀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만전의 준비를 할 것을 약속드리며, 다양한 홍보, 마케팅효과 및 인적 교류를 폭넓게 이룰 수 있는 기회의 장소인 한국○○공학회 2009년도 봄 학술대회의 전시회에 많이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20)


위 예문에서 ‘만전(萬全)의 준비’는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언어 관행상 ‘만반(萬般)의 준비’라고는 하지만, ‘만전의 준비’라고는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전’과 ‘만반’은 ‘만’이라는 한 글자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발음도 비슷하지만, 이 둘은 품사가 다른 어휘다. ‘만전’의 ‘전(全)’은 말 그대로 ‘완전하다’는 뜻의 형용사이지만, 만반의 ‘반(般)’은 ‘가지’, ‘종류’ 등의 뜻을 지니는 명사이고, 그것이 다른 명사를 수식하는 경우에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이 된다.

중국어 문법으로 말하면 양사(量詞)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만반의 준비’는 ‘온갖 준비’가 되며 ‘만반’은 준비의 범위를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이에 대하여 ‘만전(萬全)’은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한데, ‘만(萬)’자를 명사로 보는 경우와 부사로 보는 경우가 그것이다. 명사로 보는 경우는 ‘만 가지가 완전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부사로 보는 경우에는 ‘매우 완전하다’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경우나 완전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 된다.


그래서 ‘만반’은 ‘만반의 준비’처럼 통상 뒤에 다른 명사를 대동하는 구조를 만들어서 해당되는 범주 내에서 누락이 없음을 나타낸다. 이에 대하여 ‘만전’은 ‘만전을 기하다’처럼 쓰여 어떤 행위나 상태가 완전한 정도임을 나타낸다. 그래서 ‘만전의 준비’를 ‘완벽한 준비’로 보아도 안될 것은 없겠으나 언어 관행상 어색하게 보이는 것이다. ‘만반의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언어 관행이기 때문이다.


20) 한국○○공학회 2009년도 봄 학술대회 안내문.


(2) (열쇠)복제


(가) 중원경찰서는 7일 판매했던 대포차량을 다시 훔쳐 판매한 혐의(절도)로 대학생 홍모(22) 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정모(22) 씨 등 4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홍씨는 지난 9월 24일 오후 7시30분께 경남 통영시에서 자신들이 인터넷으로 구입한 대포차량을 300만원을 받고 송모(37) 씨에게 되판 뒤 친구들과 함께 성남시 중원구까지 뒤쫓아 와 미리 복사해 둔 열쇠로 훔쳐 달아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같은 수법으로 자신들이 판매한 대포차량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21)


(나) 영화는 숀 코너리가 연기하는 에드워드 피어스가 어떻게 연인과 함께 기지를 발휘해 4개의 열쇠를 복사하고 금고를 털어나가는지
를 자세히 그려나간다.22)


(다) 포항북부경찰서는 16일 미리 복사해 둔 열쇠를 이용, 금품을 훔치려 한 A씨(27)를 절도미수 혐의로 구속했다.23)


(라) 현재 북한 장마당에는 한국에서 방영된 지 1주일 정도 지난 최신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CD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에서 방송된 TV프로그램들은 중국에서 대규모로 복사된 뒤 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땅으로 유입되는 것으로 전해졌다.24)


위 네 가지 예문에는 ‘복사’라는 말이 공통으로 쓰이고 있다.

(가)과 (나)와 (다)은 ‘같은 모양의 열쇠를 만들다’는 뜻으로 ‘복사’라는 말을 쓰고 있고, (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그대로 베낀 CD를 만들다’라는 의미로 ‘복사’를 쓰고 있다.

그런데 《국어대사전》의 ‘복사’ 조에는 “①한번 베낀 것을 다시 베낌. ②두 장 이상을 포개어서 한꺼번에 씀. ③같은 것을 두 장 이상 베껴 만듦. ④그림이나 사진 같은 것을 복제함. 카피(copy).”라는 어휘 설명을 싣고 있다.

