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大暑) 그리고 참된 바캉스(vacance)
김 용 길 (詩人)
연일 습하고 더운 날씨가 이어져 오고 있다. 습기로 인한 불쾌함과 삼복(三伏)더위로 심신(心身)이 지치지 않도록 주의해야할 시기이다. 그리고 이 더위와 바쁜 일상을 탈출하기 위하여 휴가를 가거나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즈음이다. 곧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로, 계곡으로 몰려와 붐비게 되리라 본다. 흔히 말하는 ‘바캉스(vacance)’의 계절인 것이다.
23일은 대서(大暑)이자 중복(中伏)이다. 대서는 24절기 중 열두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소서(小暑)와 입추(立秋) 사이에 든다. 음력으로 6월에 있으며, 양력으로는 7월 23일 무렵에 든다.
때때로 이 무렵 장마전선이 늦게까지 한반도에 동서로 걸쳐 있으면 큰 비가 내리기도 한다. 불볕더위, 찜통더위도 이때 겪게 된다. 무더위를 삼복으로 나누어 소서와 대서라는 큰 명칭으로 부른 것은 무더위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다. 중복은 하지(夏至) 후 제4경일을 의미하며 삼복(초복, 중복, 말복) 중 하나이다. 복 또는 경은 더운 시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대서는 중복 무렵일 경우가 많으므로, 예부터 이 시기에 삼복더위를 피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계곡이나 산정(山亭)을 찾아가 노는 풍습이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네 조상들도 이시기에 바캉스를 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새 들어 우리네들은 과연 참되고 보람있는 바캉스를 보내고 있는지 의문이다.
프랑스어 바캉스는 ‘면제, 해제, 해방’이란 라틴어 vacatio에서 유래했다. 영어로 ‘방학, 휴가’를 가리키는 vacation도 같은 어원이다. 본래 학생 교사 법관 등에게 주어진 긴 휴가였다. 한자 ‘휴(休)’는 사람이 나무에 기댄 형상이어서 흥미롭다.
바캉스는 산업의 고도성장으로 생활이 풍족해지면서, 여가활용을 생각하게 되었고, 기업 또한 근로자의 정신적 ·육체적 자질 향상을 위해 그 필요를 느끼면서 보편화되었다.
바캉스의 유래는 정복왕 윌리엄이 노르망디 포도 수확을 돕기 위해 군인들에게 긴 휴가를 주던 관습에서 비롯됐다. 근로자 휴가는 1936년 프랑스가 주당 40시간 노동, 연간 15일 휴가를 법제화한 것이 시초다. 이후 기간이 1969년 4주, 1985년 5주로 늘어 프랑스인들은 한 달 놀기 위해 1년 일한다고 할 정도다. 우리나라는 1965년께 신문 표제에 바캉스란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휴가라야 하루 이틀 강가 물놀이 수준이어서 바캉스 족을 보는 시선은 따가웠다. 1970년대 초 신문 사설은 ‘한량들의 천박무쌍한 노출증, 치기에 찬 허영, 반사회적 행락’이라고 비난했을 정도다. 1970~80년대 경제발전, 근로기준법 강화 등으로 여름휴가가 보편화됐다.
바캉스는 삶에 있어서 재도약을 위한 원동력을 얻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심신을 단련하는 데 있어 그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허나 그 시기와 방법이 문제다. 남이 가니까 나도 간다는 식의 부화뇌동(附和雷同) 스타일의 휴가라든지, 심지어는 비행기 타고 호텔에 들어서는 것이 제대로 된 바캉스라고 생각하는 풍조 등은 지양하여야할 것이다. 휴가 시기도 대체로 7월말, 8월초에 집중돼어 교통체증, 바가지 요금 등 가장(家長)에겐 고생길이기도 하다. 휴가가 피크인 성수기에 제주공항을 가보면 시장터를 방불케 할 정도이다.
결국 참된 바캉스는 외적인 휴양보다 내적인 휴양에 좀더 관점을 두고 자신을 살필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을 누리며 자아발견(自我發見)을 하는데 있지 않을까 한다.