그리고 ④에 보이는 ‘복제’라는 말에는 “①본디의 것과 똑같은 것을 만듦. 또, 그 만든 것. ② 【법】원저작물(原著作物)을 지각(知覺)할 수 있는 모조물(模造物)을 작성하는 모든 행위.저작권의 침해가 됨.”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가)과 (나)와 (다)에 쓰인 ‘복사’는 적절하지 못하며 ‘복제’로 써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의 경우는 ‘복사’의 ‘④그림이나 사진 같은 것을 복제함’에 근거하여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복제’의 ②의 설명에 따르면 이 경우에도 ‘복제’라는 말을 쓰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똑 같은 프로그램의 CD를 만드는 것도 똑 같은 제품을 만드는 행위라는 점에서 보아도 ‘복제’라는 말이 옳은 것이다. 요즈음 영어의 범람에 의해 이 두 가지를 모두 포괄하는 영어 단어 ‘copy’의 영향으로 ‘복사’와 ‘복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이 만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21) 경인일보 2010.12.08.
22) chosun. com 2011.01.31.
23) 경북일보 2010.08.17.
24) chosun.com 김○○ 기자, 입력: 2011.08.29 18:28 / 수정: 2011.08.29 18:28.


(3) 유명을 달리하다


(가) 옥씨는 편지에서 “갑자기 운명을 달리한 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면서 “아들에게 베푼 감독님의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25)


(나)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가 최진실, 이은주 등 운명을 달리한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의 숨겨진 성인 비디오가 공개됐다며 엉뚱한 인물의 노출사진을 메인 화면에 게재해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26)


‘사람이 죽는 것’을 나타내는 말 중에 ‘유명(幽明)을 달리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윽하다’라고 뜻풀이가 되는 ‘유(幽)’자는 ‘죽음’을 상징하고, ‘밝을 명(明)’은 ‘밝은 세상’ 곧 ‘이승’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런 즉 ‘유명을 달리하다’라는 것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간다’는 뜻이 되고, 그것은 곧 ‘죽는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사람이 죽는 것’을 뜻하는 한자어 중에는 ‘운명(殞命)’이라는 것이 있다. ‘목숨이 끊어지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얼핏 듯기에 ‘유명’과 ‘운명’이 비슷하게 들린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하다’라고 해야 할 것을 ‘운명을 달리하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성대모사’를 ‘성대묘사’라고 하는 것, ‘영화 상영’을 ‘영화 상연’이라고 하는 것, ‘재현’과 ‘재연’을 혼동하는 것 등도 이들과 유사한 한자어 사용상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25) 연합뉴스 고○○ 기자, 기사입력 2011-05-26 17:00.
26)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 기자 2011.08.25 17:40.



5) 난이도 높은 어휘를 유사한 발음의 다른 어휘로 재구


(1) 견치석


한자어 중에는 난이도가 높은 것이 적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기는 하지만 그 어휘가 만들어진 배경이 간단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 잘못 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구청이 사유지에 경치석 설치 등 무단공사. 최근 동주민센터 측과 현장을 찾아간 김씨는 자신의 땅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백양산으로 이어진 산길에 경치석이 박혀 있고, 주변 아파트로 콘크리트 연결 다리가 설치돼 예전 임야의 모습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27)"


위 예문에서 굵은 글씨체로 표시한 ‘경치석’은 ‘견치석(犬齒石)’의 잘못이다. 견치석은 제방을 보호하기 위한 호안공사(護岸工事)에서 석축을 쌓을 때에 흔히 쓰는 것으로서 앞면이 판판한 마름모형의 각진 돌이다. 그 돌의 형태가 대부분 개의 이빨 또는 송곳니처럼 뾰족하기 때문에 ‘견치석(犬齒石)’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생각된다.28) 그런데 그 견치석을 이용하여 공사를 하게 되면 환경이 정비되어 대개 그 이전보다 경치가 나아지게 된다. 그 때문에 ‘경치를 돋보이게 하는 돌’ 또는 ‘경치를 좋게 만드는 공사에 사용되는 돌’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여 견치석을 경치석(景致石)이라고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27) 부산일보 전○○ 기자, 입력시간: 2009.09.17.

28) 《국어대사전》에서 “‘犬齒石’은 ‘견칫돌’을 취음(取音)한 것”이라고는 한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2) 혼비백산


"동일한 옆모습 포즈를 취하면서도, 김선아는 불타는 추진력의 의지를 담은 표정을, 나문희는 여유가 묻어나는 표정을, 이경실은 분노 그 자체의 표정을, 고준희는 젊음의 패기를 담은 표정을 선보이며, 각 캐릭터별 개성을 명확하게 잡아내고 있다. 여기에 포스터의 한 가운데를 시원스럽게 뚫고 나오는 걸스카우트의 노란 봉고차와 봉고차에 쫓겨 혼미백산 달아나는 남자의 파격적인 비주얼은 포스터에 신선함을 더하는 동시에 ‘내돈 탈환을 위해 프로범죄 세계에 뛰어든 여걸들의 맹추격’을 그린 <걸스카우트>의 통쾌한 스토리를 기대케한다.29)"


‘ㅁ’과 ‘ㅂ’의 자판의 위치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서 ‘혼미백산’은 ‘혼비백산’으로 글자를 치려고 하다가 깜빡 오타가 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는 ‘혼미백산’이라고 쓴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이 글을 쓴 기자도 그렇게 알고 썼을 가능성이 있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혼이 날아가고 백이 흩어진다’는 뜻이다.
중국을 위시한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혼과 백으로 나누었다. 맑은 기운으로서 순수한 영적인 영역을 담당하는 것이 ‘혼’이고, 육신의 감각을 관장하는 것은 ‘백’으로서 상대적으로 탁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백은 땅으로 스며든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혼백이란 인간 정신의 모든 것이 된다. 그 혼백이 날아가 흩어지면 당연히 정신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을 ‘혼백이 날아가 흩어진다’고 표현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혼비백산(魂飛魄散)’이다.


위의 예문에 보이는 ‘혼미백산’은 ‘혼비백산’이라고 했어야 문맥이 순조로운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를 ‘혼미백산’이라고 한 것은 ‘혼비백산’의 ‘혼비’를 ‘마음이 흐리고 사리에 어두움’이라는 뜻의 ‘혼미(昏迷)’로 잘못 이해한 탓일 것이다. 발음이 언뜻 비슷하고 뜻도 닮은 듯해서 빚어진 착오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둘은 글자도 다르고, 구체적인 함의도 다르다. ‘혼비백산’이 외부의 충격에 의해 정신이 없는 동적인 상태라면, ‘혼미’는 그 자체의 불건강성에서 야기된 정적인 상태라는 차이도 감지된다.


‘혼백이 날아가 흩어진다’는 말은 한자로 표현하면 본래 ‘혼백비산(魂魄飛散)’이 되어야 될 것이나, 한자어에서 사자성어를 만들 때에 ‘AABB’ 의 구조로 된 것은 통상 ‘ABAB’로 쓰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동과 서를 가릴 것 없이 바쁘게 돌아다닌다’는 말은 ‘동서분주(東西奔走)’로 썼어야 할 것이었으나 그것을 ‘동분서주(東奔西走)’라고 표현하고, ‘하늘과 땅을 놀라 움직이게 한다’는 말도 ‘경동천지(驚動天地)’가 되었어
야 했으나 ‘경천동지(驚天動地)’로 쓴 것들이 다 그러한 연유 때문이다.


29) 씨앤비뉴스 차○○ 기자, 2008.05.07. 10:01:05.



6) 어휘의 함의를 같은 발음의 다른 한자어가 내포하는 특성으로 오해


(1) 수련(睡蓮)


한자를 조금 알게 되면 한자어의 뜻을 자신이 알고 있는 한자 지식으로 풀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한 태도가 한자어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너무 쉽게 생각하다가는 엉뚱한 추론으로 빠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궁남지 서동공원의 연지(蓮池)는 13만㎡가 넘는 넓은 면적으로 홍련, 백련, 황금련 등 세 종류의 연(蓮)과 황수련, 백수련, 홍수련, 적수련, 가시연, 왜개연, 밤에피는 수련, 물양귀비, 열대수련, 부레옥잠 등의 수련(水蓮), 수생식물과 야생화가 심겨 있다.30)"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인이 쓴 글이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에서 발생했다. 굵은 글씨로 처리한 ‘수련(水蓮)’이 잘못되었다. 다른 것처럼 한자를 병기하지 않았더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지만 친절을 베푸느라 한자를 병기하는 바람에 글쓴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수련은 흔한 볼 수 있는 꽃이라서 그 이름을 아는 이가 매우 많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의 상당수가 ‘水蓮(수련)’으로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꽃이 물에서 자라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자.

연꽃 치고 물에서 자라지 않는 것이 흔하던가? 연꽃 전문 식물원에 가보면 수십 종이 넘는 연꽃들이 다 물에서 자라지 않던가? 연꽃의 특성을 구분하는 데에 있어서 ‘물’이라는 요소는 변별성이 없다.

그렇다면 ‘수련’을 ‘水蓮’으로 쓰는 것은 뭔가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련’의 ‘수’는 다른 뜻이 되어야 변별을 주목적으로 하는 이름자로서의 기능을 원만하게 하게 될 것이다.


과연 ‘수련’은 한자로 ‘睡蓮’으로 쓴다. ‘잠자는 연꽃’이라는 뜻이다.
이 꽃의 생리가 정오경에 피었다가 저녁에 오므라들기 때문에, ‘밤에 잠을 자는 것 같다’고 해서 ‘잠잘 수(睡)’자를 써서 ‘수련(睡蓮)’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오시(午時) 즉 정오경에 피었다가 자정 무렵인 자
시(子時)에 완전히 오므린다 하여 그 꽃을 ‘자오련(子午蓮)’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물에서 자란다는 것은 수련의 특성이 될 수 없지만, 물이 많지 않은 보통의 토양에서 자라는 연꽃이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특성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크기는 매우 작지만 연잎처럼 생긴 식물로서 일반 토양에 사는 식물에 ‘물이 없는 곳에서 사는 연꽃’이란 뜻으로 ‘한련(旱蓮)’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비가 오지 않아)가물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인 ‘한(旱)’자가 여기에서는 ‘물이 적은 마른 땅’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30) 대전일보 2010.07.16 22면 기사(하○○ 소설가).



(2) 불편부당(不偏不黨)


"이날 박 부의장은 기자회견 내내 격앙되고 상기된 표정으로 민주당 시당의 불편부당함과 자신의 출당조처에 억울함을 드러냈고, 시당에서 최소한의 자신에 대한 소명절차도 묵살했다며 ‘공당’이 아닌 ‘사당’으로 전락했다면서 적개심을 드러냈다.31)"


이 글은 출당조처를 받은 어느 정치가의 반응을 보도하는 내용이다.
문맥으로 보아 굵은 글씨로 표시한 ‘불편부당’함은 결코 좋은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다. 그 조처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심정을 전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성어로 쓰이는 ‘불편부당’은 한자로 ‘不偏不黨’이라고 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불편), 특정 집단 논리에 매몰되지 않아(불당) ‘객관적이고 공평’한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공정하다’는 말이다.

그런 즉 문맥상 위 문장에서의 불편부당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글을 쓴 사람은 아마도 ‘불편부당’을 ‘불편(不便)하고 부당(不當)한 것’을 합친 말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다소 난이도가 있는 성어를 자신이 알고 있는 같은 발음의 보다 더 흔한 말로 착각하여 급기야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한 것인데, 어려운 말을 써서 자신을 유식하게 꾸며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불편부당’을 이런 식으
로 쓰는 것을 보게 되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생긴다.


31) 데일리안 이○○ 기자 2010.12.24 23:49:55.



(3) 옥석구분(玉石俱焚)


"기업인들은 “명백한 잘못이 있는 기업은 마땅한 비난을 받아야겠지만 모든 기업을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문제”라면서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는 기업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옥석구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32)"


위의 글에 보이는 ‘옥석구분’은 네 글자로 이루어진 성어 곧 사자성어다.

사전에서는 ‘玉石俱焚’이라고 되어 있다. ‘옥과 돌이 함께 탄다’는 말이다. 어떤 큰 재앙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 또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동시에 참화를 입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위 문장에서는 그런 뜻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옥석 구분해가며 비난해야’라는 표현을 보건대, 위 인용문에서는 ‘옥석구분’을 ‘옥과 돌을 나눈다’라는 뜻의 ‘玉石區分’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결과적으로는 ‘불편부당’의 경우처럼 본래의 뜻과는 정반대의 뜻으로 쓰였다. ‘함께 타다’는 뜻의 ‘구분(俱焚)’보다 ‘구분(區分)하다’는 말이 더 흔히 쓰이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옥석(玉石)을 구분(區分)하다’라고 쓰는 경우는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32) 문화일보 2011년 10월10일 민○○·채○○ 기자 게재 일자: 2011년 08월 18일 (木).



7) 두 가지 이상의 발음이 있는 어휘의 오독


(1) 면앙정(俛仰亭)


한자는 본래 한 글자에 하나의 발음과 하나의 뜻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한 글자가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졌고, 일부는 둘 이상의 발음을 가지게 되기도 하였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樂’자는 ‘음악’ 인 경우에는 ‘악’, ‘즐겁다’라는 뜻일 때에는 ‘락’, ‘좋아하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요’라고 읽는 것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것은 같은 글자라도 그 쓰인 뜻에 따라서 그에 알맞은 발음을 골라서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런 원칙이 무시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상춘곡’이라는 멋진 가사를 쓴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송순(宋純)선생의 호는 ‘면양정(俛仰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면앙정’의 ‘면(俛)’ 자는 ‘민면(僶俛)’처럼 ‘힘쓰다, 노력하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면’으로 읽지만, ‘(고개를) 숙이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부’라고 읽어야 된다.

 ‘부’라고 읽을 때에는 같은 발음의 ‘俯(부)’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 전남 담양에 있는 그 면앙정 선생이 세웠다는 면앙정의 천정에는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멋진 3언시가 이렇게 씌어 있다.


俛有地(   유지),           땅이 있고
仰有天(앙유천). 우러러 보니 하늘이 있네
亭其中(정기중), 정자가 그 가운에 있으니
興浩然(흥호연). 흥취가 크도다
招風月(초풍월), 바람과 달을 부르고
揖山川(읍산천). 산과 물에 인사를 하며
扶藜杖(부여장), 명아주 지팡이 짚고서
送百年(송백년). 일생을 보내리라


일부러 ‘俛’자에 발음도 달지 않고 해석도 붙이지 않았지만, 문맥으로 보건대 ‘굽어보니’ 밖에 더 들어갈 뜻이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 ‘면앙정’은 당연히 ‘부앙정’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이 ‘俛’자에 ‘힘쓰다’ ‘굽어보다’라는 뜻을 아울러 싣고 있으면서도 발음만은 ‘면’자 하나만을 올리고 있는 한자 사전도 있어서 ‘俛’자에 ‘부’라는 발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이 글자의 한국적 용법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있지만, 적어도 본래는 그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2) 자산어보(玆山魚譜)


정약전(丁若銓) 선생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우리말 발음도 문제가 된다.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자(玆)’자는 ‘이(것)’이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자’이지만, ‘검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현’으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자산어보》는 흑산도 일대의 어족에 대한 연구서다. 이 책의 이름에 ‘玆山’이라는 말을 썼다면, 어찌 ‘흑산도(黑山島)’와 관련이 없겠는가?

‘흑산도’의 ‘검을 흑(黑)’ 자를 ‘검을 현(玆)’로 바꾸어 쓴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의 이름도 응당 ‘현산어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이 책의 이름을 ‘현산어보’로 읽은 연구서가 나온 것33)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33) 《현산어보를 찾아서》, 이태원 저, 청어람미디어 2002. 참조.


(3) 척색동물(脊索動物)


동물 분류의 한 갈래로 설정되어 있는 ‘척색동물(脊索動物)’이라는 것도 문제가 있는 듯하다. ‘척색동물’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색(索)’은 두가지의 발음에 여러 가지의 뜻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노끈’이나 ‘새끼’ 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삭’으로 읽고, ‘찾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색’으로 읽는다.

그런데 ‘척색동물’의 ‘척색’을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인터넷 ‘과학용어사전’에서는 ‘chorda dorsalis’라고 소개하고 있는데,34) 이 ‘chorda’가 ‘끈’ 또는 ‘다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척색동물’도 ‘척삭동물’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척삭’과 ‘척색’의 두 단어를 함께 싣고서 같은 것이라고 한 사전은 두 가지를 다 인정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따지지 말고 대충 알아서 쓰라는 말인지 그 저의를 알기 어렵다.35)


34) 《신 콘사이스 韓英辭典》(동아출판사 편집부, 서울: 동아출판사, 1979).
35) 《국어대사전》(제3판 1994년 전면 개정, 이희승 편저, 민중서림) 제3722쪽 참조.


(4) 흘수선(吃水線)


선박과 관련된 용어로 ‘흘수(吃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다. ‘흘수(吃水)’는 ‘선박이 잔잔한 수면에 있을 때 물속에 잠기는 깊이 또는 정도’를 뜻하는 말이다. 곧 선박의 가장 아랫부분에서 수면까지의 거리를 ‘흘수’ 라고 하는데, 선박의 적재량이 많아지면 흘수가 커지게 된다. 그리고 선박의 측면이 잔잔한 수면과 만나는 선은 흘수선(吃水線)이라고 한다.


그런데 ‘흘수(吃水)’의 ‘흘(吃)’은 몇몇 특별한 경우36)를 제외하고는 ‘먹을 끽(喫)’자와 같이 쓰인다. 물론 오늘날 많은 글자가 간체자로 대체된 중국에서는 본래 ‘끽(喫)’을 써야 할 곳에도 대부분 ‘흘(吃)’자를 쓴다.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의 ‘흘수(吃水)’조에는 ‘끽(喫)’자가 쓰인 예문을 싣고 있는데, 그 예문의 ‘끽(喫)’자가 들어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不知該夷兵船笨重(부지해이병선분중), 喫水深至數丈(끽수심지수장), ……37)"



“그 오랑캐 군함은 얼마나 육중하던지 물에 잠기는 깊이가 수십 자에 이른다.”라는 뜻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이 청(淸)나라 말기에 활약했던 임칙서(林則徐)라고 하니, 배가 물에 잠기는 것을 나타내는 말은 본래 ‘끽수(喫水)’로 쓰던 것을 글쓰기의 편의 때문에 ‘흘수(吃水)’로 바꾸어 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또 ‘선박이 물에 잠기는 정도’를 나타내던 말이 선박과 관련된 전문용어로 채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국어대사전(日本國語大辭典)》38)에도 이 단어가 실려 있는데, ‘吃水’와 ‘喫水’를 같은 말로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吃’ 또는 ‘喫’의 발음은 ‘차를 마시다’는 뜻의 ‘끽차(喫茶)’의 ‘喫’을 발음할 때와 같게 표기되어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우리말에서 ‘흘수’라는 발음으로 통용되는 ‘吃水’는 ‘끽수’라고 읽는 것이 옳다고 해야 할 것이다.


36) ‘말을 더듬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경우와, 웃음소리를 나타내는 경우, 문장이 읽기 까다로운 경우 등.
37) 《漢語大詞典》(漢語大詞典編輯委員會漢語大詞典編纂處, 上海: 漢語大詞典出版社, 1989년 초판, 1994년 제3쇄) 제3권 129쪽.
38) 日本國語大辭典(縮刷版), 日本大辭典刊行會, 日本 東京: 小學館, 1980.



8) 한자어를 유사하거나 같은 발음의 한국어로 착각


(1) 방방곡곡


특정 사안을 나타내는 한자와 우리말의 발음이 유사한 경우도 있고, 한자어를 우리말로 간주해도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정확하게 배우거나 사전을 찾아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지 않으면 내용을 오해하거나 틀린 문장을 만들어내기 쉽다.


(가)그 이야기가 있는 곳, 방방곳곳 사극 따라 떠나는 첫 번째 여행을 시작해보려 합니다.39)
(나)경기도 방방곳곳에 아름다운 우리 꽃들이 폈다.40)


위의 두 인용문 속에 들어 있는 ‘방방곳곳’이라고 한 것은 한자어 ‘방방곡곡(坊坊曲曲)’의 ‘곡곡’을 우리말의 ‘곳곳’으로 오해한 것이다. ‘사람이 사는 동네’를 나타내는 ‘坊(방)’자에, 주된 뜻은 ‘굽다’ 또는 ‘노래’이지만 ‘사람이 사는 구석진 곳’을 나타내기도 하는 ‘曲(곡)’자를 합쳐 ‘사람이 사는 동네, 또는 거리’를 나타내는 ‘방곡(坊曲)’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그 말의 뜻을 강조하기 위하여 글자를 중첩시킨 것이 바로 ‘방방곡곡(坊坊曲曲)’이다. 그리하여 ‘방방곡곡’의 뜻은 ‘(사람이 사는 곳 중에) 한 군데도 빠짐없는 모든 곳’이 된다.

그런데 그 뜻은 결국 순수한 우리말인 ‘곳곳’과 비슷하다. 이런 까닭에 문맥상 ‘곳곳’과 비슷하게 쓰이는 ‘방방곡곡’이라는 말의 ‘곡곡’을 ‘곳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방방’이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하여 사전을 한 번 찾아보았더라면 ‘방방곡곡’을 ‘방방곳곳’으로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39) 블로그.
40) 인사이드 경기.


(2) 배가(되다)


"단시간에 승리 또는 패배가 결정되는 만큼 긴장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41)"


이 인용문은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큰 글씨로 된 부분 ‘배가 될’에서는 좀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 긴장이 꼭 ‘두배로 늘어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처럼 양을 정확하게 계량할 요량이라면 ‘두 배가 될’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맥은 대략적으로 ‘크게 늘어난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배가 될’은 ‘배가될’로 고치는 것이 좋을것이다.

한자로 ‘倍加’라고 쓰는 ‘배가’의 원래 뜻도 ‘갑절로 늘어난다’는 뜻이지만, 통상적으로 ‘훨씬 많이’라는 뜻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더하다’ 는 뜻의 ‘가(加)’와 주격조사인 ‘가’는 전혀 다른 말이지만, 이와 같은 경우에는 공교롭게도 구분이 쉽지 않아 혼동을 일으킬 만하다. 그래도 이 말들의 관계를 이해하고 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할 것이다.


41) Chosun.com 안○○ 인턴기자 2010. 11. 11.



4. 맺음말


한자의 형태 및 발음과 관련된 경우만을 두고 보아도 우리말에서의 한자어 오용은 매우 흔한 현상이며 그 양상도 다양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 수가 많은데다가 뜻이 유사하거나 발음이 같은 글자도 많은 한자의 성격이 한자어 사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자가 본래 우리의 문자가 아니라는 점 역시 한자어 사용의 난이도를 한 단계 더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상당한 지식을 가진 이들의 글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한자어 오용의 여러 가지 사례들은 그러한 사실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그렇지만 우리말 어휘의 과반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배제하고는 우리말이 성립할 수 없는 형편인 이상 한자어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기왕에 한자어를 쓸 수밖에 없다면 그것을 정확하고 적절하게는 써야 한다는 당위도 대두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규 교육과정에서의 한자어 교육이 좀 더 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전을 가까이 하는 문화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고, 특히 공개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은 사전 찾기를 귀찮아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보다 더 정확하고 완비된 사전을 만드는 것도 한자어의 정확한 사용을 확산시키는 데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한자어를 올바르고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은 우리말을 아끼는 일이고, 그것은 또한 우리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참고문헌


《中文大辭典》, 林尹 ․ 高明 主編, 臺北: 中國文化大學出版部, 1973년 초판 1982년 第6版.
《中韓辭典》, 高大民族文化硏究院 中國語大辭典編纂室, 서울: 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院, 1989년 초판, 2004년 전면개정 2판 2쇄.
《국어대사전》, 이희승 편저, 서울: 민중서림, 1994년 전면 개정 제3판.
《漢語大詞典》, 漢語大詞典編輯委員會漢語大詞典編纂處, 上海:漢語大詞典出版社, 1989년 초판, 1994년 제3쇄.
《日本國語大辭典(縮刷版)》, 日本大辭典刊行會, 日本 東京: 小學館, 1980. 기타 인터넷상에서 검색한 여러 문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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